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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존엄한 삶터

김찬호

얼마 전 서울 지하철에서 일어난 방화의 범인은 노인이었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서 카바레를 운영했는데 10년 전에 건물주의 관리 부실로 인해 정화조 물이 넘쳐 업소에 큰 손실을 입었다. 그에 대해 소송을 걸어 오랫동안 다투어 승소를 했지만,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초 서울 지하철의 추돌 사고를 목격하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저렇게 아수라장을 만들면 모든 미디어가 총출동할 것이고, 그 현장에서 자기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2008년 숭례문 방화의 경우에도 그와 비슷하게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노인이 일을 저질렀다.

방화 이외에도 여러 범죄를 저질러 물의를 빚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전남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60대 남성이 대낮에 여아 4명을 성추행했다. 일본에서도 노인 범죄가 증가 추세이긴 한데, 그쪽은 절도 같은 생활 범죄가 많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폭력과 사기가 훨씬 많다. 지난 10년 동안 강도와 강간이 각각 10배나 늘었고, 방화는 2.7배, 살인은 2배가 늘어난 셈이다. 노인이 1명 늘어날 때 범죄는 3건이 늘고, 초범이 60% 정도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점점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는 ‘노인 문제’인 것이다.

노순택, <아마도 그럴 리 없겠지만>, 경기도, 2011 / Ⓒ 노순택

그런데 형사상의 범죄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추악한 실태가 드러난 ‘관피아’를 보자. 신분이 보장된 직장에서 평생 일하고 정년 이후 고위직을 탐하여 낙하산 인사로 내려가 온갖 비리와 유착을 주도한다.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정년 이후에 그런 식으로 경력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면 무능한 실패자로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것은 생계의 문제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생활에 충분할 만큼의 연금이 나오고, 사망 후에도 배우자에게 70%가 지급된다. 그런데도 그렇게 자리에 연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순전히 자존심의 문제다.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추고 신체가 건강한 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타인들이 누구이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겉으로 드러난 지위나 부를 기준으로 서로를 견주고 서열화하는 관계인가, 아니면 외형과 무관하게 그냥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관계인가. 전자의 경우,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공적인 영역에서 일정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편안하고 소박한 일상 세계에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지금 노인들에게 점점 부족한 것은 그러한 일상 세계다.

도심지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들이 있다. 서울의 탑골공원이 한 때 그러했고, 지금은 종묘 앞 공원이 가장 붐빈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한국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노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옥외 공간이 아닐까 싶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나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성비를 보면 거의 남성들이다. 여성들의 수명이 더 길고 따라서 할머니 인구가 훨씬 많은데, 왜 할아버지들만 거기에 나와 있을까.

지금도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매우 긴 편이다. 가난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또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동안 남성들에게는 오로지 일터에만 있다. 모든 삶이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투입되는 동안 삶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들과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주말에도 놀이를 통해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정서적으로 황폐한 가운데 가족 간의 소통에 심각한 장애를 느끼고, 신체적으로는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중년에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동물들에게 필요한 삶터는 생물학적인 연명과 종족 번식을 위한 것이다. 그 기능만 원만하게 충족되면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이 요구된다. 바로 ‘존엄’이다. 사람으로서 존중을 받고 위엄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적절한 삶터가 되지 못한다. 사람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고 존귀하게 여겨줄 때 비로소 ‘살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에 가족, 그리고 그 이웃과 친밀감을 공유하고, 직장의 동료와 우애를 나눌 수 있을 때 삶이 고귀해진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그러한 토대를 꾸준하게 허물어뜨렸고, 특히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매우 급속하게 삶터가 해체했다.

그 폐해를 집약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노년기다.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관계를 오로지 일터에서만 형성하고 있다가 거기에서 물러났을 때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되어버린다. 삶터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희박하기 때문에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척 곤혹스럽다. 그렇다고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창 일을 할 때는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출근하기 바빴기 때문에 지역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사가 잦아지고 고층 고밀도 주거지가 대세가 되면서 이웃관계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집과 동네가 편안한 삶터가 되지 못하기에 많은 노인들은 멀리 돌아다닌다. 다행히 대도시에서는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이동하며 소일할 수가 있다. 점심 식사 값만 있으면 부담 없이 나들이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발로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동안에만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몸이 쇠약해져서 집 근처에만 겨우 돌아다닐 수 있는 때가 오면 무료 탑승권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할 수 없이 동네에 머물러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웃관계의 부재는 그 자체로 심각한 곤경이 아닐 수 없다. 경로당과 노인복지회관이 있지만, 이용자의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그 안에서의 텃새도 만만치 않아 어느 날 갑자기 그 공간에 진입하기가 무척 어렵다.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동네를 삶터로 재생하는 작업은 절박하게 다가온다. 늙어가는 과정을 순조롭게 밟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바꿔야 한다. 노약자들이 거동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물리적인 시설들을 디자인 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사회적인 환경을 디자인해야 한다. 자신의 생애 경험이 타인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고,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나 기술이 마을의 자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대전의 어느 여고에서는 동아리 학생들이 세 명씩 한 모둠을 이뤄 지역의 한 노인과 연계해 자서전을 써드린다. 또한 대전의 어느 지역에서는 노인들이 육아 공동체에 참여하여 짚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텃밭을 함께 가꾸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세대간 연계를 통해 노인의 삶이 유기적인 생명력을 회복하는 길을 암시한다.

물론 마을에 국한되어서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나는 걷는다』라는 책으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전직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 후에 ‘쇠이유seuil(문턱)’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비행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는 예순 살이 넘어 퇴직했는데, 곧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려 2,300킬로를 걸었는데, 그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면서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경이로운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젊은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는 청소년들에게 걷기를 통한 치유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100일 동안 낯선 외국에서 2,000킬로를 어떤 어른과 함께 걷기만 하면 석방을 시켜주는 프로젝트다. 교도 당국과 법관 그리고 교육 전문가들을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일을 성사시켜서 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에 참여하여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에 나와 있다.)

회춘에 대한 욕망과 젊음에 대한 선망이 만연하는 시대다. 의료 기술, 화장품, 성형수술, 패션 등의 각종 소비 상품에 힘입어 노화를 최대한 뒤로 늦추려고 사람들은 애를 쓴다. 늙음이 싫은 것은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종말은 피할 수 없다. 젊음에 집착하고 에고ego를 강화할수록 그 허무함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인생의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향상시킴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올리비에의 인생 이모작은 그 귀감을 보여준다. 생애의 깊은 연륜으로 타인과 세상을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편안하게 늙어갈 수 있다.

늙기 좋은 사회는 죽기 좋은 사회이기도 하다. 몇 해 전부터 ‘존엄사’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느라 고통을 받는 등 원치 않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상황과 연관이 있다. 존엄사의 핵심은 품위를 잃지 않고 생애를 마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품위란 신체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심리적인 차원에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신체적으로 완전히 무력한 상태가 되어 타인들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무가치한 존재로 외면당하거나 인격적으로 비하되지 않는 것 말이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극도의 외로움과 상실감이 영혼을 파괴하지 않도록 다양한 관계가 그 존재를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적 연결망은 생계 차원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인간적 품위 유지에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토대가 필요한데, 지금과 같이 승자독식의 시장이 확대되는 속에서는 연명 자체가 고통인 이들이 늘어난다. 삶터를 회복한다는 것은,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세계와 의미 있게 접속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자원을 획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공간을 빚어내는 일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원하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현해갈 수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 『모멸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경계에서 말한다』, 『학교와 계급재생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이 있다.

노인의 존엄한 삶터

분량5,264자 / 1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유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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