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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증언한 윤리의 몸 혹은 모험

김성경

탈북자의 증언: 진실 혹은 거짓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사실’적 정보를 얻을 것이라고 가정해왔다.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접근이 쉽지 않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들의 증언은 미스터리한 그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으로 여겨온 것이다. 북한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고 시작하는 탈북자의 증언이 큰 힘을 갖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남한 사회의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이 된 북한이 미디어의 소재거리가 되면서, 탈북자의 처참한 경험담은 북한의 ‘실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북한의 끔직한 현실을 ‘증언’하는 탈북자는 종편 방송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그 중에 몇몇은 해외에서 북한 인권 전도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최근 탈북자의 증언의 사실 유무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발생한다. 북한 정부는 탈북자 증언의 오류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이들 증언의 사실관계에 흠집을 냄으로써 자신들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조금이라도 비껴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 바로 신동혁이 있다. 2007년에 발간한 『세상 밖으로 나오다』와 미국인 저널리스트 블레인 하든Blaine Harden이 신동혁의 진술을 바탕으로 재집필한 『14호 수용소의 탈출』이 바로 북한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그의 증언록이다. 신동혁은 북한인권운동가로서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활동을 펼쳐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진술은 UN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도 상당 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신동혁이 자신의 증언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이후 한편에서는 탈북자 증언의 사실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부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증언의 오류가 북한의 인권상황의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까지 이 사안에는 다양한 의견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신동혁 혹은 다른 탈북자의 증언의 사실 여부 혹은 북한 인권에 관련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탈북자의 증언을 향한 윤리적 시각의 중요성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글은, 과연 피해자인 탈북자의 증언을 ‘사실’로 단순화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분단 상황을 배태한 이들의 경험이 발화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가장 윤리적 접근은 무엇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분단으로 대치되어 있는 북한 체제의 폭력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존재이다. 이들은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냉전과 분단체제라는 역사적 상황이 생산해 낸 피해자이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를 경험했던 탈북자의 증언은 북한 정권의 잔혹함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남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까지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게다가 최근 증언이 인권이라는 주제로 북한 체제를 압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들의 증언의 청취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참혹한 삶의 기억을 소환하는 탈북자와 그 기억을 통해 북한 사회 내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수용자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더욱이 분단을 깊게 내재한 남한의 청취자가 용인하는 탈북자 증언은 제한적이다. 과연 신동혁 증언의 오류가 단순한 착오에서 빚어진 것일까. 혹여나 신동혁 스스로 증언의 청취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소환한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그의 증언의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것이 과연 소수자를 대면하는 한국 사회의 윤리적인 자세일까?

불안정한 기억의 소환

신동혁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증언한 것은 2007년에 출판된 그의 책을 통해서다. 2007년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발간한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북할 때까지 그곳에서 끔찍한 생활을 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의 증언집은 한국 사회에서 큰 이목을 끌지는 못하였다. 인쇄한 3,000부 중에서 500부 정도만 팔렸고, 이 때문에 신동혁은 상당히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1

하지만 그의 증언을 들어주는 청중이 소수의 한국인에서 국제사회로 확대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변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초기의 신동혁은 후원단체의 기대에 여러모로 미치지 못하였다. 후원단체는 “(신)동혁이 생동감 있게 구성된, 강력하게 감정이 전달되는 강연을 가능하면 영어로 전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유일무이한 그의 이야기가 미국 청중의 마음을 흔들고, 자원봉사자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북한 인권 운동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게 되기를 기대했”지만,2 그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제대로 청중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책의 저자인 블레인 하든 또한 신동혁의 모호한 대중 연설을 듣고 난 이후에 “청중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왜 빼고 이야기하는지” 그를 “다그쳤다”고 회고 한다.3

그렇지만 신동혁은 서서히 진화하고 있었다. 블레인 하든은 그의 책에서 6개월 후 시애틀에서 다시 만난 신동혁의 변화를 감탄스럽게 묘사한다. “신동혁의 강연은 놀라웠다. 6개월 전 캘리포니아에서 봤던, 소심하고 말의 앞뒤가 잘 안 맞는 모습과 비교하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의 고백은 각고의 노력으로 의도한 결과였다.”4 신동혁은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증언을 미국의 NGO와 저널리스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재구성해 나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미국의 청중들이 신동혁의 증언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증언을 들을 때까지 신동혁에게 질문을 해대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신동혁은 조금씩 더 드라마틱하게 자신의 경험에 살을 붙이고, 톤을 조절하고, 적당히 감정을 섞어가면서 증언을 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그의 증언은 그를 세계적인 인권 셀러브리티로 만들어주었다.

신동혁이 자신의 증언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한 이후 미국의 주요 언론은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 정권에 인권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출판사 관계자들은 신동혁의 증언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너무나도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신동혁의 증언의 사실 유무를 확인하기 어려웠음을 저자인 블레인 하든의 말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5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미국의 미디어와 책의 저자 또한 신동혁의 증언을 철저하게 “사실관계”에 입각한 것으로 가정한다는 사실이다. 신문 기사에서는 신동혁의 증언에 대해서 진실인지 확인하다는 뜻을 지닌 “verify”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는 증언이라는 구술 자료가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즉, 증언이 주관적으로 구축된 개인의 기억일 수 있음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구술사학자인 폴 톰슨이 지적한 것처럼 구술 자료의 가치는 그 자료가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헌 자료에서 제외된 기억을 소환하여 역사를 풍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사실’이라고 믿는 문헌 자료 또한 주관적이고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6 그 만큼 증언과 같은 구술 자료는 문헌 자료와의 보완이 필요한 것이고, 구술 자료가 갖고 있는 주관성과 기억의 불완정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북한에 관련된 탈북자의 증언은 마치 그 자체로 완전한 ‘사실’인 것처럼 취급되어 왔다.

탈북자 증언의 가치

우리의 시선 속에 탈북자는 두 개의 다른 집단이다. 1990년대 후반 대량탈북이 발생하면서 생활고와 같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탈북한 사람과, 북한 정권의 정치적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탈북한 자들로 구분되어 있다. 경제이주자로서의 탈북자는 북한 사회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지를 증언하고 있지만 그들의 증언을 귀담아 듣는 청취자의 수는 현저하게 적다. 오히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증언이야말로 남북한 사이의 현실적인 문제와 북한 사회의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의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 목적과 결합되지 못해 왔고, 인도적 지원과 같은 논의는 남북관계의 유래에 없는 냉각기를 거치면서 그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탄압을 받았거나 탈북의 과정에서 북한 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은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남한 사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 사회가 얼마나 탄압적이고 폭력적인지를 증명하는 ‘더 중요한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다시 말해 남한 사회가 원하는 북한 사회의 ‘사실’과 ‘진실’은 편협한 프레임을 통해서 구축되어 있고, 탈북자의 특정 증언만이 북한 사회의 ‘사실’인 양 받아들여져 왔다.

프레임 속에서 구성된 ‘사실’과 ‘진실’은 인간 삶의 다층성이라는 측면과 증언의 불완전성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배제한 채 유통된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말할 수 없는 존재’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특정 사회 혹은 청중이 듣고 싶은 말만 해야 하는 탈북인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자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증언이라는 방법이 각 개인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선택적으로 소환하는 실천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를 ‘사실 여부’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탈북자들이 더 많은 기억을 발화하면서 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내러티브의 공통점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절실히 요구된다. 설혹 이들이 발화하는 그 기억이 파편화되어 있고, 서로 배치되는 장면들로 이어져 있더라도 말이다. 국가 혹은 사회의 기록과 다층적인 개인의 기억이 서로 보완될 때 더 총체적인 역사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북자가 자신의 경험을 발화하는 것은 이들의 증언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각 개인의 다채로운 경험 세계는 그 특정 시공간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모국을 버리고 머나먼 길을 떠나온 그들의 삶 자체가 결코 ‘개인적’ 수준의 결정이 아닌 지금의 한반도의 구조적 문제를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언어로 더 많이 발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사실 여부’로 평가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다시금 위치 지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탈북자 증언에 대한 윤리적 접근은 사회 주류의 잣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그 경험과 기억의 다층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성경

주요 관심 연구영역은 문화사회학, 아시아 영화, 문화지리학, 아시아 대중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의 정치경제학이다. 질적연구방법론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질적연구 경험이 있다. 강의는 주로 문화사회학, 사회이론 그리고 질적연구방법론의 영역을 하고 있다. 2006년 영국 에섹스 대학 사회학과에서 『Globalisation, Film and Authenticity: Renaissance of Korean National Cinema』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문화연구, 사회이론 그리고 영화를 접목한 글을 써왔다.

탈북자가 증언한 윤리의 몸 혹은 모험

분량5,528자 / 10분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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