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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성과 반서사성, 그리고 뒤집기

양혜규 × 김진주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지금은 서울과 베를린을 주요 거주지로 삼아 작업 활동을 하며,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여러 국경을 넘나드는 그의 삶은 이렇다: 하루는 서울작업실에서 선후배 동료 작가들과 미술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다른 날은 스웨덴 말뫼에 있는 학교에 출근한다. 2주간의 학교 업무일정이 끝나면 다시 여러 명의 어시스턴트가 일하는 베를린 작업실로 귀가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초기작 <무명 학생 작가의 흔적>(2001)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살림>(2009), 그리고 최근에는 <향신월香辛月>(2013) 등을 소장할 만큼 양혜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주류 현대 미술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를 ‘비판적 생각을 하고 감각이 예민한 젊은 작가’ 이상으로 미술계에 각인시킨 전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같은 30대였던 기획자 김현진과 만들어낸 《사동 30번지》(2006)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이나 화랑 등의 제도화된 공간에서 벗어난, 작가 외할머니의 인천 옛집에서 가졌던 《사동 30번지》는 이른바 ‘자가-조직적self- organized’이라고 번역되는 형식이 두드러진 전시이자 작업 그 자체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혜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한국 행사(2005) 조직위의 현지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작업만’ 하지는 않는다. 인터뷰는 2월 8일 서울 연건동의 양혜규 작업실에서 진행했고 이 글을 정리하는 필자 김진주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그를 처음 대면했다. 당시 작가 양혜규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개념적으로도 맥락적으로도 대규모의 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으면서, 손이 많이 가는 살림살이의 역할과 기능을 중히 여기고 이에 헌신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응결: 양혜규》를 하나의 기점으로 양혜규는 이후 ‘세계적 한국 작가’의 타이틀을 얻고 그에 걸맞게 활동해왔다. 한국 미술계도 이런 작가의 활약을 반기는 듯 이듬해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작가의 첫 기관 개인 초대전 《셋을 위한 목소리》(2010)를 열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은 올해 또 다른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를 개최했다 (2015년 2월 10일~5월 10일). 현재 작가는 샤르자 비엔날레 12에서도 신작 <불투명 바람>을 전시 중이다.1


인터뷰이 양혜규

인터뷰어 김진주


두 번째 국내 개인전

김진주 이번 리움에서의 전시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는 이전의 한국 전시들과 무엇이 다른가?

양혜규 어떻게 보면 작가는 역할에 따라 체급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리움 전시를 결정할 당시 내겐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전시가 필요했다. 몇몇 곳에서 받은 초대를 고사한 이유는 아직도 작가적 성장과 변화를 거듭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정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작업의 자체적 기준이나 조건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는, 다시 말해 다른 선전구호 없이 온전하게 하나의 개인전을 주최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자 했다.

김진주 ‘왜 리움인가?’라는 질문의 관점을 바꿔보자. ‘작가가 전시하고 싶은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좋겠다. 이것은 또한 한국 미술계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양혜규 지금의 나는 관료주의에 대한 ‘증오’가 크다. 그저 ‘관료주의에 반감이 크다’고 하는 단순반응이 아니다. 이 문제를 좀 더 긍정적으로, 단순반응이 아닌 차원에서 말하자면, 나에겐 진짜 예술적이고 미술적인 전시를 만들 공간이 필요하다. 관료주의는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비예술적이다. 관료주의적 기관에서는 행정이 미술보다 더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공립미술관이 앞으로도 관료주의적으로 흘a러간다면 미술 현장을 생생하게 반영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에서의 전시를 막연하게 상상했을 때 작가적 고민과 시도를 받아주기 힘든 미술관, 그래서 나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작가’로 여기는 기관에서는 전시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움이 섭섭해 할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전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안정적인 미술관, 그리고 ‘몇 주년 기념’, ‘중견작가 기획전’ 등의 수사 없이 평이하게 양혜규 개인전에 대한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기관을 찾았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는데, “서울 시내에 제대로 된 현대미술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안 된다.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관람객 수와 대중적 눈높이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얘기였다.

미술이라는 것은 순수예술이기에 (사회 전반에 대응해 본다면) 응용기술보다는 순수과학이다. 막말로, 뻘짓을 참아내고 야심 찬 결과물을 담아낼 수 있는 반관료주의적 미술 기관이 별로 없다. 즉, 이중 삼중 검증된 결과로 위험을 면피하는 대중적 전시 말고, 결과를 점칠 수 없는 모험을 작가와 같이 감수하는 진정한 미술관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불평 같기도 하고, 기분 나빠할 사람도 많겠지만, 내 소견과 경험치가 그렇다.

개념 뒤집기

김진주 이번 전시를 두고 회고전이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신작이 많다. 작품 <솔 르윗 뒤집기 – 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이하 <솔 르윗 뒤집기>)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신작을 도입부에 배치한 의도는 무엇인가?

<솔 르윗 뒤집기 – 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2015,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 천장 구조물, 분체 도장, 강선, 350×1,052.5×352.5cm, Courtesy of Kukje Gallery, Seoul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 전경, 삼성미술관 Leeum, 서울, 한국, 2015 / 사진: 김현수

양혜규 실제로 구작과 신작의 비율을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애초에는 구작이 60%, 신작이 40%였다면, 나중에 반대가 된 셈이다. 아마 내 왕성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사로 도입부에 있는 작업은 거대한 블라인드 작품 <성채>(2011)의 전시가 결정된 상황에서 추가된 것이다. 블라인드 작업을 내용보다 형식적으로 크게 분리한다면, 인공조명을 쓴 것과 자연광을 쓴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광을 쓰는 작업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목소리와 바람>(2009)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솔 르윗 뒤집기>는 베니스 카테고리이다. 전시 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리움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도입부를 적극적으로 쓰지 않으면 전시 전체나 작품 구성이 건물 안 두 개의 층에 가두어지는 형태가 된다. 이를 피하고 점진적인 진입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입부의 이용이 중요한 숙제였다. 처음에는 서사성을 띤 전형적인 것을 생각했다. 인물이나 사건을 따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그 서사의 결정체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성채>가 조명을 쓴 작품들 중 가장 전형적인 형식에 속한다. 도입부 공간 작업으로 전형성을 고려했었는데 하다 보니 막혔다. 그것이 내가 어리석었던 것인지, 내 상태에 대해 무지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a href="http://양혜규는 그간 김산, 마그리트 뒤라스, 서경식 등 인물 중심의 서사—거대 서사만이 아닌, 독백도 서사로 치는—를 주제로 삼거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사성을 설치 혹은 영상 작업의 주요 구조로 취했다. 대표적으로, 강렬한 붉은색으로 코팅된 블라인드를 산맥처럼 기울여 붙여 설치하고 조명을 병치한 (2008)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김산과 그의 일대기인 『아리랑』(님 웨일스, 1941)의 서사를 나타낸다.”>2

서사의 가치 혹은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어떤 것을 결정화해서 추상적으로 코드화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정리는 너무 딱딱한 것 같다. 여기서부터가 나의 작가로서의 몫인데, 그렇게 서사의 추상화를 블라인드로 풀어내는 방식이 양혜규의 전형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내 안에서 갑자기 소진된 것이다. 그러다가 돌파구처럼 찾은 것이 솔 르윗이다. 미술사 참조에 대한 의심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솔 르윗을 생각해내고는 스스로 통쾌했다. 당시 이들의 역사적 미니멀리즘이 지금 내가 봉착한 서사 구성의 강박을 해소해 주었다.

서사는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정치적 미술에 특히 많은 서사가 들어간다. 이와 반대편에 개념미술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완전히 형이상학적인 추상미술을 빼고는 어느 정도의 서사와 그 구성을 필요악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니멀리즘이 제공하는 서사로부터의 해방/자유는 급진적인 것이었고, 나는 이러한 해방의 방법론을 빌리는 데 이르렀다.

김진주 맞다. 굉장히 선언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솔 르윗을 인용하여 뒤집는 데 있어 개념적 선언보다는 조각적 관점에서 충실하게 뒤집었다는 생각이 든다.

양혜규 내가 생각한 미니멀의 원칙은 한마디로 ‘무작위’이다. 1에서 10, 정사각형 형태의 선택 등이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것을 회의하고 의심하면 끊임없이 양파껍질 까듯이 깔 수가 있다. 무작위는 그런 해석의 유사 반복을 중지시키는 장치이다. 이전의 작업은 그것이 상징주의이든 교훈주의이든 깔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까도록 노출되어 있었던 형태였다. 미니멀리즘의 무작위적인 형식이 그런 메타 레벨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중단시켰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나 사고 면에서 나에게는 혁명적 선택이다. 이런 해방이 필요해서 빌려온 것은 차용보다는 오히려 계승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 작업이 ‘구성’적 관점에서 추구한 것은 관람자가 블라인드 공간 속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열고 닫히는 반투명하고 애매모호oblique한 블라인드의 성질이었다. 이에 반해 <솔 르윗 뒤집기>는 밀도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중간 정도의 수많은 단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던 눈금을 ‘화이트아웃’ 해 버리는 거다. 그래서 색도 흰색을 수용했다. 검게 칠하는 ‘블랙아웃’이 아닌 하얗게 지워지는 아연한 ‘화이트아웃’.

가르침 혹은 교훈에 대한 저항 또는 습관적 의존을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원칙이었는데, 그 습관에 대한 거부를 여기서 증폭시킨 것이다. 블라인드의 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블라인드의 반투명성은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쓸모 없게 된다. 처음부터 반투명일 이유가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성채>에 쓰인 블라인드가 192개 정도 된다. 이에 비해 <솔 르윗 뒤집기>는 총면적이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약 500개 이상의 블라인드로 구성된다. 그러나 둘을 가시적으로 비교하면 여전히 <솔 르윗 뒤집기>가 (무게감 없이) 더 가볍게 보일 수 있다. 2015년 말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는 블라인드 1,000개 이상이 들어가는 신작을 전시하려 준비하고 있다. 지금 내가 작업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그전까지 했던 방식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느껴지나? 그러니까 내 작업이 한 단계를 넘어왔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김진주 ‘접히지 않음unfold’이라는 말도 지금까지 작업을 설명할 때 잘 쓰곤 했다. 이런 면에서 작업적 전환점이 밀도가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양혜규 솔 르윗을 참조하는 것에 스스로 반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몫보다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서구 미술사적인 높은 가치가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한 이후 깊이감의 심화라는 점은 온전히 내 몫이 아닐까? 자신감과 모호함이 섞인 상태에서 일단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좀 더 극단까지 밀어붙여 봐야 할 것 같아서 브리즈번에서 전시할 신작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 공간 도입부는 내용을 다 아우르는 ‘마음씨 좋은 큰언니 같은 작업’, 전시 전체를 부드럽게 내화하는 작업을 선택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솔 르윗 뒤집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로써 관객뿐 아니라 작가한테도 딸꾹질을 일으킬 만큼 생소하고 예외적인 작업을 이 전시를 통해 내세웠다는 점에 나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애초부터 고전적인 전시 형태를 따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 예외적 작업을 입구에 배치하여 구작과 신작의 반위계적 상생에 대한 발언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스스로에게마저 생소한 작업을 가장 앞에 놓음으로써 전시 자체를 뒤집어 보는 것이다.

짚풀, 엮기와 짜기

김진주 신작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는 ‘민속’이다. 구작의 ‘살림’과 묘하게 연결되면서도 다르다. 민속은 비평가나 미술사가들의 관점에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하는 근대 이전의 어떤 것 (가령 생명력)으로 언급되곤 했다. 작가가 인류사에 안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양혜규 민속에 대한 관심의 출발 동기는 ‘엮기와 짜기’라는 기술이었다. 비능률적인 직조를 말하는 거다. 이 기술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오래되었고, 마침 한국에 있는 동안 짚풀공예를 시도해 봐야겠다 싶었다. 배우다 보니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점차 더 격한 직조를 하다 보니 면적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짚풀 엮기는 건축물을 덮기만 하지 그 자체로는 설 수 없기에 반反건축적이다. 엮고 짜는 것 대부분이 그렇다.

나조차도 민속작가로 거듭나겠다는 농담을 하고 다닐 정도로 이 재료에 대한 연상작용은 강박적이었다.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 당시 내가 받았던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의 개념이 짚풀에 투영되는 것은 현실 정치의 일부로서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탈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반半외국인에 가까운 나라는 작가는 기존의 연상 작용보다는 재료의 개념적 확장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짚풀공예를 보편성의 발현으로 본다. 서구는 깨끗해 보이고 광택이 나는 밀짚 보릿단을 확실히 많이 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지저분하고 거칠게 보이는 볏짚을 많이 쓴다. 이런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어느 농경사회나 ‘짚풀 엮기 짜기’가 다 있다. 샤르자 같은 아랍이나 그외 멕시코, 남아시아 지역은 야자수잎으로 엮고 짠다. (양혜규는 샤르자예술재단이 올해 개최한 열두 번째 샤르자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모든 자연 혹은 농경 채취물을 가공해서 엮고 짜는 건 공통된 공예였다. 나는 한 민족의 전통에 귀속된 민속공예보다는 공예적인 방식의 인류적 현재성에 초점을 둔다.

민속이라는 개념이 동반하는 정체성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그러나 민속의 정체성이 과연 그렇게 단일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열어젖히고 싶었다. 심지어는 하이브리드하게 가고 싶었다. 나는 디아스포라보다 하이브리드를 더 가깝게 느끼는데, 다들 하이브리드를 너무 물리적인 첨단 기술로만 여긴다. 짚풀을 엮고 짜는 작업을 혼성적heterogenious이면서도 보편적인 상태로 전개하고 싶다.

처음엔 인조 짚풀의 존재를 몰라서 자연 짚풀로 작업했는데 먼지도 심하고 작업과정이 감당이 안 됐다. 우연히 알게 된 인조 짚풀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인조 짚풀을 영어로 ‘아티피셜’(인조)이라고 할지, ‘맨-메이드’(인공)라고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이든 이 재료가 담보하는 바가 민속에 관한 내 생각을 표현하는데, 단일한 민속이란 개념에 제동을 거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과거를 복원하거나 보존하는 측면으로만 전통을 국한하지 않는 것, ‘지금’ 그리고 ‘여기’로 작업을 불러들이는 ‘현재화’에 도움을 주었다.

김진주 수공예적인 것을 수행하는 데 ‘배움’이라는 과정이 수반된다. 사람을 보고 배울 수도 있고 책을 보고 배울 수도 있다.

양혜규 사실 모든 단순 수공예는 사람이 옆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 ‘이리 줘봐, 내가 하는 거 봐봐’ 하면서 가르쳐주는 방식이 간단한 규칙을 빠르게 배우는 데 가장 좋다. 나머지는 오랜 기간 동안의 숙련이다. 숙련도 누군가가 앞에서 같이 봐주면 제일 좋다. 또 선생님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마크라메’라는 서양 매듭을 가르쳐줬던 선생님은 글래스고 큐레이터 베프의 엄마였다. (양혜규는 2013년 글래스고 조각 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취미로 마크라메를 하는 이 친구 엄마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극작가이기도 했다. 이 선생님이랑 나랑 둘이 앉아 작업하면서 수다를 많이 떨었다. 마침 당시가 독립선거 직전이라 나로서는 스코틀랜드의 정치에 질문이 많았다. 연극, 희곡 전통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같이 밥 먹으러 가면 그 아줌마의 연극계 친구들을 마주치곤 했다. 이런 부수적인 경험도 사람으로부터 배울 때만 온다. 그렇지 않다면 요령 습득만 했을 것이다. 우리 짚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적인 수다, 구전, 대화와 같은 것들이 (수공예적인 것을 배울 때) 따라오는 감성인 것 같다.

디아스포라의 보편성

김진주 그러한 감성적 차원에서 본인을 계속 디아스포라로 규정하는가? 전작과 비교해 수공예적인 것이 늘었고, 그로 인해 관계와 애착 또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양혜규 디아스포라는 지역적으로는 이미 다양하지만, 또 다른 분화를 거듭해 왔다. 고대의 노마드는 자연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반면, 근대 문명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디아스포라는 망명, 추방, 전쟁 등의 반강제적 이주에 의한 것이다. 자발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직업적인 이주도 많다. 시장경제가 전 지구화되면서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강제에 가까운 노동 이주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양상들이 많이 분화됐고, 유형들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디아스포라의 숫자는 양적, 질적 모두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이슈는 여전히 소수적이다. 동시에 자발적인 디아스포라도 생긴다. 물리적으로 자국 고향을 등지지 않고도 디아스포라로서의 의식을 내화, 체화하는 존재이다. 인터넷 등 접근이 용이해진 다양한 정보를 통해 예전에는 직접 겪거나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체화해 볼 수 있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이 하이브리드한 디아스포라가 되는 것 아닌가? 소수자로서의 개인들이 다양한 촉수나 양식을 발휘하여 디아스포라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체화한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김진주 그런 점에서 디아스포라 작가에게 보편성과 세계성은 무엇인가?

양혜규 서경식 선생을 만나면서 든 생각인데, 그 사람을 한없이 축소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의 디아스포라성은 예술가에 가깝다. 일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이상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얘기를 한다. 디아스포라는 끊임없이 다른 것을 보려고 한다. 만약 자기가 처한 것에만 천착한다면 그 사람은 디아스포라가 아니다. 또 다른 디아스포라를 보려 하고 연대하려 해야 디아스포라이다. 서경식이라는 사람은 그 충동이 강하다. 막말로, 재일교포 디아스포라이다 보니 연해주 디아스포라도 봐야 하고, 유대인 디아스포라도 봐야 하고…. 이분 자체가 (재일 디아스포라로서의) 대표성을 띠지만, 거기에 천착하지 않고 다른 디아스포라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분석한다. 그리하여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분화, 팽창시키며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데, 이것이 이상향을 향하곤 한다. 귀를 기울일수록 이 사람이 하려는 것은 디아스포라들이 국가주의를 극복하여 또 다른 세계로 인도되는 것이다. 무슨 종교도 아니고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서경식 선생은 예술가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사실 (이런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 지금 디아스포라가 처한 상황도 구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말이 안 되는 셈이다.

김진주 그러나 예술가로서 그 이상적 세계관의 결말에 동의하는 것 아닌가?

양혜규 그렇다. 당연히 동의하고, 그 동감을 나누기 위해 나도 그런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나서는 것 같다.

‘양혜규식’ 즐기기

김진주 다시 작업에 관해 묻겠다. 리움의 그라운드 갤러리에 설치한 짚풀 제단들 <중간 유형>이 상승해 위층 블랙박스의 <성채>로 이어진다.

<중간 유형>(2015, 왼쪽)과 <창고 피스>(2004, 오른쪽),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 전경, 삼성미술관 Leeum, 서울, 한국, 2015 / 사진: 김현수

양혜규 그라운드 갤러리와 블랙박스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도 많다. 그라운드 갤러리는 극심한 중첩의 공간이고, 인공조명도 자연광처럼 사용해 자연적 느낌이 강한데, 여기에 짚풀까지 더해져 한층 더 유기적으로 느껴진다. 반면 위층 블랙박스 공간의 경우, 어두운 데다 바닥도 천장도 금속이며 <성채>에 쓰인 블라인드도 은색 알루미늄이다. 그 반대편에는 놋쇠로 도금한 방울을 사용한 조각이 있어 전체적으로 금속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인공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귀신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는 구석도 있다.

현 상태를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도 크게 작용한다. 한 곳을 향한 조명, 바람개비 벽체 등의 전시 설정 장치들은 잠재적 영향을 준다. 나는 전시란 것이 상당한 노력을 들여도 인생에는 겨우 잠재적인 효과를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이런 (잠재적인 것들의) 중첩만 내세운 전시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부수적인 장치로 남겨둔다. 내 전시가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주된 것과 부수적인 것 모두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것이 내 나름의 리얼리즘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손실 없는’이라고 표현한다. 나에게 전시는 좀 산만해질지언정, 전면화시키기 모호하다고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포함시키는, 껴안는, 포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산만하다 할 수도, 또 어떤 사람은 어렵다고 할 수도 있다. 예전부터 그런 평가를 많이 받아왔고 어떤 땐 화도 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렇구나’ 알게 된 것도 있다. 또 알게 된 다음에는 인정했다.

김진주 그런 면에서 그라운드 갤러리는 굉장히 ‘양혜규’다운 전형적인 전시 같다.

양혜규 맞다. 오히려 위층 블랙박스의 배치가 비전형적이다. 반면 그라운드 갤러리의 느슨한 편성, 즉 지금처럼 경계가 느슨하면서도 각자의 영역이 존재하는, 딱 이 정도가 내가 항상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인 것 같다. 도록에 등장하는 두 문장이 마음에 드는데, 하나는 “코끼리는 없다”이고 (웃음), 다른 하나는 “양혜규 작품은 원래 그렇다”이다. 내가 대중에게 원하는 이해는 이런 정도이다. 이해보다는 인정. 어찌 보면 굉장히 많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승복하라는 것이다. 양혜규를 기존의 기준에 맞춰 보지 말고, ‘양혜규식’을 즐겨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뻔뻔하게 ‘나 원래 좀 이렇게 산만하게 해’라고 말한다.

한편 ‘방을 구획하고 공간을 제압하기보다는, 전체 공간을 있는 그대로 잘 이용하는 작가’라는 평가도 종종 듣는다. 있는 그대로를 ‘살린다’는 의미가 마치 ‘힘 뺐다’와도 같은데, 벽을 세우는 대신 작품을 공간에 세우는 자체만으로 공간을 드러내 주니 힘을 뺐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 – 신용양호자 #240> 작업도 양쪽에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을 살려준다.

행운의 코끼리를 핍박받는 코끼리로 바꾸기

김진주 코끼리 ‘상象’ 을 사방으로 펼친 전시 홍보 포스터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왔나?

양혜규 처음에 제목을 정할 때부터 아예 정진열 디자이너와 논의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생각을 맞춰갔다. 정진열 디자이너가 내용적인 모험심도 다분해서 대화가 가능했다. 참조했던 문학이나 한자로 ‘象’을 꼭 넣어야 한다는 강조는 내가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제목을 설명하며 언급한 두 문학적 참조는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와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이다.) 거울처럼 반사한 디자인은 정진열 씨의 작품이다. 한자로만 구현할 수 있는 상형문자라는 점, 즉 고대 중국에서 코끼리를 모르는 사람이 코끼리를 그린, 그 상상에 바탕을 둔 상형문자는 이미지와 상상력의 관계를 실증하는 비유이다.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아이덴티티, 2015 / 디자인: 정진열

김진주 그런 생각이 양혜규가 조각가로서 던지는 추상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지 않나?

양혜규 그래서 ‘象’을 두고 증거를 잡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확증을 잡았다! 어떻게 보면 작가들이야말로 시각적 지각을 현장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인데, 이런 작가들에게 이미지라는 말은 거의 핵심적인 주제다. (웃음) 획의 수도 많고, 아름답다. 전형적인 상형문자에게 기대하는 것을 다 갖춘 글자이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고대인이 만들었음에도 이 글자는 ‘코끼리의 형상’을 전한다. 연상, 신화, 구전 등 우리가 상상이라고 부르는 많은 의식이 이미지에 녹아나는 가능성을 이 글자가 보여준다. 코끼리 ‘象’ 옆에 사람 ‘人’을 붙이면 심지어 이미지 ‘像’이 된다.

김진주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에서처럼 총에 맞아 죽는 ‘핍박받는 코끼리’가 있는 반면, 관광상품으로서의 ‘행운의 코끼리’도 있다. 작가나 관객이나 현실 세계에서는 ‘행운의 코끼리’ 이미지를 더 잘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혜규 코끼리도 동물원에 있는 것과 상품화된 것이 있다. 내가 사용한 방울이라는 소재에도 징글벨, 축제, 나아가 휴일의 상업화의 경향, 무속이나 성스러운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과 차원이 존재한다.

김진주 그렇다면, 이 코끼리를 어떻게 ‘핍박받는 코끼리’로 바꿀 수 있을까? 이 전시의 수사 어구는 ‘회복하자!’ 아니었나?

양혜규 솔직히 ‘회복하자!’라고 하면 캠페인에 가깝다. 즉, 작가적 사고와는 거리를 둔 미술관의 대중적인 수사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 내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고 보편적이라서 보통은 꺼내기조차 무안한, 엄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간 문명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내가 감히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다만 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이 다를 뿐이다. 교훈적으로 풀어서는 우린 이 상황을 이길 수 없다. 현대미술이 할 일도 아니고. 소재와 주제에 대한 요점정리식의 어투는 현대미술만이 담보한 경험적 생명력과 설득력을 죽인다. 현대미술 스스로 죽이는 수사학이 지금 미술관에 너무 산재하고 있다. 맞서 싸울 대상 중 하나이다. 그 수사학 때문에 코끼리가 죽는다. (웃음)

비범성과 반서사성, 그리고 뒤집기

분량12,016자 / 25분 / 도판 3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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