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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속 공간과 협업

로허르 빌럼스 × 구정연

로마퍼블리케이션스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예술 출판사로, 설립된 1998년의 이와 같은 아트북의 독립출판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책은 항상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드는 로마퍼블리케이션의 발행인이자 디자이너인 로허르 빌럼스를 더북소사이어티의 구정연이 인터뷰했다.


로허르 빌럼스(Roger Willems) 1969년 네덜란드 틸뷔르흐 출생으로 현재 암스테르담에 거주한다. 브레다의 성요스트미술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뒤, 카럴 마르턴스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산드베르흐인스티튜트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북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빌럼스는 1998년, 작가인 마르크 나흐참과 마르크 만더르스와 함께 출판 및 편집 프로젝트인 로마퍼블리케이션스(Roma Publications)를 만들었다. 이후 예술 출판물을 생산하고 배급하는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해, 형식의 구애 없이 작가, 디자이너, 사진가, 큐레이터, 시인 등과 긴밀한 협업에 근간을 둔다. 빌럼스는 현재 로마퍼블리케이션스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발행인으로 국제 아트북페어와 출간기념 행사에 참여하며 여러 협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인터뷰어와 번역 구정연  불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제로원디자인센터의 전시팀장을 거쳐, 현재 독립 큐레이터 겸 프리랜스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비정기간행물인 『공공도큐멘트』의 기획편집을 맡았고, 더북소사이어티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 중인 로마퍼블리케이션 전시회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을 임경용과 공동 기획했다.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 전시에서 관객과 아티스트 토크 중인 마르크 나흐참과 전시전경 / 자료 제공: 더 북소사이어티

구정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 중인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은 로마퍼블리케이션스(이하 ‘로마’)의 활동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로마는 이전에도 여러 도시에서 전시를 조직했는데 이번 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실제 이번 서울 전시가 이전과 다른 것 같다는 평이 있었다.

로허르 빌럼스 그 이유는 아마도 전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리딩룸의 공간 디자인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전시 디자인은 더북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와 작업해왔던 젊은 디자인스튜디오 씨오엠COM (한주원 · 김세중)이 맡았다. 이전 전시에서 우리는 늘 공간을 직접 구성했고 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큰 테이블이나 낮은 판 위에 열람용 책들을 설치했다. 이번 전시는 유럽 내 도시가 아닌 서울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맥락도 달랐던 터라, 공간을 잘 아는 디자이너들이 미리 설치 작업을 해야 했고 결과도 좋았다. 씨오엠은 전시 공간을 라운지처럼 아늑하게 만들어 관람객이 좀 더 친근한 분위기에서 책을 앉아 읽게끔 구상했는데, 매우 좋은 작업이다. 심플하지만 기능적인 ‘로마’ 스타일과 차이가 있지만, 나머지 공간 디자인은 이전의 전시와 유사했다. 장소 특정적 작품이 설치되고 유리 진열대 안에 ‘로마’가 선별한 책들이 놓여졌다.

구정연 보통 출판사 전시라고 하면 책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번 전시에서 ‘로마’는 늘 그래왔듯이 책과 작품을 한 공간에 설치했다. 이런 구성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로허르 빌럼스 이렇게 전시를 구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은 전시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책을 만들 때 우리는 작품 크기를 줄여서 다시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전시 공간을 구성할 때 나는 자연스레 책과 실제 작품이 혼합된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내가 고른 작품은 ‘로마’와 작업한 작가에게 빌린 것도 있고, 새로 의뢰한 것도 있는데,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작가와 전시 공간을 나눌 뿐이다. 항상 ‘로마’의 책과 함께 말이다. 

구정연 로마퍼블리케이션스는 1998년에 설립됐다. 지금은 아트북을 출간하는 독립 출판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생경한 일이다.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입소문이 나면서 18년이 된 지금, ‘로마’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예술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로허르 빌럼스 ‘로마’의 첫 번째 책은 마르크 나흐참(Marc Nagtzaam)과 만들었다. 나흐참은 브레다의 아트스쿨에서 만난 사이다. 우리의 첫 번째 책은 나흐참이 1998년 프리드롬(Prix de Rome, ‘로마 대상’이라는 뜻)이라는 젊은 예술가 대상의 네덜란드 프라이즈에 참가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프리드롬과 우리의 이름인 ‘로허와 마르크(Roger & Marc)’ 때문에 첫 책을 ‘로마퍼블리케이션스 #1’로 지었다. 같은 해 미술가 마르크 만더르스(Mark Manders)도 만났는데, 그는 출판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운 좋게도 그의 이름 역시 ‘마(Ma)’로 시작해서 우리는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마르크 만더르스와 나는 둘 다 아른험에 살았고, 나는 새롭게 문을 연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Werkplaats Typografie)에서 작업실을 얻은 상태였다. 그 뒤로 우리는 다수의 소책자, 포스터, 그리고 신문 등 이를 테면 『검고 흰 풍경으로 색칠된 방(Coloured Room with Black and White Scene)』과 『숫자 5가 담긴 신문(Newspaper with Fives)』을 함께 만들었다. 2004년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겼고, 지금 ‘Fw: 북스’를 운영하는 한스 흐레먼과 작업실을 나눠 쓴다. 반면, 마르크 만더르스는 벨기에로 이주했다.

구정연 ‘로마’의 주요 특징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로허르 빌럼스 거의 모든 책이 작가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직접적인 협업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나는 주로 디자인을 하지만, 그 외에는 ‘로마’를 매우 잘 아는 친구로 남아 있다. ‘로마’의 책은 주로 이미지를 다루어 작가의 작품과 유사해지거나,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에 귀기울이다 보면 결과물은 때때로 전시처럼 콘텐츠의 공간을 창조하는 단순한 디자인이 된다.

구정연 로마퍼블리케이션스는 간행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출간 도서를 기록한다. 2016년 7월을 기준으로 현재 약 276편의 책이 출간된 걸 알 수 있다. 서울 강연에서 네덜란드의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제트셋(Experimental Jetset)의 책을 낸 이유가 그들의 작업물을 아카이브 하기 위한 거라고 말한 바 있다. 책의 출간 이유와 종류가 다양할 것 같다. 그 종류를 분류하는 기준이 있다면?

로허르 빌럼스 ‘로마’를 시작할 때부터 간행 번호를 책에 붙였고, 이런 작업은 출판사의 구조를 만들어줬다. 한편, 전체 프로젝트를 좀 더 쉽게 다루는 데도 도움을 준다. 나는 책을 범주화하거나 정해진 틀 안에서 무언가를 계획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로마’의 도서 목록이 일정한 범주를 형성하는 걸 알 수 있다. 예컨대 두 개의 범주로 나눠보면, 하나는 작가와 ‘로마’가 자발적으로 기획한 출간물이고 다른 하나는 기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와 연계해 출간한 도록이나 아티스트북이다. 물론 이러한 범주 안에는 작가별로 혹은 작가가 만든 작품별로 겹치는 책이 있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범주를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게스트 디자이너가 작업한 책은 ‘로마’ 안에서 특별한 리그를 이루어 디자이너 별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명의 작가가 만든 여러 권의 책은 그의 작품 아카이브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레인 코펠만, 바르크 로데베이크스가 여기 해당한다. 마르크 나흐참, 마르크 만더르스, 케이스 하우츠바르트, 얀 켐페나르스, 헤이르트 호이리스의 책은 보다 덜 구조화한 방식의 범주에 포함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 ‘실패’와 ‘후회’의 범주도 있지만, 그건 비밀이다.

『숫자 5를 담은 신문』(로마 #5), 마르크 만더르스, 로허르 빌럼스, 1999, 47 x 31.5 cm, 20쪽, 신문. S.M.A.K. 겐트 공동 출판. 숫자 5로 가득 채운 신문은 독일의 하노버슈 뮌덴 지역의 일간지 부록으로 제작되어 무료 배포됐다. 이 신문은 작고 그림 같은 마을의 놀라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일부 사진은 하노버슈 뮌덴에서 발견된 숫자 5를 담았고 그 외 다섯 개씩 묶어놓은 그래피티와 교통 표지판 이미지는 연출되었다. 100,000부 제작.

구정연 ‘로마’ 책의 상당수가 게스트 디자이너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예컨대, 라딤 페스코, 익스페리멘털 제트셋, 한스 흐레먼, 루이 뤼티, 율리 페이터르스, 제임스 랭던 등이 그러하다. 게스트 디자이너가 작업하는 경우, 어떻게 ‘로마’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가? 가이드라인이 있는가?

로허르 빌럼스 주로 잘 알고 지내는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는데, 되도록 그들의 작업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작가와 디자이너 두 사람의 협업 관계를 깔끔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예산을 신경 쓰며, 예산 조율이 필요할 때 의견을 줄 뿐이다.

구정연 ‘로마’의 그래픽 디자인은 여타 출판사와 비교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직접 디자인을 한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디자이너 겸 발행인으로서 ‘로마’의 책 디자인 설계 과정이 궁금하다. 

로허르 빌럼스 ‘로마’의 책을 디자인할 때 나는 좀 더 많은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일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 왜냐하면 책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이 관여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작가와 직접 일하며 그 작품에 가장 잘 맞는 작업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은 일종의 특권이다. 나는 규칙을 갖고 일하진 않지만, 항상 작가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것을 논리적인 콘셉트로 번역한다. 그러고 나서 디자인을 제안하는데, 그 디자인은 작가가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때 쉽사리 바뀔 수 있다. 나는 매우 유연하게 작업하는 편이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면 반드시 내 기준에 맞추어 디자인을 마무리한다.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알더라도 좋은 책을 만드는 법을 모를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맞는 오브제의 구성, 가독성, 사양에 많은 신경을 쓴다. 개인적으로 미니멀한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이는 단순한 책을 만들려는 작가의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구정연 ‘로마’를 대표하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발행인으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책을 고르는 기준이 다를 것 같다.

로허르 빌럼스 2007년 출간된 바티아 쉬터르의 『평행 백과사전(Parallel Encyclopedia)』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올가을 두 번째 호를 준비 중인데, 두 권의 책은 내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책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작가의 작품이자 전시 그 자체로 볼 수 있고, 다른 책의 이미지를 재생산함으로써 인쇄물의 본질적인 성격을 활용한다. 이 작업은 책과 사진에 부치는 송가(ode)다.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구정연 이상적인 책에 대해 좀 더 말해달라.

로허르 빌럼스 책이 아름다울 때는, 작업에 대한 믿음이 강한 작가가 자기 작품을 책에 담아낼 때 더욱 그러하다. 책은 항상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책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책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작가와 함께 (그리고 작가를 위해) 무언가를 실제 만들어 낸 책일 것이다. 바깥 어딘가에서 그 책에 반응해줄 독자를 상정하면서 말이다. 책은 사실 아이디어와 오브제를 연결하도록 고안했다. 책은 세계를 여행하고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삶의 일부로 들어온다.

“책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다. 전시보다 훨씬 더 독립적이다. 그 이유는 책이 가진 무시간성과 이동성에 있다. 당신은 책을 살 수 있고 때가 되면 당신의 공간에서 그 책을 거듭 읽는다. 나한테 책의 형태란 전시만큼 중요하다. 책은 독립적인 예술을 실천하는 데 있어 가장 완벽하고 민주적인 해법이다.” (바티아 쉬터르)

구정연 쉬터르와의 작업 과정은 어땠는가?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가지고 지면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로허르 빌럼스 첫 호를 만든 지 거의 10년이 됐다. 우리는 첫 호의 연장이자 확장으로 보다 정교하게 두 번째 호를 내기로 했다. 『평행 백과사전』 2호는 처음의 실험, 다시 말해 방대한 규모의 사진과 지식, 경험을 선별해 하나의 책 안에 가동시키는 작업을 다시 시도한다. 다른 사진책처럼, 표지와 분류 체계, 레이아웃 등의 모든 선택은 바티아의 작품이 어떻게 독자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우리는 전통적인 백과사전을 디자인 측면에서 참고했는데, 백과사전은 실제 참고 목적으로 사용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잡지 형태로도 책을 디자인할 뻔 했지만, 그 형태가 우리의 작업 속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디자인처럼 책의 제목과 형태가 나왔고, 이걸로 우리는 고전적인 분위기, 바로 책이란 ‘지식을 나누고 사용하고 사유하는 궁극의 장소’였다는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난 작업에서 주로 여러 주제와 특징을 보여주는 이미지 덩어리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 이미지가 놓인 장소와 방식에 따라 어떻게 서로를 조종하는지를 조사한다. 편집 과정에서 이미지의 위치는 계속 바꾸고 그때마다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건 운으로 하는 게임과도 같다. 때로는 완벽하게 말이 되는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다루는 이질적인 콘텐츠 간에 시각적 대항력이 발생하는 걸 보는 건 참으로 매력적인 경험이다. 이런 출판물에서 대한 협업은 이 책의 콘텐츠를 삼차원적 공간 안으로 번역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끔은 책의 펼쳐진, 혹은 확장된 장이라는 측면에서 전시를 생각하게 해준다.” (바티아 쉬터르)

구정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나 책이 있는가?

로허르 빌럼스 북페어에서 만난 동료 출판사와 나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 친구 디자이너한테 유대감을 느낀다. 하지만 발터 쾨니히와 같은 보다 큰 출판사에도 관심이 있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예술과 아티스트북의 매우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즐겨 찾는 곳은 중고책방이다. 애석하게도 상당히 좋은 책방이 문을 닫고 있다. 난 새 책과 헌책이 함께 있는, 벽이나 천장까지 책으로 뒤덮인 서점의 열렬한 팬이다.

구정연 ‘로마’는 해외 기관과 협력하거나 제 자본을 들여 책을 출간해왔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류의 협업이 일어날 것 같은데, 협업하는 데 있어 주안점은 무엇인가? 이번 전시의 키워드 중 하나도 ‘협업’이다.

로허르 빌럼스 외부 기관과의 협업은 책 제작자로서 당신의 위치를 이해하는 개인들과 연결될 때만 가능하다. 사실 나는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과 작업하는 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전히 작가와 디자이너에게 자유를 줄 때만 기관의 지원을 환영한다. 전시명에서 협업은 대부분 개별 작가, 저자, 디자이너, 큐레이터와의 협업을 의미한다. 이들은 우리가 만드는 책과 전시에서 같은 욕망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퍼블리케이션스는 공유 프로젝트다. 

구정연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기관과의 협업 가운데 성공적이었던 사례가 있다면?

로허르 빌럼스 기관은 재정과 유통 혹은 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술 기관, 특히 미술관이 가장 좋은 점은 이곳이 공적인 장소라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예술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기관의 맥락은 관람객의 반응을 날카롭게 하고 책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건 예술을 믿고 그걸 공론화하는 사회에 관심이 있다는 걸 뜻한다.

구정연 로마퍼블리케이션스는 거의 1인 출판사로 봐도 무방하다. 혼자서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규모가 어느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 달에 출간하는 책의 양과 업무량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선택과 거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

로허르 빌럼스 일 년에 스무 권 이상의 책을 다룰 순 없다. 따라서 많은 제안들에 대해 안 된다고 답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전에 함께 작업했던 이들과의 관계를 우선시한다. 그들과는 꾸준히 책을 만들고 있다. ‘로마’의 뼈대는 이러한 충의와 우정에 있다. 카럴 마르턴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를 오랫동안 알아왔고, 내가 그의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라면 그냥 직감에 따라 마음에 끌리는 프로젝트를 받아들인다. 이런 작업은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실수를 통해 배워나간다.

구정연 몇몇 예술 출판사는 온라인 출판과 전자 출판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로마’는 이렇게 변화된 출판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로허르 빌럼스 ‘로마’에게 오브제는 여전히 본질적이다. 아트북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 중요하지 않다. 작가나 전시의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냥 구글로 검색하면 된다. 그러나 아트 북은, 책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오브제고 이 책이 작가의 작업과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오히려 디지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특별한 책이 좀 더 요구된다. 음악에서 LP가 다시 주목받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측면은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온라인에 보여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아트북 시장은 규모가 작고 네덜란드에서도 판매량은 매우 낮다.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특별한 독립 서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서점들은 인터넷을 서핑하고, 메일링을 받고, 블로그를 읽고, 북페어에 참여해 꾸준히 정보를 얻는다.

구정연 서울 전시 개막 후 벌써 세 권의 신간이 출간됐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로허르 빌럼스 다가올 뉴욕아트북페어에 맞춰서 여섯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서너 권을 추가로 제작할 생각이다. 지금 페어 준비로 바쁘지만,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매년 출간 도서 목록을 늘리는 대신 같은 리듬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연간 출간 도서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이 제작하고, 더 많이 팔아야 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듭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이 위험하다고 여겨지면, 난 책을 적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비가 넉넉지 않고 고정 비용이 출간 도서의 판매 수익보다 크지 않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다면 한결 여유가 생길 테고, 그러면 내가 바라던 대로 매우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북 속 공간과 협업

분량8,688자 / 20분 / 도판 5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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