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
신현준 × 박성태
분량11,178자 / 2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11월 14일
유형인터뷰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낙후되거나 주민이 떠난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역사, 녹지, 문화 등 기존의 지역적 자산을 가진 곳에서 발생한다. 그만큼 속도가 빠르며, 폭력적이고, 그 과실이 소수의 자산가에 집중된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서울의 핫플레이스 여덟 군데를 꼼꼼한 현장 리서치를 기반으로 들여다봤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최근 도시재생 사업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및 국제문화연구학과 HK교수(부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문화산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중문화, 국제이주, 도시공간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국제저널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팝의 고고학 1960/70』(공저),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공저),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가 있다.
인터뷰어 박성태
인터뷰 일자: 2016년 9월 29일
도시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 젠트리파이어 혹은 지역 문화생산자의 딜레마와 성찰
박성태 도시재생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창신·숭인동에서 시작해, 성수동, 가리봉동 등 국가정책사업으로 추진 중입니다. 교수님 공저의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2016)에서도 후기에 도시재생이 “젠트리피케이션 사탕발림(닐 스미스)의 다름이 아니다”라고 언급하셨죠. 허름한 동네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들어서고, 3–4년 뒤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다시 3–4년이 지나면 프랜차이즈가 들어온다는 거잖아요. 이 과정이 피할 수 없고 ‘선한 개발’이라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도시재생이 갑자기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큰 이야기지만 오늘의 인터뷰를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신현준 그것과 관련해서 저의 얘기가 아니라, 한 정부 관계자로에게서 들은 얘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분 말씀으로는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은 도시재생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장에 의해 일어나는 ‘나쁜’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공공이 하는 것이고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의미겠죠. 달리 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른바 핫플레이스, 즉 상권이 융성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도시재생은 낙후된 곳을 활성화시키는 공적 작업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장소 특성과 주체가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을 가르는 기준이 될까요? 저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기획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팀 내에서도 견해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도시재생이라는 선의의 정책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합적인 과정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교섭의 여지는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죠.
박성태 공공이 도시를 잘 경영해야겠죠. 바꿔야 할 것을 바꿔야지 계속 낙후된 채로 놔둘 순 없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공공이 개입하고, 자본도 따라 들어와서 그 지역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일 겁니다. 그러나 해방촌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며 이 방식밖에 없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중간 지점, 즉 제3섹터의 자산화 전략 같은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지금은 논의의 차원에만 머물고 있지만 가까운 시간 내에 실행의 차원까지 도달해야 하지 않나, 하는 거죠. 그래서 질문을 드린다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쓰실 때, 대안을 생각해 보신 것이 있는지요?
신현준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글로벌’한 기호, 상징, 경험과 같은 것이 있을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식’의 대규모 아파트 개발·재개발과는 달리 물리적 철거를 전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래서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도 ‘덜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 아닐까요? 이른바 교양이나 학식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 개발에 대해서는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느끼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은 문제의 소지는 있지만 살벌하고 황량한 재개발과는 다르다고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오래 연구한 분들은 대규모 재개발이 바로 한국식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봅니다. 거기에는 철거–재개발–중산층 이입의 순서가 있기 때문이죠. 이 점은 학계에서도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어쨌든 저와 동료들이 책을 쓰며 초점을 맞췄던 것은, 하나는 2000년 후반에 ‘상권’, 정확히 말하면 ‘골목상권’에서 일어난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그다음 단계에서 정부가 공공정책을 통해 몇몇 지역을 재생한다고 뛰어든 부분입니다. 전자의 경우, 시작은 예술가의 작업실이지만 마지막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끝나는 과정이죠. 이를 관찰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엇으로 정의하든 그 어감이 주는 이른바 ‘힙hip’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방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후자의 경우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정부가 또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관찰해 본 결과 제가 지지할 만한 성격의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딜레마는 저 같은 연구자를 포함해서 건축가, 예술가, 심지어 활동가도 이 과정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도를 가지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사람, 즉 젠트리파이어gentrifier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거기에 일조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깊든 얕든 한 발을 디딘 상황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런 관점이 이 책에 어느 정도는 깔려 있습니다.
박성태 말씀하신 대로 이 책의 인터뷰 대상은 대부분 문화생산자입니다. 대상지도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고요. 그런데 일반인이 이곳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문화생산자들도 거기서 활동을 안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젠트리피케이션에 문화생산자들이 자각을 하고 발을 빼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은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현준 그렇죠.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인터뷰이 중 한 분은 “우리가 공범자 맞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말아야 하나?”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거기가 정확한 지점인 거죠. 그런 영향을 미치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험들이 2000년대 말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게 사실입니다. 상징적인 사건이 ‘두리반’ 사건이었고,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크고 작은 사건도 많았겠지요. 아무튼 두리반이 1라운드의 마지막을 상징한다면, 이후 서교동에서 상수동과 연남동으로, 그리고 삼청동에서 서촌으로, 그다음에 가로수길에서 세로수길로 번지는 게 2라운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라운드에 와서야 약간의 자기성찰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2010년대 전반기’가 이 책이 집중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한편으로는 2라운드에 들어와서 지역을 본격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하려는 사람들, 소위 기획부동산, 연예인, 대기업 등이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성찰에 이른 사람들이 과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3라운드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핫플레이스와는 완전 거리가 멀었던 곳들이 도시재생이라는 것과 연계되고 있죠. 예술가들은 그 전부터 서울의 낙후된 지역에 숨어드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제는 그곳도 도시재생 정책들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세운상가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교섭의 여지’는 늘 있지만.
사회적·이행기 공간과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율
박성태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를 보면 기간이 굉장히 깁니다. 해당 지역을 오랫동안 연구한 다음 통합적인 전략을 가지고 조금씩 바꾸는 거죠. 사회경제 쪽에서는 원주민이나 예술가가 그 전에 지급했던 가격 정도로 들어올 수 있는, 소위 말해 소셜하우징(사회적 주택)이나 이행기 공간을 통해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와 같은 것이 가능할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신현준 도시재생 과정의 취지를 제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켜보면 운영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급한 시일 내에 성과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과 세세하게 관련이 있는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조정이 안 되는 실정입니다. 특히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해왔던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대안도 없이 쫓겨나는 상황을 많이 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해방촌의 한 재래시장에는 상가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해서 쓰는 곳들이 있는데 그간은 나름의 수요가 있으니 그와 같은 유형이 유지됐던 것이죠. 하지만 재생 과정의 취지에는 그분들이 주거하기보다는 젊은 창업가가 ‘시크’한 공방이나 가게를 여는 게 더 맞겠죠. 실제로 그렇게 변하고 있고요. 가리봉동의 경우도 인근 G밸리의 IT 관련 업종의 청년근로자에 맞는 주거환경 개선 시도가 기획되면, 막상 그곳을 필요로 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갈 곳이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박성태 예전의 벌집이 리노베이션을 거쳐 월세가 2–3배씩 뛰기도 했습니다.
신현준 동정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책이 굳이 없어도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일종의 ‘균형’이라는 게 존재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균형이 깨지면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도시재생 정책 자체에는 그러한 고려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관련 연구자, 건축가, 예술가와 같은 이들이 한발 담글 수밖에 없는 상황이듯이, 창업으로 들어간 청년활동가들도 나쁜 의도로 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국 누군가를 쫓아내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좀 더 신중한 고려를 거친 정책이 필요한 이유기도 합니다.
박성태 지역 활동가들을 투입하고, 정책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한다는 말씀이시죠? 일정 부분 임대료를 오르게 유도하는 측면들도 당연히 있고, 겉보기에 ‘힙hip’해 보이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신현준 그 과정에서 로컬 이노베이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면 좋은데, 그게 쉽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에 수십 년 동안 임대료가 오르지 않아서 겨우 유지만 하던 건물주들, 그리고 이곳이 ‘재생’될 것을 기대하고 건물을 구입했던 부재지주不在地主들이 표정관리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는데 거의 예외가 없어요. 이곳을 ‘도시재생 지역으로 지정했다’는 것은 과거에 아파트 개발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는 거죠. 부동산 시장이 즉각 반응합니다.
로컬 이노베이터와 문화기획자의 역할과 한계
박성태 지방의 원도심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전략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문화기획자들이 이렇게 불려가서 일정 기간 그 일들을 해요. 물론 뛰어난 성과를 내는 곳도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한두 명의 기획자가 들어가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붕어빵’을 찍어대는 경우도 있고요.
신현준 가로수길에 초기에 들어가 소위 ‘그곳을 만든’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정작 그분은 그곳에 자기 건물을 가지지 못하고 세입자로만 있다가 쫓겨났는데, 최근에는 지방에 계시더라고요. 거기서 뭘 하시느냐, 했더니 가로수길과 비슷한 것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리고 건물도 하나 장만했고요. 원도심인 데다 가로의 스케일도 서울의 가로수길과 같고, 2, 3층 건물들이 있는 약간은 옛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참 머리 좋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철거 재개발은 아니지만 일종의 개발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화라는 게 자생적으로 모여들어 우발적으로 만들어져야 재미있는데, 누군가의 기획에 의한 개발인 것이죠.
박성태 지금 문화기획자들을 만나면 종종 공동체 자산화, 소위 말해 공동체로서 특정 공간 내 10개, 20개 정도의 공간을 공동 지분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눠요, 어느 지역이든지요. 그러면 지역을 바꿀 수 있고, 쫓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사실 그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생적인 게 아니라, 집단이 이주해서 ‘코뮌commune’을 꿈꾸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신현준 그런 시도가 그렇게 나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첫째 질문은, ‘진짜 가능할까?’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흘러야 하는 것이잖아요. 익명의 흐름들이 만나 충돌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면서 창의성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 지역이 가진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전통이 어떤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보헤미안, 아나키스트, 코스모폴리탄 등의 말로 표현하는 장소의 느낌도 그런 과정의 산물이겠죠. 지금 대다수의 ‘핫플레이스’가 이런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일종의 기획을 해서 뭔가를 엮거나, 억지로라도 심으려고 하는 건데 이전과는 조건이 다른 것이죠. 그래서 또 하나의 질문은 가능하다 하더라도 ‘바람직한가?’ 라는 것이에요. 공동자산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사용한다면 일반인들은 배제될 수도 있겠고요.
박성태 우연성이 매력 있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런 지역이 지속하려면, 지역 주민들의 자기 지역에 대한 애정도 중요하고요. 소위 서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아직 잘 버티고 있는 느낌이에요.
신현준 그 지역 주민들은 자기 동네가 험하게 바뀌는 건 바라지 않는 면이 있더군요. 물론 새로 들어오는 부재지주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3라운드 젠트리피케이션
박성태 이번 책은 서울에만 국한했는데,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어떻게 보세요?
신현준 책을 쓰고 날 즈음 ‘서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지방을 다녀봤어요.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관찰이었죠. 그곳으로 이동한 분들은 서울에서는 이제 불가능해진 대안의 삶을 꿈꾸는 중입니다.
박성태 그게 유일한 대안이라고까지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서울에서는 가능성이 없다고요.
신현준 후기에도 썼듯이, 서울이나 수도권에만 국한해 사고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지역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요. 불행히 저도 이제는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고요. 다만 아직은 서울이 가진 여러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서울이 갖는 ‘힙’한 매력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 같아요. (웃음)
박성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그 안의 문화생산자들이 어떤 과정을 겪었고, 그 경험치들은 어떻게 쌓여있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남동은 어떤 면에서 기획자들이 들어간 시점부터 떴죠. 하지만 한남동의 기획자들은 홍대 지역의 기획자들이 같이 뒹굴면서 어려운 때를 함께 겪은 경험이나 시간이 모두 적습니다. 홍대는 20대부터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내고 정착하면서 만들어낸 지형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친구들은 그곳을 떠나도 계속해서 네트워킹을 가지고 움직이잖아요?
신현준 우사단길로 모인 젊은 친구들이 공동체를 만들려는 생각이 있다고 들었어요.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요. 분위기는 좋은데,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요.
한남동의 경우 처음에는 한 챕터로 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테이크아웃드로잉’ 사건이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는 걸 실감했죠. 그리고 앞서 말한 1라운드가 끝난 뒤 홍대앞이나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간 곳 중 하나가 한남동이었어요. 바로 길 건너편이 삼성 계열사가 잇따라 건물들을 매입해 놨는데, 그걸 알고도 간 건지 모르고 간 건지는 모르겠어요. 길로 구분되어 아래쪽으로는 그 흐름이 오지 않을 줄 알았을 수도 있고…. 그런데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길 넘어 자본이 금방 내려오고 대기업들이 하나둘 건물을 사버렸죠. 후배 연구자의 조사에 의하면, 골목 안에서 지금 카페, 바, 상점으로 쓰이는 건물들 대부분이 주거용이 맞더군요. 원래 살던 이들도 원만히 나가지 못하고 대부분 쫓겨났고요. 저희가 조사할 때는 이미 그런 일들이 있은 지 한참 후이니 지금 보니 그 과정도 한 10년 정도 진행된 것이더라고요.
박성태 해방촌은 지금 한창 주목을 받고 있죠? ‘빈집’ 프로젝트는 ‘빈가게’ 등으로 확장을 했고요. 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현준 그런데도 임대료 때문에 빈집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박성태 그것도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인 거죠?
신현준 그렇죠. 해방촌은 이태원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이 있어요. 뭐랄까 ‘오래된 빈촌’이 주는 매력이 있잖아요.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공들여 쓴 곳도 해방촌 부분이에요. 그곳의 기원은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월남민들이고, 이곳에는 ‘빈집’이나 ‘수유너머R’ 같은 좌파 지식공동체를 포함한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들어갔습니다. 이런 상이한 구성원들이 일정 기간 이상 공존할 수 있는 상태, 서로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냥 적당히 무관심한 상태가 오래 유지되었어요. 그런데 도시재생 정책이 들어가면서 그냥저냥 잘 어울렸던 관계들이 다투고 깨지는 게 보여요. 혹시 ‘빈집’에서는 저와 같은 사람을 원망할지도 모르죠. 나름 조용히 잘 있었는데 들쑤신 사람의 한 명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으니까요.
신흥시장은 정말이지 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바뀌고 있었어요. 공방과 갤러리가 들어오고 이곳을 취재하는 곳도 많고요. 그곳에 제가 아는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지금은 도시재생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그곳 원주민이고 그곳 사정도 잘 아는 친구인데, 동네를 사랑해서 선의로 도시재생정책에 들어간 거예요. 하지만 실상은 예상치 못한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니까 힘들어하더군요. 해방촌은 너무나도 다른 여러 결의 실험들이 존재했던 곳이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어요. 저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이 그곳에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도시재생에 관해서는 비판적 시선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도시재생의 성과로 동네가 멋있어지고, 예뻐지고, 소비층인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만 맞게 바뀌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는 문제도 동시에 많이 발생하고 있죠. 최근에는 연예인들도 들어왔고요.
문화생산자와 도시정책의 불협화음
박성태 지역 재생의 차원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을지로, 성수동, 문래동 등에서 진행 중이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지역을 오히려 망치거나, 지역 주민들을 갈라놓거나 하거든요. 나머지는 그냥 스쳐 지나가고요. 아마 지역 주민과 지역 공동체하고는 그 어떤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공공에서 하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 많고, 어떻게 보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거겠죠. 그림을 만들어놓은 것은 좋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이 걱정스럽습니다.
신현준 서울시의 정책 중에 ‘마을만들기’는 마을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공동 공간을 만들어서 프로그램 진행과 각종 행사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애착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도시재생’이 되어 버리면 경제적 활성화의 개념이 들어옵니다. 결국 경제적 가치 상승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개입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꼬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마을만들기는 굳이 경제 개념까지는 없었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서울의 ‘변두리’라고 불리는 성북구나 은평구 등에 가보면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게 마을만들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나도 그곳으로 이사해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 정도로. 하지만 도시재생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접어들면서 뭔가 방향을 잃은 것 같아요. 이게 ‘경제 활성화’와 연관되면 이해관계도 발생하면서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걸 조정하려면, 아주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정책도 잘 알고 문화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이 아니죠.
박성태 젊은 문화생산자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적으로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조금 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2, 3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신현준 최근 어떤 사회학 책을 봤는데, 전근대의 대부분,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미래형 시제가 없었다고 해요. 자본주의라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거잖아요? 결과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예상하는 거죠. 하지만 이제 젊은 문화생산자들은 과거와 달라요. 새로운 인류 유형일 수 있는 거죠. 실제로 그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들의 삶의 조건에서는 장기 전망은 세울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박성태 도시재생의 딜레마는 생각과 결과의 차이가 크다는 거죠. 대부분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고, 이미 다양한 주민들이 있고요.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도 힘에 부칠 듯해요.
신현준 영어에 ‘affect’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이를 ‘정동情動’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게 사람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일상 언어로 표현하면 인정도 있고, 사정도 있고, 물정도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사물도 정이 있다는 거죠.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인정, 사정, 물정 다 고려해서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지금의 공공정책은 그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촌이나 해방촌을 꽤 좋아해요. 예전에 ‘시내’라고 불렀던 서울 사대문 안이 주는 정취는 그 외의 지역에서는 느끼기 어렵지 않나요? 서울의 오래된 곳이 주는 독특한 정취가 있어요. 수백 년 동안 귀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와 하루아침에 인위적으로 만든 곳이 같을 수는 없죠. 그걸 정책이 몇 년 만에 자신들 뜻대로 바꾼다? 글쎄요.
박성태 그런 곳에 공공이 개입해서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신현준 창신동이 대표적이죠. 해방촌도 그렇고, 익선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박성태 그래서 큰 그림을 좀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고민이기도 한데요, 저희 세대도 지역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있는데 큰 그림을 보기보다 너무 앞만 보고 간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제 세대도 그러한데 20, 30대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하잖아요? 그 일들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거죠.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신현준 ‘학습 효과’라는 말이 있죠? 젠트리파이어들이 홍대, 인사동/삼청동, 가로수길을 보고 매뉴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기획들을 다른 곳으로도 가져가려는 것이죠. 그에 대해서 ‘예방 효과’ 같은 것도 생기기 바라고, 그래서 이 책이 그런 예방을 위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재생정책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 입장과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니까요.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
분량11,178자 / 2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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