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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밤’과 잠행자들 –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투쟁

신지영

집 근처 9시의 그/녀와 나, 두 가지 연루됨

‘우리’에게 밤은 무엇일까? ‘나이트호크(Nighthawks)’ ‘밤을 지새는 사람들’ ‘밤에 노동하는 사람들’ ‘밤의 산책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최근 스스로를 ‘나이트호크’(밤을 새는 사람)라고 지칭하며 ‘자본주의와 밤’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상과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활동을 알게 되었다.1 그들의 선언문은 “노동자 계급의 밤은 휴식을 갖고 아이를 만드는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에 불과할 뿐일까? 라며 반문하고, 이어서 ‘아니다’라고 답한다. 밤은 “빛의 힘이 후퇴함에 따라 자본주의의 규범도 눈에 띠지 않게 조용히 잦아들”고, 노동자가 사유의 힘과 해방을 되찾는 시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밤조차 노동에 흡수되고 있다. 대체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이 상황을 알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도시의 밤에 멈춰 서, 방랑하는 노동자계급을 ‘나이트호크’라 부르고, 동물들도 나이트호크로 간주하고, 카메라를 들고, 찾고, 쫓고, 기다리고 있다. 밤의 힘을 축소하고 절단하는 현재에, 해방과 사색의 시간인 밤과 그것을 포위하는 자본주의 사이의 전쟁攻防을, 우리는 도시의 밤 속으로 잠행하며 묻는다.”

나의 밤… 저녁 때를 놓치면 가곤 하는 레스토랑은 통유리로 밖이 훤히 보여 좋다. 그리고 9시면 어김없이 모자를 쓴 자그마한 체형의 그녀가 온다. 그녀는 레스토랑 밖 벤치에서 잠을 청하고 담배를 피우고 레스토랑이 문을 닫을 때쯤 사라진다. ‘안의 나=빛’ vs ‘밖의 그/녀=어둠’이라는 위계는 선명히 존재하지만, 나도 그녀도 일상으로 파고든 자본주의와 군사적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폭력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이의 위계를 강화하기 때문에, 저곳의 어둠이 이곳의 어둠을 보긴 어렵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저 벤치를 고집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비밀이다. 나는 나와 그/녀 사이에 여러 개의 비밀을 숨겨둔다. 그중 하나의 비밀을 조심스레 꺼내어, 하나의 질문으로 만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빛 속에 앉은 나는 어둠 속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어둠 속 그/녀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에티엔 발리바르는 프랑스에 대한 자폭 공격 이후에 쓴 글 〈전쟁에서In War〉(‘오픈데모크라시’opendemocracy.net 2015.11.16)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는 전쟁 중이다.” 현재의 전쟁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고 착종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때 “오래된 신학적 증오”가 활성화된다. 파리, 올랜도, 이스탄불 등 ‘테러 (그 형태와 정황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테러라 불린다)’가 연달아 일어나는 현재, ‘테러’에 대한 비판은 의심할 수 없는 정당성을 얻는다. 그리고 ‘적’의 계열이 재편성된다. 테러–이민(난민)–빈곤–어둠–밤. 그리고 적의 계열은 마이너리티를 추방하는 논리로 둔갑한다. 권력도 문지방을 넘어 결합하고 ‘우리’를, 서로를 혐오하게 하는 방식으로 연루시킨다. 권력도 문지방을 넘는다. 그것도 매우 활발하게! 이와 같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곳의 ‘밤’과 저곳의 ‘밤’이, 그리고 ‘나’와 ‘그/녀’가 만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옥바라지 골목 투쟁 – 소유권 없는 재개발 반대 투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날은 일본으로 돌아아가기 하루 전이었고 피곤했다. 그러나 강제대집행이 예정된 옥바라지 골목에는 꼭 가봐야 한다는 이끌림에 집을 나섰다. 1차 철거로 대부분의 집이 잔해만 남았고 황색 비닐은 이 골목을 감시하는 카메라인 양 잔해들을 덮거나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황색 비닐이 찢기거나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재개발로 없어질 이곳, 우리는 역사를 지우고 있다”라는 글귀가 살짝살짝 보이고, 자질구레한 가재도구, 조그만 화분 등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슬렁거리다 보니 벽을 따라 쪼르르 하얀 수건이 널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두 채 남고 다 철거되었다고 했는데 여긴 영업을 하나? 반가운 기분에 살펴보니 “구본장 영업 中. 손님들을 위해 건물 내 조용히 부탁드려요”라고 붙어 있었다. 용기를 내어 문을 밀었다. 그리고 마법처럼 조금 전 골목에 서 있던 ‘공기’ 님을 만났고, 구본장 여관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와 만나고, 옥바라지 골목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후지이 다케시 님과 리슨투더시티가 이곳과 관련해 열심히 활동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위위층으로 올라가 여관집 따님인 다미 씨도 만났다. 철거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여관이, 아니 이 여관을 지킨 사람들의 힘과 용기가 모든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나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옥바라지 골목은 서대문 형무소 뒤편에 있던 여관 골목으로, 김구와 같은 독립투사부터 민주화 투쟁까지, 정치범들을 돌보기 위해 그들의 어머니와 가족, 친구들이 묵었던 곳이다. 박완서, 조세희 등의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11년 11월, ‘서대문 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 기거 100년 여관골목’이라는 표지판을 붙여 이 골목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음에도, 자본의 논리 앞에서 3년 만에 입장을 바꿨고 롯데건설은 옥바라지 골목을 195가구의 아파트로 재개발할 계획이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100년간의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뿐 아니라, 작은 상권과 원주민들의 삶은 거처를 잃을 것이다.

구본장 여관 주인 아주머니의 딸인 다미 씨는 활기찼는데, 공기 씨의 말을 빌리자면, 활동가가 아님에도 “‘우리’의 냄새가 나는” 분이었다. 그날 다미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일본 야숙자의 상황을 들은 그녀는 “우리는 소유권이 있으니까 싸울 수 있는데 그분들은 더 어렵겠네요”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일본 야숙자들의 투쟁은 소유권 없는 자들의 투쟁이다. 그리고 ‘이곳’의 옥바라지 골목 투쟁을 ‘저곳’의 야숙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보면 새로운 가치가 부각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부른다. ‘우리는 어떻게 소유권 없이 재개발 반대 투쟁을 할 수 있는가? 과연 소유권이란 무엇인가?’

옥바라지 골목 투쟁은 골목의 역사, 자연환경, 작은 상권에 기반한 서민의 생존권, 즉 ‘공통적인 것’을 위한 투쟁이다. 특히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는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그들을 돌본 무명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전제 자체를 바꾼다. 이러한 방향성은 일본 야숙자들이 벌이고 있는 ‘소유권 없는 재개발 반대 투쟁’과 연결된다. 현재 재개발 사업은 소규모화 하고 개발할 땅이 사라지면 공공부지에 대한 재개발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어떤 논리로 싸울 수 있을까? 사실 미군기지 건설과 같은 국책 사업에 의해 ‘소유권’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대추리와 오키나와, 강정 주민들은 수차례 경험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행정이 적극 활용하는 ‘행정 대집행’은 이러한 ‘권리에 대한 박탈과 폭력’을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킨다. 옥바라지 건물과 일본 야숙자들의 활동은 ‘소유권’이 권력의 결정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용지물이 되는지, 왜 모든 철거촌 투쟁이 사실상 생존투쟁이었는지를 반증하며 ‘행정 대집행’의 법적 타당성에 대해서 문제제기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야숙자들의 반올림픽 투쟁 – 권리 없는 자들의 법적 투쟁은 가능한가?

도쿄로 돌아와 느끼는 것은 선거와 법을 통한 싸움이 강조되는 분위기이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전쟁 법제 등이 통과되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봐야 했던 일본인들에게 정권 교체는 극히 중요한 과제다. 그 중요성을 절감하는 동시에 함께 권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자들의 법적 투쟁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2016년 4월 10일 70명 정도의 참여자들이 JSC(일본스포츠진흥센터) 앞에서 “분노의 ‘노노노’ 가처분”이라고 외쳤다. ‘신국립경기장을 위한 강제 추방 그만둬 데모’였다. 2020 도쿄올림픽을 위한 신국립경기장에 메이지 공원의 대부분이 포함되자,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야숙자들은 퇴거 압력을 받았다. 문부과학성 외부 단체인 JSC는 야숙인들이 안에서 살고 있음에도 1월부터 메이지 공원 외벽과 출입구를 봉쇄했고, 3월 14일에는 토지 명도 이전 가처분 신청을 도쿄도에 제출한다. 가처분 신청은 재판을 하지 않고도 강제 집행이 가능한 약식 절차로 빠르면 며칠 내로 강제 집행이 이뤄진다. 활동가들은 이러한 가처분 신청은 “JSC에 의한 법률의 노골적인 남용 악용”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4월 16일 강제 대집행이 일어났다.

〈메이지 공원에 사는 야숙자에 대한 올림픽 강제 집행, B씨의 부당체포에 항의한다〉(2016년 4월 16일)라는 성명을 보자. 아침 7시에 도쿄 지방법원 집행관이 들이닥쳐 “JSC가 신청한 토지 명도 이전 가처분 신청이 어제 15일 결정이 났으며, 짐은 토요스의 창고로 강제 이동한다”고 구두로 말한 뒤 15분도 주지 않은 채, “트럭 5대가 공원 안으로 들이닥쳐 야숙자의 생명의 보루인 가설주택, 텐트, 생활 물자, 짐, 지원자들이 놓고 간 소유물, 공유물 전부를 가져가 버렸”다. 급보를 듣고 온 사람들은 공원 출입구를 차단한 경비원에 의해 저지당해, “안의 상황을 모르는 채 서로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애를 태웠다.

왜 이러한 폭력이 야숙자들에게는 용납되는 것일까? 그들은 국민이었고 시민이었다. 그러나 빈곤해지자 권리가 없는 존재로 치부되었다. 따라서 ‘권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마이너리티들이 법에 대항해 벌이는 투쟁은, 승패와 관계없이 투쟁 그 자체로 중요하다. 권리가 권력의 배치에 따라 언제든 박탈될 수 있으며, 늘 싸움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음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권리를 갖지 못한 상태의 투쟁’, 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기본 조건이다. 

‘주택을 위한 권리’ 활동과 경찰 테러리즘 – 국적 없는 자들의 주거권 투쟁은 가능한가?

그럼에도 마이너리티에 대한 폭력은 왜 심화되는 것일까? 이러한 점에서 6월 16일 이나바 나나코 씨의 주최로 열린 〈비상사태 선언과 도시–습격당하는 마이너리티〉는 매우 흥미로웠다.2 이 심포지엄은 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일어난 자폭 공격 후 프랑스 정부가 발령한 ‘비상사태선언’에 대해 이렇게 질문한다. ‘안심을 주는 동시에, 국가는 누구를 적으로 간주하고 배제하는가? 비상사태 선언이 발표되었을 때, 무엇이 일어났는가?’ 

마리 위반(Marie Huiban) 씨는 프랑스의 〈주택에 대한 권리〉 운동의 활동가이다. 그녀에 따르면 파리 근교의 이민자 노동자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했는데 11월 13일 이후에는 ‘테러리스트’로 취급당한다고 말한다. 즉 ‘비상사태 선언’은 테러를 막기 보다는, 가난한 노동자, 이민자, 활동가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비상사태 선언 속에서 정치적인 집회는 금지당하고 환경 활동가들은 주택 감금되었으며, 노동자와 이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11월에서 1월 사이에 4,000명 정도가 가택 수색을 당했으나 그중 실제로 테러와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는 이민자의 프랑스 국적을 박탈할 수 있는 법률”에 이어, ‘비상사태선언’을 헌법 속에 넣으려고 했다. 이 두 법은 반대운동을 통해 막았으나, 다시금 치안 관련법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경찰은 시민을 죽이더라도 그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진다.

생드니 시 공화국 광장 48번지에서 있었던 사건은 상징적이다. 그 건물은 가난한 노동자와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 있었는데, 테러범 리더가 잠복하고 있다고 하여 11월 18일 새벽 3시부터 11시까지 건물에 5,000발의 총격이 가해진다.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총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10시간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그 후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당해 5명이 테러리스트 전용 수용소에 구류되었으나 결국 그중 테러리스트는 없었다. 그러나 그중 체류 자격이 없던 사람들은 그대로 입국관리소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정부나 경찰은 아무런 사과가 없었다. 낡은 공영 주택이나 노동자 지구는 테러의 온상이며 정화의 대상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이유로도 활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테러의 피해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이 테러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테러–공포를 이용해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파괴한 프랑스의 경찰과 정부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논의가 있었다. ‘이민자와 야숙자는 테러리스트다’라는 말에 대해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다시금 테러리스트를 배제하는 것이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오가와 씨는 ‘야숙자는 테러리스트다, 점거는 테러다’라고 지칭될 때, 그에 대해서 ‘-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말한 상대의 기준을 그대로 인정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처럼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호명되는 전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이것이 밤 속의 또 하나의 밤을 보는 사유라고 생각한다. 때로 그 밤이 너무 요원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밤이 아니다”라며 낮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밤’을 꿈꿔야 한다.

또 하나의 밤 –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는 전쟁

‘야숙자는 더럽고 곤란하고 가난하고 범죄와 테러범의 온상이며 적이며 어둠이고 밤이다’라는 ‘적의 계열화’ 속에는 이들에 대한 공포가 있다. 권력자들에게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투쟁은 두렵다. 그들이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이 국민/시민/집주인인 ‘우리’의 근거가 얼마나 나약한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라구치 씨는 말한다. “일본에서 처음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곳이 가마가사키입니다. 일용 노동자들의 ‘폭동’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마리 씨는 말한다. “‘비상사태 선언’은 1950년대 말 알제리 독립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만든 법입니다. 이 법으로 알제리인은 투옥되면 국제법의 제약을 받지 않고도 국가 반역자가 되어 처벌당했습니다.” 옥바라지 골목을 배경으로 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나는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모습만 옳게 보았지 그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는 것을 맹세할 수 있다. 우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하였으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권리 없는 자들의 투쟁, 범죄자나 테러리스트와 계열화되는 이민자와 야숙자의 투쟁, 그것은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며, 희망이 박탈된 곳에서 희망을 보기 위한 전쟁이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폭력적인 연루됨 속의 또 하나의 연루됨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가 ‘밤’의 계열로 호명될 때 ‘–가 아닙니다’라고 쉽사리 말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밤의 연결을 통해서 프랑스 생드니의 ‘주택을 위한 권리’는 일본 야숙자 활동에 다가간다. 그리고 질문한다. ‘일본의 야숙자 활동은 국적 없는 자들의 투쟁과 함께 할 수 있느냐’고. 그리하여 나는 일본 야숙자들의 반올림픽 투쟁이 반헤이트스피치(anti-hate speech) 투쟁과 연결되는 상상을 한다. 일본 야숙자의 활동은 한국의 옥바라지 골목 투쟁에 다가간다. 옥바라지 골목 투쟁이 만들어내는 공통적인 것에 대한 물음 속에서, 소유권 없는 거주권 투쟁은 가능해지지 않겠느냐고. 그리하여 다시금 옥바라지 골목에서 독립투사와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와 생계형 죄수들을 뒷바라지했던 ‘그/녀/들’의 몸과 한숨과 눈물이, 생드니의 이민자와 노동자와 일본의 야숙자에게 파고든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투쟁’,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그/녀/들’의 인민전선에 대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조건 속에서 몇 달 전의 시간으로 지금을 비춰보자. 테러에 대한 공포가 프랑스에 확산되기 전, ‘보이지 않는 위원회’ 멤버들은 이렇게 말했다. “‘테러리즘’은 법적 카테고리가 아니다. 그것은 ‘적’이라는 정치적 카테고리를 법적 언어로 바꾼 불가능한 번역”이어서 테러리즘으로 규정된 대상에 대한 “‘초 법규적’ 조치”가 가능해졌다. “여러 운동을 적이라든가 테러리스트라고 결정짓는 것은 결국 오늘날 모든 정부가 하고 있는 본래적인 정치적 결단”이다.3 1월 10일, 메이지 공원의 야숙자와 활동가들은 반올림픽 연날리기를 했다. 야숙자의 블루텐트로 ‘올림픽 반대’라고 쓴 거대한 연을 만들고, 그 연을 날리기 위한 온갖 시도를 했다. 연을 잡고 달음박질치기도 하고, 자전거에 매달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블루텐트 연’은 몇 번이나 땅에 곤두박질치고 너덜너덜해졌다. 한쪽에서는 “더 빠르게 더 높이”라고 외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더 빠르게 더 높이’라니, 마치 올림픽 같잖아! 컨셉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컨셉이!”라며 웃었다. 이 불/가능한 시도 속에서 그/녀/들은 자본의 속도와 다른 우리의 ‘빠름’을, 군사주의적 감시와 다른 우리의 ‘눈높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전쟁 속 또 하나의 전쟁, 지옥에서 천국을 보는 눈, 어둠 속 또 하나의 어둠이었다.

나는 이 모든 그/녀/들의 끝없는 잠행 속에서 철거민, 야숙자, 이민 노동자, 어둠, 밤… 을 듣고 쓰고 발음한다. 밤 9시가 되면 만나는 ‘그/녀’와 함께 나는, ‘밤’을 자꾸만 ‘봄’이라고 잘못 (옳게) 쓴다. 반복적인 듣고 잘못 (옳게) 쓰는 행위, 지옥에서 천국을 꿈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운동, 이 ‘또 하나의 어둠들’ 속에서만 나는 가까스로 ‘마이너리티 코뮌’이라고, 이 말이 고정되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지영 

연세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의 연설·좌담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부터 히토츠바시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1945년을 전후한 시기에 동아시아의 ‘異族/난민’ 코뮌의 접촉사상을 연구하며 현재의 ‘마이너리티 코뮌’을 듣고-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이너리티 코뮌』 『不부/在재의 시대』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등이 있다.

‘또 하나의 밤’과 잠행자들 –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투쟁

분량8,758자 / 20분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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