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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시의 감각과 사유

배형민

건축 전시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하면서 건축 문화 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반도 오감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Our of the Ordinary» 전을 기획한 배형민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 전시에서 주제보다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들로 큐레이팅 조직, 방법론, 그리고 태도를 다음의 명제와 함께 공론화하고자 한다. “전시의 시대는 방황의 시대이며, 탐색의 시대다.”

건축 문화 시장의 기회 혹은 한계

한국 건축이 전시의 시대에 돌입했다. 2014년 하반기에만 적어도 15개의 크고 작은 건축 전시가 열렸다. 새로운 현상처럼 보이지만 국내외 미술계의 맥락에서 본다면 전시의 시대는 이미 20년 전에 시작했다. 그동안 세계적인 대형 미술관의 관람객이 급증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비엔날레를 창설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미술계의 현상이지만 건축 역시 이런 전시의 붐을 함께 탔다. 이탈리아 막시(MAXXI,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생, 프랑스 국립건축박물관의 재정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건축 부문 신설, 그리고 미국 현대건축의 탄생지 시카고에서 올해 건축 비엔날레가 출범한 것은 건축 전시의 성장을 알리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 정부들이 앞다투어 비엔날레를 창설했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에서도 건축이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시행착오와 기복도 물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디자인 박람회로 바뀐다지만, 곧 서울건축비엔날레가 탄생한다고 한다. 건축 설계 시장은 축소되고 있지만, 건축 문화 시장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 문화 시장은 아직까지 그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맥락에서 한국 건축에 대한 인식과 담론의 향방, 건축 아카이브와 컬렉션의 지속성이 담보된 중요한 시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장의 성장 기조는 하나의 역사적인 모멘트이고 그래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언제 닫힐지 모르는 이런 기회의 시공간에서, 전 지구적인 문화 논리가 바뀌는 상황 속에서, 건축 전시를 어떻게, 왜 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에 건축 큐레이터가 없는 이유

건축 전시를 거론하는 데 있어 그 콘텐츠에 대해 왈가왈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주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 방법론과 태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우선 건축 전시에서 큐레이터의 위상에 대해 물어보자. 한국 현대 건축의 형성기에는 물론, 최근까지의 여러 건축 전시에서 큐레이터가 기획의 중심에 있었던 전시가 얼마나 있었는가. 모든 전시는 누군가가 그 진행을 맡는다. 하지만 작가(건축가)와 독립된 위치에서 전시의 목적, 방법, 전략, 설치 등을 총괄하는 큐레이터가 있었던 전시는 거의 없었다.

큐레이터의 부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국 현대 건축의 짧은 역사보다 더 짧은 것이 한국 건축 전시의 역사이니 건축 큐레이터가 낯선 존재인 것은 당연하다. 큐레이터가 없었던 이유는 전시가 미술관 또는 박물관의 조직 속에서 먼저 이루어지기보다는, 작품을 출연하는 건축가들이 자생적으로 전시를 올렸기 때문이다. 작가가 힘들게 만든 전시 프로젝트에서 설사 큐레이터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그는 작가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입지를 가질 수가 없다. 작가가 큐레이터와의 긴장 관계 없이 스스로 만든 전시는 자기 홍보가 되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건축 단체들이 주관하여 회원들의 작업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 그 극단적인 예이자 모습이라 하겠다. 미술관 또는 박물관은 대개 보수적인 조직 체질을 갖고 있지만, 건축가와는 다른 어젠다를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보적인 긴장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양성과 혼종성

건축 큐레이팅의 부재와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건축 박물관과 같은 조직의 당위성을 말하고자 함이다. 현재 우리의 조직 속에 건축 큐레이터가 정규 직책으로 자리 잡은 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뿐이다. 조직은 큐레이터를 통제하기도 하지만 독립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보장해주고 키워주는 건축 박물관의 설립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건축계의 숙원 사업이다. 독립된 큐레이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건축 전시기획의 생명이 ‘다양성’과 ‘혼종성’에 있다는 필자의 확신 때문이다. 다양성과 혼종성은 현실 제도와 조직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건축 전시의 방법론과 철학의 기반을 다져주는 덕목이라 생각한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반도 오감도》가 황금사자상을 받던 시상식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전했다.

“우선 총감독 렘 콜하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른 이유보다도 <근대성의 흡수>라는 공통의 주제를 각 국가관에 요구함으로써 우리가 남북한 건축을 다루어야 하는 명분과 당위가 생겼다. 건축 역사와 비평을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지금 남북한 건축에 대한 학술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간의 교류가 없고, 북한 건축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는 가능하다. 불완전한 지식을 가진 상황에서도 전시의 열린 공간이 남북한 건축을 한 자리에 모아 비교, 병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시 공간의 힘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전시에 들어올 남북한의 작품과 작가들이 산만하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필자는 전시 책자의 구상과 편집을 시작했다. 책의 논리, 말의 논리를 따라 전시의 콘텐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관의 소주제들이 도출되었다. 그런데 책의 논리로 만들어진 개념들이 다시 전시를 바꾸어 놓았다. 전시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 작품들의 배열과 위치 등이 이런 개념들에 의해 바뀌게 되었다. 렘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가 말과 사물, 개념과 공간의 순환 고리를 작동시켜 남북한 건축에 대한 최초의 전시회, 남북한 건축을 동시에 다루는 책을 만들게 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시와 책을 만들게 했고, 한반도의 건축을 포함하여 근대성과 건축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비엔날레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한반도 오감도》가 받은 관심과 평가와는 별도로 큐레이터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생산적인 교감이었다. 말을 다루는 학자,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 이미지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퍼포먼스를 다루는 안무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을 주도하지만, 상대의 작업을 이해하고 서로 비판하면서 구체적인 제안도 하는 과정이 건축 전시 기획의 묘미이다. 건축 전시의 기획 과정은 다양한 주체들이 생산하는 여러 감각과 인식 체계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건축 전시 특유의 감각과 개념 배치

말과 사물, 이미지와 소리가 어우러지는 과정을 설치의 단계 마다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건축 전시의 기획자로서 누리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최근에 즐겁게 보았던 것이 플라토에서 열린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중 ‘애프터After’ 방이 설치 과정에서 변하는 모습이었다. 전시장의 벽은 검은색 페인트만 칠해진 블랙박스에서 시작해, 이후 벽화 스케일의 사진 5장만이 설치되어 깨끗한 모더니즘의 시각성이 돋보이는 상태, 그다음 큰 사진 위와 옆에 작은 이미지, 모니터, 그래픽 정보가 가득 더해진 상태, 마지막으로 동영상과 연동된 소리로 완성된 상태를 거쳤다. 시각과 함께 어우러진 청각이 총체적인 전시의 인식과 경험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 이런 감각과 개념의 분포는 건축 전시 특유의 속성이라 생각한다. 미술 전시는 작품과 퍼포먼스가 완결된 단위로 이루어지는 성향 때문에 설치의 기획과 발상에서 감각과 사유의 역학이 건축 전시만큼 역동적이지 않다. 건축 전시는 주제의 설정과 작가의 선정만큼이나 전시의 조직과 과정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 하나의 큰 개념, 아니면 어떤 건축적인 감각이 전시 전체의 기획 과정과 결과를 지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대체로 학자가 주도하는 기획 방식이고 후자는 대체로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전시에서 나타난다. 개념에서 출발하여 개념에 충실한 전시를 만들려고 애쓸 때 감흥이 없는 전시가 만들어지기 일쑤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지만 감각적인 호소력이 없으면 애당초의 개념도 설득력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건축적인 감각에서 출발하면 왜 그 전시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워진다. 전시의 명분을 감각의 효과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실제 건물에서 그 경험을 찾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미완이기에 필요한 방황과 탐색

건축 전시의 감각과 사유의 배열은 큐레이터 개인의 기획 방법론이나 취향 이상의 문제라 생각한다. 오감과 사유가 열려있는 조건에서 건축 작업을 하고, 글을 쓰고, 전시를 올려야 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 상황이다. 전시의 시대는 방황의 시대며 탐색의 시대다. 건축과 예술이 서구 중심적으로 고착되어 있던 시대가 저문 상황에서 우리의 현실, 새로운 세계와 맞닿아 있는 말과 사물, 감성과 생각을 찾아가는 중이다. 공간, 텍토닉스, 퍼포먼스, 어바니즘, 건축에 대한 굵직한 주제들을 통째로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주로 서구의 건축 담론에서 발전시켜 온 이런 생각과 가치들을 열린 사유와 감각으로 포섭하고 비판하고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잊어버린 것들을 상기하고 덮어있던 것들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

좋은 건축과 좋은 글이 이런 일을 하듯이 좋은 전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감각과 사유의 혼종은 건축 전시가 갖는 특유의 힘과 잠재력이다. 북한의 건축은 물론이고 남한의 건축에 대한 지식과 이해마저 체계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전시를 올려야 했던 《한반도 오감도》, 고착된 건축의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건축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감각의 세계를 열어가려는 건축가 조민석의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불투명한 한국의 현실에서 생존과 창작의 논리가 공존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영국의 관객과 공유해야 하는 《Out of the Ordinary》, 필자가 참여하고 주도했던 지난 한 해의 전시들은 어떤 메시지를 설파하거나 선언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민을 보다 보편적인 감각과 사유의 틀 속에 담은 전시를 만들어 관객과 함께 고민하는 탐색의 도구를 만들고자 했다.


배형민

MIT에서 건축 역사, 이론, 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RISD, 워싱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하버드, AA 스쿨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MIT Press, 2002), 『감각의 단면-승효상의 건축』(동녘, 2007), 『한국건축개념사전』(동녘, 2013) 등이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를 두 차례 역임하였고(2008, 2014), Common Pavilions 프로젝트의 작가로 참여했으며(2012),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베를린 아에데스 갤러리, 런던 캐스 갤러리, 삼성미술관 플라토 등의 초대 큐레이터,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현재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협력감독, 목천건축아카이브 위원장, 서울시 미래서울 자문단으로 활동 중이다.

건축 전시의 감각과 사유

분량5,451자 / 10분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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