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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아노스의 집

이승훈, 정동준


이승훈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정동준
한양대학교 의류학과


진리라는 신기루

절대적인 명제로 정의되는 진리는 허상이다. 진리는 이성의 사유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까닭은, 진리를 포착하기 위한 논의가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도들

건축에서 ‘한국성’이라는 개념을 포착하기 위한 네 가지 논의를 살펴본다. 각각의 논의는 그 방점과 한계, 그리고 반박을 포함하여 다른 논의와 의미를 끊임없이 생성한다.

첫 번째 시도는 전통의 형태를 현대의 재료로 표상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구조와 공포 위에 플라스틱 기와를 얹기도 하고 지붕이나 항아리, 무용수의 곡선 혹은 병풍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 시도는 역사적 단절이 있던 시대의 흐름에서 ‘한국의 것’의 발견에는 성공하였으나 재현 혹은 표상의 단계에 머무를 뿐이다.

두 번째 시도는 전통의 개념을 구성과 공간으로 빚는 것이다. 건물 개별의 형태보다는 건물의 군집, 방과 방 사이의 관계, 채와 마당에서 구성을 차용하고 대청과 마루, 차일과 분합문에서 가변적 공간을 가져온다. 이 시도는 재현과 표상을 넘어 전통의 개념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성공하였지만, 과연 이러한 구성이 서양의 도시조직과 대별되는지에 대한 반박을 만든다.

세 번째 시도는 전통의 시스템과 구축을 현대의 기술로 풀어내는 것이다. 공포의 구조 시스템 흐름을 현대적인 기술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구조를 가진 공간을 만들어내거나, 한식 창호가 만들어내는 반투명한 벽을 현대적인 재료로 재해석하여 낯선 분위기의 공간을 만든다. 이 시도는 전통의 시스템을 현대적인 기술과 결합하여 이전의 논의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한국성의 뿌리가 조선성과 한옥에서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네 번째 시도는 지금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 거대한 철골로 이루어진 공장, 고딕풍의 교회, 네온사인과 간판으로 빛나는 식당가의 도시적 콜라주로 이루어진 현대 한국의 모습 안에서 한국성을 찾아내려 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성을 논의함에 있어 새로운 요소를 논의의 토대로 만드는 것에 성공하지만, 이 분열되고 파편화된 새로운 영토에서 무엇을 수확할 수 있는지는 미결정의 상태이다.

의도와 구현

각각의 논의와 생성을 건축으로 구현한다. 논의의 방점과 한계의 상징을 모두 포함하여 두껍고 중첩된 입면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입면은 주택의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순수한 방을 구성한다. 입면은 공간에 이미지를 부여하고, 순수한 방은 그에 저항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공간들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파노라마이며, 이 장면은 우리에게 해학으로 다가오며 끊임없는 생성을 부여한다.

첫 번째 입면은 H형 철골을 통해 한옥의 주심포 가구 구조를 모방한다. H형 철골을 구성하는 이중의 선 형태는 얇은 기둥과 부재의 중첩으로 이루어지는 주심포식 한옥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철판 슬레이트를 통해 얇고 가벼운 처마의 끝선을 가져온다. 이 입면은 주심포의 공간적 기능, 구조적인 작동, 철골의 재료적 특성 보다는 원본의 형태적 표상에 충실한 첫 번째 시도의 상징이다. 순수한 방은 유리블록과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해 저항한다. 입면의 형태적 표상을 존중하여 창호의 격자를 살리되 형태 전체를 흐린다. 이렇게 관측되는 형상은 다시 형태를 불분명하게 하여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생성한다.

두 번째 입면은 반 외부공간, 다양한 접합, 가변적 공간을 통해 구성한다. 방의 테라스로 이어지는 개구부는 방 내부의 기능을 간접적으로 분할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폴딩도어를 통해 평면적 변형과 확장 가능성을 부여한다. 채와 마당, 차일과 분합문의 개념적 해석을 주장하는 두 번째 시도의 상징이다. 순수한 방은 개구부의 투사와 철제 난간을 통해 저항한다. 다른 요소를 배제한 개구부의 투사와 아르누보 철제 혹은 한국 단독주택의 철제난간 같은 중의적인 의장은 이 입면의 장면이 한국의 것인지 미국의 것인지 유럽의 것인지 불분명하여 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 번째 입면은 한옥 가구 구조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구조물을 보여준다. 한옥의 가구 구조를 도식화하고 목재를 통한 압축력 저항 방식의 가구 구조를 철재를 통한 인장력 저항 방식의 구조시스템으로 변환하여 새로운 구조물을 제안한다. 투명한 파사드는 그 구조물을 전면에 노출시킴으로 전통의 구축과 시스템을 재해석하는 세 번째 시도를 상징한다. 순수한 방은 커튼을 통해 저항한다. 반투명한 커튼은 구조물의 실루엣만을 남겨 도식의 이미지를 남기고 순수한 방과 입면 사이에 레이어를 만듦으로, 다른 생성의 잠재성을 만든다.

네 번째 입면은 근대 한국의 주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병치한다. 보일러와 주방을 향해 나아가는 가스파이프, 배기구, 냉방기의 실외기, 화장실의 환기팬, 차고의 출입구, 지붕의 우수관 등 한국의 주택가에서 찾을 수 있는 파편들을 배열하는 것은 지금 한국의 도시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요소와 파편을 통해 한국성을 포착하려는 네 번째 시도의 상징이다. 순수한 방은 이러한 기계들을 두꺼운 입면을 만들어 이 요소들을 입면 안으로 보호하고 내부를 투명하게 하여 차고, 주방, 다이닝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장면은 마치 입면의 안과 밖이 뒤집힌 풍경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영토에서 논의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오케아노스의 집

오케아노스는 그리스어로 ‘세상 끝의 바다’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 바다를 보기 위해 끊임없이 진격했으나, 끝내 이 바다를 볼 순 없었다. 그러나 이 정복의 과정에서 제국을 통합하고, 동서양을 연결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낳았다. 한국성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성이 정의가 가능한 지 허상인지 단언할 순 없으나, 한국성이란 미명 아래 시도되는 논의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과 건축을 제시한다.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 ‘지금, 한국성’이 가지는 의미이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서재원 주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각각의 입면을 병치하는 것이 상징적 차원을 넘어서는 이점이 있을까?

이승훈 정동준 각 입면에 표현한 의장적인 요소와 각 면에 배치한 기능이 정확하게 1:1 대응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구부 위치의 당위성이라든지 외부 공간 배치, 보이드의 필요성 등은 분명히 입면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에 투영했다.

박정현 가운데 보이드, 순수한 방이 이 주택에서 갖는 기능, 역할, 상징적 의미가 궁금하다. ‘입면의 여러 절충적 요소와 부딪힌다’고 설명했고, 주택의 평면을 ㅁ자 처럼 만든 이유도 결국 순수한 방을 설정했기 때문일텐데 추가 설명 부탁한다.

이승훈 정동준 순수한 방은 계획 초기부터 등장한 개념인데, 아무런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현실적인 개연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공모전 자체가 지향하는 지점이 상징적이므로 사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감에 집중하여 설계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개념을 극적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기하학적으로 통제했다. 순수한 방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기능도 부여하지 말자는 의미의 순수함도 있고, 기하학적인 순수함이라는 의미도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김효영 콜라주하는 방식이 매우 엄격하고 완결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무언가를 충돌시키는 방식과는 또 다른 효과를 의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의도를 조금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서재원 소장의 질문과 같은 선상에서, 어떤 방향에 어떤 면을 놓았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이트에서 어떤 방향에 면해있다거나, 어떤 입면은 내부에 특정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것 같다. 구체적인 설명 바란다.

이승훈 정동준 개념을 그래픽적으로 강하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가 컸다. 그리고 불완전하게 공존하는 상황을 단순한 기하학 내에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주택의 기능을 배치하기에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이미 답이 나왔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아니므로 어떤 절제와 제한을 통해서, 규칙 안에서 배열함으로써 우리의 논리 안에 집어넣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다.

김효영 발표에서 새로운 논의가 무언가를 생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고 설명했는데, 어떻게 보면 엄격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기에는 불편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기 보다는 입면의 효과로 남는 것일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승훈 정동준 그래서 생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사용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느냐, 혹은 건축가가 의도해서 놓은 대로 된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스터디를 했다. 그래서 입면이 교차할 때 프로그램이 충돌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면 그림자가 병치되면서 시각적으로 무언가가 생성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든지, 순수한 방에 프로그램을 추가하기만 해도 사용자가 다른 의미를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오케아노스의 집

분량4,366자 / 9분 / 도판 9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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