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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전망

황정인

※ 본글의 일부는 필자가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발행하는 미술웹진, 아트뮤지엄(artmuseums.kr)에 연재한 2013년 칼럼인 <영국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내용을 수정, 재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늘어나는 한국의 문화예술 아카이브에 대한 전망

2008년 고故 백남준 작가의 원原자료를 중심으로 설립된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 2009년 인사미술공간의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신설된 아르코미술관의 아르코아카이브, 2010년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장이 수십 년간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홍대 앞에 문을 연 한국미술정보센터 등 한국미술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만나볼 수 있는 물리적 공간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연구센터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특수자료실, 미술도서실)과 서울관(디지털정보실)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한 국제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한국미술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국내 기획자와 작가들의 해외활동 및 해외기획자들의 국내 방문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요즘의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시설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카이브의 활용도 측면에서 바라보면, 아직 국내의 문화예술 관련 아카이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우선 소수의 국공립미술관을 제외한다면, 상당수의 사립미술관에서는 아카이브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하다. 아카이브를 일반적인 자료실 혹은 서고의 개념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또한 문화예술기관에서 운영하는 아카이브는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특성상 일반인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화 작업이 이뤄졌다고 자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그것을 활용할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 즉,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부족은 기록물의 활용가치를 일깨우는 데 걸림돌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아카이브가 구축되었다고 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카이브는 단순히 잠들어 있는 자료의 무덤과 다를 바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료는 단순히 수집, 보존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활용되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아카이브의 효과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해보는 차원에서 영국의 국립기록보존소The National Archives와 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White Chapel Gallery Archive의 특징과 아카이브 활용사례는 많은 부분에서 참고가 가능할 것이다. 

영국의 국립기록보존소 The National Archives, Kew, London (출처: 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NationalArchives,_Kew_3.jpg) / Ⓒ Mike Peel (www.mikepeel.net)

자료 관리에서 연구까지 현재진행형의 자료박물관

런던의 남서쪽, 리치먼드의 큐Kew에 위치한 국립기록보존소1는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 아카이브이자 영국 법무부의 책임운영기관으로서, 영국 정부의 250여 개 담당 부처와 공공단체의 주 자료원이다. 이곳에는 1086년 윌리엄 1세 왕이 작성한 토지조사부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에서부터 현대식 공문서와 디지털 파일, 웹사이트 자료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0년간의 영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중요한 사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아카이브 규모로는 약 천백만 종 이상의 정부기록 및 공공기록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그 종류도 종이, 양피지, 전자기록, 웹사이트, 사진, 포스터, 지도, 드로잉과 그림 등의 형태로 다양하다. 이 중 역사적,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료들은 모두 디지털화되어 웹사이트를 통해 검색할 수 있으며, 일반 기록물은 직접 방문하면 열람할 수 있다. 국립기록보존소에 가서 직접 기록물의 원본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 현지에서의 간단한 등록 절차를 통해 우선 ‘열람권reader’s ticket’을 발행받아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열람권을 발급받으면 등록일로부터 3년간 자유롭게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국립기록보존소의 가치는 자료의 열람뿐만 아니라 이곳이 제공하는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방대한 양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육용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역사를 시기별로 정리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학습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해당 시기별로 정리된 자료와 함께 단계별 교습법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또한 런던 도심에서 방문해야 하는 수고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디지털 자료열람 서비스 외에도 화상회의video conference와 가상학습실virtual classroom을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질의문답을 진행할 수 있으며, 팟 캐스트Podcast를 통해 성우나 연기자의 목소리로 구현된 사운드 형태로 아카이브 내용을 수신할 수 있다. 또한 교육계 종사자 및 석사과정 이상의 학생들은 국립기록보존소에서 제공하는 전문가 양성과정professional development에 참여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한편 국립기록보존소의 전시공간인 키퍼스갤러리The Keeper’s Gallery에서는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사건이나 주제를 다룬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건물 내부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다양한 주제의 아카이브 자료를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국립기록보존소는 정보관리와 관련한 기초 정보, 자료의 제작에서부터 보존까지 공공기관에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가이드 정보, 정보관리와 정보보증과 관련한 전문 교육과정을 함께 제공한다. 아키비스트, 특별 소장자료를 관리하는 사서, 정보관리사, 컨서버터 등 공공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영국의 주요 문화예술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카이브도 국립기록보존소의 정보관리 기준을 따르면서 별도의 협력 망을 구축하여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처럼 국립기록보존소는 영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자, 과거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현재를 기록하는 현재진행형의 자료박물관이며, 학생, 일반인, 전문가 등 다양한 이용객들을 위해 마련된 정보의 보고寶庫이자, 효율적인 아카이브 운영과 관리의 표준을 제시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콘텐츠 생산과 활용을 고려한 기관의 핵심, 아카이브

런던 동쪽, 타워 햄릿Tower Hamlet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화이트채플갤러리2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을 런던에 가장 빨리 소개한다. 관련 문화 이벤트를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영국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요 문화예술기관 중 하나다. 화이트채플갤러리의 문화, 사회적,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뒷받침하면서, 런던 동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나가는 원동력의 핵심은, 바로 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01년 개관 이후 10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의 아카이브는 갤러리 출판물을 비롯하여 희귀 문서, 작가의 서신, 사진, 그래픽 작업, 언론의 보도기록, 전시장 도면과 작품 설치기록,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의 음성 및 영상기록 등의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이들 자료와 함께 보관되어 있어 화이트채플갤러리 설립 당시의 시대적·지역적 상황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자료의 보존 자체로 국가와 지역의 문화, 사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상기시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이러한 자료들이 최근까지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로 끊임없이 재해석되면서 공간의 정체성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확인해 나간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아카이브 활용을 고려한 갤러리의 노력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물리적 환경 구축이며, 또 하나는 아카이브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마지막으로 아카이브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아카이브의 관리와 문화콘텐츠 생산이다.

화이트채플갤러리는 2년간의 갤러리 증축을 진행한 결과, 지난 2009년에는 아카이브 전용 전시공간인 팻 매튜 아카이브 갤러리Pat Matthews Archive Gallery와 아카이브 자료 열람실인 포일 리딩룸Foyle Reading Room을 별도로 마련하여 학예연구의 전문성과 아카이브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을 동시에 높였다. 학술 및 교육용 자료로서 아카이브가 활용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한 셈이다. 또한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한 화이트채플갤러리의 교육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의 아카이브는 시간이 지나 더 이상 활용되지 않고 사료로서 보관가치가 높은 자료를 말한다. 하지만 화이트채플갤러리는 아카이브의 자료들이 오래된 미라처럼 세월 속에 굳어져 있기보다는 그것의 가치를 이어나가야 할 후대에게 살아있는 역사로서 기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예로, 런던 동부에 거주하고 있는 650여 명의 어린이와 현대미술작가들이 1900년대 런던 동부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화를 탐방하는 프로젝트 <아카이브 어드벤처Archive Adventures>(2009)가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이들과 예술가들은 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가 보유한 사진, 기사 스크랩, 지도와 역사적 기록, 자신들의 학교와 지역 아카이브에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역사를 재연한다. 또는 직접 런던 동부의 거리를 탐방하고, 토론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역의 변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은 화이트채플갤러리의 프로젝트 공간 Gallery 5에 전시되어 아카이브의 중요성, 갤러리와 커뮤니티의 공생 관계 등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브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아카이브의 관리와 문화콘텐츠 생산은 아카이브 활용이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10년 사이에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관련 직종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관련 인력 확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아카이브에서 지속적으로 보존가치를 지닌 기록에 대한 평가, 수집, 정리, 기술, 보존, 검색제공의 책임을 지닌 사람을 아키비스트라고 할 때,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는 아키비스트와 별도로 아카이브 큐레이터를 두어, 아카이브의 현대적 활용과 해석을 도모하고 있다. 명칭에서처럼 아카이브 큐레이터는 아카이브 자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카이브를 통해 도출되는 특정 주제를 다시 전시형태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의 전시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아카이브 큐레이터는 아카이브 관련 특별전 외에도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개인전, 기획전의 학예연구, 전시연출, 출판, 자료의 기록 및 보관 업무와 관련하여 큐레이터, 아키비스트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전시의 전문성을 갖춰나간다. 

이처럼 화이트채플갤러리는 단순히 문화예술공간이 지닌 미학적 가치를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면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실현해나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갤러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역사의 산실이자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의 출발점으로서 아카이브가 자리하고 있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는 국내 미술계 상황을 떠올려 볼 때, 화이트채플갤러리 아카이브는 기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과거의 사실을 미래에 온전히 전하기 위한 노력, 물리적 환경과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 과거와 현재의 결합을 통해 새로움을 발굴해내는 노력을 활동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정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문화산업과(Culture Industry)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2003-2009)했으며, 현재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2013년 3월부터 온라인 큐레이토리얼 리서치 플랫폼 미팅룸(meetingroom.co.kr)을 오픈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로예술극장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 ‘Stage3×3’의 전시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 아카이브의 전망

분량6,071자 / 12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3월 31일

유형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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