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새로운 과제
김경란, 김수영, 신승수, 유걸, 윤태권, 장영철, 조남호, 조재원, 황두진 × 박성태, 박가희
분량14,418자 / 3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좌담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두 달간 열렸다. 2만 명의 관람객을 맞은 이 전시는 순백의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9개의 제안을 담았다. 한번은 생각해봄 직한 현실적인 제안부터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제안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하지만 주거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완성도가 부족했고 상징적 작업으로써도 충분히 아름답지 못했다. 이 전시를 통해 큐레이팅 팀과 참여 건축가들은 무엇을 하려 했고, 무엇을 얻었을까? 이 시대의 주거 공간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졌을까? 전시를 마무리하고 참여건축가와 큐레이터가 라운드어바웃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나눴다.1
참여 건축가 김경란, 김수영, 신승수, 유걸, 윤태권, 장영철, 조남호, 조재원, 황두진
진행 박성태(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박가희(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아쉬운 기획의 밀도
박성태 《협력적 주거 공동체》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구성은 처음엔 전시와 관련된 내용을, 중간은 전시 중 진행했던 워크숍 강연 프로그램을, 마지막엔 전시와 관련해 진행했던 리서치 내용을 실었습니다. 본 전시는 신문, 잡지, 방송 등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되기도 하였고요.
윤태권 영등포 재개발 반대 위원회 위원장께서 저희 전시를 보고, 제게 영등포 재개발에 대한 생각을 묻기 위해 전화를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웃음)
유걸 박성태 국장은 이번 전시 기획에서 기대한 점과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박성태 ‘협력적 주거 공동체’라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했습니다. 전시를 통해 사회적 요구에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현실화되고 발언할 기회도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사회적 피드백이 전시 기간 중에 논의될 수도 있고 혹은 이후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점들을 놓친 면이 없지 않아 아쉽습니다.
유걸 더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요?
박성태 주제에 더 내밀하게 들어가는 것, 건축가들과 전시 작업 과정을 더 긴밀하게 논의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현상이나 필요를 더 깊이 고민하는 것 등입니다. 보통 건축적인 아이디어, 특히 저희가 기획한 전시 내용은 사회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어서 현실에서의 긴밀한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가 이에 대한 리서치를 좀 더 깊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황두진 어느 쪽으로든 극단으로 가지 못했다는 말씀이시죠?
박성태 초기 계획에는 아홉 개의 안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을 원했고,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시리즈로 가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현실화하거나 도시계획에 접목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리서치와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한 이유입니다.
유걸 저는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임하기보다는 그냥 제가 생각한 것을 풀어냈습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결과가 어떻다기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가하는 분들 사이에 상호 의견 교환이 다소 없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일을 하였더라도 서로가 하는 일을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윤태권 저도 초반 준비 기간의 3분의 1 지점에서 각자의 안들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했다면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거의 마지막에 다른 사람의 패를 보게 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유걸 불만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결과에 대해서 질문을 가지고 가는 전시도 좋지만, 그런데 어떤 질문을 가지고 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획과 결과에 대해서 보다 서로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없었다는 부분이 기획에 관계가 되는 것 같고, 해답을 얻기보다는 질문이 더욱 명료해질 수도 있게 해주는 것은 상호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두진 저도 동감합니다. 사실 이번 전시에 참여하신 분들은 전시가 주업이 아니라서 전시에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이 유한했습니다. 기왕에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거나,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작은 그룹으로 모여 있었다면 중간에 서로 피드백을 주거 받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규모가 컸고 많은 것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참여 건축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워 아쉬웠습니다. 각자가 무엇을 얻어 가느냐는 각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똑같이 사막을 헤매도 배우는 사람이 있고 발리에 가서도 잔뜩 찡그리는 사람이 있듯이, 작가나 관객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 이번 전시에서 안 해본 일을 해 보면서 재미있었는데, 다만 시도하려 했던 방식들, 질문,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참여 건축가가 전시 외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경란 그런데 의도적으로 서로 합쳐지지 않게 하신 것은 아니었나요? (웃음)
박성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웃음) 《협력적 주거 공동체》 기획 초반에는 사실 더 많은 건축가를 초대했습니다. 그때는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단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와 추진 중인 사업과 맞닿아 있기도 했고, 이 주제에 더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해 함께 고민해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겨서 기간과 예산을 잘 확보하고 적절한 규모로 진행한다면 더 깊이 들어가고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신승수 이번 전시의 긍정적인 면은,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어서 재미있었다는 점, 그리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볼 수 있어서 도움도 되었고 새롭게 관심 갖고 공부하는 계기도 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참여 작가가 서로 더 잘 알았다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물로서 어떤 인상을 주는 프로젝트도 있었고, 이를 통해서 저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습니다. 더 바라는 점이라면, 개별적인 작업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노명우 교수님이 이번 작업 각각에 대해서 논평을 해주셨으면 어땠을까요? 요컨대, 전시를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시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후일의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이번 전시와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전시를 기획하신다고 하니, 그 전시에는 이번 전시의 피드백이 어떻게 담겨 있을지 기대하겠습니다.

공동체, 공유에 대한 환상과 현실
박성태 조남호 소장께서는 ‘수직마을 입주기’를 직접 실행해보자는 연락을 받지 않으셨나요?
조남호 회사로 실행 방법을 문의하는 연락이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가상이지만 구체적인 실행 절차와 일정을 전시했기 때문에 ‘수직마을 입주기’를 올해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꿈꾸는 일 같아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제법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황두진 공유공간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다만 본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견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업적인 목적에서 공유공간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정작 자신은 공간을 공유하기 싫다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사업 아이템이면서 동시에 자신도 동참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몇몇 사람이 ‘공유’라는 말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공유=공산주의’라는 말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한 사람도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분명 공간의 공유에 대한 요구는 현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이유로 그것을 원하는가를 더욱 면밀하게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상당히 의미 있고 근사한 문화적 행위로 보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남호 이번 전시의 위험성은 최근 급증한 공유공간에 대한 관심과 흐름에 편승하는 듯 보이는 부분입니다. 혼자 살 수 있게 된 것은 산업발전으로 인한 충분한 생산물들과 민주주의 성장의 결과이기도 한데, 왜 이제 와서 과거의 가치를 다시 살리자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거의 공동체는 생존의 수단이었고, 참여 건축가들의 작업에도 저마다의 새로운 공동체의 본질적인 질문과 그 차이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관람자들은 표면적인 이유로 쉽게 동의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박성태 단순히 ‘과거의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독립성과 개별성을 갖춘 공동체 경험이 적기 때문에 확실하게 와 닿지 않았던 게 아니었나 합니다. 그래서 말로만 하는 것 말고, 건축가가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보여준다면 공유하는 삶의 이미지를 구체화할 수 있고 이해를 도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남호 이번에 다루었던 공유주거, 공동체라는 주제는 그 진행 상황이나 성과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단기간에 높아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의 폭과 인식의 범위가 좁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공유하는 영역이 적었을 때 주제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되거나 계몽적인 태도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전시 준비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관객의 관심과 접점을 이룰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황두진 저는 전시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작년 한 해는 건축전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양과 질에 있어서 앞으로 유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시립미술관에서 바라는 것 사이의 관계를 보았을 때 전시가 진행될수록 서로 잘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적인 경험을 전제로 하는 공공공간에서, 미적인 감흥보다는 콘텐츠를 분석적으로 보아야 하는 전시를 한 것입니다. 물론 미적인 측면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좋은 건축전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위 보수적이라고 하는, 형식상으로는 상투적인 건축전시인 것 같습니다. 건축 도면과 모형을 잘 보여주고, 좋은 사진이 많이 있어서 건축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주는 전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오히려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주제가 있는 건축전시일수록 오히려 기왕에 만들어진 것을 잘 큐레이팅 해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고, 이번 전시처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를 특정 주제에 의해서 새로 제안해서 현실적인 건축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전시도 여전히 좋은 포맷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 절대적으로 큐레이팅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참여하는 작가들 사이에서의 공감대가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평소에 못 뵈었던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전시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예리하게 보여줘서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전시가 다양성의 한 몫을 담당해 준다면, 즉 전시를 통해서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좁고 예리하게 파고듦으로써 사회 전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 미덕이라고 봅니다.
조재원 저는 이번 전시가 전시라는 형식 안에서 콘텐츠가 관객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고민한 점은 실험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작가들이 공통의 주제에 대한 생각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큐레이션도 굉장히 어려웠을 거고요.
참여한 입장에서는 전시의 소재와 전시 형식이 보기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시 공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이미 있는 현실을 재현해야 예측도 가능하고 완성도도 가지기 쉽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거쳐 가상 현실인 시나리오로 결과를 내고, 이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는 두 단계를 평행하게 실행해야 했습니다. 전시를 정말 잘하려면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고, 이 또한 저희가 처음부터 생각해볼 만한 문제였습니다만 예측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전시 중에 저희의 새로운 개념의 거주 혹은 공유 플랫폼 등 주제에 다가가기 위한 상상에 공감하는 관객의 반응들이 좋았습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투자와 회수의 관계에서 보려는 관객도 있었고, 정말 현실적인 대안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오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주거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전시를 보러와서 현실적인 해법이 주어지지는 않았더라도, 상상 속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저희에게 보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군데의 기업에서 저를 찾아왔고요. 셰어하우징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희가 연구를 했으니 뭔가 답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고, 그에 대해 저는 답은 ‘없다’였습니다. (웃음) 다들 같은 출발선상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서둘러 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더 구체화해야 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한편,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이 같은 주제로 각자 다른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초기부터 단계별로 공통된 포맷이 있었다면 관객들이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웃음) 다들 너무 바쁘시니, 개별적으로 작업한 결과물들로 조화로운 전시가 가능할까 걱정했었거든요.
이번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에 더하여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시를 통해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집합적으로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나름의 포맷도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황두진 조재원 소장이 얘기한 것 모두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과연 그 목적에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쌍방향의 세미나를 한다거나, 작가와의 대화 등, 특히 이번 전시에서의 작가와의 대화는 몇 분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공식적인 시간이 좀 더 넉넉했더라면 좀 달랐겠지요. 그리고 전시라는 것은 약간의 일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를 만약 잘 조직된 심포지엄을 통해 다뤘더라면 오히려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립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공간과 장소의 매력, 그리고 전시물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보지만, 다만 보완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 봅니다.
박가희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개최 전시마다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피드백은 이 전시가 너무 긍정적인 대안을 보여주려 해서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다양한 개념이 제시되었는데, 그중 공유경제에 대한 언급이 작업이나 리서치 내용에서 좀 더 부각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박성태 미술관 안에 있는 공간이지만 미술관 밖에 있는 듯한 공간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걸 이번 전시는 형식과 주제의 성격 모두에서 계획하기 힘들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전시의 결과가 조금 더 임팩트가 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영철 저희처럼 건축을 하는 사람은 도면을 읽을 줄 아니까 보통의 건축전시에 가면 모형과 도면을 보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건축 이외의 관람객에게 좀 더 즉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는데 영상 길이가 약 20분이기 때문에 작업의 내용이 관람객에게 한 번에 다가가기는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축전시이지만 메시지를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김수영 이번 전시가 건축가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황두진 소장님의 지적과 동일한 생각입니다. 건축은 정의되지 않은 인문학적인 개념을 받아 들이고, 적용하는 것에는 다른 문화적인 영역보다 느립니다. 제 경우만 보아도 ‘공유’라는 공통 가치를 충분히 이해했는가 하는 자문을 하고 있는데, 이를 더욱이 대중과 소통하는 전시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건축가는 건축물이라는 하드웨어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표현 도구도 도면이나 모형이 익숙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관람객과 즉각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웃음)
조재원 이 전시가 시나리오, 즉 어떤 가설을 던지는 것이다 보니 생각 끝에 나올 제안이 무엇일지 모호한 가운데 시작했는데, 저는 이런 열려있는 구조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상을 창의적으로 재현해서 영감을 주는 전시가 있다면, 이 전시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미래를 향해 작동하는 전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 아직은 그 실체가 모호한 개념을 어떻게든 프레임을 만들고 접근 가능한 통로를 만들려 노력했던 전시였다고 봅니다. 전시를 통해 ‘협력적 주거 공동체’라는 개념에 다가가는 몇 개의 징검다리를 놓았을 뿐이었지만,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길 만들기를 북돋우는 시도였달까요.
저는 건축전시가 도면과 모형, 물리적 실체를 재현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에 반대합니다. 물리적인 구체성 없는 전시여도 건축의 내용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주제를 프레임 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은 건축가들의 상상에 공감하기도 하고, 소박한 제안들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영감을 얻기도 하고, 거주에 있어서의 ‘공유’와 ‘협력’에 대해 한 단계 더 능동적으로, 풍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전시에서 주제가 완성도 있게 개념화되고 시각화 된 것을 보길 기대했던 관객들에게서 불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서로 팔로우하는 어떤 분이 전시를 보고 와서 5~6개의 멘션을 연속적으로 게시하셨는데, ‘전시에서 볼 것이 없었고, 읽느라 2시간을 보냈다, 전시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안 된다’ 등의 강한 비판이었습니다.
좋은 건축전시란?
박가희 시각예술에서 이처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입니다. 처음 이번 전시를 제안하셨을 때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할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은, 이슈를 접하고 그 개념을 풀어내는 방식이 작가와 건축가가 매우 다르다는 겁니다. 건축전이라고 했을 때도 같은 언어 안에서 굉장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제가 궁금한 것은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전시’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겁니다. (미술에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슈를 전시로 공유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아니더라도 그 질문을 가지고 갔을 때 좋은 전시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저는 이 전시가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안 좋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이유와 함께, 반대로 기존의 건축전시 중 좋다고 평가받은 전시는 어떤 이유인지가 궁금합니다.
장영철 흔히 ‘건축전’의 한계는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시 준비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넣는다는 것은 별도의 노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 추가되는 노동의 과정마저도 즐겼고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김인철 선생님이 PaTI(파주타이포그라피 학교)를 설계하시는데, 이 학교를 세울 때 골조만 세우고 나머지 부분은 아껴둘까 하셨습니다. (웃음) 결국은 건물의 부분부분들이 저희가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직접 지어지면서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건축은 플랫폼만 제공하고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과정이 5년의 기간 안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미 <다비드 타워Torre David>2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것이 새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관계들은 재미있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이런 일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개인적인 큰 수확이었습니다.
전시 전체의 큰 그림에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되물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면에서 이번 전시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유걸 그런데 전시를 보는 눈이 건축가와 일반인이 상당히 다를 겁니다. 일반인 중에서 ‘협력적 주거’에 관심이 있어서 오신 분들이 있을 것이고, 미술관에 왔다가 우연히 관람한 분도 있을 겁니다. 또한 기존의 ‘건축전시’로 생각하고 찾아온 건축 관계자도 있었을 것이고요. 관람객을 이처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을 때 각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마지막의 건축 관계자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온 분들은 답을 얻지 못해 아쉬웠을 가능성이 있고요. 그리고 우연히 이 전시를 보게 된 분들은 좀 혼란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박성태 세 부류 다 불만을 가지고 돌아갔겠네요. (웃음)
장영철 저는 개인적으로 잘 된 것 같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팀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만 봐도 훨씬 더 숨쉬기가 편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많은 건축전시 큐레이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도 다른 모델, 또는 건축을 포함한 큐레이팅을 해주셨으면 하고요.
박성태 현재 건축가가 하는 일은 대부분 상위 1%를 위한 일이고, 건축가의 프로젝트를 일반인이 가서 볼 수 없는 경우가 거의 99%입니다. 아주 소수만 볼 수 있는 겁니다. 전시는 수만 명이 와서 보기 때문에 이를 통해 1%를 위한 건축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건축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두진 이번 전시는 커미션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 오로지 전시만을 위해서 한 것이고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축물과 같은 ‘최종 결과물product’이 아니라 중간 결과물 같은 겁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기왕에 완성된 건물을 소재로 전시를 하는데, 이것이 개인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주제 중심의 기획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가 건축의 유형이나 현상이어도 좋지만 예리하게 큐레이팅을 한 전시였으면 합니다. 큐레이팅이 예리하여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있는 건축들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가장 쉽게 어떤 유형이나 프로그램적인 분류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적당한 분석글과 함께 도면과 모형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창작물 뒤에 숨겨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전시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수많은 전시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속에 남은 전시는 노르웨이에서 기획한 순회 전시로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한 건축전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국토는 넓은데 인구수가 적고, 국민들이 안 가본 곳이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경치가 좋은 곳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프로젝트였고 장소도 작은 방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분명히 하나의 기획으로 묶인 것이고, 실제로 구현된 것들이고, 동원된 전시 수단은 모형과 도면 같은 것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국토와 자연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전시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장영철 제 생각엔 결국 기획자가 가진 관심에 따라 그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전시를 할 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전시를 하는 방법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은 전시’를 기획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기획자가 이것저것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의 관심에서 확장되어야 전시가 재미있어진다고 봅니다.
황두진 그 두 가지가 합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뒤에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를 또 한다면 여기 ‘통의동집’처럼 구현된 사례와 실험적인 사례를 토대로 만들면 훨씬 더 리얼리티가 있겠지요.
공동체 주거 가능성
조재원 사실 연초부터 공유 관련 오피스나 주거가 매체에 아주 많이 등장했지만, 굉장히 표면적인 면만 다뤄진 것 같습니다. 한 겹 껍질을 벗기면 모두 다른 것인데 같이 묶어서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고 있죠.
코-워킹은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서 지난 2~3년 동안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성장을 했습니다. 실제로 코-워킹 스페이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투자를 받을 만한 새로운 타입의 부동산 임대업이기도 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새로운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집에 모이지 않고 일하는 공간에서 같이 창업을 하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직군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일 때문에 참석한 코-워킹 컨퍼런스에서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공유’라는 키워드에 ‘셰어오피스’, ‘셰어하우스’, ‘1인 가구’가 뭉뚱그려 다뤄지고 있습니다. 사실 불편하지만 자원이나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필요가 있기에 협력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앞으로는 사실 ‘협력적’이라면 어떤 협력이고, ‘공동체’는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공간과 연결 짓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건축가들이 이런 작업을 점점 더 많이 할 것이기에 구체적인 생각들은 계속해서 쌓여갈 것입니다.
지금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여전히 뭉뚱그려져 있으나, 앞으로는 모호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들을 뼈를 발라내듯, 전시나 토론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유걸 앞서 쓴 소리도 했지만, 이번 전시의 주제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주거 문제를 아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루는 주제라고 봅니다. 한국의 주거를 들여다보았을 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같이 살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 각자 따로 살고 있는 것을 묶는 수단 중의 하나가 ‘공동체 주거’입니다. 지금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 수단을 제기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것이 굉장히 검토될 만한 이슈이고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는 동안 주제에 대해 좀 더 의식화된 면도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윤태권 저는 전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이 전시가 저에게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장영철 소장님이나 조재원 소장님이 그렇듯 실제 당사자가 있는, 실재의 문제를 다루었었잖아요. 그리고 제 경우는 그 블록이 바로 제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아무런 컨텍스트가 없는 신도시 안에서 일어난 이 해프닝이 어떤 감초 역할을 했습니다. ‘마을만들기’라는 시민단체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진행하는 행사에서 이 단체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일종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늘 건축가는 좋은 면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항시 그것에 반대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 상황을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그 신도시로 이사간지 1년이 되었는데 그곳에 땅콩집들이 있고 소위 말하는 고가의 타운하우스와 3억짜리 최저가 타운하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준비를 했고 전시를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복잡한 작업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 면들이 전시에서 잘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저는 당사자들에게 질문들을 계속해보려 하고, 특히 신도시에 대한 관련 작업도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실재하는 숫자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분들도 2천만 원의 시 예산에서 시작해 2억 원을 받고 있습니다. 거의 10배가 넘는 금액인데, 문제는 돈을 계속 받으면서 이것을 쓰기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이것을 또 감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 이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동네, 아는 것을 보여주는 데 건축가로서가 아니라 주민으로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새로운 과제
분량14,418자 / 3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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