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정치적 상상력을 허하라
이솔 × 이경희
분량5,486자 / 11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유형인터뷰
처음 지인이 내게 이 책을 건넸을 땐 ‘요즘에도 이렇게 선동적인 제목을 쓰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표지의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1를 보곤 평소 이와 관련한 예술이론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반가웠고, 목차를 메운 작가와 필자들에서 저자의 집중력이 보였다. 온갖 사회문제에 촉을 들이대는 예술을 연구해온 이의 뜨거운 가슴을 상상하며, 시린 겨울 끝자락에 『마지막 혁명은 없다: 1980년 이후, 그 정치적 상상력의 예술』2의 저자 이솔을 만났다.
이솔 서울과 미국 각지를 오가며 비평 및 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미국 로체스터대학 Visual and Cultural Studies의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정치성’에 대한 박사논문을 집필 중이다. 낙원동 시네마테크에 종종 영화를 보러 가거나 서촌 제비다방과 키오스크에서 글을 끼적인다. 수유너머 위클리에 “이솔의 공공공公共空”을 연재하고 있다.
인터뷰 이경희 정림건축문화재단 팀장
이경희 현재 미국에서 민중미술 관련 논문을 마무리 중인 것으로 압니다. 해당 자료들이 미국에서는 아카이빙이 좀 되어 있나요? 가끔 보면 우리나라 사료인데도 외려 외국에서 더 자료를 수집하고 깊게 연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솔 우리나라의 식민지 시기나 한국전쟁과 같이 미국과 관련 있는 시대는 문서는 물론 참고 할만한 시청각자료도 많지만, 제가 연구한 시기는 1980년대 이후이기 때문에 거의 없어요. 민중미술 자료는 한국에서도 공적으로 접근 가능한 게 잡지뿐이거든요. 1980년대 발행된 무크지는 중고서점에서, 그 외에는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에서 일부 찾더라도 대부분은 개인과 접촉해야 해요. 처음에는 성완경 선생님으로부터 자료를 구해 보려고 한국에 왔어요. 사료화 과정이 없어서 어렵긴 했죠.
이경희 정치예술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이솔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은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이 하나같이 좌파 성향의 40대 중후반의 젊은 분들이었어요. 즉 『옥토버October』 세대들이 은퇴하기 전에 양성한 세대, 1990년대 현대미술 이론계가 변화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는 차세대 미술사학자들이었거든요. 제가 다니는 대학원 명칭인 ‘시각문화연구visual and cultural studies’ 도 1990년대 말 미국 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 용어를 쓴 진보적인 곳이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밖에서 봤을 때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 이때거든요. 모여서 무언가를 해낸, 변혁을 이룬 시기잖아요. 이건 미국 좌파학계에서 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에요.

이경희 자국의 이야기인데다가 몸담고 있는 학계가 진보적이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시작했겠지만, 실제 착수한 이후에도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던가요? 세대도 다르고 개론서에서 보던 것과도 달라서 괴리감을 갖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솔 이론가의 작업은 선행한 누군가의 작업에 대한 ‘반응’이잖아요. 기존의 상태에 내가 무슨 발언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뭉뚱그린 주제나 작가 별로 접근하기 보다는, 매체 별로 접근했어요. 거대 페인팅이 길거리에서 어떤 작동을 하고, 비디오 카메라가 휴대할 수 있게 되면서 무엇을 했는지, 노동자뉴스제작단은 뉴스를 빠르게 보급하면서 다른 뉴스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졌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신문의 만화는 어떤 기능을 했는가 하는 거죠. 가령, 사진이 아닌 판화를 그들은 왜 더 효과적인 매체라고 여겼을까요? 판화는 공동작업이 가능하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독자들 중 민중미술에 대한 책인데 ‘현실과 발언’ 얘기가 없다며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발언을 어떻게 했는지, 결과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업을 보고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경희 목차3를 보고 좀 놀랐던 게, 이솔 씨가 직접 해당 시기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고, 관련 작가들을 보면 흔히들 말하는 ‘작가’가 아닌 사람도 있거든요. 작가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이솔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작가를 모은 건 아니었어요. 관련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계속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시작은 학자의 입장에서 접근한 연구였고요. 그리고 논문 연구 중 캘리포니아 UC 어바인의 한국문학 교수님이 진행하던 한국 대중문화 관련 프로젝트 기획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대중문화popular culture 의 ‘대중’이라는 것이 정치성과 저항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는 국제학회, 영화 스크리닝, 전시를 함께 작동시킨 다원적 프로젝트였는데, 여기서 저는 큐레이터로서 추가 기금을 마련해 전시를 전담했어요. 참고로 전시가 열린 UC 어바인 대학 미술관은 한국미술과의 인연이 남달라요. 2005년에 박이소 헌사 전시를, 2008년에는 «트랜스 POP 한국 베트남 리믹스» 전을 초청 전시하기도 했거든요.

이경희 글의 챕터 중 하나인 이남희 교수님(근대한국사학 연구, UCLA)의 “민중, 역사, 그리고 역사적 주체” 는 ‘우리’의 이야기를 제3자가 들려주는 듯해서 매우 신선합니다. 한국 민중운동의 보편성과 특수성이 길지 않은 글임에도 잘 소개되어 있고요.
이솔 이 책을 읽은 모임에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도 이남희 교수님의 글을 특히 좋아했어요. 이 글은 원래 교수님이 역사학자 입장에서 쓴 저서, 『The Making of Minjung: Democracy and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 (국문 출간 예정)의 서문이거든요. 이 시기를 경험한 분들은 스스로를 민중,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의 입장에 놓고 기술하기 때문에 글쓴이의 주관을 배제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남희 교수님은 역사가의 입장에서 한국의 민중운동사를 다른 나라, 다른 시대와 견주어 종횡으로 분석했는데 그런 시선이 1980년대에 관심 있는 저희 세대 독자들은 좋은 의미에서 ‘쿨하다’고 느꼈나봐요.
저도 1980년대를 보면 지금과는 입장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거리를 두게 돼요. 시대가 변하고 정치언어 자체가 변하면 예술언어, 비평언어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는 “여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 라고 소리 지르기보다는, 그 벌어진 일 혹은 예술실천이 다른 나라,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를 차분히 분석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지금의 제 입장이 한국에서 대학 공부를 하지 않아 어떤 땐 소속이 없어 외로울 때도 있지만, 반대로는 눈치를 덜 봐도 되니 자유롭기도 해요.
이경희 사실 이 책은 미술이론서가 아닌 전시도록인데도 민중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모두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 서문과 작품 나열에 그치는 도록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전시의 의의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경우를 보기 힘들고, 다른 공부를 위해 참고자료로 삼는 것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고요. 그런 면에서 기획자와 참여 작가, 이론가, 비평가의 이야기를 함께 실은 게 반갑습니다.
이솔 미국에서는 전시도록도 미술사 수업에서 참고하는 게 당연해요. 잘 만든 전시도록과 단행본의 학술적 가치가 비슷한 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둘이 엄연히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 아쉬워요. 저는 이 도록이 작품만 나열하거나 커피테이블 책이 되는 건 싫었어요. 운 좋게도 원저인 영문판도 워싱턴대학 출판사에서 유통을 해주기로 해서 미국과 그외 영미권 국가에서도 더 많은 독자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경희 책의 내용을 보면 서술구조나 선별작가의 레이어가 다양하고 그간 간과된 정치발언 예술들을 나름의 시선에서 묶어 정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관련 이야기들을 개진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이솔 담론의 공공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가진 생각을 내 안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밖으로 내놓으니까 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똑같이 지적하는 분도 있고, 또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고요. 그러면서 1980년대와 2000년대의 대화를 다른 구성으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저는 미술계와 학계에 동시에 있으니까 양쪽을 다 관찰하거든요. 말은 많이 도는데 글이 귀할 때가 있잖아요. 현장에서 발언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기록된 대화의 공공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기록의 대화를 남기고자 일단 이 책을 한번 내보자 했고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이경희 대부분의 예술이 그것을 분석해줄 이론가를 필요로 하지만, 그중 액티비즘이 강한 예술 연구는 현장에서 투쟁하는 시간보다 책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 죄책감이 들기도 할 것 같아요.
이솔 제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뭔가 좀 더 활동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스스로를 “내가 민중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세대잖아요. 그래도 유학생활을 하면서 저는 명백히 백인 남자가 아니다보니 피부로 와닿는 발끈함을 느끼며 저만의 투쟁을 하면서 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혁명이라고 하지 않아도 다른 세계를 만들고 갈구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믿음이 있어서 추진력은 계속 생기는 것 같고요.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연대의식도 있지만, 제가 직접 몇백 일을 같이 농성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현장에 가서 격려하고 제가 본 걸 글로 쓰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이경희 그럼에도 현장에 있는 이해관계 당사자에게는 현대미술이나 그 이론적 접근이 너무 어렵거나 문제해결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정작 그들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솔 어려울 수 있죠. 하지만 꼭 특정 계층을 위한 어렵고 난해한 고전적 소유물이 아니라, 지식사의 일부라고 봐요. 지식사의 일부를 끌고 가는 작가가 공공지식인으로 역할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1950~60년대, 혹은 1970~80년대와는 또 다르게, 우리의 생활과 시각문화, 일상생활의 감성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이야기하는 게 지금의 작가라고 봐요. 예술실천이 특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인 거죠.
이경희 좀 더 구체적으로, 비평가 혹은 기획자의 입장을 어떻게 유지하고 싶은가요.
이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글쟁이로 인식될 수 있는데, 저는 작가론을 쓰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가능하게끔 하는 작가, 혹은 작업을 선별해서 글을 쓰거든요. 비평도 작품활동이라고 보는 믿음도 있고요.
이경희 현실에 대해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이솔 씨는 그 작업들을 통해서 글로 이야기하는 거네요.
이솔 네, 옆에 서서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자주 쓰는 ‘비사이드beside’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작가들과 같이 걸어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에 정치적 상상력을 허하라
분량5,486자 / 11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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