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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침반은 돌고 있다

25시 세일링

‘25시 세일링’(김보경+김청진)을 따라 을지로의 시간과 공간을 항해한다

을지로는 어디인가?

 을지로는 서울 중구의 대표적인 상업업무지구이며, ‘황금의 거리’라 불리며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이후까지 자본이 활발히 움직였던 지역입니다. 활발한 상업활동을 촉진하는 요인으로는 높은 인구밀도, 산업기반시설의 용이한 형성,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소비생활, 높은 문화생활의 소비를 들 수  있습니다. 을지로는 이 모든 요소들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갖추게 되고, 6.25전쟁이후로는 서양 자본을 일부 흡수하게 되면서 더욱 거대한 상권이 형성됩니다. 1967년 서울시 최초의 지하 상가인 시청 앞 ‘새서울 지하 상가’를 시작으로 을지로 일대의 지하 상가가 조성되었고, 80년대 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지하철 2호선 개통과 함께 지하 상가 번성을 위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후 지하철 2 호선을 중심으로 블록 단위로 재개발된 을지로는 1가부터 7가로 나뉘게  됩니다.

♦︎조선시대부터 종이를 팔았던 을지로 2-3가 일대는 자연스럽게 지업사와 인쇄업이 발달되었습니다.

♦︎하루에도 현금이 수천만원이 오고가던 지업사들이 즐비한 거리였고 덕분에 은행 등 금융업이 발달하였으며 이로 인해 ‘황금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을지로 3가를 중심으로 충무로, 종로 일대까지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을지극장, 바다극장 등 일류부터 삼류극장까지 다양한 성격의 극장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을지로는 낮에는 영화촬영지로, 저녁시간이 되면 갈비굽는 연기가 안개처럼 거리에 떠다녔습니다. 영화배우 신성일 등이 단골로 다니던 ‘조선옥’은 현재도 영업중입니다.

♦︎60-70년대 단관극장들이 성행하고, 당시 주된 홍보방식이 영화포스터 였기에 을지로 일대의 인쇄소와 밀접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극장포스터 전문 인쇄소가 있었다고 하나, 극장과 함께 하나 둘 을지로를 떠났다고 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도 젊은 연인들은 냉방도 안되는 극장 안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60-80년대 최고의 데이트 장소였던 단관 극장들은 시대의 흐름인 멀티플렉스극장에 밀려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애초에 장교동,수표동 근처에 집중되었던 인쇄업체들은 쁘렝땅백화점 (현재 장교빌딩),  기업은행 본점,한화그룹빌딩 재건축 등 여러 요인들에 인현동 등 주변으로 밀렸습니다.

♦︎을지로에 오랜기간 거주하셨고 그만큼 잘 안다고 자부하시던 어르신들께 현재 흔적이 없는 초동극장의 터를 여쭈어 찾아간 곳에 초동극장이 아닌 극동극장이 있었습니다. (극동극장은 대한극장 건너편이었고 실제 초동극장의 위치는 명보극장 뒤입니다. 그마저 현재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되었습니다.)

♦︎국도극장은 동양풍을 가미한 르네상스식 2층짜리 건축물로 1913년 개관 후 60년대 <미워도 다시한번>, 70년대<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등을 상영하며 단관극장의 대표 극장이었으나, 근대건축물재개발 금지 법안이 발표되자 1999년 은밀하게 허물어 지며 국도호텔이 되었습니다. 현재 국도호텔 옆 작은골목에 이곳이 국도극장이었다는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국도극장과 더불어 풍미가 있는 건축물인 스카라극장은 1935년 개관, 근대건축물 지정을 앞두고 2005년 겨울, 재산권행사제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건물주에 의해 기습철거 되어버렸습니다.

♦︎학생운동이 잦던 70-80년대 을지로 인쇄골목 구석에서 비밀리에 수 많은 전단지가 인쇄되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돈없는 학생들이 저렴했던 골뱅이를 즐겨 먹었고 민주화운동 이후, 졸업과 동시에 취직했던 학생들이 회사원이 되어 을지로 골뱅이를 다시 찾게 되면서 을지로 골뱅이 골목이 형성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골뱅이가 슈퍼에서 값싸고, 물량이 많아 흔하게 안주거리로 팔던 시절에는 인쇄노동자들이 먹던 음식이었지만, 골뱅이의 수요가 증가함으로써 국내산 골뱅이의 공급이 큰 폭으로 줄어들며 가격이 상승하게 되었고, 이제는 소위 맛집을 찾듯 골뱅이를 찾아옵니다.

♦︎골뱅이를 팔던 슈퍼에서 ‘영동골뱅이’로 ‘원조 을지로 골뱅이 전문점’이 되었습니다.

♦︎사방팔방 구멍가게 슈퍼에서 테이블 하나 놓고 팔던 골뱅이가 지금은 골뱅이만 파는 가게로 변했습니다.

을지로를 떠난 25시 세일링의 좌표들이 또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빛나길 기대합니다. 


25시 세일링

김보경+김청진으로 이루어진 2인 아티스트 콜렉티브. 역사적 사실 및 기억자료를 바탕으로 리서치한 데이타는 사진, 회화, 영상, 소리, 설치 등의 방식으로 풀고 이를 다시 상품으로 재생산한다. 이 상품은 다양한 유통실험을 통해 경제구조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2011년 2월부터 을지로에 정박 중 이다.

황금나침반은 돌고 있다

분량2,293자 / 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12월 14일

유형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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