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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강홍구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며,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중

처음 부산의 산동네 사진을 찍으려고 갔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집과 마을의 다양성과 비좁은 공간을 탁월하게 이용하는 효율성이었다. 예를 들면, 어떻게든 주거 면적을 넓히기 위해 일층보다 이층을 조금 더 넓게 지은 “한 뼘 이층”이라고 부르는 집들이 그런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산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집들을 생존의 건축, 집짓기의 밑바닥, 건축가 없는 건축, 원초적 건축 따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토속적 건축을 의미하는 버내큘러 건축vernacular architecture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산동네의 집과 건물, 계단, 길, 옥상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경관을 표현하는 데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아니 애초부터 말로 이를 수 없는 곳에 그 집과 마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홍구, ‘감천02’, pigment print , 90x225cm, 2012.
강홍구 작가의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전은 부산의 오래된 동네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업으로,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생산주의적 공간개발에 대한 성찰적 기록을 긴 풍경화 형식으로 표현했다. 본 전시는 우민아트센터의 “다양한 상호관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공공성과 창의적 소통을 지향하는 교류전”의 일환으로, 원앤제이갤러리(서울, 2013.7.4.~7.24) 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나는 건축가가 지은 건물에 거부감이 좀 있다. 아니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이나 정서적인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유명한 건물들, 현대식 건물들을 머리로는 이해하겠지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건물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그럴듯하게 지으려 한 건물들일수록 그런 기분은 심해진다. 예를 들면,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건물은 짜증이 난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무시하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곳곳에 붙어 있어 보여서다.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방어적이다. ‘내 작품을 몰라주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이 너무 싫다. 건물 전체에 자신감이 없다.

강홍구, ‘문현11’, pigment print, 90x225cm, 2012

산동네의 집들은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계단, 난간, 지붕, 그리고 옥상과 이층이 모두 다 솔직하다. 물론 살기는 불편할 것이다. 좁고, 통풍도 잘 안 되고 화장실도 없는 집이 많으며, 사생활의 비밀 보장도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에 거기에는 일종의 자신감과 사람이 꼭 필요해서 지었다는 느낌이 있다. 절실함이 건물, 길, 골목, 계단 곳곳에 스며있다. 그렇다고 그 절실함이 공격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은 주거지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던 집과 마을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홍구, ‘서동04’, 피그먼트 프린트, 120×100cm, 2012

(중략)

앙리 르페브르의 말대로 공간, 장소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것에 의해 생산되고 역사를 재현한다. 부산의 산동네들은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와 6.25 전쟁 피난민들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이룬 구성물이다. 이 구성물에 대해 사람들은 ‘문화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광 상품화 하려 한다. 그것은 산동네 사람들의 삶과 집과 공간을 문화 상품, 즉 산동네의 본질과는 별 관계없는 구경거리로 전환시킴을 뜻한다. 나쁘게 말하면, 그럼으로써 역사를 은폐하고 장소와 공간이 가진 구체성과 가혹한 삶의 흔적과 기억을 지우는 행위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일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별 현실적 힘이 없는 예술이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퇴락해가는 산동네에 대한 도시 재생사업의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내가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마을을 보존하고 살아 있도록 하는 것, 마을을 구경거리가 아니라 살만한 동네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런 노력들은 마을을 둘러 볼 때마다 눈에 띄지만, 점점 늘어가는 빈집들을 보면 미래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 작가노트 중


강홍구

1956년생으로 목포교육대학과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고은사진미술관(2013), 원앤제이갤러리(2012), 몽인아트센터(2009), 리움미술관 로댕갤러리(2006)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히든트랙》 (서울시립미술관, 2012), 《(불)가능한 풍경》 (플라토, 2012), 《메타데이터》 (우민아트센터, 2012), 부산, 광주 비엔날레, 독일 ‘Hannover Messe 2009′ 《Made in Korea-Magic Moment: Korea Express》 등 국내외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분량2,404자 / 5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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