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의 자투리 공간
000간 × 구선정
분량6,442자 / 1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유형인터뷰
‘드르륵드르륵’ 서로 비슷한 소리가 얽히고 설키며 창신동 골목을 메우고 있다. 1,2평 남짓한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속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퍼지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가 보니 환한 조명이 그대로 반사되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땡땡땡간’ 혹은 ‘영영영간’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래에는 옷, 머그잔 그리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의 그림들이 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000간[공공공간] 홍성재와 신윤예는 000간의 공동대표로 예술가이자 사회적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창신동의 소규모 봉제공장과 수평적인 협력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의류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소외산업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인터뷰어 구선정 본지 편집인
구선정 사이트를 살펴보니 물건을 판매하거나 가드닝, 재래시장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000간 저희는 지역재생을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디자인 등을 지역주민과 함께 어떻게 생성해 나갈지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활동들뿐 아니라 제품 기획이나 판매도 종로구 창신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요. 재래시장인 ‘강화도 풍물시장’ 같은 경우는 저희가 지역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이런 지역 예술팀과 같이 하면 좋겠다’는 요청으로 진행했던 단기 프로젝트였습니다. 반면, 창신동에서 진행하는 것은 저희가 10년을 바라보는 장기 프로젝트이고요. 사실 저희가 하는 일이 많아 보일 수 있는데 되려 단순해요. 저희 고민은 어떻게 예술과 디자인으로 지역 주민과 만나고 이들과 함께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거에요. 이것이 새로운 공공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름도 ‘000간’이라 짓고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죠.
구선정 그렇다면 많은 지역 중 왜 창신동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000간 굉장히 우연한 기회였어요. 저희가 작가로 활동하면서 어떤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했습니다.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전시도 참여해 보았지만 ‘이런 것들만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삶과 맞닿은 곳에서 예술을 실험하고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예술의 확장성을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떠나 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와중 어느 한 기업에서 CSR, Co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 목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과 함께하는 미술프로그램에 저희를 강사로 초청했어요. 바로 그 지역 중 하나가 창신동이었고요. 프로그램 초반엔 이 지역에 봉제공장이 많은지 몰랐어요. 1년 동안 아이들과 지내면서 대부분의 부모님이 옷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온종일 일에 매달리다 보니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모님도 이런 문제의식을 느낀 분들이 많았고요. 자연스레 기업의 CSR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저희 자체적으로 활동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이 가지는 다양한 접촉면을 늘려가는 것과 새로운 공공성을 제안하는 실험을 좀 더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 것들로 이 지역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정착한 것이고요. 이후 많은 지원센터와 연계했고 아이들과 함께 창신동을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구선정 ‘000간’이 생각하는 공공성이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접촉면을 늘려보자는 것인지요?
000간 공공적인 것의 범주를 완전한 대중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자체가 뜬구름이라 생각하고 범주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죠. 모든 이를 다 만족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할 거고요. 하지만 현대미술은 굉장히 크리티컬한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것이 각 개인의 삶에 다양한 성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면들이 미술관이나 몇몇 컬렉터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좀 더 많은 이들이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완전한 대중은 아니지만요.
사실 여기서 만나는 봉제하시는 분과 어린이도 어찌 보면 특수성이 있잖아요. 각자 자신의 환경과 이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것. 즉, 개인이 말하는 공공성도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어떤 예술의 방향성을 원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에서 ‘우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할 거야’라고 해서 동네에 어울리지도 않는 벽화 그리기나 이상한 설치물을 가져다 놓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각각의 성찰을 통해서 무언가 발언하는 것 자체가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국가나 혹은 단체에서 말하는 공공성보다는 개인이 공공성을 말하는 것과 제안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면대 면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동하고 있고요.
구선정 ‘000간’이라는 것에 이러한 취지가 다 녹아있는 건가요?
000간 맞아요. 저희는 비어있기도 하면서 무언가 채워지길 바라는데 그런 것들이 개인이 발언하는 공공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공공공간이라는 말 자체도 사실 웃겨요. 공공장소, 공공공간이란 곳에 가보면 항상 너무 많은 규칙이 있고 그 안에서는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요. 그런 것들을 과연 공공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정의 내리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그 자체가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조선 시대의 공공성과 지금의 공공성이 다르듯이 매 장소,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에 따라 새로운 공공성이 나올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이 ‘000간’에서 많이 고민해보고 싶은 거죠.

구선정 골목으로 올라오다 보니 ‘000간 사무소’, ‘000간 플랫폼’도 있는데 공간의 전체적인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000간 ‘000간 사무소’는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하는 공간이에요. 원래는 상시로 윈도우 전시를 했지만 저희 프로젝트의 새로운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를 계속 알리는 뉴스피드 공간으로 바꾸었어요. 저희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이 지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계속 게재하려고요. ‘000간 플랫폼’은 지역주민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 토론하고 아이들과 세미나도 하는 매개공간인 동시에 ‘000간’에서 만든 제품을 전시 및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구선정 ‘뭐든지 도서관’도 오는 길에 발견했는데 두 분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000간 저희가 창신동에 자리를 잡은 계기가 아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였어요. 사실 교육이라는 말보다 ‘매개’란 말을 더 좋아해요. 저희는 아이든 청소년이든 그 누구든 간에 예술을 더욱 쉽게 경험할 수 있게끔 매개 역할을 해야한다는 강한 결심이 있었어요. 예술은 뭔가 능동적으로 행할 수 있으면서 삶에서 성찰 받는 그 어떤 무엇이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이나 혹은 설치나 디자인도 될 수 있죠. 그런 게 다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도서관이었던 거죠. 이 지역 어린이들은 갈 공간이 없었고 부모님들과 지역아동센터에서도 도서관이나 주민들의 쉼터가 될 만한 곳을 갖고 싶어 하셨어요. 원래 센터에서는 이층집에 정원이 있고 누구나 꿈꾸고 싶어하는 큰 공간의 도서관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저희가 만든 작은 공간에도 아이들이 계속 드나드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작은 공간인데도 아이들이 다니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저희와 같이 도서관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셨죠.
여러 곳을 통해 씨앗 자금이 모였고 이곳저곳 알아본 끝에 원래 봉제공장이었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했어요. 구청이나 다른 곳에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이용자들이 직접 꾸며보자는 취지에서 낡은 벽지를 떼고 페인트칠을 하고 책꽂이 등을 만들었고요. 특히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모두는 물론, 문제의식을 느끼던 부모님들이 굉장히 높은 참여율을 보이셨어요. 저희는 예술매개프로그램을 기획해 도서관 이용률을 높였고, 운영은 부모님들이 직접 나서서 아직도 하시고 있고요. 무언가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같이 나누고 만들어보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한 거잖아요. 저희는 이와 같은 것들이 공공의 시스템이라 생각해요. ‘뭐든지 도서관’은 이 동네에 들어 맞는 공공성을 갖춘 거죠.
구선정 지역민과 이런 끈끈한 연대 혹은 연결점이 생기기까지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000간 출발을 아이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도 저희 공간에 많이 놀러 오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최근에 부모님들과 캠프를 다녀왔는데 저희에게 굉장히 호감을 보이시더라고요.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따른 고민도 함께 해요. 저희도 여기에 자리를 잡은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때 초등학생이였던 아이들이 이젠 중학생이고 이들의 고민도 어릴 때와 달라요. 저희도 이들과 같이 어떤 성인으로 성장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요. 이 동네가 사교육을 많이 할 수 없고 아이들은 점차 학교와 소원해지기 쉽죠. 아르바이트에 대한 욕구는 큰데 할 수 있는 일이 PC방,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밖에 없어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저희는 <청소년 인턴십>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한 어른들과 일하면서 공부만이 성공의 길이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구선정 다른 활동 중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어떤 건가요?
000간 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항상 골목마다 큰 쓰레기봉투에 형형색색의 자투리 천들이 담겨 있는 걸 보곤 했어요. 그 자투리 천들의 색이 밝아지면 ‘아! 창신동 공장에 봄이 오는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도 했고요. 한편으론 이렇게 좋은 미술 재료인 자투리 천을 버린다는 게 아깝기도 하고 ‘노동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훌륭한 아카이브다’라며 그저 낭만적으로 생각했고요. 사실 이 원단 쓰레기가 저희에겐 예쁘게 다가오긴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우리 동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천이 가득 담긴 쓰레기봉투, 오토바이, 담배꽁초 거든요. 이 사실을 통해 아무리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과 공간을 제공해도 부모님이 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제품을 만드는 거였어요. 처음엔 버려진 자투리 천을 활용해 쿠션 겸 방석을 만들었고, 천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자투리 원단이 많이 나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다면 아예 작업할 때 정확한 수치를 재면 이 원단 쓰레기 자체가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즉 아무것도 버릴 게 없다는 게 ‘제로 웨이스트’ 개념이에요.
구선정 그렇다면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적인 것 외에 다른 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000간 창신동 봉제공장은 대부분이 동대문에 의존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계절에 따라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데 그 차이가 너무 심하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제3국에 의해 제조국이 점점 이동하고 있어요. 동대문 상권도 예전 같지가 않을뿐더러 더는 똑같은 옷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시장에서 안 먹히죠. 저희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비수기에 이 지역 봉제공장과 함께 재단이나 패턴을 더 세심하게 만들어 고부가 가치로 나아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해요. 중국이나 베트남은 워낙 저임금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으로 경쟁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의 다양한 디자이너와 의류제품이 이 지역에 일감을 맡길 수 있도록 꼼꼼하게 패턴을 잡고 재단할 수 있는 훈련을 ‘제로 웨이스트’를 통해 하는 거에요.
이제 제조업은 장인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봐요. 소량이라도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제작하다 보면 의식 있는 디자이너나 의류 업체에서도 더 많은 공감과 지지를 해주리라 믿어요. 봉제공장에 종사하시는 부모님들도 삶의 태도나 방식이 조금씩 변할 거고요. 이것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으로 미칠 거라고 생각해요.
구선정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000간 우선 비수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를 좀 더 개발하고 조율해야 할 것 같아요. 올해 저희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여기 봉제공장들이 고부가 가치로 나갈 수 있는 ‘손기술 워크숍’을 운영하는 거에요. 그리고 각 공장이 만드는 각 공장이 하는 일을 나타내는 표지판과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만들려고 해요. 저희가 이를 계획하는 이유는 우리 공장들이 어떻게 하면 외부업체나 디자이너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똑같은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보다 소량 생산을 선호하기 때문에 굳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을 나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실제로도 소량의 고품질 상품 제작을 원하는 디자이너들이 저희에게 많이 문의하고요.
앞으로는 공장과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공장정보만을 보고 찾아올 수 있게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그 무엇의 자투리 공간
분량6,442자 / 1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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