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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세대론

박정현

세대론은 대개 젊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특히 20대 대학생의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60년대 대학생(40년대 생)은 4·19세대, 70년대 대학생(50년대 생)은 유신 세대, 80년대 대학생(60년대 생)은 민주화 운동권 세대로 엮인다. 10여년 전 386세대가 호출될 때 세대론의 정확한 위상이 드러났다. 당시 30~40대를 현재의 시점이 아니라 그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겪었던 경험의 공유에 기대어 묶어냈던 것이다. 정치적 격변은 사라졌지만 20대 대학생을 세대론으로 묶어 호명하는 것은 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건담의 ‘뉴타입’이나 에반겔리온의 ‘신인류’처럼 90년대 X세대는 새로운 시대, 세대 단절의 표상이었다. 최루탄 냄새가 사라진 학교를 다녔던 첫 세대인 90년대 대학생(70년대 생)은 정치적 주체가 아닌 대중 문화의 주체로 거듭났다.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영화나 드라마 등이 호출하는 90년대는 모든 것이 디지털과 자본에 의해 재편되기 전이자, 기획사와 스타시스템 없이 음반이 백만 장이나 팔리는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로 기억된다. 정치가 사라진 후 대학생은 그냥 대학생이었을 뿐이었고 세대론 역시 사라진 듯 보였다.

수면 아래로 사라진 세대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7년 IMF사태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세대들의 불안과 무력증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세대론은 젊음의 에너지가 소진한 곳에서 밀어닥쳤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공기처럼 당연한 곳에서 사회는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순응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문화를 전유함으로써 스스로를 탈정치적 주체로 정립할 수 있었던 것도 X세대가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젊은 세대는 으레 진보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지난 대선과총선에서 드러난 보수화와 무기력은 이전 세대와 다른 양상을 뚜렸하게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다그치거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다독이고 나섰다. 여기에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맡은 정치경제적 역학을 통해 20~30대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한 박해천의 분석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세대론은 선명한 구도를 획득했다.1

새로운 세대론의 분기점

건축계에서 최근 회자되는 세대론은 이 구도와 맞물리면서도 어긋난다. 언제나 있었던 젊은 건축가가 하나의 현상으로 도드라진 것은 분명 최근의 일이다. 여기에는 2008년부터 시행된 ‘젊은건축가상’의 영향이 크다. 만 45세 미만의 신진 건축가들을 지원하는 이 상을 계기로 젊은 건축가의 상像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의 1회 수상자부터 최근 건축계에서 유통되는 세대론의 그물망에 포획되는 것은 아니다. 명쾌하게 갈리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건축가상 수상자 사이에서도 경계선이 그어진다. 역시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이 확산되면서 상황은 사뭇 달라진다.

첫 수상자들은 훨씬 이전부터 설계하고 완성한 프로젝트로 평가를 받았으니 2008년의 여파와는 무관했다. 이런 상황은 2010년 정도까지도 마찬가지다. 한국 건축계의 새로운 세대론은 금융에서 발발한 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온 2011년부터 등장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이전까지 젊은 건축가는 그야말로 나이가 젊은 건축가를 지칭하는 말에 불과했다. 실제로 그들의 작업은 질과 규모, 프로젝트의 성격 면에서 기성 건축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대학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고, 거의 모두가 건물을 실제로 지어볼 기회를 누렸다. 이들은 완공된 건물 사진과 간단한 프로젝트 설명만으로 수상 기념 작품집의 지면을 채울 수 있었다. 사무소 운영 면에서나 건축적 완성도와 직능의 숙련도에서는 미성숙한 면이 눈에 띄지만, 이는 세대를 초월한 문제이니 잠시 잊어두기로 하자.

분위기는 2011년 무렵 급변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결과가 실물경제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점인 것이다. 정점에서 추락하기 시작한 아파트 값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기존의 도시를 밀어내고 백지 위에서 시작하는 재개발이 점차 효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60년대 이래 건축은 개발을 이끌어온 토건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자신의 학문적·미학적·경제적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대형설계사무소나 아틀리에 모두 토건에서 흘러나온 자본에 기대고 있었다. 대형설계사무소들이 전국에 똑같이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설계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할 몸집을 키웠다면, 아틀리에는 재개발과 아파트 단지에 뒤따르기 마련인 근생과 교회, 문화시설 등으로 예술로서의 건축을 실험했다. 아파트값의 지속적인 상승이 만들어낸 금융자산이 부동산 시장 전체를 떠받들었던 것이다. 시각에 따라 선순환과 악순환을 오가는 개발-아파트- 건축의 매듭이 헐거워진 시점, 거시적인 상황의 변화를 자신이 하는 작업을 통해 직감한 이들이 나타났다.

2011년 수상자인 장영철·전숙희는 “smallness”를, 김창균은 “재활용 건축”을 각각 키워드로 내세웠다. 이들의 작업은 신축보다 계획안과 리모델링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건물을 지어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신 전시와 설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을 단련시켰다.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이소진, 권형표·김순주, 신혜원, 제이와이아키텍츠를 비롯해, 양수인, 나은중·유소래, 강예린·이치훈 등 이 목록은 시간이 흐를 수록 길어지고 있다. 이들의 작업이 건축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이 젊은 건축가들은 불과 몇년 전의 젊은 건축가들이나 선배 세대의 작업과는 확연히 다르다.2

이들의 건축 영역을 벗어난 듯이 보이는 여러 작업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분명한 요인은 공적 자금이다. 설치나 전시 대부분과 건축 프로젝트의 다수가 정부·지자체의 예산이나 시민단체, 문화재단의 공공기금으로 이루어진다. 그동안 건축도시 환경에 무관심했던 지자체의 인식이 바뀐 탓도 크지만 이 역시 개발 시대가 끝나고 재생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징후다. 공공의 자본 투입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건축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연남동, 상수동을 아우르는 범홍대권, 가로수길과 서촌 등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되는 지역이 있지만 이곳이 지금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안정적인 일감을 제공해줄 가능성은 무척 낮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건축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파주출판도시나 헤이리 프로젝트 같은 인정투쟁의 장이자 건축 실험의 기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영역에서의 호출 여부는 사회적 인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20여년 전 일군의 30~40대 건축가들이 건축을 위한 피안의 장소를 찾으려했다면, 지금의 젊은 건축가들은 미술관이나 재생을 기다리는 근대의 폐허를 찾아야 한다.

이런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제적 경제환경 변화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몰고올 국내의 변화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50여년 간의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한국 사회는 처음으로 경제가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단 한번도 인구가 줄고 도심의 공실률이 높아지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는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다. 2010년 3,519만 명인 생산 가능 인구가 2030년에는 2,988만 명으로 500만 명 줄어들고, 2013년 고교졸업자수 63만 명은 10년 후인 2023년 40만 명으로 1/3이나 급속히 줄어들 현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건축가는 어느 때보다 많고 점점 더 많이 배출되지만 일은 줄어드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젊은 건축가들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고민은 자연스레 불안한 청춘의 세대론과 공명한다.

아직 가설에 불과한 세대론

한편 건축계의 세대론과 한국 사회 일반의 세대론과 어긋나는 점은 젊은 건축가들이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70년을 전후로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젊은 건축가들은 대개 마흔 전후이다. 이 ‘늙은 젊음’은 분명 국내의 독특한 현실이다. 군복무와 대학 졸업 후 5년 동안 실무를 해야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국내 건축사 자격증 제도의 엄격함, 건축 고유의 늦은 데뷔와 은퇴 없음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젊은 건축가들의 유학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만 수학한 경우가 오히려 예외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이들이 엠아크M. Arch. 과정을 거쳤다.3 한 분야의 특정 세대가 특정한 학위 (국내에 해당 학제가 없는)를 이처럼 많이 이수한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남자라면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소재 주요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엠아크를 마치고 외국에서 몇 년의 실무를 익힌 후 귀국해 개업하는 것이 공식이다.4 자연스레 마흔 언저리에 달한다. 이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숙련 기간은 작업의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내고 한국 건축계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은 한국 건축의 흐름 안에 위치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의 활동은 한국 건축의 역사라는 문맥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이 극복하고자 한 대상이 한국 현대 건축 안에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버지와 대결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젊은 건축가들은 오이디푸스의 삼각형Oedipus trangle을 거치지 않고 주체로 서야 하는 운명인 셈이다. 물론 서사를 엮어내는 일는 건축가가 아니라 역사가와 비평가의 몫이지만, 그들의 담론에서 한국 건축의 선례는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쿠마 켄고가 안도 다다오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젊은 건축가들에게 과거는 알지 못하는 것이고 미래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세대론이 그 이전 세대와의 관계로 설정되지 않고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기술되는 까닭이다. 젊은 건축가들이 의미 있는 차이를 지닌 건축물을 생산해냈는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 판단을 내리기 전에 건축계 세대론은 가설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선 젊은 건축가들을 거칠게나마 아우를 수 있는 비평의 언어가 없다. 단지 그들이 딛고 선 환경과 조건을 더듬더듬 짚어볼 수 있을 뿐이다.


박정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AURI 인문학포럼 논문 공모 대상, <와이드 AR> 건축비평상을 수상했다. “1980-9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담론 구성”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여러 매체에 건축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건축 세대론

분량5,176자 / 10분

발행일2014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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