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감각을 깨우는 ‘제안들’
김뉘연 × 이경희
분량7,800자 / 1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유형인터뷰
한창 주목 받는 신인작가도, 수년 만에 신작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 다른 시대·토양·문화를 가진 이방인의 주목받지 못한 글을 몇 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기는 문학총서 편집자가 있다. 하나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는 도서관과 헌책방을 다니며 저자의 삶을 공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후 역자, 디자이너, 마케터, 독자의 사이를 가늠하며 텍스트에 담긴 생각과 시간의 한계를 넓혔다 좁히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워크룸 프레스의 문학편집자 김뉘연을 만나 그녀가 지금 우리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문학 속 잠재된 실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뉘연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잡지사와 출판사에 다녔다. 현재 워크룸 프레스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어 이경희 본지 편집자
이경희 총서라는 것은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전집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해외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뉘연 총서는 꾸준히 출간되어 왔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시리즈가 주목받아 왔고요. 다만 국내에 세계문학전집 출간 붐이 일자 그 명칭에 거부감이 생기는 한편, 총서라는 단어에 막연한 로망이 다시금 생기면서, 총서라는 단어를 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양한 작품, 다양한 판본의 출간은 환영할 일입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숨은 작품이 많이 발굴됐고, 여러 판본의 번역서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다만 ‘제안들’을 출간한 워크룸 프레스의 경우 기존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세계문학’과 ‘전집’이라는 단어는 피하고자 했어요.
이경희 새로운 총서나 전집은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겐 물욕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출판계가 어려우니까 변별력을 찾기 힘든 기획이 많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편견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김뉘연 ‘제안들’의 경우 ‘엄선’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기의 50여 권의 목록을 최종 37권 정도로 추렸어요. 아무리 선집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책을 기획하면 여느 전집과 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 생길 듯해서요.
한번은 북카페에서 우연히 한 책을 발견했는데, 훌륭한 타이틀임에도 세계문학전집이라는 틀에 갇혀 오히려 묻혀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단독으로는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전집이란 이름 아래 다행히 출간은 되었지만, 아쉽게도 무덤에 갇힌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너무 종수를 늘리는 것은 좋지 않겠다 싶었어요. 엄선된 책들이 제 몫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이경희 현재 모두 10권의 목록을 발표했습니다.1 해외 문학만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요.
김뉘연 한국 문학을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니에요. 변형된 한국 문학, 즉 번역서와 한국 문학의 접점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에요. 두 가지 기획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공개하자면, 작가나 사상가의 짧은 텍스트를 번역하고, 거기에서 출발한 번역가의 저술을 실은 책이에요. 앞의 글을 발전시키는 글이 나올 수도 있고, 또는 앞선 글이 일종의 맥거핀이 될 수도 있는데… 저도 그 결과물이 궁금합니다.
이경희 ‘제안들’에 대한 소개나 인터뷰에서 ‘실험’이란 단어를 쓰시지만, 저는 ‘시도’의 인상을 더 받습니다. 실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지만, 시도는 좀 더 명확한 결과물을 기대하는 의지가 담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김뉘연 고전 위주의 번역 문학을 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체’를 전시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이 다양한 경로로 발전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이경희 다른 인터뷰에서도 총서 제작 계기에 대해서는 많이 말씀하셨으니, 저는 현재까지 나온 7권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여쭤보겠습니다. 처음의 예상과 다른 게 있었다면 어떤 건가요.
김뉘연 예상보다 반응이 좋고, 판매량도 나쁘지 않아요. 2~4권은 소량이나마 2쇄를 찍었고, 1권은 워크룸 프레스 최초로 3쇄를 찍었어요. 단기간 내에 기본 부수가 판매되어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여요. 물론 판매는 많은 부분 디자인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변화라면, 작년 초 워크룸 프레스 이름으로 번역가를 섭외할 때, 이곳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좋은 번역가와 함께 일하기 위해 자세한 소개 자료 -출간 방향 및 출간 목록, 출판사 홈페이지, 공동 대표 3인의 인터뷰 링크 등- 를 보내야 했어요. 그런데 ‘제안들’이 출간된 이후에는 섭외가 훨씬 쉬워졌죠.
여기까진 대외적인 변화이고요. 예상치 못했던, 아니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과 달랐던 건, 실무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출간하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을 고르는 게 급선무지만, 이차적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라도 실무에서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거나 해외 출판사와 번역 저작권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될 경우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됐던 것 같아요. 또한 몇 번째 권은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책은 까다롭겠다 싶던 것들이 다 예상을 벗어나고 있어요. 매번 마감할 때마다 새로운 문제들이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리고 또 놓쳤던 것은, 제가 쪽글, 단상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이는 형식의 글을 선호하나 봐요. 그래서 현재 ‘제안들’의 글들이 대개 파편적인데, 바로 이 점이 편집을 어렵게 만들더라고요. 쪽글마다 형식이 달라지기 마련이어서요.
또 총서라는 말에 얽매여 각 책의 세부 사항들이 모두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예외들이 계속 생기고 있어요. 대부분의 독자는 눈치 채기 어렵겠지만, 타이포그래퍼나 꼼꼼한 편집자는 아실 수 있어요.
제가 원래 완벽주의에 가깝다거나 철두철미한 성격이 못됩니다. 그런데 편집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궁지에 몰게 돼요. 편집 중 놓치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일이 출간 후 반복되는 게 계속 괴롭고, 그래서 갈수록 예민해져요. 편집이라는 일이 잘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경희 50권을 37권으로 추리는 기준은 무엇이었고, 과정 중 탈락된 것들은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김뉘연 물리적인 이유가 꽤 커요. 꼭 포함하고 싶은데 책이 두꺼워 현재 판형으로 펴내려면 최소 세 권 정도로 분권해야 하는데, 37권 중 세 권이 하나의 책으로 들어갈 만큼 중요한 책인가를 다시 고민하다 보면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땐 다른 곳의 출간 목록과 겹쳐서 빼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미련을 못 버린 작가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은 다른 작품을 펴내 볼까 싶기도 하고, 또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주요 작품을 어느 출판사에서 준비한다고 발표한 상황이라면, 그곳에서 주저를 내고 난 후 이어 제가 숨은 작품을 발굴하는 게 맞겠다 싶어요. 이외에도 마땅한 번역가가 떠오르지 않아서 미뤄둔 것도 있고요.
미세하게 조정은 해야 하지만 37권의 리스트는 어느 정도 확정되었습니다. 다만 한 번에 공개하지 않는 까닭은, 계약이 모두 완료된 것이 아니어서요. ‘출간 예정 목록’은 끝까지, 즉 책으로 나와야 비로소 ‘출간 목록’이 될 테니까요. 좋아했던 슬라브문학 총서가 있었는데, 책날개에 나와 있던 목록 중 두 권인가 출간된 이후 소식이 없어 아쉬웠던 적이 있어요. 적지 않은 총서가 비슷한 길을 걸어왔기에 ‘제안들’ 또한 조심스럽습니다.
이경희 총서 목록도 책들의 리듬감을 의도한 거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인터뷰를 보니 리듬감 이외에도 책들 간에 ‘지형도’가 있다고 하셨어요.
김뉘연 작가들과 작품들이 모종의 연결 구도를 이루도록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령, 여러 선상에서 같은 계열을 이루는 작가들… 이를테면 꿈(카프카와 보스코), 에로티슴과 시(바타유와 주네), 여담(드 퀸시와 마세도니오), 감각(페소아와 카프카)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로서는 이 지형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제안들’이 모두 출간되고 나면, 제안들에 관한 책을 한 권 펴낼 예정입니다. ‘제안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번역과 말’(출간 후 진행된 번역 토크), 번역가 인터뷰 등이 수록될 그 책에 나름의 지형도를 완성해 수록하려 해요. 그런데 제가 그리는 지형도와 읽는 이가 그리는 지형도가 각기 다른 결과물로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 모든 ‘제안들’은 저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는 책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기준과 선택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실체 없는, 즉 불분명한 특정 독자보다는 분명히 존재하는 개인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이경희 책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로 디자인을 꼽을 만큼 디자인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의 ‘엄격/완벽’이 독자의 시감각을 매우 예민하게 만드는 경험을 했는데, 일례로 저는 따옴표가 지나치게 관능적이어서 독서 초기엔 내용의 흐름을 자주 놓치기까지 했어요. (웃음) 이 총서의 텍스트와 디자인 둘 간의 완벽한 데코룸 때문에 ‘제안들’ 밖으로 나와 다른 지면에 얹혀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김뉘연 빈틈없이 짜인, 공들인 편집과 디자인의 조화는 물론 멋진 일입니다. ‘제안들’은 그 이상에 도달하려 애쓰는 과정 중에 있고요. 그런데 다른 예로 프랑스 미뉘 출판사Les Éditions de Minuit의 책들을 보면, 힘겹게 만들어내는 대신 무심히 건네는 느낌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무심한 편집과 디자인을 동경합니다.
이경희 각 책 마지막에 있는 번역가 에필로그가 이 총서의 ‘잠재실험’에도 한몫합니다. 번역가를 위해 이런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텐데요.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번역가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그런 만큼 전문 번역가가 활동할 영역도 좀처럼 확장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안들’의 시도가 눈에 띕니다. 예전 어떤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신 적도 있고요.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치환되는 데에는 어떠한 공식이나 법칙이 없다. 다만 그 사이에 번역가가 있다.”
김뉘연 번역을 두고 대개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하는데, 저는 여기서 ‘제2의’라는 말을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의 창조적인 면을 체감합니다.
번역이란 일종의 제약 안에서의 글쓰기입니다. 원문이라는 태생적인, 거대한, 공통된 제약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물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 이 두 가지 지점이 상충하는 번역. 이것이 흥미롭습니다.
이경희 저자들은 다양한 토양과 문화권의 사람이고, 언어도 다양한데, 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김뉘연 일관성입니다. 이 일관성을 획득하려면, 글과 작가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파악해서 글이 어떤 위치에서 쓰인 것인지 다 이해한 다음에 옮겨야 결정적인 오류가 생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번역 실력을 갖춘 분이 작가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저는 소위 일컫는 ‘번역 투’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번역 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쪽입니다.
이경희 저자, 역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관계자와 일을 하실 텐데, 편집자로서의 중심은 어떻게 잡으시나요. ‘제안들’의 목록을 보면 김뉘연 편집자의 디렉션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진행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김뉘연 어쩔 수 없이 주장을 꺾어야 하는 경우가 꽤 자주 생깁니다. 중심을 잡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일 때도 있지만, 순간의 피곤함을 피하기 위해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편집자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매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경희 ‘제안들’ 이후, 혹은 이외에 다른 제안을 준비하고 있나요.
김뉘연 올해 말 마르키 드 사드의 소설 전집 중 1, 2권이 출간됩니다. 바타유의 『불가능』을 번역하신 성귀수 선생님께서 제안해오신 기획입니다. 또 하나는 사뮈엘 베케트 소설/평론 선집이에요. 베케트는 원래 ‘제안들’에 포함했다가 별도 확장해 펴낸 경우로, 내년 봄부터 내후년 말까지 아홉 권을 펴내려 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계획 외에 그려보는 것은 전기와 일기 시리즈입니다. 해당 작가들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떠오르는 작가도 당장 여럿 있는데, 아마 못 낼 거예요. (웃음) 대개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요.
이경희 ‘제안들’ 각 권에 작가 연보가 매우 자세하게 소개되는 것도 (대표적으로 바타유의 『불가능』) 그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군요. 편집자로서의 김뉘연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라는 직업이 잘 맞나요?
김뉘연 아무도 모를 일에 상당히 오래 매달려야 하는 일인데, 갈수록 중독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편집이든 번역이든 저술이든 어느 정도 공통적인 듯합니다.
이경희 음악이나 미술과 비교한다면, 문학은 어떻게 위안 혹은 쾌락을 주나요? 문학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를 설득해야 한다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김뉘연 제 경우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이 각자의 도구를 그 장르의 극단까지 활용한 작품, 그 장르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것을 해낸 작품에 매혹됩니다. 문학의 경우,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세상을 바꾸는 글이 있고, 글쓰기 자체의 미학을 탐구하는 글도 있는데, 저는 후자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후자의 경우 텍스트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가 ‘재미’로 읽을 수 있는 거죠. 재미있는 ‘놀이’로요. ‘제안들’에 속할 타이틀을 고르는 일 순위 기준도 극단적인 쾌감을 주는 글들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는 책들이요.
그런데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제안들’의 진정성 여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이 총서에 바라는 것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문학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갖는 사회적인 역할이 있나 보다 싶긴 한데, 혹시 ‘제안들’의 문학이 진정성에서 비롯된 감동을 일으키길 바라는 거라면, 오히려 그러한 지점을 의도적으로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경희 추후 본인의 글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뉘연 편집은 물론 번역, 저술까지 글에 관한 일들을 폭넓게 해나갈 계획입니다. 내년쯤 제가 쓰고 옮긴 책들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읽기의 감각을 깨우는 ‘제안들’
분량7,800자 / 1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