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은 살아있습니까
박활민
분량8,276자 / 1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유형오피니언
삶디자인
‘당신의 삶은 살아있습니까?’ 대략 10여 년 전 내 블로그에 썼던 제목이다. 도대체 난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는 걸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내 삶이 죽어간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던 시기와 함께 시작된 것 같다. 현실을 해결하기엔 너무나 억지스러운 삶의 방식과 턱없이 빈곤한 삶으로 인한 상상력의 한계가 고통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이 과정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변화와 그 시대가 만들어낸 직업, 생활, 자아관의 변화가 삶 방식의 위기로 감지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삶의 여러 문제들을 개인의 생활영역 중심으로, 시대의 여러 문제들과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파악하는 것을 시도 중이다. 디자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만드는 것에서 살리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통합적인 디자인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삶디자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급되는 삶
한국에서 자기 집을 소유하는 나이는 60세 정도라고 한다. 전세나 월세로 지내다가 대출금을 모두 갚는 게 60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대부분은 뿌리 내리기 위한 여러 불필요한 생활패턴으로 가득할 테고 정작 자기 집을 갖게 되더라도 생활활동 상상력은 매우 경직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생활生活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무언가를 낳거나 만.드.는. 활.동. 전체, 그리고 그 근거지는 주거공간일 것이다. 앉고 일어서고, 무릎 꿇고, 팔을 올리고, 허리를 굽히고, 물건을 드는 행위들의 모양새를 들여다보면 참 다채롭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행위들은 그 공간의 운영과 지속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세포 안에서 필요한 원소를 모아 분해하고 저장하고 합성하여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생명 활동과도 비슷해 보인다. 생명 활동이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며 이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분해하며 저장하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즉, 생활을 생산해내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 동안 이 생활활동의 패턴에서 생산 활동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수급형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의 기술이 필요한 것만 공급 받았지만 이젠 생활 전반을 공급받으려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도시생활에서 더욱 가속화되고, 사람들이 생활을 운영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음식을 만들거나 청소를 하거나 에너지를 구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경작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집을 고치거나 몸을 관리하거나 타인을 초대하는 등의 다양한 단계의 지식과 활동들이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대량 공급형 생활방식은 지역과의 관계성을 파괴하고 착취한다. 밀양의 송전탑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공급소비형 삶의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위험성을 갖는지 매우 잘 보여준다. 생산의 관점으로 사고하면 생활 문제의 관계성을 파악하게 되지만, 공급의 관점으로 사고하면 관계성이 단절되고 어떡하든 더 많은 공급을 더 빨리 확보하려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생활생산 활동에 직접 참여해본 사람들은 생활에 대한 자.기.조.절.감.각이 생긴다고 믿는다. 생산과 사용과정에서 다양한 응용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생활생산이 사라지고 있다
생활 속에서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행위는 다양한 지식을 요구하고 다양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복합적인 사고 과정이다. 우선 그 과정에는, 재료가 있어야 하고 재료를 다루는 도구가 있어야 하고 도구를 익숙하게 다루는 기술과 숙련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산물은 직접 사용되고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생산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함으로써 생활활동 전반에 교류 횟수가 늘어나 생활의 활동반경이 확대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처음엔 만드는 것에 급급하지만 반복을 통해 사고의 심화가 이루어진다. ‘좋은 재료는 어떤 것일까? 우리 동네에서 좋은 재료를 취급하는 가게는 어디일까? 아니면 재료를 내가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도구를 쉽게 구할 순 없을까? 내게 맞는 도구를 만들 수는 없을까?’ 등의 사고들을 하게 되며 도구사용이 익숙해지는 단계에서는 상당히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된다.
사실 생활생산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 산업화로 인한 위험들을 이해하게 되는 학습의 장으로 연결된다. 음식, 에너지, 리사이클, 고립, 생태 문제가 내 생활과 직접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를 만드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생산기술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대 간 대화도 가능해진다. 이런 만남을 학습화하는 지역에 새로운 배움터를 만들 수도 있고 젊은 세대는 전前세대에게 배운 걸 유튜브에 올려 다른 생활생산자들과 교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활의 생산은 삶을 소박하게 만들고 그 소박함을 즐길 수 있는 태도를 만든다. 생활생산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삶의 모든 것들이 경쟁적 공급 확보의 문제로 과열 접근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쟁 위기에 다음 세대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생산하지 않는 부모, 무기력한 아이들
집이라는 공간이 더는 생산을 안 하면서 아이의 인생은 생활생산 영역에서 소외된다. 생산에 필요한 볼거리, 다양한 자연지식, 수많은 응용력을 접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아온 공급 위치의 확보라는 경쟁적 측면의 삶 이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우리 부모세대는 ‘생활’이 무언지 모르는 무기력한 세대를 만드는 건 아닐까?
무기력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K2라는 은둔형 청소년 자립을 돕는 NPO그룹이 한국에 방문했는데 이들의 가장 핵심 사업은 ‘공동생활 지원’이라고 한다. 함께 식사하고 생활을 꾸려나가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자립에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목공방에는 ‘하다’라는 20세 청소년이 스태프로 목공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청소년 창업프로젝트로 컵케익 만드는 법을 어른들 수준까지 배웠다. 이제는 자기 집을 짓기 위해 목공을 배우고 있다. 난 그에게 이런 기술을 왜 배우는지 물었더니,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고 뿌듯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활 속에서 자기 스스로 몸을 움직여 생산 활동을 하거나 직접 수리할 줄 아는 청소년들은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훨씬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선 경쟁으로부터 고립, 안에선 생활로부터 고립
한국은 2012년 기준으로 하루 45명이 자살하는 곳이 되었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1위이며 자살 증가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어느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에서 100일 동안 6명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20~80대까지 그 연령을 불문하고 전 세대에 일어난 일이다.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가난, 질병, 고립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품고 있었다. 생활을 유지할 돈이 없거나 건강하지 못해 사회활동이 어려운 이,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는 이웃끼리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상상력의 복원이 절실한 이유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복지는 물리적 공급 외에, 생활을 함께 생산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적 상상력과 문화가 더해져야 한다. 좀 더 나아가 서울시에서 벌이고 있는 마을사업 역시 공급의 관점이 아닌 생활생산 권장과 교류의 상상력으로 접근한다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멸치를 까고 고추를 말리고 바느질을 하는 작은 일부터, 김장을 하고 아이를 봐주는 조금 큰일까지 같이 할 수 있는 마을카페를 운영한다거나, 생활생산물을 나누는 작은 장터가 생기면 어떨까. 생활에 필요한 크고 작은 생산을 연중 내내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고립으로부터 사회안전망을 그만큼 확보하는 것일 게다. 생활생산이 고립되어 사라지면 생활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나눔의 공공지대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최소 유닛House for Social Unit’으로서의 주거공간의 가능성을 새롭게 상상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
손의 퇴화
주거공간의 기능들이 점점 편리해지는 동안 우리는 손을 사용하는 생활방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주거공간 내에서도 손작업을 위한 작업공간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공구 보관, 음식 저장, 연료 보관, 채소 생산, 텃밭, 의류나 침구 수선, 리사이클을 위한 수납공간 등, 이와 같은 손을 사용하는 생활생산이 왕성한 주거 내에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생산 활동이 기계화되고 공급화되면서 이러한 공간들이 주거 내에서 사라지고 생각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손의 퇴화는 현대 기술문명의 방향성에 많은 의문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기술의 발달이 왜 손의 활성화를 억압하는 쪽이어야 하는가. 근대 기술문명은 인간은 배제한 산업만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현대 기술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live’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기술이 ‘live’를 대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live’란 대체의 대상이 아니라 유지해야하는 속성이다. 더 나은 기술이란 활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활동을 권장하고 관계성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일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E.F Schumacher가 이야기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인간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활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의 기술”을 말한다. 기술이 어느 선에선 더 이상의 편리함과 규모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기술이 활동을 유도하고 공동체의 관계를 유도하게끔 설계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하는 손 생산은 생활의 적정규모를 일깨워준다. 손이 재료를 직접 만지고 느끼면서 사고하는 행위는 인류가 생활에서 오랫동안 누려온 즐거움이다. 회사를 위한 활동으로 월급을 받지만 월급 자체가 내 삶이 될 순 없지 않나. ‘나를 위한 활동’이 내 삶인 것이다. 스스로 하는 자율노동이 삶의 질을 결정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24시간 중 생활생산에 들이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보라. 현대인의 신경쇠약은 어쩌면 이런 즐거운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시간이 거의 사라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워드 터먼Howard Thurman의 말처럼 “삶이란 활력 있는 생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않을까.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지 묻지 마십시오. 대신 무엇이 당신을 활기 있는 삶을 살게 할지를 묻고 그것을 하십시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활기 있게 살아있는 것이니까”.
생태적 사고의 위기
생활 안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은 자연의 생태순환 질서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작은 텃밭 하나라도 생산하려 보면 파종시기와 관리방법, 수확시기, 토양의 상태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와 온도의 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내 삶을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보조를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을 도와준다. 겨울 숲에 있는 나무들이 춥고 힘든 과정을 어떻게 견디고 대비하는지를 알면 자신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지구라는 유한한 세계에서 삶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생태학계에선 외래종이 침투하여 기존의 생태질서를 교란시키는 종을 ‘생태교란종’으로 분류하여 관리한다. 어쩌면 우리 삶을 교란시키는 삶의 방식을 교란종으로 분별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태계의 순환적 사고는 365일을 끊임없이 소모적으로 달리기만 하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종교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순환되는 삶의 근거와 방향성, 휴식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생태와 생활문화를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상상력이다. 이런 생활문화를 통해 우린 다시 자연과 연결될 수 있으며 더 재밌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 생태적 사고는 나와 다른 생명체의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며 연결된 자아관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생태적 사고는 순환되는 1년의 주기를 파악하고 그것을 생활에 응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순환시스템을 이해하면 삶에 질서와 생활의 방향성이 잡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순환질서 속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곧 삶의 윤리ethics가 나오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집 만들기: 주거공간의 재구성
결심
2012년 여름부터 내 주거공간부터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시에서 어느 정도까지 상상력이 가능한지 시도해보고 탐색해 보기로 결정하니 생각만으로도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거실 비우기
주거공간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면 폐쇄적 구조인 방과 이들을 연결하는 열린 공간인 거실 정도이겠다. 하지만 이 두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다르지만 에너지공급으로 보면 보일러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이는 곧 방이나 거실이 실외공기 유입량으로 보면 다르지 않은 폐쇄공간이라는 것이다. 우선 주거공간을 크게 실내와 실외로 구분했다. 그리고 실내공간에서 방을 내부로, 거실을 바깥으로 구분했다. 바깥이라는 개념은 외부공기유입이 훨씬 많고 햇빛을 일차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거실을 집안에 있는 바깥으로 디자인하기 위해 우선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 장판을 들어내어 시멘트의 물성에 색을 칠해, 외부 같지만 차갑지 않은 바닥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내화를 사용하고 거실에는 보일러를 끄고 난로를 놓기로 하였다. 바꾸고 나니 너무 좋아 보여 큰일이다.

난로 놓기
내가 도시 생활자이면서도 난로를 집안에 놓는 것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공방이 주변지역에 버려진 팔레트로 가구를 만드는 리사이클 공방이어서 가구를 만들고도 남은 나무쪼가리가 많아서였다 (원재료를 만지면 재료사용에 대한 리사이클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난로를 놓으면서부터 화목난로의 여러 특징들과 종류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구입한 난로는 창작난로인데, 네모난 철상자에 큰 구멍 하나가 뚫려 있는 아주 심플하게 설계된 난로로, 공기의 대류현상을 응용한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전국적으로 화목난로 사용자는 생각보다 많고 그들 스스로 난로를 연구개발하여 점점 더 좋은 난로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도 지역에서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그중 화목난로는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얼마 전 완주군에서 열린 제2회 <나는 난로다> 창작난로 경연대회가 이를 증명한다.난로를 놓으니 우선 가족들이 상당히 좋아한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1층에 누님이 2층에 우리 부부가 3층에 사는데, 난로 때문에 식구들이 3층으로 올라오는 일이 하루에 한 번 이상 생겼다. 올라올 때는 손에 종이며 박스들을 들고서 말이다. 난로는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리고 아버님이 아주 관심을 많이 보이신다. 고향이 지방이신 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불을 때는 행위가 아주 친숙한 행위일 게다. 게다가 우리 집 역시 15년 전에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연탄보일러와 아궁이를 같이 사용했던 적도 있었다. 아버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친숙한 생활활동이 보일러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사라져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반갑고 즐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벼려진 나무로 된 가구며 물건들을 주워 오기 시작하신다. 그리고 구청에 전화해서 뒷산에 가지치기해 놓은 나무들을 가져가도 되는지도 물어보신다. 참 즐거워 보이신다.

주거공간의 새로운 활력
어떤 세대가 주로 사용하던 생활 손기술들은 그 세대한테는 자신이 아주 잘 아는 익숙해진 분야인 것이다. 이런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더 편리한 기술이 있다고 버릴 이유는 없겠다. 아내 역시 난로를 좋아하는데 난로 안에 넣을 나무를 톱으로 자르는 행위를 좋아해서 이번 겨울은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게 아내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도시에서 말이다.나는 우선 불 때는 기술을 매일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불을 잘 붙일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면서 불의 여러 특징들을 알게 되고 종이와 판재와 강목들이 불속에서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되었다. 특히 불을 때면 나무에서 지글지글 무언가가 끓으면서 타는 액체가 있는데 이것이 나무가 가지고 있는 기름성분이 타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자작나무의 이름이 불을 태울 때 이 기름 성분 때문에 ‘자작자작’거려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니 퇴근 후 추운 날일수록 일찍 집에 가고 싶어진다. 불을 때기 위해서 말이다. 주거공간이 어떤 기술과 만날 때 공간이 활력을 얻는지 몸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난로에 정종을 데워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올해는 주거공간 안에 여러 시대의 기술들을 선택적으로 배치하고 운영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올해는 집에서 할 게 많을 것 같다.
박활민
삶디자이너
당신의 집은 살아있습니까
분량8,276자 / 1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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