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공유에 대한 건축계의 대응
김경민, 신승수, 김하나
분량13,706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3년 10월 17일
유형좌담
1, 2인 주거가 급증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공유주택, 주택협동조합, 쉐어하우스와 같은 공유가치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다. 자본에 의해 제공되는 일률적인 주거공간보다는 지역을 중심으로 스스로 주변 사람과 힘을 모아 작은 공동체를 꾸려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나 학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주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행하고, 설계하는 3인이 모여, 각자 자신의 현재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공유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연대와 협력을 제안한다.
김경민 도시개발전문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하버드대에서 도시계획/부동산 분야 박사취득 후, 보스톤 소재 상업용부동산리서치회사 Property & Portfolio Research, Inc의 Senior Researcher 로 근무하였다. 2009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개발과 계획, Urban Computing을 강의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실패가능성을 언급한 『도시개발, 길을 잃다』 를 출간하였고, 『서울 갱고更考-Rethinking Seoul』(가제)가 출간 예정이며, 프레시안에 ‘김경민의 도시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신승수 건축가. 디자인그룹오즈 대표. 서울대 건축학과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공간사용자의 창조적 행위에 기반을 둔 도시공간 및 시설의 새로운 가능성과 조직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디자인그룹 오즈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제1회 젊은건축가상(200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0)을 수상하였고,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2010) 전시작가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공존의 방식』, 『공공을 그리다』,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 등이 있다.
김하나 소셜벤처. 서울소셜스탠다드.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후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를 거쳐 서울대 산업공학과 대학원에서 Human Interface System을 연구했다. 성나연, 김민철과 함께 서울소셜스탠다드Seoul Social Standard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빠르고 밀도 높은 성장 역사를 가진 서울Seoul을 배경으로, 사람/시간/공간이 만드는 다양한 관계Social 속에서 우리가 지지해야할 표준Standard은 무엇인지 발굴하고 만들어가고자 한다.
진행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도시 속 주거의 공유가치와 공유문화
박성태 파편화된 도시민의 삶에 ‘공유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축가, 도시개발전문가, 소셜벤처 운영자 등 패널 분들 나름의 위치에서 체감하는 ‘공유’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반응이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면 좋겠습니다.
신승수 저는 보편적이라고 믿는 획일적인 공간, 혹은 이질적인 다양한 공간 유형을 서로 혼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주택의 경우 건축법상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단독주택, 다세대, 연립과 같은 것들이 한 데 섞어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열린공간, 혹은 공유공간 중심으로 생활 방식을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
김하나 최근에는 1인 주거인을 위한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물건이나 공간은 어떤 적정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거기에 맞게 개발되고 디자인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증가하는 1인 주거인의 소비 수준에 맞춰 기능을 복합/간략화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풍부한 경험을 향유할 수 있거나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또 하나, 집은 보통의 1인 경제 규모에서는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재화입니다. 때문에 빌려 쓰는 형태로서 임대주택의 거주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소유의 공유, 즉 토지와 건물의 소유를 분리하여 공유하는 방식, 또는 각각의 소유권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김경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 Michael Porter 교수는 이미 2006년에 공유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의 가치 극대화를 강조한 측면이 있지만 지역경제와 사회조건들을 개선하면서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공유가치는 단순히 기업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공유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역 클러스터 구축’입니다. 이는 기업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그곳의 인프라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 학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 환경이 개선된다면, 양질의 노동력이 들어와 살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결국 기업에게 안정적인 양질의 노동력 풀pool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제가 『도시개발, 길을 잃다』(2011)를 쓰면서 대규모 개발로 인한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지역의 개발사업을 수행하는 사회적기업인 ‘지역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뜻있는 분들과 어반하이브리드Urban Hybrid라는 소셜벤처를 설립하고 공정개발Fair Development의 실현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공유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커뮤니티 공간과 공유사무co-working 공간을 마련한 후, 벤처 또는 사회적기업 같은 여러 아이디어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진정한 협업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공유를 함으로써 더 큰 가치가 창출된다는 ‘공유의 비전shared vision’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공유 문화shared culture’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성태 산관학에서도 다양한 실천을 통해 공유가치를 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일까요?
신승수 제가 진행했던 공공임대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크게 세 개의 이슈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공공임대주택의 대부분은 벽식으로 진행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거의 처음으로 라멘조1 주택을 실험하면서 공간의 유연성이 커졌습니다. 둘째, 방치된 시유지를 활용한 계획이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부지의 폭이 14m 밖에 안 되는 길고 좁은 대지였다는 겁니다. 처음 요구된 아파트 유형에 적합한 땅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유형’에 대한 질문이 필요했고, 건축법상으로 연립주택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프로젝트를 풀었습니다. 셋째, 조합 방식에 대한 겁니다. 31개의 전용면적에 14㎡의 단위세대를 어떻게 조합할까 고민했습니다. 개별공간의 유효면적도 늘리면서 쓸모 있는 공유공간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라멘조의 장점을 살려 1, 2층과 3, 4층의 매스mass를 어긋나게 수직조합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고 공용의 커뮤니티 데크와 세탁실 등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곳을 오랫동안 사용해온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였습니다. 기존에는 이곳이 인근 주민들의 주차장, 텃밭 등 작지만 나름의 유용한 삶 속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지 안쪽에 제대로 된 텃밭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현행법상 조경면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결국엔 옹색한 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필지 단위의 공유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나 마을 단위의 공유가 고려된다면 소공원이나 마당을 만드는 편이 공유공간으로서는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마찬가지로 주차, 합벽 건축을 통한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과 공공주택도 고려할만 합니다. 산관학을 가로질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용방법과 지속 가능한 비전을 갖는 정책이 밀접하게 관계를 가질 때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공유 가치와 공유 공간이 만들어 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경민 앞서 신승수 건축가가 이야기 한 획일적인 유형, 기준 등의 문제는 저소득층 임대를 포함한 주택공급에 정부가 공급자로서 과도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부 주도의 공급 정책 가운데에서도 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도 공급 위주의 정책을 주로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저소득층 임대아파트가 게토화되면서 사회문제가 되다보니, 수요자인 저소득층 서민에게 직접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이죠. 즉, 공급 측면(건설업자지원)에서 수요 측면(저소득층 지원)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겁니다. 사실 서울시와 중앙정부에도 바우처voucher 2를 이용한 정책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우리도 현재 이러한 전환기에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럼 저소득층이 바우처로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 집은 누가 건설할까요? 미국은 지역 사정을 아주 세세히 잘 아는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들이 저소득층 임대/분양주택을 개발합니다. 건물 단위로 동네에 필요한 물량을 아주 조금씩 개발을 하는 거죠. 대규모 철거를 바탕으로 했던 우리의 뉴타운 방식이 아니고요. 동 또는 구 단위의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들이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을 듣고 같이 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지역 커뮤니티는 이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의 이사회에 관여하면서 큰 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가 없는 경우 미국은 저소득주택세금공제제도Low-Income Housing Tax Credit, LIHTC라는 금융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미국의 LIHTC 정책은 비영리 개발회사가 커뮤니티를 위한 개발을 하고 그에 대한 1억 원의 세금공제를 정부로부터 받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영리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데, 이때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이 세금공제를 가령 8~9천만 원에 삽니다. 그렇게 해서 비영리 개발회사에는 자본금이 발생하고, 월스트리트의 회사는 1억 원에 대한 세금을 8~9천만 원만 내기 때문에 1~2천만 원에 대한 이익이 발생합니다. LIHTC는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에 비영리 개발 회사를 통해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개발에 투자를 이끌도록 했습니다. 즉, 정부 지원이 아닌 새로운 자금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월스트리트와 비영리 개발회사를 이어주는 중개금융회사가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김하나 지역 단위의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3영역의 역할은 정부나 기업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단편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사업인데 일의 계약과 협업의 방식은 너무나 관습적일 때가 많고, 사업의 관리 역시 독자적인 척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기존에 평가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때로는 너무 단기간의 물리적 성과를 중심으로 결과를 측정하는 것도 지적할만한 문제입니다.
지역 기반의 공공 개발업자로서의 가능성
김경민 건설회사와 개발업자developer는 다른 주체입니다. 개발업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죠. 우리나라 건설회사처럼 분양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유한 건물의 가치를 높이면서 이익을 만드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지 자신의 건물뿐만 아니라 건물이 위치한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건설회사들이 개발업자의 역할을 하면서 도시에 위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익을 위해 대규모 철거로 건물을 짓고 분양한 다음 그 지역에서 빠져나와 건물과 지역의 가치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지역에 필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주체는 지역기반의 개발업자, 그중에서도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지향하는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업자들입니다. 지역에 맞는 프로그램이나 기능이 들어간 건물들을 짓고 운영하면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쉐어하우징을 한다면, 쉐어하우징을 건설하고 분양한 후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10, 20년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회사들이 현재 부재하다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 한 가지를 더 이야기 하면, 이런 회사들이 커나갈 수 있는 발판, 특히 제도 중에서도 금융지원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사업은 굉장히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지역에 헌신하려는 비영리 개발회사들을 위해 장기 금융상품들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혜택들은 단기간에 끝나서는 안 되고요. 현재 부동산 시장의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이 폭증한 이유는 수요에 대한 분석 없이 2%의 낮은 이자율로 대충 지어보자는 욕구가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낮은 이자율의 금융상품이 나온다면 이는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또한 정책의 목표 역시 공급 확충 같은 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고차원의 정책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박성태 결국 우리가 공간을 단순히 나눈다는share 것보다 협업collaboration으로 넘어와야 한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우리가 훨씬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야 가능할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유가치의 실천 방식에서 ‘연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요? 필요하다면 그 방식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꼭 필요치 않다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텐데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공유가치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김경민 공유사무공간이 공간에 연대가 이루어지는 경우라고 봅니다. 미국과 유럽에는 공유사무공간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공유사무 겸 쉐어하우스 공간의 개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약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가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또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들과 공유사무공간에서 일한다면 개발 이후 운영의 측면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는 공간을 통한 다양한 기업들 간의 연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의 쉐어하우징 문화에서도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쉐어하우징과 중산층 또는 중산층의 소비와 문화를 추구하는 계층을 위한 쉐어하우징, 이렇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주거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일테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끼리 사는 거죠. 그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스럽게 뭉친 것입니다. 주거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 간의 연대가 나타났다면, 사무공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하나 요즘 청년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의 공통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창업 공간 지원입니다. 민간과 공공을 나누지 않고 현재 서울에는 크고 작은 공유사무공간이 20여 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은 많지 않은데요.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한다는 차원이 아닌 어떤 쟁점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팀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팀의 규모에 맞춰서 공간을 지원하는 방식도 고려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다른 기업과의 협업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신승수 주거의 유형에 대해 잠깐 말씀 드렸는데, 문제는 유형 자체에 있기 보다는 고착된 유형이 팽배한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도시의 다양성은 지속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최근 1, 2인 가구가 증가한다는 경향을 보이면서 모두가 원룸만을 만들려는 획일적인 공급방식은 고착된 유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찾아가게 된다면 기획 역시 고착된 유형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여성전용주택, 음악인주택 등 서울시에서 비교적 많은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KK리서치도 국내에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춤 공간을 제공하는 특화된 건축공간이 앞으로도 더 부각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맞춤형 공간을 계획하려면 기획단계가 복합적이고 탄탄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문제인 것 같고요. 건축의 경우 업무대가 기준을 보더라도 설계 단계를 기획설계, 기본설계, 중간설계, 실시설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용역이 발생하는 것은 기본설계부터입니다. 결국 기획설계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지는 거죠. 더군다나 기획설계에는 운영과 유지관리 등의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광범위한 부분까지도 고려되어야 하는데 대개는 규모 검토 정도로 치부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중소규모 건축에 대한 말씀도 드렸지만, 특히 중소규모 건축물의 경우에는 기획단계가 너무나도 중요한데, 그 기획이 너무도 터무니없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맞춤형 기획은 세대수와 면적, 유형을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소, 사람, 운영방식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김하나 기획의 중요성 문제가 아까 말했던 지원에서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민간이 운영해서 잘되는 곳에서 수익이 나는 곳이 한 군데도 없고요. 공공 같은 경우야, 잘 되는 곳은 잘 되겠지만, 안 되는 곳은 공간은 만들어놨지만 실질적인 이용률이 20%도 안 되는 곳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리는 다 있지만 아무도 와서 일을 하지 않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쟁점이나 주제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팀이 모이고, 그 팀의 규모에 맞춰서 공간을 지원을 하거나, 이렇게 프로젝트베이스로 일이 기획, 발주가 되고 돌아간다면 그런 게 자연스럽게 콜라보레이션도 되고 여러 가지 화학적 작용도 일어나면서 사업이 잘 될 텐데 지금은 그냥 공간을 열고, 이 공간 다 모여라, 그러니깐 다 결이 안 맞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서로 서먹하기도 하고, 이런 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때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똑같은 주제를 가졌으니깐 같이 한번 이야기 해봐, 라고자리를 마련해주는데, 나가보면 사실 왜 우리가 같이 뭘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혁신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은 굉장히 구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의 유연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승수 전시공간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은데, 전시공간의 기획단계에서 운영자분들과 얘기를 해보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건축가가 공간을 그냥 비워두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공간을 실제로 운영하시는 분들이 전시기획에 맞추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실상은 대부분의 전시 공간들이 온갖 패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고, 대형 전시업체들이 깊숙이 이 일들에 개입하죠. 실제로는 운영하시는 분이 이런 공간을 마주하면 어쩔 도리가 없게 되는 거예요. 뭔가 해 보려고 그러는데 전시품을 해체하는 것은 기물파손이 되고, 빈 공간이 없게 꽉 차 있어서 새로운 유형의 참여형 전시도 불가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이랍니다.
김경민 디자인에 함몰되어 기획에 대한 중요성이 간과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내부를 어떻게 사용할 지를 생각하디지 않은 채로 역사적인 장소에 들어갔죠. 근현대 역사를 지닌 동대문운동장 뿐만 아니라, 하도감 터3 와 같은 유적도 발굴되었죠. 건물의 연건평이 63빌딩의 1/4에 해당하는 건물인데도 짓기 전부터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건물 준공이 다 되어 갈 때쯤 고민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설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앞으로는 건물 내부에 어떤 기능이 들어가야 할지, 유연한 기능의 공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태도가 요구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근현대 자원으로 공장과 창고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내부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공간 유연성 차원에서 정말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외면 받고 있죠. 예를 들자면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던 삼우보세장치장(공공기관 소유의 창고건물)은 지난 2012년에 철거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민간업체들이 공장과 창고를 새롭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성수동 수제화타운에 위치한 대림창고도 있습니다. 낮에 보면 벽돌로 쌓아 올린 창고건물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장소에서 외제차의 신차발표회를 포함해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납니다. 이는 근현대 산업자원이 새롭게 사용되는 사례로 볼 수 있겠죠. 새로운 건물을 건설할 때도 기획이 반드시 요구되지만 역사적인 유산, 특히 건축유산의 경우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따라야 합니다. 건축가, 기획자, 개발업자developer,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양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유연한 공간의 확장을 위해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김하나 결국 기획, 설계, 운영이 다 잘 어울려져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이 제가 속한 서울소셜스탠다드의 큰 화두입니다.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고 지역의 자산을 발견하고 가치를 찾아내는 것, 사업구조를 만들고 자금을 확보하는 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적절한 규모의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고 구체적인 물리적 토대를 만드는 일, 나아가 그것을 운영하는 모든 일이 규모가 작더라도 다양하게 세분화된 산업구조 안에서 생략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때로는 힘에 부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고요. 또 일의 규모가 작으면 예산의 규모 또한 작아서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점을 꼽자면 일의 범위가 수직적으로 쌓이는 것인데, 이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연결지점이 있다면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양한 영역과의 협력과 연대 속에서 생성되는 공유가치
박성태 기존의 주거나 공간 제공 방식에 모든 사람들이 맞춰 살면 사실은 희망이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한다면 나름대로 새로운 주거나 공간들을 만들고, 자기가 살 터, 곳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신승수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도 충분한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쉐어하우스와 같은 수준에서는 개인이 할 수도 있지만, 그걸 뛰어 넘는 규모에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철도역은 자체는 철도청이, 그 앞 광장은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두 영역이 만나는 경계에서 불합리한 공간 환경이 만들어지는 웃지 못 할 상황들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사일로Silo4 행정인 거죠. 그런 벽들을 허무는 것, 아까 말씀하신 협업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경민 연대와 협력 그리고 삶의 터전과 관련해서 창신동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 해 동안 연구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대화 하면서 지역활성화가 정말 필요한 지역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환경이 도저히 자체의 동력만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연대와 협력은 2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차원에서 지역내부와 외부, 즉 지역 커뮤니티와 외부 전문가그룹간의 연대 그리고 산업차원에서 산업내부와 산업 외부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창신동은 동대문 패션시장의 의류를 생산하는 봉제공장 밀집 지역이자,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이들 봉제공장이 동대문 패션시장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어요. 1970년대 전태일 열사가 활동할 당시만 하더라도 봉제공장들은 규모가 컸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부터 동대문 패션시장 2~3층에 있던 봉제공장들이 창신동으로 이동하면서 점차적으로 공장 규모가 작아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2인 봉제공장들이 많은데, 1~2인 기업들은 완전히 파편화된 조직들이기 때문에 도저히 동대문 패션시장과는 파워게임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연대를 해야 합니다. 그들끼리 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합을 만들어서 덩치를 키운 다음에 동대문 패션시장이 아닌 다른 유통 채널과의 관계를 맺는다면 그땐 산업에서 일정 위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대문 패션시장과의 종속적 관계를 탈피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경우 다양한 조합들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봉제산업 프로세스에 있는 패턴 조합, 재단 조합, 샘플 제작 조합 등 횡적인 조합도 가능하고, 샘플, 패턴, 재단기능인들이 함께 하는 종적인 조합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 다양한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창신동 주민들의 노동시간이 12~14시간에 이르는데, 이런 노동시간을 갖는 사람들에게 본인 재개발에 시간 좀 쓰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집에 오면 샤워하고 자야죠. 재교육, 재개발이 불가능한 구조의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 전문가들이 외부 패션디자이너들과 연대 모색 또는 새로운 유통 채널을 붙여주는 시도 등 다양한 노력을 제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지역 내부에서 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조합들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또 연대해서 또 다른 조합을 만들어 외부 전문가들이 도와주고 협력한다면 공정 경제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이는 공유가치가 실현될 발판이 될 겁니다.
신승수 저 역시도 창신동 길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창신동은 경사지를 따라 이화동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요. 건축적으로도 다양한 자생적 유형의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예를 들면, 높낮이가 다른 상황에서 윗 공간과 아래 공간으로 각각 진입하는 건물이라든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흥미로운 공간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창신동이라는 지역의 특징을 잘 반영하여 공용주차장을 활용한 커뮤니티 거점 시설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신동의 공용주차장들은 도로가 끝나고 골목으로 시작되는 초입에 있습니다. 일종의 접점 공간인 셈이죠. 서너 개의 주차장을 어린이집이나 마을도서관, 재활용센터 등의 커뮤니티 시설과 결합하여 복합건물로 개발하면 어떨까요? 군데군데 위치한 빈집을 돌봄 서비스의 거점으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던 백남준 자택 부지, 박수근 가옥, 다양한 유형의 이민자 커뮤니티 거점도 창신동의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담긴 장소이자 문화적 자산이죠.
김경민 공유가치 창출은 정말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가치라는 것은 어느 정도 계량화가 가능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유가치 창출이 단순히 허망한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역활성화를 유도하는 전략이 실행된다면,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들이 절대로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합니다. 공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속적인 플랫폼이 요구되는 것이죠. 이 플랫폼은 영속적인 조직의 형태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매출을 일으켜 지역에 환원하는 순환구조를 제공해야 합니다. 즉, 지역에 자본이 일정 부분 순환되면서 지역활성화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승수 저희 회사에서 창신동에 프로젝트를 하면 오늘 오신 분들과 다 함께 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결을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원래 공공公共이라는 단어의 앞의 공은 ‘연다’, 뒤의 공은 ‘나눈다’는 뜻이잖아요. 여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 같습니다. 일단 자기의 패를 꺼내 보여주어야 재미난 게임도 할 수가 있고, 주거니 받거니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공공이란 게 개인이 없고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굉장히 개인적인individual 이해관계와 관심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위에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의 집을 짓는 일이니까요. 저는 오늘도 여러 패를 봐서 좋았고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간의 공유에 대한 건축계의 대응
분량13,706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3년 10월 17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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