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재정의와 범주의 확대
조효제
분량4,650자 / 10분
발행일2016년 7월 31일
유형칼럼
전세계적으로 난민의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고, 생각지도 못한 유형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포괄하고 포용하는 제도나 대책이 미흡하다. 난민 운동가인 난민인권센터의 김성인 국장 인터뷰와 성공회대학교 조효제 교수의 컬럼을 통해 난민과 인권 문제의 현재와 대안을 살펴본다.
최근 유럽의 난민 사태로 한국에서도 난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난민은 자기 나라에서 살기 어려워 나라 바깥으로 떠돌게 된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가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근대 민족주의의 발흥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내전이 발생해 약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런데 레닌은 국외로 피신한 러시아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해 버렸고, 졸지에 무국적자가 된 수많은 사람이 유럽 각지를 떠돌게 되었다. 국제연맹은 1921년 역사상 최초로 ‘난민최고대표실’이라는 조직을 신설한다. 초대 대표로 취임한 노르웨이의 프리도즈프 난센은 무국적 난민들에게 국제 여행증명서, 이른바 ‘난센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약 45만 명이 이 조치의 혜택을 받았는데 이 중에는 마르크 샤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같은 예술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연맹이 해체된 후에는 국제적십자사에서 난민을 담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유럽에 대규모로 난민이 발생하자 1951년 유엔에서 「난민지위협약」이라는 국제법을 만들었다. 이 협약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유엔 공식 기구가 오늘날 난민 지원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유엔난민최고대표실(UNHCR)’이다.
「난민지위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 개념은 엄격하다. 자기 나라를 벗어나 있어야 하고, 박해를 받은 증거가 있으며, 자기 나라로 돌아갔을 때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근거가 충분하고, 인종이나 종교, 국적, 혹은 정치적인 견해 때문에 자기 나라를 벗어났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고향을 떠났지만 국경을 넘지 않은 사람은 난민이 아니며, 단순히 먹고 살기가 어려워 다른 나라로 나간 사람 역시 국제법상 난민이 아니다. 그런데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조건이 변하면서 여러 이유로 삶의 터전을 반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었다. 요즘은 법적인 의미에서의 공식적 난민과 비공식적 난민을 뭉뚱그려 ‘강제 이재민(Forcibly Displaced Persons)’이라고 부른다.
유엔에 따르면 2014년 말, 전 세계에 약 5,960만 명의 이재민이 있다고 한다. 이중 약 3분의 1이 공식적 난민을 포함한 국제 이재민이고, 나머지는 국내 이재민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들에서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가. 2014년 말 통계에 따르면 시리아(1), 아프가니스탄(2), 소말리아(3), 수단(4), 남수단(5), 콩고민주공화국(6), 미얀마(7), 중앙아프리카공화국(8), 이라크(9), 에리트레아(10) 순이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들이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가. 역시 2014년 기준으로 보면 파키스탄(1), 레바논(2), 이란(3), 터키(4), 요르단(5), 에티오피아(6), 케냐(7), 차드(8), 우간다(9), 중국(10) 순이다.
스스로도 형편이 어려운 나라들, 그리고 분쟁 지역 가까이 있는 나라들이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선진국보다 개도국들이 같은 개도국 출신 난민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제 이재민 가운데 86% 이상이 개도국에 수용되어 있다. 난민을 받는 절대 숫자도 중요하지만 자국 형편에 비추어 얼마나 받느냐 하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예를 들어, 자국 인구와 비교하여 난민을 받는 비율로 순위를 매긴다면, 인구 1,000명당 232명의 난민을 받는 레바논이 단연 1위이며 요르단, 나우르, 차드가 그 뒤를 잇는다. 경제 수준으로 난민을 받는 비율을 따진다면 1인당 국민소득 (구매력 기준) 1달러 당 404명의 난민을 받는 에티오피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파키스탄, 차드, 우간다, 케냐가 그 뒤를 잇는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소득 상으로 서구 선진국들이 받는 난민의 숫자는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들 가운데 이른바 선진국은 독일밖에 없다.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현재 시리아는 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로 낙인찍혀 있지만,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난민을 아주 많이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는데 1953년 초 한국의 두 소녀가 시리아로 입양되어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시리아는 한국의 아이들을 받아들이던 나라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인천공항 내에는 7개월째 난민 판정을 기다리는 시리아 난민 신청자가 28명이나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지만 현재 난민 인정률은 3% 정도에 불과하다.
난민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국가 간의 전쟁과 나라 안의 내전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 나라에 정치, 사회, 경제적인 모순이 누적되거나 다른 나라가 내정에 개입할 경우에도 난민이 발생할 여지가 커진다. 군사비 지출이 높고 무기 거래가 활발할수록 난민이 늘어날 개연성이 커진다. 분쟁 지역에서 대인 지뢰 매설이 늘어날수록 농경지가 줄면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강제 이재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면 그곳의 농업 생산량이 당장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치도 있다. 어떤 나라건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난민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 만들어진다. 토지 개혁이 안 되어 소농들의 삶이 팍팍한 나라, 미국의 몬산토 같은 국제 농산물 대기업들이 토지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나라, 정치 문제로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아 식량과 의약품의 금수 조치를 당한 나라에서도 난민이 늘어난다. 인권 침해가 심한 곳에서 특히 난민이 증가하며, 정권이 바뀐 뒤 이전 정권 지지자들을 박해하는 나라에서도 난민은 많이 발생한다. 민족, 종교, 정치적인 이유로 소수 집단을 박해하는 국가도 난민 발생 고위험 군에 속하는 나라이다. 다민족 국가에서 민족들끼리 갈등이 발생하면 소수에 속한 민족이 난민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데다가 21세기의 화두가 된 기후 변화 문제도 국제 이재민을 양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민들이 어디로든 가서 정착할 수 있도록 이동의 자유와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종합적인 난민 보호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난민을 마치 돈벌이 수단처럼 악용하고 난민을 인신매매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기업형 브로커들과 조직 폭력단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억제해야 한다. 난민촌 내에서의 폭력이나 강간도 시급한 문제다. 난민 문제는 어떤 한 기구만의 힘으로, 혹은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국제기구, 국제사회, NGO 등 여러 관련 기관들이 함께 지혜를 짜내야만 한다. 국제 사회의 공평한 부담도 중요하다. 국제법 기준을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앞에서 봤듯 21세기 현실에 비춰 봤을 때 국제법상의 난민 기준은 그 범위가 아주 좁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이재민과 경제적, 환경적 이유에 의한 탈향민들을 난민의 범주에 포함시켜 좀 더 폭넓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난민 중 아예 국적이 없는 사람들, 법적으로 최소한의 인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무국적 난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난민들이 겪는 인권 침해는 극히 다양하지만, 가장 궁극적인 문제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나라, 즉 자신의 권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의무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인권 보호의 주체가 자국에서 타국으로 바뀐다는 점이 난민 인권 문제의 핵심이다. 자신과 주권재민의 사회계약 관계가 없는 타국 정부와 타국민의 온정과 호의에 자신의 삶을 통째로 맡겨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비통할까. 난민이 되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 사회적 맥락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도 심각한 일이다.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어엿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비굴하고 비참한 존재로 전락한다.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구출돼도 자존심 상하고, 도움을 받아도 굴욕감을 느낀다.”고 자신의 난민 경험을 뼈아프게 회상한다.
이탈리아의 에르만노 올미 감독이 2011년에 만든 〈마분지 마을(Il Villaggio di Cartone)〉이라는 영화가 있다. 신도들이 줄어 문을 닫게 된 마을 성당, 그리고 그 상황에 깊은 좌절을 느끼는 노 사제. 제단의 모든 성물과 장식이 치워지고 나무의자들만 남은 황량한, 더 이상 성스럽지 않은 건물.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온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 난민들이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가냘픈 목숨을 의탁한다. 이들의 현존 앞에서 노 사제는 성당 건물이 다시 성화되고 새로운 생명의 신비로 가득 찬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경이롭게 체험한다. 성당 건물이 진정으로 필요한 용도를 되찾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난민들에게 최소한의 의지처를 제공해 주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새로운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저서로 『인권의 지평』, 『인권의 문법』,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을 찾아서』 등이 있고, 역서로 『세계인권사상사』, 『인권의 대전환』, 『머튼의 평화론』, 『거대한 역설』 등이 있다.
난민의 재정의와 범주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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