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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건축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때

전상인, 이우영, 안병민, 임동우, 박성태

남북한 건축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본 경험은 없다.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건축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미비하다. 그래도 최근 북한을 알려는 노력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도시민의 삶을 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룬다. 지난 5월 29일에 열린 학술대회, <평양, ‘도시’로 읽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참여했던 사회학자, 교통전문가, 건축가 등이 모여 이런 관심의 내부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자리를 가졌다.1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 일본 츠쿠바대학 대학원 사회과학연구과를 졸업하였다. 한국교통연구원 북한 연구실장과 UN ESCAP 국가전문가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임동우 PRAUD 소장. 하버드대학교 디자인스쿨에서 도시설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보스턴 소재 설계사무소 PRAUD를 운영하면서 몇 개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의 저자이다.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사회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왜 북한과 평양 연구에 집중하는가

전상인 근래 북한이나 평양에 대한 도시나 건축분야의 관심이 왜 갑자기 늘었는지부터 얘기했으면 합니다. 박성태 국장께서 보시기에 우리나라 건축계가 이 시점에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관련 현안이 있습니까?

박성태 남북한 정권이 바뀌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훨씬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리서치를 했고 건축계의 몇몇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비슷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전상인 그렇다면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교류가 늘어난다고 할 때 건축계의 관심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 건축건설 경기의 부진 상태에서 모종의 돌파구로 기대하는 것인지요?

박성태 물론 일부는 기대하기도 합니다. 사실 북한에는 평양을 비롯하여 몇몇의 주요 도시가 있지만 ‘충분히’ 개발된 도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개방이 되면 제2, 제3의 도시들에는 분명히 건축적, 도시적 작업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인도적인 관점, 혹은 남북의 건축가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게 필요하겠죠.

전상인 이우영 박사는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하신 사회학자로서, 특히 북한의 미시연구를 선도해 오셨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건축이나 도시, 혹은 도시계획 분야가 북한 연구에 동참하는 최근의 추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우영 근본적으로 굉장히 바람직하게 봅니다. 사실 매우 지지부진한 것 같지만 지난 10년 동안 북한에 대한 관심에는 감수성이 다층적으로 존재합니다. 민족이나 이념 같은 과거의 기계적인 것에서 벗어나 새롭게 보려 합니다. 예컨대 북한을 증언할 때 민족이나 통일이 아닌 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려 하죠. 통일이 되어 접촉하게 되는 것은 실제 일상, 여가 등일 테니까요.

전상인 몇 년 전 임동우 소장이 쓴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는 사실상 북한의 도시, 혹은 평양의 건축 연구에 있어 일종의 기폭제가 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어떻게 개인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임동우 아무래도 밖에서 있다 보니 한국을 광범위한 맥락에서 보게 됩니다.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가 하나의 문화권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영향으로 저도 한국에 국한된 리서치를 한다기보다는 제가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시각을 넓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가 평양이었습니다.

앞서 세대교체를 말씀하셨는데, 건축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연구를 하다 보면 다른 영역 -사회학, 정치, 경제 등- 에서 연구한 북한보다는 건축계의 북한 도시 연구가 많이 뒤처졌다는 것이 밝혀지다 보니 그 필요성을 느껴 더욱 활발하게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전상인 정리해 보면, 북한의 도시 혹은 건축 연구 붐은 시대와 세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관련 정보와 접근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

이우영 저도 건축계가 최근 북한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인도적 지원에서 건설 혹은 건축이 실질적으로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와 건설 노동자 모두가 스스로 남북 교류의 역사에서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자체가 주변의 관심을 촉발시켰다고 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단지 경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보를 얻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설계는 어떻게 하는지, 미장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노하우가 건축계는 좀 더 생생하고 다음 단계의 고민이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정보가 축적되는 곳이니까요.

전상인 구글의 위성사진과 같은 장비가 북한의 도시와 건축 연구에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요?

임동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정보들이 나옵니다. 단순히 도로의 폭, 구조뿐만 아니라 건물의 폭이나 지붕의 재료를 보다보면 이 건물이 주거용인지 공장시설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재면 높이도 나오죠. 그래서 구축환경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구글에서 이젠 자료로서의 활용가치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한 위성사진을 공개하고 있고, 또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어떤 시설이 어디에 있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구글어스나 구글맵에서 일일이 확인 가능해지면서 건축에서는 특히 유용하게 되었습니다.

전상인 건축계에서는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한 업데이트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지요?

박성태 공개된 자료는 구글이나 유튜브에 있는 정도입니다. 예로, ‘북한에도 개인 건축가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특정 건축가의 크레딧을 찾아보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만나고 싶어도 누구를 통해서 어디로 연락을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에 북한 건축가들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있거든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북한 건축계가 아주 조금씩 윤곽이 드러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임동우 ‘백두산건축연구원’2이 남한과 교류를 한다면 연구의 수준이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전상인 참고로, ‘백두산건축연구원’은 어떤 곳입니까?

임동우 평양의 주요 도시정비 및 건축물 사업을 담당해서 설계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관입니다. 그런 곳은 아무래도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 테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도 알려줄 수도 있을 겁니다.

도시로서의 평양, 그 보편성과 특수성

전상인 지난 학술대회에서는 평양이 하나의 도시로서 가지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따져보고자 했습니다. 이 박사께서는 일상적 측면에서 평양 역시 ‘사람이 사는 도시’라는 주장을 하셨죠.

이우영 보편성을 먼저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해도 남북 모두가 근대공업국가라고 봅니다. 발전 전략에 있어서 남쪽은 자본주의를, 북한은 사회주의를 택했지만 근대공업국가로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도시 중심, 도시적 삶’ 입니다. 이것이 가장 응축되어 빠르게 나타는 곳이 평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북한의 고유성은 사회주의입니다. 저는 북한 전체, 그리고 평양의 도시 건설의 정점은 60년대이고, 70년대 이후부터는 조금씩 왜곡되었다고 봅니다. 왜곡의 특징으로 북한의 정치 체제 자체가 조금 다운된 것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북한의 모습으로 유일체제 – 김일성 김정일 라인으로 이어지는- 라는 것은 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 된 것이고, 지금 보이는 혁명적 조형물들도 70년대 혹은 80 년대에 생긴 것입니다. 그때부터 평양의 특성이 근대공업도시적인 것에서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도시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전상인 한편 임 소장께서는 평양이 자본주의 도시를 반면교사로 놓고서, 자본주의 도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노력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임동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어떻게 하면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막음으로써 우리가 노동계층에 더 행복한 삶을 영위시켜주겠는가’ 가 이념적으로 나타난 것이 사회주의 이념이고,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막고자 한 것이 사회주의적 도시계획이론이기 때문에 굉장히 인상적이고 배울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도시화가 계속 진행되어 온 자본주의 도시에서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사실 뻔합니다. 그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 듯이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라 예전에 이미 나왔던 어떤 논리들을 배우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사회주의 도시계획에는 저희가 분명 취해야 하는 논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양은 이우영 박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하는 곳이라 봅니다. 북한 또는 평양은 정보 접근이나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보니 도시가 마치 특수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도시는 일상이 없으면 유지가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저희가 보지 못했으니 간과했을 뿐이죠. 두 부분 모두가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상인 자본주의에서도 도시는 비록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계획의 대상입니다. 도시계획 자체를 부정하는 자본주의 도시는 없습니다. 적어도 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도시와 자본주의 도시가 서로 접근하는 대목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양은 사회주의 도시로서의 특성도 많지만, 한국전쟁 트라우마도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우영 평양은 한국전쟁 때 가장 피해가 컸습니다. 기존의 도시가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계획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70년대로 넘어가면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지는데, 아시다시피 평양은 전쟁 이후로 옛 흔적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민족적인 것들을 도시계획에 넣어야겠다는 고민들이 있었고 이것을 건축에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개선문>은 위에서 보면 콘크리트지만 전통적인 지붕문양으로 표현했습니다. 북한에서 전쟁 피해가 가장 컸던 평양은 새로운 도시 건설 과정에서 기존의 민족문화유산을 집어넣고자 하는 고민을 한 거죠.

전상인 다른 근대국가들도 수도를 계획하거나 건설하는 과정에서 민족문화를 크게 강조했습니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말하는 ‘전통의 창조’도 이런 맥락이죠. 그런데 북한의 불편한 진실은 민족문화라는 미명 하에 개인 우상화 작업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자연히 ‘전통의 날조’도 없지 않았고요.

이우영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예컨대 남쪽의 민족문화의 대부분은 유신정권에 만들어졌습니다. 유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족문화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족문화와 관련된 정책, 시설, 기관이 사실 유신의 덕입니다. 이렇듯 민족주의와 민족문화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입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상인 남한의 민족문화론에도 문제점이 많지만 특히 북한의 민족문화는 김일성 우상화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우영 민족문화에 대한 개념이 저희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민족문화에 시간성을 강조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공간성을 강조합니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옛것old, traditional에서 민족 문화를 찾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지역적인 것, 우리 동네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죠. 전자는 원형보존에 강점이 있는 반면, 박제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에서는 현재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원형은 잃어버렸지만 실생활에는 잘 들어와 있습니다. 예로, 북한의 전통민족음악은 오케스트라로 편성이 가능합니다. 이 사실은 전통음악의 음계를 바꿨다는 것인데, 남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죠.

건축도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의도를 갖긴 하지만 <개선문>, <인민대학습당>의 지붕 구조에서도 보듯이 민족문화의 현대화를 고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안병민 평양의 건축은 1970년대 중반부터 소위 주체사상화 실현의 수단으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은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며, 따라서 건축창작도 비반복적이어야 한다고 지시하였습니다. 따라서 건축을 예술적으로 조형화하고 다양하게 형성하라고 한 것입니다. 평양에서는 1972년에 <만수대기념비>가 건립되었고, 1982년에는 김일성 출생 70 년을 기념하여 <주체사상탑>과 <개선문>이 건설되었습니다. <만수대예술극장>, <인민문화궁전>, <평양체육관>, <평양산원>, <빙상관>, <창광원>과 같은 대형 공공건물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최근에 북한의 예술성, 비반복성을 강조해 왔던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웅장한 평양’, ‘세계적인 혁명의 심장, 평양’으로 주로 극장국가의 큰 건축물들을 세웠지만 최근 김정은은 건축의 ‘선 편리성, 후 미학성 이론’ 이라는 새로운 건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굉장히 아름답게, 미학적으로 건축물을 지었지만, 북한이 제한된 재화를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건축을 시도하면서, 일단 아름다움 보다는 주민의 편리함을 우선시하는 정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이후 피폐한 경제상황을 반영해 조형의 예술성보다는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라는 지시들이 이제는 당의 정책으로서 고착화한 것 같습니다. 일단 평양의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부분 보수하는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상인 북한에서 전문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는 어떻게 양성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병민 북한의 건축 관련 전문인력 양성은 1차 기관으로 대학, 2차 기관으로는 평양과 지방에 설립된 연구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대학으로는 평양건설건재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성공업대학, 함흥건설대학, 평양철도대학, 함흥수리동력대학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편 연구기관으로는 국가과학원 건설건재분원, 평양도시설계연구소, 평양도시계획설계연구소, 건설설계정보센터, 대외건설기술봉사센터, 건설경제 및 기술연구소, 백두산건축연구원, 각 도급 단위에 설치된 도시설계연구소가 건축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권위 있는 기관으로는 평양건설건재대학, 평양도시설계연구소, 백두산건축연구원, 국가과학원 건설건재분원입니다. 이렇게 양성된 건축 전문인력들은 조선건축가동맹이라는 별도의 조직체를 구성하여 매우 조직적으로 활동합니다. 2010년 김정일은 중국 동북지역의 거점 도시인 대련과 천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김정일은 중국의 두 개 개방 도시를 나진- 선봉의 모델로 선정한 듯합니다. 2010년 하반기 북한은 평양도시설계연구소, 백두산건축연구원, 라선건축설계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나선시 도시개발정형을 김정일에게 보고하였습니다. 3D 로 제작된 김정일 브리핑 자료가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된 바 있는데,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평양, 북한 최상의 도시인가?

전상인 북한 전체 지역에 대해 평양만을 특권화, 무대화 시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도를 특별 관리하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방식은 과거 왕조 시대의 왕도王都를 연상케 합니다만. 평양은 김일성 왕조의 ‘평양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우영 최근 북한 연구에서는 ‘평양이 최상인가’ 하는 재미있는 논란이 있습니다. 삶의 수준과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신의주, 해령, 청진이 평양을 뛰어넘는다고 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러한 변화 shift가 있다면 정치적 안정 또는 통합성에 균열이 가지 않을까요?

전상인 제도적으로 평양은 직할시 아닌가요?

안병민 직할시입니다. 나선이 특별시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우영 박사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김정은이 지도자가 된 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2007~2008년에 가서 본 북한 경제지도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반드시 확인 시찰을 가서 지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직접 확인을 한다는 겁니다. 과거 김정일은 아파트를 시찰할 때 외관 정도만 보는 반면, 김정은은 실제로 들어가서 주민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부대에 가서도 목욕탕에 가서 직접 손을 넣어 물이 뜨거운지 확인합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느끼기에는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자신들과 함께하는 지도자, 그리고 인민들이 굶지 않도록 가장 필요로 하는 유일시장을 만들어줍니다. 김정은은 <개선문>, <김일성 경기장> 등 기념 건물에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남포의 <서해관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평양의 가장 큰 취약점은, 평양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동강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수심이 얕습니다. 이곳에 김일성이 서해의 관문으로 남포관문을 만들어서 수심을 8~9m까지 올려 배가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남포 안으로도 배가 들어왔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인 대우해양조선이 조선소를 짓기 위해서는, 남포의 서해관문에 5만 톤짜리 배밖에 못 들어오기 때문에 저 관문을 개량해서 10만 톤의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 북한 측은 저 남포의 서해관문은 김일성 수령님께서 만든 기념비적인 건물이기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옆에 새로운 것을 하나 지어라고 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기념비적인 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남대문 이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그 앞에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내어줍니다. 이는 그들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향한 신화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성태 정보기술이 발전에 따른 변화도 감지됩니다. 동아일보에 탈북자 출신 기자가 있는데, 이 분에 대해 전설적으로 돌고 있는 소문이 있습니다. 한번은 요즘 북한이 저렇게 시끄러우니 평양 주민들이 전투준비를 하는지 알아보라고 데스크에서 지시하면 그 기자가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북한에 전화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의 항공과 철도

전상인 지난번에 안 선생께서 평양의 교통을 이야기 하시면서 ‘항공’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좀 해 주십시오.

안병민 북한의 항공교통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국제선으로 이용되는 공항은 순안공항 1개소이며, 국내교통수단으로는 거의 이용되지 못합니다. 국내선 정기항로는 평양-삼지연(백두산)간 노선뿐이며, 청진(어랑공항), 함흥(선덕공항), 원산 (갈마공항) 등은 비정기편으로 운항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승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객기보다는 소형 헬기(15인승 수준)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국적항공사는 고려항공인데, 현재 고려항공의 국제선 정기노선은 평양-블라디보스톡, 평양-북경, 평양-심양, 평양-상해 구간이며, 필요에 따라 비정기노선이 운행됩니다. 고려항공의 보유 항공기는 25대 수준 인데, 대부분 기령이 40년 이상 된 TU-154, TU-134, IL-62 등 노후항공기로서, 안전성문제로 현재 EU지역 취항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한 보유 항공기 중 EU지역 비행이 가능한 항공기는 2010년에 도입한 TU-204 기종 2대 뿐입니다.

또한 공항시설도 매우 취약합니다. 비행기 이착륙 관련 전자 장비가 부족하고, 활주로나 유도로 상태도 매우 열악합니다. 계기 이착륙 보다는 조종사의 직감이 우선되는 상황인 것이지요. 6~7년 전까지 남북한 간 서해직항로가 개통되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여객기를 이용하여 북한의 평양이나 백두산 관광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북한 비행기를 별도의 안전대책이 없는 상태로 이용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부 측의 높은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동우 지난번에 남북한 간의 철도가 물리적으로 연결이 된다고 해도 전압 등이 달라서 실제로 이동할 수 없다고 했는데,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어떻게 됩니까?

안병민 많은 분들은 한반도종단철도가 연결되면 우리 기차(기관차와 객차 포함)가 부산에서 유럽까지 직접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운행되는 대부분의 국제여객열차는 자국의 기관차가 자국 구간만 운행하고, 타국에서는 그 나라 기관차가 견인하는 시스템입니다. 그 이유는 차량시스템이나 신호, 통신체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낙반 사고나 철조 유실 등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현지 언어로 급한 비상 정지 요청이 온다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우리 기관사가 러시아어나 중국어, 독일어 등 현지어를 모른다면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없겠지요? 이런 것들이 자국기관차 자국구간 운행 원칙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까운 북한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철도는 교류 25,000V를 사용하고, 북한은 직류 3,000V 를 사용합니다. 우리 전기기관차가 북한을 주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2007년 남북열차 시범운행과 개성공단 화물열차 운행도 이러한 이유에서 전기기관차가 아닌 디젤기관차로 운행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물리적 장벽은 철도의 궤간, 즉 철도 레일의 폭이 다르다는 겁니다. 남북한, 중국, 유럽 국가 대부분은 폭 1,435mm의 표준궤를 사용하는 반면,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 (구 CIS국가)와 핀란드 등은 1,520mm 광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신간선만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으며, 재래선은 모두 1,067mm 협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철도 운행 시 이러한 기술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대차 교환, 환적, 복합궤도 건설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상인 임동우 소장께서는 평양의 도시계획을 연구하면서 남한이 배울 수 있는 교훈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임동우 아까도 잠깐 말씀 드렸지만, ‘사회주의’ 라는 이념 자체를 지금 우리도 복지를 비롯하여 여러 측면에서 배우고 있지만 도시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도시는 사회의 정치나 경제 등 모든 시스템들의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이듯 도시도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서울은 물론이고 중국의 몇몇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권의 도시들은 성장이 어느 정도 끝난 상황입니다. 최근에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예전에는 도시가 팽창하면서 더 많은 자본을 유입해서 경제적으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도시성장의 모델이었다면, 지금은 물리적인 성장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도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80여 년 전에 사회주의 도시계획에서 우리가 본받을 점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겁니다. 녹지 공간을 더 두는 것, 직장과 주거가 근접한 도시를 만들어서 대부분이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가능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도시 내에 최대한 생산 시설, 농업시설을 두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요즘 이야기 하는 ‘도시농업urban farming’도 도시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도록 하는 ‘착한 소비’를 일컫는데 사실 이들은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이 얼마나 현실화 되었는가는 다른 질문이지만, 분명 배울 부분은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 이후 평양의 변화와 미래

전상인 이제 통일 이후의 평양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첫째, 북한이 붕괴할 경우 평양의 도시 유산들을 어떤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둘째, 통일이 될 경우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평양의 포지셔닝 문제입니다. 어떤 지위에 어떤 기능을 부여할지 미리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동우 지금의 평양은 분명 시장경제를 조금씩 도입하는 시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사회가 붕괴되고, 마지막으로 통일이 되겠죠. 그런데 사실 그간의 논의는 앞의 단계를 건너뛰고 통일만을 이야기해왔습니다. 그 보다는 지금은 첫 번째의 시장경제 도입 단계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합니다. 북쪽에서 쌀이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는 하다못해 쌀 막걸리라도 줘야지, 커피가 최고라며 준다면 잘 맞지 않겠죠. 북쪽에서 실상 필요한 것, 그리고 우리가 도시화를 먼저 겪은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언젠가 사회가 붕괴되고 통일이 된다면, 어떤 건축물과 공간을 남기고, 어떤 공간을 재구성할 지는 새롭게 논의 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통일이 안 된 상태의 평양이라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는데, 통일을 전제로 했을 때는 평양의 포지션은 분명 예상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평양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며, 뉴욕과 도쿄가 그렇듯 반경 3~4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들은 메트로폴리탄에 흡수됩니다. 그러다 보면 평양이 생각만큼 자생성이 없어서 서울에 점차 기생하는 방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단된 상태에서 평양이 바뀔 때, 북한의 수도로서 혹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변하는 평양을 위해 우리 건축계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우영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건축가끼리 교류를 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 개입의 시초라고 봅니다. 서울이 무조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도시가 겪었던 고민과 문제점들은 축적되어 있고, 우리는 바깥의 사회주의 사회들이 바뀌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우려하는 부분은, 어느 시점에서 북한이 전면적 개방을 했을 때 자본의 힘이 더 세게 영향을 끼치면 평양이 왜곡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큰 틀에서 통일 여부를 떠나 북한 나름대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일이 된 이후에 도시의 중심은 어디로 갈 것인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울을 뉴욕과 같은 콘셉트로 발전시키고, 행정기관들은 평양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주도는 우리가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통합 기능을 위해 정치 기관들은 평양으로 가는 것이 서울과 평양에 좋으며 장기적인 통합적 기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병민 평양이라는 도시가 그동안 나름의 기능을 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직장과 주거의 근접성입니다. 북한에서 직장과 주택을 강제 배정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활동하는 권역은 제한적입니다. 평양은 동평양과 서평양, 그리고 대동강을 기준으로 남평양과 북평양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평양 지하철의 최초 계획안은 평양의 남북을 연결하려 했지만 단시 기술력의 한계로 대동강 하저 통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양 북부만을 대상으로 노선이 건설되었죠. 또한 평양의 남북축은 대동강에 설치된 6개의 교량으로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양의 도시 기능, 직장-주거 근접원칙이 와해될 경우, 교통문제는 심각한 도시문제로 등장할 겁니다. 둘째, 중앙의 배급시스템입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배급시스템이 정상 가동되는 경우에는, 모든 생필품이 지급되기 때문에 상업지역이 도로변에 발달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배급시스템이 붕괴된 현시점에서는 시장이 우후죽순 형태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배급시스템 마비는 평양의 전면적인 기능 개편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도시 중심지의 제한입니다. 평양이나 함흥, 청진지역의 도시 중심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주체사상탑이나 영생탑, 혹은 대형 광장입니다. 정치적 상징물이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강제동원 시에만 군중의 집회가 허용되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재화가 모이고 인적, 물적 통행이 빈번한 지역은 전혀 도시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평양의 경우, 평양역이나 평양 내 대형 시장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사람과 물류, 재화가 모이는 곳은 정보의 교류지역이기 때문에 북한 권력층에서는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학술대회에서는 발표를 못했지만, 저희가 평양에 다니고 있는 시내버스노선, 궤도전차노선, 무궤도노선을 지도에 모두 그려보았습니다. 그려놓고 보니 노선들은 대부분 단거리였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사각지역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처럼 환승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엄청난 불편과 경제적 비용이 유발되는 매우 비효율, 비경제적인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통행 제한을 위해 강제 단절한 구간도 많았습니다.

인구 규모로 최적의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도시 기능별, 즉, 신의주, 혜산과 같은 국경의 무역도시는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게 될지, 도시의 특성에 따라서도 바람직한 도시 미래상을 검토해야 합니다.

금번의 <평양, ‘도시’로 읽다> 같은 학술대회와 좌담은 북한 도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기회였습니다. 향후, 북한 도시의 미래상과 북한의 도시재생 방향에 대한 심층 검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태 저는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 주민의 평양 이주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14%의 인구에서 30~40%가 되는 것이 빠른 시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실 지금 도시화가 가장 빨리 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 도시의 확장에 따른 도시 문제가 평양에서도 대두될 가능성이 높고요. 그렇게 되었을 때 평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연구와 스터디를 도시, 건축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주목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인구의 두 배가 된다면 안병민 선생 말씀대로 도시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인데 평양이 그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북한 건축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때

분량14,414자 / 29분

발행일2013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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