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머무름과 자연스러운 섞임
민현준
분량5,474자 / 1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은 우리 관공서의 변모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모뉴멘트와 랜드마크의 소란은 사라지고 ‘차분한’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이 꽈리를 틀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의 그리움은 상이한 것들이 중첩된 무형의 건축에 닿고자 노력한다. 건축가 민현준을 인터뷰 하면서도 ‘뜨거운 열망’의 단어보다 ‘멜랑콜리한 속삭임’이 더 잦았던 이유다.
민현준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 버클리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행복 도시 중앙공원, 공주 고마미술관 공모전에 입상했을 뿐 ‘실제 건축물’을 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을 탐독하며 인간과 도시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인터뷰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박성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도심 공원 같이 주변에 적극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민현준 서울관의 소격동 대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의견이 충돌하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장소입니다. 우리는 이를 중재할 중립적인 마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고요. 이 미술관이 누구나에게 환영 받는 공원과 같은 장소이기를, 미술관이 주목받기 보다는 주변들이 더욱 돋보이기를 희망했습니다. 또한 높아진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회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길 바랐고요.

박성태 단순히 열린 것 이상으로, 안과 밖이 섞여 있습니다. 주변의 주거지역도 변화시킬 겁니다.
민현준 그렇습니다. 북촌과 삼청동은 이미 활력이 넘치지만 미술관의 건립으로 감고당길 후면부도 새로운 활력을 찾을 겁니다. 미술관의 구성도 하나의 건물이지만 지상에서는 마당과 전시장을 중심으로 분절 배열하여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 스며들게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모전에서도 ‘무형의 미술관shapeless museum’ 이라 했고요.
박성태 도심 공원의 역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시민들이 계절을 충분히 즐길 수도 있고요.
민현준 건축적으로 기능을 규정하기 보다는, 관람자가 만들어가는 마당이 현대미술의 중심에 선다는 것, 그리고 문화재와 공존한다는 것은 이 미술관의 아이덴티티이며 전시장 배열에 있어 중요한 개념입니다. 동시에 마당은 이웃을 위한 휴식처이며 놀이터이기도 하고요. 이곳의 조경계획은 문화재와 절충하기 위해 자작나무와 회화나무는 포기해야 했지만, 모과나무와 살구나무 등 열매와 꽃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마당을 변화시켜 방문자가 흥미를 느끼게 하고자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당이라는 매개공간은 놀이터에서 시작해 순수예술의 질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대중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딜레마를 표상하기도 하고요.
박성태 전체 공사비는 어떤가요?
민현준 지대를 제외한 순수 공사비는 1천 5백억 원 수준입니다. 서울시 신청사나 <세빛둥둥섬>이 3천 억대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은 편입니다.
박성태 신문 기사에는 전체 규모가 1만 평에 지상 3층 지하 3층이라고 났던데요.
민현준 법적으로는 지상 3층 지하 3층이지만 정확하게는 1만 평이 조금 넘습니다. 10분의 1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과천관과 비슷하지만, 볼륨이 훨씬 커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감리를 못해 걱정이 많았는데, 관장님의 배려로 일주일에 3~4일을 현장에서 보내고 있죠. 대부분 속 터지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박성태 전시장에 대한 초기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민현준 현대미술에서는 작품의 아우라가 관람자에게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시도 작품 중심에서 관람자 중심으로 변하기 때문에 전시장도 동선 중심에서 장소 중심으로, 수동적인 흐름에서 능동적인 머무름으로 변하고 있고요. 즉 수동적으로 배열된 작품을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람자가 대면하는 순간 이 둘이 일체화되면서 머무르는 장소가 곧 전시장이며, 이러한 독립적인 전시장의 집합이 미술관이 되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는 겁니다. 건축적으로도 과거 미술관의 본질은 선형의 동선이 관람자를 유도하는 형태였으나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독립적인 공연장의 집합과도 같은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죠.
이러한 변화는 스위스의 작가이며 큐레이터인 레미 차우크Remy Zaugg가 그의 저서 『나의 꿈의 미술관The Art Museum of My Dreams. Or the Place for Work and People』에서 설득력 있게 서술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기공과 가이어의 <키르히너 미술관>, 피터 줌터의 <콜롬바 미술관>과 <브레겐즈 미술관>, <리히텐 슈타인 미술관> 등 중부 유럽의 미술관에서 그 현상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현대미술관의 거대한 흐름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이와 같은 관람자 중심의 전시는 작품과 관람자를 일체시키고 독립시켜 전시장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동선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마치 일련의 극장의 집합처럼 독립적이고 집중적인 장소의 집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람자는 주어진 동선에 따라 수동적으로 관람하던 방식에서 스스로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박성태 전체 동선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민현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술관의 동선 개념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즉 동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과 관람자의 일체가 중요하며, 일체화된 작품은 동선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작품 감상에 동선을 배제하는 형식은 하세가와 유코의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포크방 미술관> 및 공사 중인 헤르조크 드 뮤롱의 <마이에미 미술관>에서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슷한 공간 구성을 고민하는 것은 현대미술관의 근본적인 흐름의 변화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처음에는 무작위의 전시장을 구성했다가, 중도적인 입장에서 두 개의 중심을 두고 8자 형태의 기본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중심은 우윳빛 유리를 사용한 인포박스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에 빛을 유입시키는 녹지가 식재된 전시마당입니다. 인포박스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전통적인 전시장이 방사형으로 배치된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전시마당을 중심으로 공연장, 영화관, 프로젝트 갤러리 등 진보적이고 융합적인 전시장을 구성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미술관은 한 번에 모든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는 선형 방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두 개의 중심 중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 선택적인 동선이 만들어지는데, 엄밀히는 동선 개념 보다 두 개의 중심을 기준으로 하는 오리엔테이션을 주어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박성태 미술관 내부를 외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가면 미로와도 같습니다. 동선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느껴집니다.
민현준 미로라고 느껴지는 것은 모든 전시장을 한 번에 돌아봐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시장의 모든 전시를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몇 개의 전시장을 찾아보는 것으로, 그리고 자주 방문하는 가까운 미술관으로 접근했습니다.
대형전시를 한다면 인포박스를 중심으로 전시장 1에서 5까지는 하나의 동선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시는 두 개 이상의 전시로 분리될 것이고 시간 개념이 들어가는 다원적인 전시, 즉 공연장, 프로젝트 갤러리, 블랙박스, 극장 등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겁니다. 이곳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멀티영화관과 전통적인 미술관의 중간적인 성격의 행위와 흐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박성태 중심 공간이 두 개이고 나머지는 주변으로 보입니다. 이런 공간들 사이의 연결과 균형을 어떻게 풀려고 했습니까?
민현준 전반적으로 독립성을 중시하여 연결을 최소화 한 미술관 모형이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현대미술의 변화를 고려하면 이와 같은 공간의 변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람의 흐름은 독립적으로 구성하지만 관람객의 동선에는 턱을 두지 않았고 수직이동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계단의 사용은 가급적 축소했습니다. 관람자 중심의 전시장은 조명에 있어서도 작품만 비추는 스팟 조명이 아니라 관람자와 작품에 대등하고 균등하게 비추는 전반확산 조명을 선택하여 관람자의 피로감을 줄이려 했고요. 이와 같은 전시장 구성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예측과 설계 시 큐레이터와 건축가 간의 협의와 규모 결정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프로그램의 변화를 흡수할 유연성은 부족하기 때문이죠. 대신에 작품의 창작과 전시 큐레이팅에 있어 보다 창의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성태 그래도 여타 공공건물에 비해 초기 미술관의 방향성은 확실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현준 2차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건축가들과 큐레이터들이 프로그램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전시 방향도 다원성을 포함하는 현대미술로 구체적이었고요. 공사가 진행되면서 근대 회화 중심의 작품도 포함하게 되면서 전시장의 목적이 일부 변하고 심의과정 상 전시장의 배열도 일부 변하게 됐습니다.
박성태 외부에 쓴 테라코타 타일이 미술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돌이나 금속도 사용하고 있고요.
민현준 구 기무사의 벽돌과 종친부의 기와를 중재할 미술관의 재료로 같은 흙에서 나온 테라코타를 선정했습니다. 색상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흙이라는 같은 재료에서 나오는 건축자재는 서로 잘 조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미술관이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도시 속에 묻힌 여러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가적인 재료인 석재나 메탈은 건물 별로 사용하기보다는 마당별로 사용하여 마당의 아이덴티티를 주려 계획했습니다. 이러한 재료 사용으로 신전형의 미술관에서 턱이 낮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람자 중심의 미술관으로의 변화를 의도했습니다.
박성태 특히 테라코타 벽돌이 눈에 띕니다.
민현준 이 테라코타 타일은 새로운 프로파일을 만든 세계 유일의 형상입니다. 암키와의 곡면에서 시작하여 실물 크기의 모형과 다양한 재료를 검토한 끝에 빛의 쉐이드 효과가 훌륭하고 오염이 적은 테라코타를 선택했고, 곡면의 각도를 조절해가며 목업을 통해 현재의 형상이 나온 겁니다. 색상도 4 가지 색상을 무작위로 분배하여 자연스러운 배열이 되도록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테라코타 벽면은 빛을 받으면 곡면의 형상이 드러나고 그림자 속에서는 4가지 색상이 드러나는 은은하면서도 빛에 따라 변하는 흥미로운 벽면을 만듭니다.
박성태 심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민현준 문화재 심의 4건을 포함하여 16건의 심의를 31번에 걸쳐 통과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미술관이 수많은 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사회적인 합일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 프로젝트와 비슷한 사례는 다신 없을 겁니다. 서울 도심지에 만 평 이상의 대지에 경복궁, 종친부, 구 기무사 등 다양한 문화재가 얽혀 있는 대지는 다신 없을 것이니까요. 다만 문화재 심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각 분야의 개별 심의 때문에 프로세스가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전체가 머리를 모은 통합 심의였다면 보다 합리적인 합일을 이룰 수 있었을 겁니다.
능동적인 머무름과 자연스러운 섞임
분량5,474자 / 1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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