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가치를 주목하는 작은 건축
전숙희
분량3,847자 / 8분 / 도판 3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유형오피니언
허영심이 남긴 페허
2008년 10월 전 세계가 뉴욕 발 금융위기로 휘청 거릴 때 우리는 뉴욕에서 사무실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1997년 한국의 IMF와 2001년의 9·11 테러로 인한 미국의 경제위기를 거쳐,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발 금융위기까지 근 10년 동안 무려 세 번에 걸친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그 10년 동안, 글로벌 금융자본의 크기는 1997년에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망칠 정도에서 전 세계를 망칠 정도의 크기로 커져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건축적 담론에 관심은 땅, 공간, 재료, 콘텍스트에서 벗어나 렘 콜하스가 “광란의 뉴욕”에서 “핫스팟의 집합체”라 불렀던 도시로 옮겨가게 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무한한 욕망을 담을 수 있는 더 큰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에 건축 시장을 주도하던 건축 설계 회사들은 도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형태와 규모의 건축물을 앞 다투어 쏟아냈다. 보는 이들의 눈을 압도하는 현란한 렌더링 속 공간은 공허했고 그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지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은 결과물들이 수두룩했다. 버블과 함께 부풀어 오른 비전은 그렇게 도시적 욕망을 가공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은 새로 시장에서 부를 개척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여겨졌다.
2008년 여름 리만브라더스 사태를 필두로 버블 붕괴가 가속화된다. 2009년 뉴욕 타임즈는 두바이 공항 주차장에 버려진 고급차량들의 사진과 함께 “금융 파산을 피해 두바이를 탈출하는 사람들”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세계 최고의 도시를 향하던 중동 도시의 꿈은 그렇게 깨지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신이 주최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좇던 이들은 마지막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의 허영을 공항 주차장에 남긴 채 도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버블 축소와 함께 건축 생태계도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큰 사무실은 물론, 중소 규모 사무실의 일감도 줄어들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08년 전에 비해 건축시장이 40% 가까이 줄었고, 미래의 상황도 크게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 무리한 시설 확장을 했던 대형사무실들 가운데 용역비 미수율이 높아 부도 지경에 이른 곳들도 여럿 생겨난다. 크고 작음을 떠나 그렇게 건축 생태계는 얼어버리는 듯했다.
거대 도시와 대규모 프로젝트들에 허덕거리는 성과 위주의 위정자들과 거기에 기생하는 건축 자본들, 그리고 그 욕망에 야합하는 야심만만한 건축가들이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도시 안에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일상적인 삶의 가치’이다. 우리는 도시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일상에서 발견되는 비범함에 주목한다. 그 각성된 일상은 일상의 편안함, 여유로움, 통찰력과 함께 무엇보다 ‘구매 가능한 것’을 전제한다. 크고 작음의 스케일을 떠나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더 가까워져야 하고 이렇게 재해석한 일상을 지속적으로 도시로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큰 건축을 이기는 작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있는 <데이비드 타워 Torre David>는 경제 위기 속에서 급성장한 도시들에서 도시의 미아가 된 큰 건축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1994년 시행자의 죽음과 베네수엘라 국가경제 위기로 인해 <데이비드 타워>의 공사는 중지된다.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되지만 공사는 재개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전기, 수도 뿐 아니라 발코니 난간, 창, 심지어 대부분의 벽조차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이후 심각한 도시 주택난으로 인해 도시 빈민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수직 슬럼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현재는 약 750세대 3,000명이 28층까지 거주하고 있다. 처음 타워를 장악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마치 맨땅 위에 동네를 만들 듯 수도를 놓고 저층의 주차장으로 자신들의 스쿠터와 차를 들이는 한편, 곳곳에 주점을 열고 무면허 치과 의원을 비롯, 거주민들의 교류 공간까지 갖추게 된다. 뚫려있던 벽들은 거주자들이 제각각 세운 벽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타워의 입면은 조각보처럼 생동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곳에선 택시가 10층에 내려주면 나머지 층은 계단을 통해 이동한다. 이처럼 거주자들은 그들 나름의 공간과 쓰임새의 불문율을 만들어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타워>에 건축가 없이 만들어진 수직슬럼의 커뮤니티가 보여준 자생적 건축은 흥미롭다.
외면받는 아파트
우리 작업실이 위치한 금호동은 낙후되고 연로한 동네이다. 아파트를 짓고 싶어 안달 난 몇 해 전 십수 개의 재개발 조합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몇은 꿈을 이루어 래미안, 푸르지오, 이편한세상에서 살고 있는 반면, 몇은 소위 반대파의 벽에 부딪혀 재개발의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빚만 쌓아가고 있다. 내 방 창밖으로 그들의 좌초된 꿈이 컴컴하게 보인다. 이제는 그 풍경이 익숙해져서인지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왠지 낯설어질 것 같다. 벌써 4년째 비어있는 그곳에 몇 달 전 플랜카드와 함께 공사용 가림막이 쳐졌다. 그마저 몇 달째 진전이 없다. 어찌된 노릇일까? 어쩌면 4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그들도 아파트가 더 이상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중계동 백사마을의 재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갈아업기식 재개발 방식에 제동을 걸고 주민과 자연 친화적인 마을로 재구성하려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마을의 생김새는 원래 터무니를 두고 다시 그려진다고 한다. 이 실험의 성공이 절실한 이유는 건설사 주도의 큰 건축 앞에 무력했던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을 건축가들이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새로 만들 때마다 파손되었던 작은 건축의 뿌리를 다치지 않게 보살펴 제 땅에 다시 싹을 내리게 했으면 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출처: 전시 《진례다반사》 도록 중에서)
다름의 존중
요새 젊은 건축가들은 뭉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1990년대 4·3그룹의 활동에 견주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평가하기도 한다. 더 극단적으로 젊은 건축가들은 생존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소위 요새 젊은 건축가들을 형성하는 70년대 생들이 성장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보면 이러한 우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민주화 운동의 바로 뒷세대인 이들은 시위 대신 서태지에 열광하며 구태의연한 시스템에 갇히지 않은 채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그로 인해 치열하게 살았던 기성세대가 바라볼 때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주인공 와타나베 마냥 무엇인가 결여된 인간 같아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물리적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앞선 세대들이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의 강한 중심을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 세대는 다름을 존중한다. 다름은 잘못된 것도 모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름은 그동안 소홀하게 여겼던 가깝고 밀착된 우리 일상의 새롭게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이 ‘작은 건축의 시작’이다.
전숙희
1998년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Princeton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Gwathmey Siegel & Associates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고 현재는 장영철과 함께 WISE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WISE 건축은 2008년 뉴욕 사무실을 2010년 서울 사무소를 열어 건축작업을 하고 있다. 근작으로 서울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과 <Y House>, 뉴욕에 <Chesterfield Penthouse>를 완성하였다. 현재 여러 집단과 연결되어 건축 놀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통인동 <이상의 집> 건축작업 및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Mobile Gallery 등을 기획, 전시하였고 2011년 ‘젊은건축가상’을, 2012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으로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0년 여름에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워크숍, 2011년 겨울 SAKIA 워크숍에 튜터로 참여 하였다.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출강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일상의 가치를 주목하는 작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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