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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일상에 질문을 던질 때

구민자 × 이경희

전시장에 갈 땐 으레 다음의 경험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더한 자극을 받거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탄과 함께 영감을 얻거나. 작가 구민자의 작업은 공교롭게도 위와 같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 평범해 보이는 상황이나 덤덤한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방관자였던 관람자는 어느새 작업 속 작가의 자리에 앉아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문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즉각적인 자극에 수없이 노출되어 무감한 이들에게 필요한 예술가는 서두름 없이 나와 내 주변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하기를 유도하는 이가 아닐까. 


구민자 학부에서 회화와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후 쌈지 스페이스, 앙가르(바르셀로나), 경기창작센터, ISCP(뉴욕) 등의 레지던시에 참가했다. 2009년 첫 개인전 《Identical Times》(스페이스 크로프트)를 가졌으며, <젊은 모색 2013> (국립현대미술관)에 선정되어 예술가의 일에 대한 가치 산출, 사회적 유용성에 대한 <예술가 공무원 임용 규정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인터뷰 이경희 본지 편집인


이경희 포트폴리오 표지에 일회용 카메라를 든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구민자 제가 하는 일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전문 장비를 갖춘 완벽한 상태에서 작업하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편이거든요.

이경희 소재나 시각적 밸런스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작가가 있는 반면, 구 작가님은 내용과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구민자 예전에는 작업으로 내놓을 생각으로 시작하기 보다는, 하다 보니 정리해서 내보이게 된 경우가 많았어요. 최근에는 제 삶과 작업의 범위가 매우 밀착되어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긴 해요. 생활의 일부가 작업과 분리할 수 없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일상이 작업에 드러난다는 생각은 전에는 크게 못했어요. 나를 보여주기 보다는 사회 곳곳의 틈을 보여주고자 했거든요. 거대한 사회 속 시스템과 고정관념이 개개인의 일상에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파고들어,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고자 한 건데 그 과정에서 제 일상이 드러났던 거죠.

이경희 작업 형식에서도 과정에 집중하는 걸 볼 수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향연>은 12시간 동안 남녀가 나눈 사랑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대서양태평양 상사>와 <구민자 아트페어-성격개조 자기표현>은 저마다의 서사가 담긴 물건들을 모았어요. 작업설명에도 ‘여정’이라는, 시간성이 포함된 단어가 곧잘 등장하고요.

구민자 요즘의 미술이 영화나 책과 같은 다른 문화 매체에 비해 벽이 높은 편인데, 저는 다양한 방식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결과적으로 매체가 다양하게 나타난 것 같아요. <42.195>는 마라톤을 한 17, 18시간을 실시간으로 찍은 작업인데 최종 작업결과가 중요했다면 그렇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가지고, 단지 흔ㅋ쾌히 찍어주겠다고 한 비전문 촬영자와 고생하며 찍진 않았을 거예요. 제 작업의 완성은 누군가가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왜 이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생각하면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재료와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자주 등장하기도 해요. 전시에서 어떻게 보여주기를 염두에 두기 보다는 우선 주어진 여건에서 기록을 하고, 이후에 어떻게 전시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는 마지막에 보여지는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요.

<구민자 아트페어-성격개조 자기표현>, 설치, 킴킴갤러리, 2013 / 자료 제공: 구민자
킴킴갤러리의 off art fair에 참여한 구민자는 2003년-2013년 사이의 모든 물건을 판매한다. 그 동안 제작한 작업, 작업 관련 노트, 가구, 개인적인 메모, 책, 작업 노트, 일상적인 물품, 옷 등 자신이 소유한 모든 물건은 아트페어의 물품이 된다.

이경희 <구민자 아트페어-성격개조 자기표현>에서는 본인의 물건을 모두 내놓고 판매를 시도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심지어 다른 이에게 판다는 건 기존의 삶을 떼어놓는 것이니 쉽지 않았을 텐데요. 새로운 ‘자기’가 필요했나요?

구민자 실제 제 작업실과 집에 있는 것은 모두 나갔는데, 부족한 시간과 제한된 공간에서 기획하고 정리·분류하다보니 아쉬움은 있었어요. 특히 ‘정말 다 판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는데, 노트북이나 외장하드, 빨래감을 보며 고민의 지점이 생겨났죠. 그리고 쓰레기의 경우 곧 버려질 것임에도 나한테서 나온 것이니 내놓아야 하나 싶었고, 같이 사는 동생과 공유하는 물건도 온전한 나의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어요. 노트북 같은 경우는 팔겠다고는 했지만, 종종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요.(웃음) 소위 ‘잘 팔리는 작업’과는 거리가 있는 제게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같은 기간 동안 다른 성격의 아트페어를 한 것이 억지스러운 계기가 개입된 듯도 하지만, 제가 내놓은 물건들이 모두 다 팔린다면 정말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했어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 정말 중요한 물건은 매우 비싸게 매겨 팔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했어요. 그리고 만에 하나 다 팔린다면 무역회사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볼까 하고 아주 잠깐이나마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고요.

이경희 자신의 물건을 파는 것이 예술 행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간의 작품이 일상과 매우 밀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의 일상 생활이 작품 안으로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작업한 <겨우 살이>도 그러한 예라고 생각해요. 직접 짓고 담근 밥과 김치를 레지던시 방문객에게 내어주셨죠?

구민자 경기창작센터는 마트를 가려 해도 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나가야해서 그곳 사람들은 매우 불편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동네 분들은 매우 다양한 식물을 먹을 만큼 키워 수확하니까 나갈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러한 삶은 곳곳에 오랜 공을 들여야해요. 겨울을 나기 위한 김장만 예를 들어도, 그에 필요한 재료를 위해 3월부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계속 가꾸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갑자기 들어간 저는 그렇게까지 하긴 어려우니 그들에게 기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어요. 혹자는 이 작업을 지역 참여 성격의 공공예술로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나를 위한 김장’을 담그고자 했어요. 그리고 그 방법과 재료 수급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동을 하고 대가로 쌀과 김치를 받은 거죠.1

이경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는데 ‘공공예술’이라는 자장 안에서 본인의 작업은 어떻게 지역 혹은 지역민과 어떤 순작용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의 출발을 어떻게 잡나요?

구민자 보통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땐 공동의 삶의 가치를 이상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2010년에는 그 안의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하면 모여 살게 할 수 있을까’, ‘도시는 왜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변할까’를 주목했어요. 저는 당시 오동 팀에 속했는데, 오동은 인근 지역이 재개발 찬반을 두고 시끄러웠던 반면, (그런 영향을 전혀 안 받을 순 없겠지만) 그곳에 오래 산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생활했어요. 그런 집단 혹은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환경미화를 위한 벽화도 그들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벌어진 일이 그들에게 재미를 주거나 일상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된다면 공공예술은 유용한 것 같아요.

이경희 작가님의 작업은 특정한 인상을 주거나 자극적인 사건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되는데, 결국 그 일상에는 누구나 한 번쯤 의문해 보았을 사회구조의 문제점들이 어색하지 않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작품의 내용(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매우 차갑고 날카로운 ‘나의 문제’, 내가 고민하는 사회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가령, 대한민국 남녀 평균의 외모로 단체 맞선의 상황을 담은 <잘 살아보세>(2010), 대도시 타이페이로 와서 직업을 구하는 한 아주머니에서 출발해 작가가 현지 거리에서 직접 구직을 했던 <직업의 세계>(2008),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끌어낸 <예술가공무원법>(2013), 그리고 “예술가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재단과 지원자의 관계로 치환해 발족시킨” <구&양 문화재단>(2013)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겪으며 괴로워했을 결혼, 직장, 노동, 예술가 혹은 젊은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거든요.

구민자 <직업의 세계>는 타이페이 비엔날레 몇 달 전 리서치 차 갔다가 독특한 동네를 찾던 중 우연히 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분은 몇십 년 전 타이페이에 와서 일을 구하고 살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이후에도 한 번 더 만나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요. 처음 도시로 왔을 때 아주머니는 저보다도 훨씬 어린 10대였고, 차비와 당장 몇 끼 때울 수 있는 돈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한참을 듣다보니 대만이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만나는 점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대만의 근대화 혹은 우리나라의 근대화 중 단면을 떠올리게 됐죠. 가령, 도시로 보낸 딸로부터 돈을 받아 생활하는 가족과, 혈혈단신으로 낯선 곳에 가서 직업을 구하는 젊은 여자는 어떤 상황에 놓인 걸까. 아주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제가 그러한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될까 싶었어요.

<직업의 세계>, 퍼포먼스와 사진, 타이페이 비엔날레, 2008 / 자료 제공: 구민자
“타이페이에서 만나게 된 한 ‘원주민’ 아주머니의 이야기에서 작업은 시작되었다. 40여 년 전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돈을 벌기 위해 수도 타이페이로 왔다는 아주머니의 직업을 구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그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당시와 비슷한 다소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타이페이에서 직업을 구해보기로 했고, 내가 아는 간단한 한자를 이용하여 간단한 구직판을 만들어 거리로 나갔고, 결국 한 가정에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경희 그렇게 본인의 삶과 작업의 경계가 모호해 보이는 작업은 실생활에도 변화를 일으킬 것 같아요.

구민자 어느 정도는요. 예술을 하는 것도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것도 밥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라 볼 수 있는 걸까?’, ‘예술로서 하는 일과 생활 유지를 위해 하는 일을 동등하게 볼 수 있을까’ 하면서, 타이페이 작업 이후 일과 미술을 포개어 놓고 보게 됐어요. 작품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도 하지만, 제 경우에는 예술과 일의 일치를 생각하게 된 계기였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도 다시 보게 되고요.

이경희 <예술가공무원법>을 통해 예술가란 과연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만약 예술가가 공무원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다룬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구민자 그 작업에서는 예술가, 특히 공공을 위한 예술 행위를 하는 이들 외에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의 역할을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사회는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나라에서는 예술가가 구체적인 결과물을 가지고 예술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장 눈에 보이는 영향이 있기를 바라잖아요. 하지만 수치화할 순 없어도 작업실에서 공부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데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너무 몰린 것 같거든요. 예술이 눈앞의 민원을 처리한다거나 동네에 필요한 공공예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커다란 자장에서 예술이 지닌 다양한 층위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밖에서 당장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혼자 작업하는 예술가의 활동이 ‘일’이 된다면 어디에서 그에게 돈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과거에는 후원자가 있었고 오늘날에는 공공예술프로젝트에 나라가 지불하죠. 하지만 그런 것 외에도, 기초과학과 인문학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처럼 예술도 같은 레벨에서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장 눈에 보이는 기여가 없더라도, 누군가가 하는 행동이 쌓이고 또 쌓이다보면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그 쓰인다는 것도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죠). 그 많은 예술가가 작업실에서 하는 활동들은 어디로 가고 지금과 앞으로 어떻게 인식할 수 있나 하는 거죠.

이경희 예술가를 보는 관점이 너무 획일화 되어 있거나 자기 편의대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또 다른 작업에서는 이러한 평균이나 통계가 가하는 폭력도 다루었죠.

구민자 대표적으로 <24시간>은 한국평균생활시간조사를 참고한 건데, 평범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평균을 위해 통계치를 이용하는 걸 보면, 가령 한국의 산아율은 평균 1.3명인데, 실제로 1.3명을 낳는 사람은 없잖아요. 통계가 사람들에게 ‘평범한 삶이라는 게 이런 거야’라고 자꾸 얘기해서 사람의 생각을 안착·고착시키는 것 같았거든요. 사람들도 획일화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고요.

이경희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요?

구민자 노동에 계속 관심이 있고, 시간 혹은 통계, 제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규정된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시간과 관련해서는 어떤 칼럼을 보니까, 인간이 시간 관념에 익숙해진 계기 중 하나가 기차라고 하더라고요.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시계가 도입되고 하루를 24시간, 분, 초로 나누면서 일상생활에서는 ‘해가 저 산 어디쯤 떴을 때’ 라는 식에서, 몇 시 몇 분이라는 근대적 시간의 정확함을 따르게 된 거죠. 자연에 인위적인 기준이 들어간 거예요. 시작은 자연의 흐름을 수치화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자 한 것인데 삶 속에서는 틀과 제약이 되어버리는 상황, 그런 걸 자꾸 생각하게 돼요.

예술이 일상에 질문을 던질 때

분량6,818자 / 14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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