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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가능한 느슨한 건축

최장원 × 임국화

건물 대신 분위기가 공간을 만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궁리하는 건축가를 만났다. 건축가 최장원의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시도들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공간 사용자의 내면과 공간을 매칭시켜 사용자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을 발견하게 한다. 질문생산자로서 건축가 최장원이 던지는 질문들을 곱씹으며 건축의 경계를, 건축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한다. 


최장원 중앙대학교,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지난 일 년 동안 Studio-Parergon과 프로젝트 팀 Temporal Tactics로 서울과 뉴욕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중앙대학교와 광운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며, 디지털프로세스와 개념디자인을 접목하는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농장-건축Farming-Architecture이라는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건축가’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인터뷰 임국화 북노마드 편집자


임국화 먼저 작가이자 기획자로 알게 되었는데 건축 대신 작품, 드로잉, 질문이 건축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듣고 싶습니다. 건축가로서 지향하는 공간과 장소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최장원 저 역시도 왜 건축가가 전시나 다른 분야에 마음이 자꾸 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건축이라는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할 수 있는, 즉 제가 매개자가 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은 오브제나 제안이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건물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말 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방으로의 여행》 전시(테이크아웃드로잉, 2013)를 준비하면서 “건물을 짓지 않고 건축을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건축가라는 이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의 영역, 생각할 수 있는 크기가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그런 이야기를 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관심분야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 건축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마치 건물만 지어야 한다는 선입견이나 시각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는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습니다.

최장원, <작은 점들의 이야기 축제 제안 드로잉: 광화문>, 2013 / © 최장원

임국화 건물을 짓지 않으면서 건축을 하는 건축가, 곱씹어서 생각해보면 건축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견고한 어떤 형태를 가진 것만이 건축이라고 학습되어서 건물을 짓지 않으면서 건축을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최장원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가 하나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볏짚으로 집을 지은 첫째, 나무로 집을 지은 둘째 그리고 벽돌로 집을 지은 막내 돼지 이야기에서 늑대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막내의 벽돌집 하나였습니다. 은연중에 집은 그래야 한다는 귀여운(?) 고정관념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동화뿐만 아니라 좋은 집에 대한 기준 역시 땅값이 높은 곳에 세워진 집, 크고 넓은 집이라고 여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국화 지난여름 열린 전시 <방으로의 여행>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방이라는 공간이 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방이라는 공간을 실제적으로 구획 해보는 것보다, 개개인이 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장원 현재 그 사람이 가장 많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를 물어보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고 한 것도 아니었고, 방이라는 대상을 도면화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당사자도 집에 대해 각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집 그리고 방에 대해 이야기 할 곳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디자인 하고 새로 짓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은 만들어진 기성품 같은 공간에 살게 됩니다.

임국화 전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면서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주거공간에 대한 감각을 되살릴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하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최장원 새싹이 트기에 적절한 온도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스스로가 디자이너가 되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도 합니다. 공간 사용자들이 건축가,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을 발견한 것이 큰 의미였듯이 그런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임국화 말씀하신 것처럼 건축가를 만나러 가는 일은 매우 기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장원 인터뷰 과정에서 개개인의 공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공간에 대한 욕망이나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입니다.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계속 한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건축과 예술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건축을 하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건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저런 게 건축이야?’ 하고 질문을 만들 수 있으면서 동시에 ‘이것도 건축을 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제안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국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한 난민 관련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습니다. 난민이라는 이슈와 선생님께서 건축에 대해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최장원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Fridtjof Nansen이 난민들의 자유를 위해 발행한 ‘난센여권Nansen Passport’ 의 이름을 따서 <난센여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현재는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만약, 건축가가 탐험가의 정신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어떠할까? 2차원적인 도면에서 벗어나 3차원 공간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기억과 만날 수 있는 단계로 확장 시켜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난센여권> 사전 워크숍을 통해서 난민들에게 다양한 예술가들의 ‘문’을 소개했습니다. 손잡이가 여러 개인 문, 문을 열어도 또 다시 나타나는 문,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벽 그리고 유일한 탈출구 이자 선택의 문. 공간을 뛰어넘는 문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점과 점을 이어주는 문은 어떤 모습일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난민을 넘어서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제가 추구하고 싶은 건축에 대한 방향, 혹은 또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임국화 난민주간 축제도 기획· 진행하셨는데, 선생님께서 맡은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최장원 사실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는 난민이라는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우연히 레지던시 기간 중에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난민지원센터(이하 난센)에 가게 되었고, 자주 오가게 되면서 그곳의 난센지기(활동가)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난센에서 난민주간Refugee Week 축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6월 20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며, ‘난민주간’은 세계 곳곳에서 세계 난민의 날 지정을 축하하며 열리는 축제입니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처음으로 6월 15일부터 21일까지를 난민주간으로 설정하고 광화문광장에서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했습니다. 난민주간 준비를 맡은 난센지기들이 공간 구성 및 상징 조형물들을 기획하는 회의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행하면서, 회의 테이블에 의자를 내어주셔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도 하고 난민주간 축제를 같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임국화 광화문광장에서 공을 굴리며 진행된 퍼포먼스는 전시에서 소개한 드로잉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요?

최장원 전시 기간 동안 그린 드로잉들이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인 타이틀은 <점들의 이야기 축제>였는데, 제 드로잉 작업을 모티브 삼았고 2013년 난민주간 축제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 안에서 상징적인 무언가를 제안하기로 했는데, 어떤 장소에 고정된 상징물은 난민들의 상황과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난민주간 축제에 시민 참여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면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전시에서 소개했던 점의 형태가 발전된 구sphere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발전한 것입니다. 구 안에 이야기를 담아서 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이 걷는 속도와 공이 굴러가는 속도 혹은 공을 통해 난민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의 풍경에 주목하고 싶었고, 움직이는 조각과 사람들의 상호 작용이 건조한 광화문광장을 증발시키고자 했습니다.

최장원, <점들의 이야기 축제>, 광화문광장, 2013 / © 최장원

임국화 난민 보호시설이 존재하긴 하나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영종도에 설립된 난민 지원 센터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공간 시설이 난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시면서 이 사안을 가까이 보셨을 텐데요.

최장원 아직 영종도 난민 지원 센터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RSNK라는 젊은 활동가 모임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실사단으로 가서 현지의 상황이나 시설의 현황들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영종도 난민 지원 센터는 완공되었지만 프로그램을 작동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작동되기 전에 최소한의 장치 혹은 프로그램 제안을 통해 보다 좋은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설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공간 사용자 측면에 대한 고려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난민분들이 한국에서 정착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잠시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그분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왔을 때 적어도 이동권과 같은 기본권에 대한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건축에 그런 고민들이 녹아 들어가야 합니다.

임국화 우리의 일상과 개인의 사고,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난민을 위한 집’은 어떤 집이 될 수 있을까요?

최장원 난민을 위한 집, 이 말에서 괄호로 ‘난민을 위한’을 묶어야 할 거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과 사실상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우리가 차이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들에게는 물리적인 환경 보다 경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종도 난민 지원 센터 또는 화성의 외국인 보호소와 같은 시설이 존재하며, 분명히 단단한 벽과 평평한 바닥 등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집입니다. 난민들에게 이 공간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공간들이 얼마만큼 난민들과의 관계에 열려 있는지가 공간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경계일지도 모릅니다.

소통 가능한 느슨한 건축

분량5,644자 / 11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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