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조은 × 장호진
분량6,275자 / 12분 / 도판 6장
발행일2012년 12월 14일
유형인터뷰
공간은 가난한 삶을 가장 강하게 구조화, 재구조화한다. 빈곤층의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가출하고, 일찍 동거한다. 그리고 가난은 재생산된다. <건축신문> 4호에서는 지난 25년간 사당동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간의 빈곤성을 주목해온 사회학자 조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이어서 김홍중 교수가 사회학자로서 조은의 소명의식을 조명했다.
조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대학원에서 신문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한 후, 1983년부터 2012년 정년 때까지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소설 『침묵으로 지은 집』(2003)을 썼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22>(2009)를 제작하고, 최근에는 『사당동 더하기 25』를 출간했다.
인터뷰 장호진 MAAPS(공공미디어 네트워크) 대표
장호진 최근 출간하신 『사당동 더하기 25』1는 가난의 대물림과 구조적 조건에 무게중심을 둔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말씀하신 “구조에 나타나는 문화”에 대한 입장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조은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 생활양식이 나타나는 방식은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죠. 공간에다 초점을 맞춰서 풀어보면 오히려 쉽게 보인다고 할까요. 사당동 철거 재개발 현장에 들어갔을 때, 그 현장 (공간)이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강하게 규정짓고 있었죠. ‘사실은 공간이 전부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예를 들어, 방이 좁아 식구들이 반듯이 눕지를 못하고 칼잠을 자거나, 또는 청소년들이 부모와 같이 자는 단칸방을 피해 나와서 돌아다니고,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가출하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동거에 들어간 건데, 이를 향해 사회는 혼전동거나 성적문란이라는 이름을 붙이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문화’로 규정하지요. 그러나 다시 보면 그것은 ‘가난함’이라는 삶의 방식인 거예요. 가난함이 그들의 주거를 조건 짓고, 그 조건이 다시 삶의 양식을 규정해서 그들은 일찍 가출하고 동거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일찍 가난한 부모가 되고 가난은 또 재생산되고. 그게 바로 빈곤 재생산 구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장호진 1998년 보고서인 「재개발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 서울 사당동 재개발 지역 사례연구」를 보면, 주거 공간의 탈상품화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대안으로 영구임대아파트와 순환 재개발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은 당시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련 세미나도 하고 보고서도 내면서 직설적으로 정책 제안을 하게 되었죠. “순환 재개발을 해라”, “영구임대를 확대하고 세입자에게도 이주권을 보장해라” 와 같은 제안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현장연구를 하던 1986~90년에는 철거 재개발 지역이 곧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곳이었어요. 자고 나면 아파트 딱지 값이 치솟는 때였기 때문에 괜찮은 아파트가 서는 것, 중산층 주거지 확대 gentrification에만 관심이 있었지, 거기 사는 사람들이 쫓겨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럴 때 저희가 빈곤층을 위한 공간의 탈상품화를 이야기한 것은 시류에 조금 앞섰던 셈이죠. 그때 공간에 대한 자본주의적 재구조화 방식의 하나가 ‘철거 재개발’이라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게 되었어요. 시유지나 공유지를 불하해서 시장 기제에 맞추는 방식이 건설회사와 가옥주들이 합동으로 개발하는 ‘합동 재개발’이라는 이름을 얻은 건데, 합법적으로 강제 철거를 가능하게 한 정책이기도 하죠.

장호진 말씀하신 합동 재개발 방식에 동반하는 합법성 논의가 항상 빈민 철거지역에서 문제가 되고, 또 그것이 공유지에 대한 인식과 연관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겠는데요.
조은 용산 참사가 터졌을 때 자연스레 사당동을 떠올리게 되었죠. 사당동 철거 현장에서 나온 지 20년 뒤 거의 똑같은 방식의 공간을 둘러싼 폭력적인 철거의 ‘합법성’과 마주쳐야 하는…. 용산은 주로 세를 들어 장사하던 영세 상인의 생계 터가 강제 철거되었다는 점에서 주거지가 철거된 사당동과 사정이 좀 다르지만, 실거주자 또는 사용자로 인한 공간의 가치 창출에 대한 무시와 권한 박탈이라는 점에서 보면 비슷한 거죠. 사람이 살 수 없는 산등성이였던 사당동에 1965 년에 들어와 철거가 시작되는 1986년이 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거주 자체가 그 지역이 값이 나가게 하는 일종의 노동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공간을 소유 또는 사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니까. 재산권 개념 자체가 분명 다르게 정의되어야 하는 영역이 있는데, 철거나 재개발 에서 사회적 약자의 재산권이 ‘합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일이 생긴 거죠.
우리 사회에서 공간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문직이 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건축, 건설에 종사하는 분들, 사회학을 하는 분들 모두가 자기 전문성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호진 빈곤 연구에 있어 전문직이나 학자들이 실제 속해있지 (혹은 경험하지) 않은 계급이나 지역에 관해 연구하는 것을 두고 한계를 언급하지는 않는지요.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는 연구 자체보다도 이를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며 쓴 책입니다.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한다는 것이 무얼까, 이런 고민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가끔 기자들이 저에게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을 공부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니까, 가난 연구가 역설적으로 값나가는 액세서리가 된 듯한 질문도 하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가난 연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학자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이해하면 더 좋고요. 학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발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발언해주는 것이 책무가 아닐까요.
장호진 임대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빈곤 공간 정책에서 보통 제시되는 선택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조은 일단, 현실적으로 임대아파트는 필요한 정책인 건 맞아요. 그런데 임대아파트를 갔다 나올 때마다 또 다른 우울함 같은 게 있어요. 왜냐하면, 임대아파트가 노동빈민working poor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노동조차 할 수 없는 초 취약계층에 한정되어 있고,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노동할 수 있는 가구원은 신청에서 제외되지요. 노동빈민, 즉 노동을 하지만 생계가 힘들고 주거 해결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책에서 묵과되는 거죠. 노동빈민을 위한 임대 주택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해요.
또 하나는 이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는 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제가 사당동 필드조사를 할 때 사당동은 일터이기도 했고 놀이터이기도 했어요. 집들은 다 불량이라 하더라도, ‘마을’과 ‘동네’의 정서가 있거든요. 그런데 임대아파트에는 이런 게 없어요. ‘공간’ 을 만든다는 것은 곧 ‘삶의 양식’을 만드는 건데, 공간을 정책화하고 건물을 지을 때 가급적 사회학적, 인문학적 접근이 적극 필요하다고 봐요.
장호진 최근 한 다세대주택 프로젝트를 보니까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주차장 공간을 차 대신 벤치 몇 개를 두었을 뿐인데,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이 그곳에 마실도 오고 편하게 소통하는 공간이 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조은 바로 그런 거예요. 임대아파트를 지을 때 오히려 건축하시는 분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세민 주거정책에서 공간의 소유와 사용 방식에 대해서 좀 전향적인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장호진 예술도 마찬가지로, 공공미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작가들이 도시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프로젝트의 양보다 새로운 담화 형성을 이루어내는 일에 전문가의 헌신이 얼마나 밑바탕이 되는가 하는 점일 겁니다. 정책적 측면에서 영구 임대아파트와 순환 재개발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은 1986년에서 1991년 즈음에는 순환 재개발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때 우리가 선례를 외국에서 찾아보고 제안한 거죠. 세입자에게도 이주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철거민 운동 쪽에서 이미 나왔고요. 우리의 그런 정책 제안은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세입자 편에만 선, 너무 뭘 모르는 사회학자와 인류학자의 제안으로 치부되었지요.
장호진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22>에는 문화기술지 형태로 한 가족의 일생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한 가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섬뜩할 정도로 잘 보여주고 있고요. 연구에 담긴 구조가 개인과의 연관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길 원하셨나요.
조은 사회학 하는 사람이니 ‘구조가 영향을 미친다’ 는 것에 암묵적인 관심이 있었겠지만, 저도 놀랄 정도로 생생하게 구조와 개인의 연결고리를 그 속에서 보았어요. 예를 들어, IMF가 터지면 바로 다음 순간 이 사람들은 직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또 세계화라는 구호가 이후에 “농촌총각 (외국 처녀에) 장가보내기”로 나오자 “누가 나 같은 가난한 사람한테 시집을 오겠나. 돈 조금 들이면 연변에서 데려 올 수 있다니 데려와야지” 하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자본주의 구조와 가난한 사람들 간에는 완충지대buffer zone가 없는 듯해요. 자본주의 구조와 기제에 맨 몸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바로 돈 없는 사람들인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산다는 것은 구조의 영향을 흡수하는 어떤 막 (어쩌면 돈)이 있어서, 흡수하고 그 충격을 지연시키는 힘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는데, 그 맨 끝에는 급전이 필요해서 주민등록증을 잡힌 빈곤층이 대포 통장, 대포 폰, 대포 차의 먹이가 되어 매달려 있더라고요.
장호진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산체스의 아이들』 에 등장한 ‘빈곤문화’ 개념을 원용하시면서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조건과 구조에 주목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빈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현’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난의 구조적 조건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제작 전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은 다큐를 만들 때는 사회학적 논문 쓰듯이 구조를 보여줘야 된다던가, 빈곤문화 논쟁이 들어가야 된다는 걸 계획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양식으로 사회학적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어떤 주장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기보다는, 가난한 삶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을 더 잘 드러내는 한 방식이나 도구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장호진 오늘날 서울이라는 공간과 그 개발을 둘러싼 논의들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더 듣고 싶습니다. 빈곤의 공간, 공간의 빈곤들이 특히 서울이라는 특정 장소와 연관해서 갖는 특징이 있다고 보세요?
조은 글쎄, 서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빈곤의 공간을 끌어오는 게 쉽지는 않아요. 많이 이야기 하듯이 서울이라는 공간의 혼종성hybrid은 그 자체가 가진 특수성이죠. 서울은 압축 발전한 한국 사회와 도시의 온갖 특징을 모두 보여주죠. 철거 재개발지역 그리고 빈민들의 공간이 그런 문제들을 집약해서 드러내주는 어떤 공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적 공간들을 어떻게 정리해 갈 것인가가 큰 숙제죠. 또 공간을 어떻게 구조화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죠.
장호진 마지막으로 문화기술지로서의 방법론에 있어 자료에 대한 해석상의 지난함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되는데요. 연구자로서 입장 수정이나 생각의 변화를 겪으신 부분이 있으셨는지요.
조은 객관적, 과학적이라는 패러다임과 같은 인식론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했어요. 오랫동안 한 주제에 매달리면서 좋았던 점으로 주눅 들지 않으면서 ‘학술서적’ 글쓰기에 있어서도 더 자유로웠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많은 분들이 제 작업에 대해 22년이나 25 년이라는 시간에 방점을 찍어서 과거의 가난을 잘 관찰하고 기록한 점을 주목하시는데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이 작업을 통해서 과거의 가난이 아니라 미래의 가난, 또는 가난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25년 전, 이들의 가난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을 때는 빈곤의 재생산이나 세습이라는 결과는 예측했지만, 빈곤의 양식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문화 가족, 중학생이 된 사례 가족의 아이가 사귀는 애가 탈북자라는 것도 그렇고,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가발이나 성형에 ‘투자’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분량6,275자 / 12분 / 도판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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