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ouse among us
이건호, 조영일, 정준우
분량4,246자 / 8분 / 도판 8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이건호 USI Accademia di Architettura di Mendrisio 건축학과
조영일 Carnegie Mellon University 건축학과
정준우 Carnegie Mellon University 산업디자인과


우리가 느끼는 한국성은 극단적으로 유동적이며 소비적입니다. 우리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물은 우리와 함께하는 수명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사는 것은 즐겁고, 다음 출시될 아이폰을 기다리는 것은 설렙니다. 새 아이폰을 사며 이미 다음 세대의 아이폰을 기다리고 있죠. 아직 한곳에 정착하지 못해 이 동네 저 동네 월세방을 옮겨 다닐 때도, 다음 집을 어떻게 새로 꾸밀지 항상 기대됩니다. 저는 벽에 붙여 쓰는 직사각형의 책상보다는 넓고 둥근 책상을, 덩치 큰 소파보다는 이곳저곳에 끌고 다닐 나무 의자를 선호합니다. 지금 제가 사는 월세방에 살던 전주인에게 이곳은 전혀 다른 집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은 물리적 실체가 아닌, 소비되어 없어지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최근에 자양동으로 이사하신 외할머니의 집에는 익숙한 좀약 냄새가 또다시 자개장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할머니께서는 여러 번 이사하셨지만, 제 기억 속에 할머니의 집은 변한적이 없습니다. 그때의 아파트에서도, 그전에 사시던 빌라에서도, 할머니의 방 한쪽에 커다란 자개장은 좀약 냄새로 그 공간을 할머니의 것으로 길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칠순 잔치 때 찍은 대가족의 사진은 항상 신발장 정면에 걸려있었죠. 집이라는 공간은 그 공간이 수행하는 기능보다는 그 공간을 소비하는 개인과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갖습니다.
또한 전형적인 집이 수행했던 많은 기능은 이미 도시 전체에 녹아들었습니다. 코인세탁방, 식당, 카페, PC방, 모텔 등은 앞으로 지어질 또 다른 ‘전형적인 집’들에 동일하게 포함되는 기능들을 불필요하고 중복적으로 만듭니다. 어떤 이의 집에는 주방이 없을 수도 있고, 어떤 이의 집에는 침대가 없을 수도 있고, 어떤 이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의 집에는 작은 수족관이 있을 수도 있고, 커다란 드레스룸이 있을 수도 있고, 턱걸이 기구가 있을 수도 있죠. 따라서 우리가 설계하는 ‘집’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주거 형태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설계안은 이러한 ‘집’이라는 것의 모호함과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각 공간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여 다양한 용도의 가능성을 열어두려 했습니다. 철골조로 간단한 보와 기둥을 만들고, 2.7m의 여유로운 층고를 두었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실은 건물 한편으로 정리하여 각 층에 대략 25평의 열린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열린 공간
속에는 필요에 따라 임시 벽을 세워 다양한 공간 구성을 할 수 있습니다. 내밀한 공간과 사무 공간을 나누거나, 여러 명의 사적 공간을 구분할 수도 있죠. 약 9m에 9.5m의 널찍한 평면에는 다양한 가구와 설비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사이의 널찍한 공간은 각 세대로의 입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각 층의 베란다와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의 땅에는 제 친할아버지께서 아직 연신내가 땅 위로 흐를 때 사셨던 집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물길 위로 도로가 생겼고 주변으로 많은 상업건물과 식당들이 들어섰죠. 벽돌, 타일, 또는 화강암으로 둘린 건물들과 그 재료들을 뒤덮은 시끄러운 간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서울의 풍경을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건물이 대조동의 예의 바른 이웃이 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대지 주변에 있는 상업건물들은 대부분 리본 윈도(ribbon window)를 이용해 넓은 시야와 넉넉한 채광을 확보하는 동시에 내부에 있는 사용자들의 사적인 공간을 보호합니다. 우리의 설계안도 리본 윈도를 이용하여 건물 내의 용도를 드러내지 않아 중립적인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좋은 채광과 넓은 시야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용이하여 내부 공간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게끔 해줍니다.
대지의 북동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오면 대지와 붙어있는 조금은 기괴하면서도 재미있는 빌라가 있습니다. 이 빌라의 입면은 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하지만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원형의 개구부를 갖고 있고 중간중간에 검붉은 페인트를 두르고 있습니다. 묘하게도 이 입면은 이 골목의 풍경을 방해하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하학적이고 넓적한 벽이 인상 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건물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만 마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수줍은 아이처럼 조금은 눈에 띄고 싶어 합니다. 대로변에 맞닿은 입면은 하얀 타일로 덮고 골목길 쪽 입면은 회색 시멘트 패널을 사용해 마치 전면의 하얀 입면이 흰 종이에 그려진 입면도처럼 산뜻해 보이게 했습니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김효영 매우 무덤덤한 입면과 내부 또한 무심하게 두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은 재미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무성성을 한국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계속 생긴다.
이건호 조영일 정준우 사이트가 서울에 위치하기도 했고 주거 공간의 여러 기능을 건물 내에 다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가서도 일할 수 있고 집에 주방이 없으니 음식을 시켜먹을 수도 있고… 이런 여러 기능이 도시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각 방에 기능을 부여하고 쓰임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다.
김효영 몇 세대가 사는 것인가? 층마다 각각의 세대가 있나? 어떻게 보면 잘 만들어진 근린생활시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성의 방향인가, 또는 어떠한 가치인가라고 물었을 때에는 아직 충분히 납득되는 결론은 아닌 것 같다.
이건호 조영일 정준우 처음에는 한 가족이 사는 집으로 설정해 각 층마다 한 명씩 살 수 있는 널찍한 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위치하는 집이니 지대도 비싸고 만약 가족 구성원이 이사를 갈 경우 각 층에 더 이상 가족이 사는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주어서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는 집으로 설정했다.
우리도 근생의 공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다세대 주택의 건물 기능이 많이 바뀌기도 하고, 원래 살던 주인이 건물을 팔고 이사를 가기도 하면서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물은 근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근생과 한국의 주거가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설계했다.
박정현 비슷한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형적인 주택인 아파트에서 볼 수 있듯이 각 실별로 용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점점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발표자 이야기대로 주택의 여러 기능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다양한 주택이 생길 것 같지만서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업이 어떻게 보면 근생 같기도 하고 1900년대 중반에 전세계 어디에서나 지어졌을 법한 건물 같기도 하다. 그런데 굉장히 정돈되어있고 잘 조율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나 익명적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역설적으로 한국성이라고 하는 것이 익명적인 것이라고 설정할 수 있으면 모르겠으나 이게 한국적인 것과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말로써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건호 조영일 정준우 디자인 전공자로서 건축을 공부한 팀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이 ‘과연 국내 도시에서 길거리를 걸을 때 눈에 띄게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대부분 메인 스트림에 녹아들려고 하고, 옷도 검은 색을 많이 입는 것처럼 차도 무채색 계열의 차들이 대부분이고 눈에 띄는 것은 한두 개뿐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건물 안에서 큰 공간을 내고 스스로 만들어갈 여지를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재원 1차 심사 때 이 작업을 보면서 건축의 물리적 실체에 대한 체념적인 뉘앙스를 느꼈다. ‘건축은 건축이고, 속껍데기는 속껍데기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면 좋은 프로젝트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보니 그렇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는 컨텍스트에 따라서 입면을 만들긴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더 밀어붙여 컨텍스트에 따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를 들어서 어차피 내부 공간은 사는 사람들이 다 만들 것이고, 금방 이사갈 것인데 벽체 같은 게 무슨 필요가 있나. 그러면 책장이라든가 옷장, 커튼 이런 것으로만 내부 공간을 구획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므로 조금 더 본인이 가지고 있던 개념을 극단적으로 끌고 갔다면 한발 나아간 프로젝트가 됐을 것이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A house among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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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2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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