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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의 상태

옥인 콜렉티브

고려시대의 날씨 기록은 서술형이다. 맑음, 흐림, 비, 눈과 같은 명사형이 아니라, 큰 바람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나무가 꺾였다’, ‘나무가 뽑혔다’, ‘지붕 기와가 날아간’ 상황을 살핀다. 아마도 가장 큰 바람은 ‘나무가 꺾이고 집이 허물어질’ 정도의 강도인 듯하다. 그리고 이런 대풍의 횟수는 2회였다고 표시된다. 우연히 발견한 이 통계표는 2009년에 인왕산을 바라보며 절반쯤 허물어진 옥인 아파트에 모인 옥인 콜렉티브가 살피려고 노력해온 ‘상태’와 겹친다. 지나간 혹은 다가올 큰 바람의 상태는 어떠한가? 강도와 횟수는? 지낼만한 것인가? 버틸만한 것인가?

옥인 콜렉티브, 〈Rocky Waves(석파, 石波)-1〉의 부분, 텍스트 드로잉, 종이에 연필, 29.4x42cm, 2013
옥인 콜렉티브, 〈Rocky Waves〉의 구상을 위한 리서치 이미지

풍향계와 주파수. 지붕 위의 풍향계는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주머니를 부풀린다. 사실 이 풍향계는 풍향계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풍향계 모양의 안테나를 가진 라디오는 전시장 반경 2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만 들을 수 있다. 풍향계의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붉은 빛과 슬쩍 제시된 안내문의 수치인 ‘92.6’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그는 무한 반복되는 천 년 전의 일기예보와 만나게 된다.

“온몸이 바람 때문에 멍이 들어 뻐근하다.”
“70미터 굴뚝에 올라 사랑하는 벙어리 장갑 한 짝을 바람에 잃어버릴 때도 이렇게 서럽지는 않았다.”
“천막이 바람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쪽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굴뚝 위의 사람은 바람에 대해 쓴다. 기댈 데 없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를 우리는 차마 예측할 수 없다. 뽑히지 않고 날리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도록 풍향계가 된 사람들의 상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옥인 콜렉티브, 〈Rocky Waves(석파, 石波)-2〉, 자체 제작한 풍향계에 라디오 송신기 설치, FM 92.6, 가변크기, 2013 / 사진: 김상태
주파수를 점검 중인 옥인 콜렉티브, 2013

옥인 콜렉티브

이정민, 김화용, 진시우로 구성된 옥인 콜렉티브는 첫 프로젝트의 장소이자 강제철거로 사라진 종로구 옥인아파트의 지명을 딴 작가그룹이다. 이후로 주변에서 쉽사리 발견되는 무수한 ‘옥인’을 기억하며, 척박한 도시공간 속의 연구와 놀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향유자의 위치와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www.okin.cc

여기에 소개된 옥인 콜렉티브의 설치작업 <Rocky Waves(석파, 石波)>는 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오후 6시에 열린 통인동 시청각의 개관전시 no mountain high enough (기획. 현시원)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큰 바람의 상태

분량1,097자 / 5분 / 도판 4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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