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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없는 ‘세대’에 관하여

강예린, 이치훈 (SoA)

‘대서사’를 조상으로 둔 우리 건축문화는 건축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여러 개의 단어를 가지고 있다. 건축가, 건축사, 설계사,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젊은 건축가 혹은 신진 건축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새건축사협의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젊은건축가상’의 지원 자격이 정의하는 젊은 건축가 집단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45세 이하의 건축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한 일본 건축가 친구가 “어떻게 30~40대가 젊은 건축가인가? 일본에서는 25세에 이미 자기 작업을 실무로 시작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세대는 이처럼 상대적이며 숫자로 정의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오히려 특정 세대는 이전 세대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정의되거나 특징지어져왔다. 근대 아방가르드가 역사와의 단절을 시도한 점, 모더니즘의 선언적 전망Vision and Manifesto에 대항한 현실 도시에 대한 관찰과 독해Observation and Reading (로버트 벤추리의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 그리고 급진적 도시건축에 대한 소급적 선언Retroactive Manifesto (렘 콜하스의 『정신착란의 뉴욕』) 등이 그 증거이다.

저항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

그러나 격렬한 전위적 운동 혹은 근대나 탈근대에 관한 거창한 담론을 그만두고라도, 우리는 어떤 체제와 규율을 공통의 장에서 공유한 바가 없으며, 당연히 이를 격렬히 거부하거나 받아들인 기억도 없다. OMA의 파트너 중 하나인 쇼헤이 시게마츠Shohei Shigematsu(42세)는 ‘세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대항할 체제조차 없는 세대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항상 (로버트 벤추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전 제체에 대한 강한 반작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왜냐면 우리가 건축을 공부할 때에는 그런 강력한 체제라고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I was always in a way, jealous of having such a strong reaction to the previous regime. Because we didn’t really have a strong regime when we studied architecture.)”1

그러나 과거에 대한 저항만이 ‘반대급부’로서 현재의 자신을 증언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같은 강연에서 쇼헤이는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의 진화에 대한 관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비야케는 진화는 생물 집단의 유전 특성의 연속적인 세대에 걸친 변화라는 (다윈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무엇인가에 대항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진화란 기본적으로 수용과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Bjarke quoted that evolution is any change across successive generation in the heritable characteristic of biological population. … He’s not interested in going against anything. He believes that evolution is on basically accepting and saying yes.)”

비야케의 진화는 물론 모더니즘 체제의 진화라기보다,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이는 비틀기와 변용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용을 접어두고 보면 비야케는 미디어를 통한 내러티브 구성에 관한 거의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면서 세계 건축계에 등장했고 이전 세대를 수용하고 긍정하면서 기업가적 건축가의 롤모델 혹은 하나의 뚜렷한 세대의 상징으로 성장하고 있다. 

건축의 사회적 조건

새로운 세대 혹은 젊은 세대에 대한 정의는 생물학적 기준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반동하거나 수용할 대상, 혹은 진화에 필요한 대화의 상대 (그것이 역사이든 선배 건축가이든)가 선재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건축이 없고 (이상헌,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우리는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건축 없는 국가』)에 살고 있으니, 반응할 체제가 없어 정의되기 힘든 세대론적 숙명을 타고난지도 모르겠다. 다만 체제의 반대급부로 정의될 수 없는 세대에게도 공유되는 강한 경험들을 설명해볼 수는 있겠다.

흔히 경제위기는 세대를 구분하는 손쉬운 수단으로 이용된다. 1976년 오일쇼크 이후 성장과 1997년 금융위기, 2008년 리만브라더스까지 약 20년을 주기로 들이닥친 경제위기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변화들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감이 줄었다는 양적인 변화만으로는 세대가 공유하는 경험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 전쟁 이후 도시 재건을 담당했던 건축가와 중동특수의 건설경기, 올림픽 이후의 경제 성장 등을 경험한 세대가 건설 시장의 규모 자체의 축소로 정리해고 될 수밖에 없었던 세대와 같은 유전자를 가질 수는 없다. 더욱이 많은 젊은 사무실이 리만브라더스를 전후하여 생겼으며 경기침체라는 사회적 조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위기를 전후한 구체적인 건축의 사회적 조건이 무엇일까.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에 따르면 서울은 90년대 중반 이미 40여 개의 세계도시 네트워크에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중심도시의 재건이 완료되어가는 시점에 있다.2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마지막 단계에 있고 강남을 위시한 주요 다핵공간들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완료된 상태이다. 뉴타운은 출구전략을 시행중이고 용산개발의 몰락을 기점으로 중대형 건축물의 신축은 점점 뜸해졌다. 더 이상 서울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재개발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잘게 나누어진 소규모 재생으로 도시를 정비해나갈 것이다.

그 와중에 베이비부머의 은퇴 후 소득수단으로 자리잡은 근린생활시설이나 아파트 키드의 성장과 독립으로 인한 도심형 집합주거, 혹은 집값의 70%에 육박하는 전세비에 대한 탈출구로 벌어지는 대도시 근교의 전원주택이 건축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절대적인 건축의 수요의 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도시공간의 변화로 말미암아 건축에 요구되는 질적인 변화들이다.

이를 공통의 경험으로 인식한다면 현실 도시에 관한 비평적인 진단과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로서 서울시립대학교 김성홍 교수의 ‘중간건축’이라는 목표 설정은 아마도 우리 세대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중요한 고민의 지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근대적 도시계획의 목표 설정 없이 구획정리 사업을 통한 택지개발 혹은 정비 사업 수준에서 진행된 서울 도심의 문제, 특히 서울 전역에 퍼져있는 ‘아파트 단지의 자폐성’을 분명하게 지적하는 박철수 교수의 진단 역시 변화한 도시구조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거나 주목받고 있는 젊은 건축가의 많은 작업이 근린생활시설이나 다세대 다가구 주택과 전원주택 혹은 공공건축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리보다 앞선 선배 건축가들이 파주 출판도시나 헤이리 아트벨리의 미술관 등 문화시설을 통해 이름을 알려왔던 점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숙제를 떠안은 젊은 건축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일 있을 때 독립해라’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젊은 건축가들의 독립이나 개업은 이쯤이면 하산해도 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소규모의 프로젝트를 받으면서 출가를 결심한다. 그러나 예전과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대학에서의 건축교육이 수준이 실무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상향하고 있고, 도제식의 실무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아서 필요한 실무수련의 기간만을 충족하면 독립을 시도한다.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도 5년제의 교육 이후 3년간의 실무 경험만 있으면 건축사를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전보다 평균 2년 정도 독립 가능한 시기가 빨라졌다. 일본의 경우도 졸업 후 2년의 단기수련으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의 종류가 분화되어 있어(목조 건축사) 일반적으로 독립의 시기는 우리보다 빠르게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실무 3~4년을 전후해서 독립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작업의 방향을 설정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독립이 곧 젊은 건축가로서의 진정한 출발이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몇 해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젊은 건축가라는 용어는 능동적인 정체 규정이라기보다 외부에서 호명되었다는 혐의가 짙다. 이렇다 할 대화 상대도 없이 젊은 건축가로 호명된 일련의 건축가 무리들은 스스로의 의제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자기 족보를 자기가 쓴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비평가 이종건이 현대건축의 상황 속에서 건축가는 스스로 작업의 내러티브를 구성해내야 한다고 일갈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젊은 건축가를 호명하는 주체가 언젠가부터 국가로 이관되었다는 점이다. 본래 새건협 주최 신진건축가상으로 출발한 것이 2005년이고, 2008년부터 ‘젊은건축가상’으로 이름을 바꾸며 주최가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그 객체에 생물학적 나이제한을 둔다. 또한 미국의 젊은 건축가 리그와는 다르게 건축가 라이센스를 자격요건으로 한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신진건축사 지원제도와 더불어 아마도 젊은 건축가를 상대적으로 약한 신생기업으로 간주하고 보호하겠다는 배려이면서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한다. 

요컨대 한국에서 젊은 건축가의 존재는 체제 없는 건축문화의 토양 위에서 변화된 현실의 도시-건축적 요구를 자각하고 스스로 의제를 찾아 내러티브를 구성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oA, <책 읽는 지형>, 충남도립도서관 공모전 제출안 / 자료: SoA

강예린, 이치훈 (SoA)

2010년 설립되었으며, 도시와 건축의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의제agenda를 설정하면서 작업해나가고 있다. 중국 허뻬이 스즈끼공장 리노베이션 공모전(2014) 당선, 굴업도 생태예술의 섬 국제공모(2012)에 당선되었고, 오송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2012), 부산 중앙광장 국제 공모(2011) 등에 입상하였다. APAP(2013), 서울시립미술관(2013), 이탈리아 국립현대미술관MAXXI(2012) 전시에 참여하였고 도서관 산책자 (2012)를 출판하였다. 현재 남가좌동 다세대주택(새동네), APMAP 2014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에 출강하고 있다.

체제 없는 ‘세대’에 관하여

분량5,071자 / 1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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