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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박정현, 서재원, 김효영

심사위원 박정현

‘한국성’은 한국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60년 이래 건축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 없는 문제적 개념입니다. 일본과 다른 정체성에 대해 묻는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국 건축의 문화적 배경과 내러티브를 설정해야 하는 지금도 한국성은 여전히 논쟁적 문제이자 물음입니다.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해준 모든 참여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안에서 신랄하게 오늘의 한국을 비판하고 냉소하는 안까지, 한국성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제각각의 해석 속에서도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별적인 작업에 대한 세세한 평가보다는 전체적인 현상을 짚는 것으로 심사평을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한국성을 일상과 개인적인 경험에서 추출하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제 설명 등을 통해 전통이나 과거의 유산에 국한해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는 종래의 시도를 비판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참가자들의 눈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현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국성의 단초를 읽어냈기에, 그 결과 역시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기보다 특수하고 개별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건축적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레퍼런스를 버내큘러 건축에서 찾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가 내심 기대했던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의 대표적인 단독주택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이에 비하면 대단히 좁은 영역인 ‘한국 현대건축’과 대면하는 안은 없었습니다. 이런 대결은 건축 내부의 담론을 증폭하고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미 수십년 동안 한국성을 묻고 답해온 이전 건축가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오늘 자신의 건축을 건축계 내부의 문맥에서 설정하는 매우 유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학생들이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문맥과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 역사와 비평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과제인 동시에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찾았다고 여기는 순간, 진위를 의심받는 성배, 너무나 많은 덫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퀘스트가 참가자 여러분들의 생각을 벼리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심사위원 서재원

이번 심사에 적용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은 다음의 네 가지다. 먼저 계획적으로, 표현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더 나아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배제하였다. 폭발적으로 난잡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의 한국성이기에 오히려 개념의 명료함과 미학적 가능성을 통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오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완결된 아름다움을, 즉 모더니즘에서 보였던 전체적 조화에 수준 이상의 집착이 보이는 것 또한 배제하였다. 이는 보편적 한국성이 소위 정 없는 깍쟁이 보다 좀 덜 떨어진 미완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제시된 안이 현재 우리가 가진 상황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재해석될 만한 ‘긍정적 가능성’을 열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넷째는 즉물적, 직관적으로 K-스러운가를 고려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기준을 토대로 추가 논의의 필요성이 있는 안들을 선별하였고 대상의 수상 여부를 떠나 최종 선정된 12 작품 모두가 각기 다른 측면에서 유의미하였다.

‘율도피아’는 상당히 관조적 태도를 보이는 비판적 선언에 가깝다. 단독주택이라는 프로그램은 큰 의미 없지만 역설적으로 실내 모형 사진에서 보이는 혼성과 이접의 미학적 가능성이 보이는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다시금 현실을 긍정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주류의 버려진 장소로서의 밤섬을 대지로 선정한 점 또한 충돌과 관조의 지점으로 적절해 보이며, 이에 더해 상징적으로 차용된 요소를 격자 그리드와 대립시켜 더욱 파편화된 모습을 드러내면서 적절히 억압 혹은 해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둔탁하고 컬러풀한 컨셉 드로잉 또한 지금 엉성한 우리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우리가 가진 시답지 않은 것을 건축 요소가 아닌 건축 유형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노력이 인상 깊다. ‘1호선 빌런’으로 상정한 집주인 자체가 한국성을 대변한다고 볼 때 재미있는 접근이다. 다만 견고해 보이는 벽체와 슬래브의 구성이 비닐하우스의 가성비적이고 휘발적인 속성에 서로 부합되지 않는 듯 보이며 그에 더해 설정한 집주인의 괴랄한 성격이 더 부각된 ‘엉성한 구축’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래동보다는 비닐하우스가 원래 많이 발견되는 교외 들판같은 생경한 장소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듯하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시한 “건축은 가볍고 프로그램은 무겁다”는 단순한 명제는 지금 한국건축의 상황을 적절히 관통한다. 각자의 구미에 맞게 자유롭게 DIY로 구성된 입면이 서로를 고려치 않은 채 조각보처럼 보이는 점은 우리 주변을 보는 듯하다. 다만 명제와는 다르게 오히려 제공된 격자틀, 건축이 무거워 보이고 프로그램이 가벼워 보이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속박된 틀안에서도 어떻게든 각자의 공간을 구성한 발랄한 내부공간은 발버둥치며 사는 한국 사회를 연상케 한다.

‘낭떠러집’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이름이 남기는 뉘앙스가 상당히 묘하다. 창신동 돌산을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단절의 상징적 장소로 상정하고 구체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용적률 0%에 지상층을 완전히 비워냄으로써 생긴 공허함은 사유재산으로서의 단독주택에 희생을 요구했지만 5개 층을 오르내려야 하는 마을계단길, 개인 공간 앞에 마련된 공용 마당 등이 실제로는 작동하기 어려워 무용지물이 되는 듯한 점을 오히려 윤리적 태도가 가진 모순과 부조리의 ‘낭떠러집’으로 표현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긍정적 태세와 매력적인 자태를 지닌 아름다운 집이다.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는 민화를 통해 한국적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을 제시한다. 참조와 비참조를 호기롭게 넘나드는 태도는 상당히 비윤리적이며 호탕한 자객과도 같다. 평면에서 보이는 현관 공간, 계단, 9정방 구조 등의 스케일과 위계가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참조물들 사이에서 유희적으로 구성(composition)되는 일종의 그래픽적 구축(tectonic)이라는 점에서도 인상 깊다. 마치 졸부의 집처럼 고상함과 과도함 사이에 있지만 키치적이지는 않다. 추상적이면서 구상적이고, 기능적인 듯하지만 수사적이고, 이상한 듯하면서 아름답고, 규정될 듯하면서 계속적으로 미끄러지는 모호함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우유부단함을 긍정적 가능성으로 보여준다.

지난 몇십 년간 부여잡고 있었지만, 답을 내지 못한 한국성을 이번 정림학생공모전을 통해 답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한국성이라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성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이제는 우리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 발짝 이라도 우리만의 고유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발걸음을 기꺼이 내디뎌 준 학생 여러분께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심사위원 김효영

한국성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기에 손이 데일 것을 감수하면서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성’의 공모에 참여한 모두가 나름의 해답으로 이 필요의 요청에 응답하였습니다. 참가작들을 살펴보며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선과 노력이 반가웠고 용감한 건축적 제안들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성이라 불릴 특성을 찾아내기 위한 여러 시도 중에 켜켜이 쌓인 시대와 문화가 중첩된 현재 도시의 모습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브라크의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율도피아]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밤섬에 한국 사회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기념비를 만들었고,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는 소환된 건축적 요소들을 자발적 참여의 주체로서 유희적으로 충돌시켰으며, [오케아노스의 집]은 선택한 장면을 사면에 두르고 정사각형의 평면을 단단히 잠금으로써 오히려 의미를 건드리는 명상적 공간을 지었습니다. 또한 [이태 짜깁기집]은 키치의 건축적 수용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동화적인 조형감으로 녹여내었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의 태도를 바탕으로 잊혀갔던 건축적 어휘들을 찾아내고 이 어휘들의 충돌에 따른 새로운 공간과 경험의 생산을 기대하게 하지만, 우발적 가능성 이후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는 듯했습니다. 

반대로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의 작품도 있었는데, ‘정’으로 미화되는 침범의 불편함을 드러내기 꺼려지는 요소들을 장식화하며 다가구주택 같은 유형의 단독주택으로 제시한 [신사 빌라트]가 그러했고, [사이비 주택]은 동질성 안에 숨고자 하는 심리를 주변의 건물과 유사한 콘크리트 가면으로 공격하였습니다. 순수예술의 영역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비판의 강도는 건축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있으나, 동일한 지점에서 한국성의 탐색에 적절한 수단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A house among us][플러스 마이너스]는 현대사회의 유동적이며 모호한 특성에 주목하였는데, 전자는 근생과 같은 외형과 공간의 무성성을 다양한 주거의 활동을 담는 내부공간과 대비시킨 반면, 후자는 최소한의 구조와 시스템을 가진 가벼운 건축을 제안하며 점유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성성이 한국적 가치로 거론되는 것과 유연하고 가벼운 건축 유형의 제안이 아직도 참신하고 유효한 것인지는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낭떠러집]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만남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주제를 채석장 절벽이라는 수직적 경계의 위치선정과 두 계단의 대비를 통해 극적으로 만들었고, [담장_현대적 불안감과 편리한 해결책]은 주택이라는 사적 영역의 경계에 담장과 공간의 섬세한 높이설정을 통해 안과 밖의 미묘한 관계를 우아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여러 겹의 나, 여러 명의 나]는 사회에 속한 나의 모습과 욕망에 한국성이 있다는 전제로 스스로 원하는 바를 다양한 아이디어의 공간으로 계획하였으나, 위의 세 작품은 계획과 표현의 완성도에 비해 주제의 새로움과 엄밀함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비닐하우스, 괴랄한 노인, 문래동 공장지대라는 소외된 영역을 끌어안고 이 조합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주택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으나, 각각의 요소를 더 깊게 고민해 그 집의 성격에 드러났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성’의 공모를 통해 오백 채 가까운 단독주택이 모였습니다. 이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되면 가장 한국적인 동네가 탄생할까요? 한국성이라는 헤아리기 힘든 주제를 건축에서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모든 참가자의 노력과 수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논의를 마치기에 다소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탁월함의 부족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거리감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가 한국성을 찾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려는 것인 만큼 집단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나를 가까이 마주보고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나와 관계된 주변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유대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시작된 우리를 향한 관심이 지속되어 다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정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비롯해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1989~1997』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Out of the Ordinary》(2015, 런던),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Cosmopolitan Look 1989~2019》(2019, 부다페스트)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서재원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현대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 아래 애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조화와 조화,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주요 작업으로 강릉 호지스테이, 서교근생, 망원동 단단집, 홍은동 남녀하우스 등이 있다. 2017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 TSK Fellowship Award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효영

단국대학교와 경기건축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여러 젊은 건축가의 아틀리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김효영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건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여 어떤 성격을 찾아내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생겨나는 질문으로 지금의 우리를 건축과 묶어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영주시, 서울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심사평

분량6,583자 / 13분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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