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차이
나은중, 유소래 (네임리스 건축)
분량3,055자 / 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유형오피니언
경험
경험은 특정 장소에서 얼마간의 시간 동안 마주친 현상을 통해 지식과, 규범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집적은 단순히 층위를 이르는 퇴적에 그치지 않고 마주하는 과정과 결과에 효력을 발휘한다. 또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역사적 관성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사회의 일부로 작동하며 이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주관화된 관성으로 확증한다. 건축행위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험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건축가로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관계들, 즉 사람들(건축주, 허가권자, 공사 관계자)과 사물들(재료와 구법) 그리고 새로이 형성될 풍경에 이르기까지 경험의 부재는 어느 지점에서든 시행착오를 가져온다. 이는 건축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건축이 만들 사회적인 관계까지 폭넓게 작동하며 경험을 통한 건축의 완결성을 결정하게 된다.
경험의 미천함
젊은 건축가의 행위는 이 경험의 미천함을 바탕으로 한다. 비워진 땅을 바라본 시점부터 구조물이 완성되기까지 장소에 대한 예측과 좌절 그리고 성취의 연속적 프레임은 경험이 부재한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이 직면하게 되는 도전이며 때로는 소모적인 건축행위의 양상을 띤다. 경험 없음으로 발생되는 이러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음이 경험의 미천함보다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축척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1 또한 경험의 부족함에는 의외의 긍정적인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해보거나 겪어본 또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얻은 지식2을 경험이라고 한다면 이 반대편에는 상상과 사변이 있다. 경험이 아닌 순수한 사고나 개인의 이성에 의해 현상을 인식하는 것은 기성과 다른 차이를 만드는 무기일 수 있다. 이는 부분으로부터 관계로서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동기이기 때문이다.
경험의 부재는 비록 과정의 굴곡과 결과의 부정합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쉽게 예단하지 않고 편향되지 않음을 통해 경험으로부터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단단하지 않은 경험과 과정에서의 오류들은 오히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더 나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일상의 불예측성과 건축의 우연성
이 시대 젊은 건축가에게 경험의 적음이 득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일상의 불예측성과 건축의 우연성이다. 우리는 급변하는 환경을 통해 예측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도 변화와 불예측성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고도화된 문명과 급변하는 삶의 유동성은 이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 예측 가능하고 경험을 통해 안전하다고 믿어 왔던 시스템들은 때로는 우리 삶의 관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그 안에서 축척 되었던 경험의 가치는 어느 순간 현재를 어루만지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예측하기 힘든 일상의 단면은 건축의 우연성과도 맞닿아 있다. 제레미 틸Jeremy Till이 『불완전한 건축』에서 언급했듯 “건축은 건축가들의 자율성이 아닌 우연성으로 완성된다.”3 건축의 질서와 통제는 현실세계에서 예측하기 힘든 우연성에 직면해 편파적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경험이라고 믿고 있는 객관적인 가치들은 사실 매우 주관적인 편견일 수 있으며, 경험의 미천함은 오히려 세상에 신선함을 던져 줄 수 있다.
차이
이러한 관점에서 젊은 건축가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차이difference이다. 차이는 보편성, 즉 기본fundamentals을 바탕으로 한 변화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이다. 이미 존재하는 단단한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모든 것들이 재해석되고 재발견 될 수 있다는 차이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하게 한다.
나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젊은 건축가의 역할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표면적으로 모순된 몇 가지 관계를 나열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될 관점은 경험의 미천함을 통해 상상한 주관적이며 불완전한 건축의 가능성들이다.
첫째, 건축은 강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삶을 보호하는 안식처로서의 건축은 물리적으로 강함을 필요로 하지만, 도래할 시대에 급변하는 환경과 가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또 다른 건축적 사고가 요구된다. 강성은 큰 힘에 대응하여 부러져 버리지만 연약함은 오히려 변화에 유동적으로 반응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둘째, 건축은 장소의 중력을 붙잡는 무거운 실체이자 동시에 한없이 일시적인 현상이다. 건물은 보편적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구축되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일시적이며 유동적인 일상의 기록들로 채워진다. 이는 건축가들이 예측하는 동선이라는 논리체계의 현실적 오류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후기자본주의 이후 정보와 소통의 시대에 우리의 삶은 특정 공간에 제한되고 예측되기보다 그 물리적인 한계를 넘나들며 불확정성을 만든다. 영구적이며 때로는 일시적인 장소의 상호적 실험을 통해 도래할 시대의 환경을 상상한다.
셋째, 복합성과 단순함은 서로를 구축한다. 건축은 사람, 도시, 자연 그리고 시간 사이에 놓여있다. 이들의 상호적 대화는 이 시대의 불예측성과 복합성을 드러내지만, 가장 좋은 경우에는 단순한 하나의 교차점을 만든다.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문화적 현상에 집중하여 이 시대의 건축을 생각한다.

나은중, 유소래 (네임리스 건축)
나은중과 유소래는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U.C. 버클리를 같은 해 졸업했다. 2009년 공동으로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하였으며, 불예측성의 시대에 단순함의 구축을 통해 이 시대의 건축과 예술 그리고 문화적 사회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서울, 뉴욕, 시카고, 버클리 등의 도시에서 다수의 작업을 전시하였다. 2010년 보스턴건축가협회상을, 2011년 AIA뉴욕건축가협회상과 건축연맹 미국젊은건축가상Architectural League Prize for Young Architect, 2012년 문화관광체육부 오늘의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미국건축가협회 뉴욕신진건축가상AIA’s New Practices New York과 함께 남양주시에 계획한 삼각학교로 뉴욕건축가협회 대상AIANY Honor Award,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험과 차이
분량3,055자 / 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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