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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주택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구민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최호승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김상호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사이비 –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

언어는 문화와 시대상을 이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현재 SNS에서 유행하는 ‘국룰(국민룰)’이라는 말은 지금의 한국성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국룰’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일반 상식이라는 뜻으로, ‘순대국을 먹을 때 마지막은 깍두기 국물을 넣어 먹는 게 국룰’이라는 표현처럼 사용합니다. ‘국룰’을 찾는 이유에는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기저에 있습니다. 롱패딩이 유행한 겨울,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롱패딩을 입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남과 비슷해야 한다는 집단적 인식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을지로의 별명은 힙지로입니다. 허름한 일대와 달리 을지로3가역 골목으로 들어서면 왁자지껄한 호프집이 나옵니다. 오래된 인쇄소와 공구상 사이에 빨갛고 노란 불빛을 뿜어내는 술집과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흔한 복합기지만 을지로 길바닥에 있는 복합기는 포토존이 됩니다. 지금의 한국은 예상치 못한 곳에 이상한 것들이 하나씩 박혀 있는 모양입니다. 이상하지만 그마저도 익숙합니다.

지금의 한국은 가히 사이비적입니다. 집단이 규정한 정상성에 부합하기 위해 쇼윈도용 가면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가면으로 본질적인 다름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겉은 검은 정장 자켓을 입고, 속에는 눈에 띄는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을 연상케 합니다. 겉으로는 남의 눈치를 보며 검은 외투로 보편적 정상성을 가장합니다. 하지만 검은 외투 사이로 개인적 취향을 담은 옷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서툰 위장으로 가려진 개성은 낯섦으로 다가옵니다.

사이트는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380번길 25-5입니다. 격자형 도로, 주택단지, 녹지축을 고려한 마스터플랜으로 지어진 1기 신도시는 20여 년이 지나며 자생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사이트 일대는 4층 미만의 다세대 주택단지로 오래된 건물, 신축 건물, 가로변 1층의 신생 음식점과 카페가 어우러져 ‘밤리단길’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입니다. 마스터플랜으로 지어진 동종 건물군 속 이종의 새싹이 시간의 켜를 쌓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이트는 일산의 격자형 도시 패턴 속 살짝 꺾인 필지에 있습니다. 이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주변 필지와 건물 중에서도 유난히 달리 보입니다.

‘사이비 주택’은 익숙하지만 낯섭니다. 건물의 외관은 1층에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는 주변 건물과 유사합니다. 1층의 거실과 주방은 가구 쇼룸과 레스토랑처럼 보여 보행자의 목을 끕니다. 하지만 이내 보행자는 2, 3층의 입면이 주변 건물과 형태만 비슷할 뿐, 창의 기능을 하지 않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임을 인식합니다. 이 이상함은 1층으로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건물 입구가 1층이 아닌 2층으로 향하는 것으로 배가됩니다. 2층의 현관부터 시작되는 동선은 단층이 아닌 건물에 살아 땅으로부터 괴리된 한국인의 삶의 모습 같습니다.

이 집은 1층의 거실과 주방, 2층에서 진입하는 영자와 영철의 방, 민수 방, 예원이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의 이름이 부부나 자녀의 방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주택을 가족보다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작은 사회로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개인들의 방과 거실, 주방은 초록색 대리석벽으로 분리됩니다. 2층 현관에서 초록색 벽을 따라 내려오면 거실이 있습니다. 거실에서 계단을 바라봐도 2개 층 높이의 화장실 벽으로 인해 초록색 벽 뒤의 공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도로에 노출된 1층은 일상적 삶의 공간보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쇼윈도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집단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공간은 2층 현관 복도부터 시작됩니다. 영자와 영철의 방은 1, 2, 3층, 민수 방은 1, 2층, 예원이 방은 2, 3층에 걸쳐 있습니다. 2.4m 폭의 2층 개인 공간은 협소하지만 여러 층에 걸쳐 침대, 책상, 취미 공간, 화장실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로 인해 초록색 벽 너머의 거실과 주방 없이도 각자의 방에서 독립된 생활이 가능합니다. 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공간은 거실이 아닌 각자의 방입니다. 방은 개인의 세계입니다. 좁지만 긴 벽을 따라 여러 층으로 구성된 개인의 세계는 집단 속에서도 충분히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3층까지 올라간 초록색 벽은 주택을 집단과 개인의 공간으로 이분합니다. 북동쪽의 입면을 구성하는 벽은 주변 건물과 무늬만 비슷한 가짜 입면입니다. 가짜 입면은 화려한 면만 보이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화목한 집임을 가장합니다. 3층에서는 벽만 올라와 영자와 영철의 방 앞 테라스를 주변으로부터 감춥니다. 초록색 벽 뒤로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드는 집이 아닌 독립된 3개의 방이 있습니다. 보이는 곳만 정갈하고 보이지 않는 곳은 어지럽혀진 지금의 한국처럼 초록색 벽 너머 개인의 방은 매스에서도 요철이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사이비가 난무합니다. 전체적으로 유사한 듯 보이지만 하나씩 들춰보면 전혀 다른 것들의 집합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너와 다르지 않음’을 과시하기 위해 위장술을 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장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발생하는 낯섦은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평범한 가족, 비슷한 건물인 척하는 사이비 주택은 익숙하지만 낯설고, 낯설지만 익숙합니다. 이는 언뜻 보기에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김효영 ‘사이비’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뉘앙스로 인식된다. 그런데 그런 이름을 붙이면서까지 콘크리트로 가짜 입면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사이비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고, 이 단어 자체가 겉으로 보기엔 같아 보이지만 속에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점이 한국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명명했다. 가짜 입면은 사이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국 건축의 클리셰에서 따왔다. 콘크리트는 시공할 때 거푸집을 세우고 시멘트를 부어 굳힌 뒤 거푸집을 떼어냄으로써 형태를 보여준다. 그런 지점이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는, 단순히 겉모습만 지니면 된다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면 표현보다는 그러한 형태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콘크리트로 가짜 입면을 세운 것이다.

박정현 1층에 거실과 부엌을 유리로 노출시킨 의도가 궁금하다. 그것이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 거실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거리에 계속 노출시킬 수 있는가?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사람들이 거실과 주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이 그러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길고 좁은, 복층의 공간인 각자의 방에서 더 생활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설계했다. 그리고 이 사이트 주변을 바라보면 이태원의 경리단길 또는 망리단길처럼 신생 카페나 핫플레이스들이 많다. 그런 것처럼 이 공간도 가구 쇼룸이나 레스토랑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서재원 ‘집단의식’에 대해서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우리는 그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성 자체의 단면을 끊어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박정현 겉은 굉장히 익명적인데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개념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00년 전에 아돌프 로스가 말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이 자체를 한국성이라 표현하기에는 힘들 수 있다.
묻고 싶은 것은 바깥의 이미지적인 장치를 제외한 타이폴로지는 3명이 사는 공유주택이다. 그래서 이게 특정 세대를 위한 주택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각자의 방이 있으면 충분한, 젊은 세대가 사는 단독주택으로 한국성을 말할 수 있는가? 예를 들자면. 나이든 분도 있을 수 있고,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고, 여러가지 조건이 다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왜 이런 타이폴로지의 주택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우리는 단독주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구성원이 개인의 집합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상상한 구성원의 이름을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 것이 많은 구성원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진행했다.

김효영 평면을 자세히 보면 쉽게 보지 못한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길 쪽으로 창을 내고 창에 따라 실을 배치한다. 그런데 그걸 콘크리트로 막고 길쭉한 유형의 방과 레이어를 만들어 다른 면으로 창을 내고 빛도 바람도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앞의 콘크리트 입면이 건축적으로 가장 큰 제스처로 보인다. 입면과 평면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설명 부탁한다.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건물 전체적으로는 두 개의 벽이 중요하다. 도로변에 면한 콘크리트 벽과 내부 대리석 벽이다. 콘크리트 벽은 집과 집 밖을 구분하는 경계이고 대리석 벽은 집의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벽이다. 평면을 보면 뒤쪽에도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채광을 위해 남쪽으로 빛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하여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사이비 주택

분량4,448자 / 9분 / 도판 8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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