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주택문제, 공동으로 해결한다
박종숙
분량4,430자 / 9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리포트
삶의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닫히고 단절된 공동체는 점점 문을 열고 연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쉐어주거와 코하우징은 나눌 것은 나누고 뺄 것은 빼는 대안적 삶을 보여준다. 일본 쉐어주거의 개척자인 키타가와 다이스케의 인터뷰와 ‘소행주’ 1호 입주자인 박종숙의 경험담을 통해 그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개인이 혼자 해결하던 주택문제를 공동이 함께 풀어가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새로운 주거유형이 늘고 있다. 두 집이 모여 땅값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 마당을 공유하는 땅콩집, 8~9세대가 모여 공용공간을 나누며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더는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만들기)’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소행주는 비용을 분담하여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 이용할 수 있고 여러 세대가 어울려 삶으로써, 지나치게 긴밀한 관계에서 올 수 있는 긴장감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평의 힘 – 입주자 공동공간
소행주에 입주한 아홉 가족이 자기 집과는 별개의 1평 값을 내어 전체 9평의 공동공간인 ‘씨실’을 마련했다. 씨실에서는 다양한 공동 활동이 이루어진다. 매일 저녁 함께 저녁을 먹는 식당이자,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입주자 회의 장소이자, 아이들의 놀이방, 어른들의 수다방이 된다. 오븐과 냉장고 등의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많은 손님을 치러야 하는 집들이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에는 내 집의 거실과 주방이 되기도 한다. 사용이 거의 없는 평일 오전에는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취미활동, 마을회의 등으로 씨실은 온기가 가득하다. 공간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공동공간 옆에 입주하게 된 ‘도토리 방과 후(성미산마을의 부모들이 조합형식으로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가 3평 값을 내면서 현재는 총 12평이 되어 오후 시간대에는 방과 후 학교 아이들의 활동공간이 되기도 한다. 24시간 풀타임으로 가동되는 공동공간 씨실은 공동주택에서 필요한 요소와 고유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문을 열면 집이 커진다 – 공용공간 최대한 활용하기
그동안 대형 평수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현관문을 닫고 사는 삶의 방식과도 연관이 있었다. 옆집 아이들과 놀거나 흙모래를 만지는 대신, 컴퓨터를 보거나 실내용 미끄럼틀과 자동차를 집안에 들여놓는다. 무수히 많은 용품을 보관하고 가지고 놀려면 집이 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빨래 널 공간도 없이, 위험에 대피할 통로도 없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를 넓힌다. 소행주는 내 집 안의 크기를 키우는 대신 현관문 바깥의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더욱 넓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현관 밖 계단실과 복도를 실내공간으로 단장하여 아이들이 소꿉을 놀기도 하고, 장마철에 빨래를 널 곳이 마땅치 않을 때는 건조공간으로 활용한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물품보관소를 설치해 선풍기나 온풍기 같은 계절용품, 부피가 커서 집안에 두기 어려운 아이스박스나 여행용 가방을 집집마다 보관할 수 있다. 또한 모두가 다 갖추고 있지 않지만 급할 때 필요한 공구나 큰 그릇 같은 것은 올려다 놓고 함께 나누어 쓰기도 한다.
내 집, 작지만 알차게
소행주는 여러 세대가 함께 해서 땅값 부담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높게 책정된 서울의 지가 탓에 자기공간을 마음껏 갖기는 어렵다. 입주자가 함께 쓰는 공동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복도와 물품보관소 이용으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한편, 개별 주거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도 여러 방안을 찾아야 했다. 소행주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직접 자기 집을 설계하는 ‘입주자 참여형’ 건축방식을 선택해 각 세대의 규모에 적합한 평형을 설정하여 최적화된 공간을 얻도록 했다. 기본적으로는 붙박이장과 벽장을 활용하여 수납을 해결했으며, 부부와 딸아이 셋으로 구성된 5인 가족은 부부침실을 작게 하는 대신 아이 방을 크게 하나로 구성하여 실평수 17평의 주택을 설계하였고, 아이가 하나인 3인 가족은 실평수 11평을 선택하였다.
각자가 자기 집을 그리고 만들어 낸 덕에 개성 있는 집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301호 ‘느리네’는 방문을 없애 방문이 차지하는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하하네 집’은 아이방에 미닫이문을 달아, 열면 넓은 거실이 되고 닫으면 공부방이 되도록 했다. ‘풍뎅이네’는 거실 일부에 타일을 깔고 물 빠짐 장치를 설치하여 화초들을 키운다.

한 가지 반찬이 모여 푸짐한 밥상을 만든다 – 저녁식사 같이 하기
아빠들의 퇴근시간이 늦거나 아이가 어린 집의 경우, 저녁식사부터 잠자리 준비까지 엄마들은 ‘혼자서’ 고행의 시간을 갖는다. 예쁜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지 못하고 자꾸 화를 내게 되고 즐거워야 할 저녁시간이 스트레스 최고지수를 기록하는 시간이다. 이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던 소행주의 엄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이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각자 한 가지 반찬을 가지고 내려와 씨실에 모여 앉으니 김치만 해도 배추김치, 파김치, 무김치 등 다양해진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밥을 먹어 식사시간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초반에 있기도 했지만, 혼자일 때의 가사부담을 덜어내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어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입주 후 3년째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루 아이 보고, 이틀의 자유를 누린다 – 품앗이 육아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을 덜어낸 엄마들은 지혜를 모으면 좀 더 여유 있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품앗이 육아’이다. 입주 당시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아이를 둔 세 명의 엄마는 돌아가면서 하루씩 서로의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이틀의 여유를 얻게 되었다. 두부 한 모 사러 나가려 해도 아이 옷 입히고 집안 단속하느라 수선을 떨어야 하고, 듣고 싶은 강좌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침만 꼴딱 삼키고 말았던 엄마들에게 일주일 중 이틀의 자유시간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은 할 수 없었던, 목욕탕 가기, 미장원 가기, 도서관 가서 책 읽기 등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딱히 무언가가 아닌 집 안에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혼자가 아닌 여럿이 어울리면서 때론 새로운 놀잇거리를 개발하기도 하고, 때론 싸우면서 아이들 식의 갈등과 화해를 경험하기도 한다. 501호에 사는 외동이인 지오는 형제자매와 같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
함께 하니 덜어낼 수 있고, 덜어내니 자유롭다
공동주택이라 하면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해야 해서, 나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측면이 있다. 혼자서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아야 할 때는 그야말로 사생활이 없었지만, 이웃과 함께 식사하고 함께 아이를 돌보다 보니 가사와 육아로부터 독립된 시간을 갖게 된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엄마로서 혹은 아빠로서 겪는 가정에서의 고단함을 딱히 누구에게 풀어놓을 수 없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화살을 던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소행주에 이사 온 뒤로는 부부간의 팽팽했던 긴장감도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함으로써 나에게 주어진 짐을 덜어낼 수 있고, 나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니 내 삶이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지고 있다.
주거공간의 변화, 삶의 변화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마을살이가 깊어지면서 안정된 주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고 그 힘들이 모여 공동주택 소행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주거비용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마련한 공동공간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엄마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집과 마을에 소홀하기 쉬운 아빠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한 공동공간은 입주자의 제2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작은 평수로도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을 함께 사용하면서 집에서 일어나는 각종 생활의 문제를 이웃과 함께 덜어냄으로써 공동체 형성의 근간을 마련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최고의 건축 기술과 주택관리 서비스를 욕심내지 않고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걱정하고 만류하던 눈길을 떨쳐내어야 했고, 자산 가치가 없는 빌라를 구매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우리 시대의 상식을 거부한 입주자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재산과 계급의 상징이 아닌 나의 삶과 시간이 배어 있는 집, 사는buy 집이 아니라 사는live 집을 만들기 위한 용기 있는 개인들의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2013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박종숙
소행주 1호 입주자. 마을에서는 ‘야호’라고 불린다. 시민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을 키우는 일에 애정을 쏟았다. 반복(!) 되는 출산과 육아로 마을에서 놀기 시작하여 마을사람들과 함께 소행주를 짓고 입주했고, 주택마련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많은 개인들이 공동으로 주택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모습을 꿈꾸며 코하우징 주택만들기를 시작했다.
개인의 주택문제, 공동으로 해결한다
분량4,430자 / 9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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