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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이 동행하는 디자인

김영나 × 조형석

미래의 무늬, 그리고 기록의 언어
충실한 기록과 리서치로 구성된 작품은 비밀의 장소에서 보내는 미래의 신호처럼 다가온다. 디자인에서 사람과 도시를 마주하게 하는 디자이너 김영나와 컴퍼니COMPANY를 인터뷰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기억과 기록을 망각의 공간으로 옮기는 대신,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며,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김영나  네덜란드 타이포공방Werkplaats Typografie을 졸업한 뒤 암스테르담을 근거지 삼아 활동하였으며, 최근 귀국해 서울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계간 『GRAPHIC』의 아트디렉터 겸 편집자로 일해왔고, 2004년부터 『umool umool』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조형석 그래픽디자이너


조형석 네덜란드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있나요?

김영나 네덜란드에서 타이포공방이란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졸업 이후에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이 갖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단지 교육만 받고 돌아오기보다는 거기서 생활하면서 문화를 이해하고 익힐 목적이 좀 더 있던 거죠. 졸업 후 제게 주어진 약간의 기회들이 있었는데 또 그런 기회들은 제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GRAPHIC』 작업이 그런 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졸업 후 4년을 지내면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거점을 옮겨보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한 1~2년 전부터는 서울에 돌아가서 작업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새로운 경험을 하고서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맞닥뜨리게 될 두려움도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 얼마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내부적인 에너지를 쌓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서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은 좀 싸워볼만하다’, 혹은 ‘예전보다는 조금 단단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디든 움직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조형석 요즘에는 디자인을 할 때 어딜 가나 똑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웹을 통해 작업들이 쉽게 공유되면서 디자인 환경 자체는 평준화되었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GRAPHIC』 디자인 작업이 가능했고요. 때문에, 한국에 오신 것은 제작 환경 변화가 아닌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원하셨던 것으로 봐도 될까요?

김영나 그런 것도 있지만 제작 환경 역시 많이 바뀌었죠. 네덜란드에서 같이 일했던 인쇄소나 제작에 관련된 분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하고 저도 그 분들을 훌륭한 협업자로 생각해요. 반면 한국에선 프로젝트를 다룰 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만 집중 조명이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사실 제작자와 디자이너와의 관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의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국 결과물로 보이는 것은 클라이언트, 디자이너, 제작자가 원활하게 소통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장거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과정은 최근에 들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GRAPHIC』은 편집장님을 실제로 처음 한 번 뵙고 나서 몇 년 간 계속 교정이나 후반 작업을 네덜란드에서 이메일이나 스카이프Skype 등으로 해결했으니까요. 그리고 요즘에는 워낙 디자인을 다들 잘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큰 과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물론이고 더 어린 학생들도 이미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어요. 그런데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는 디자인은 점점 매력이 없어지기도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을 해 왔는지, 자신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서 무엇을 주목하게 되는지는 계속해서 달라지겠죠.

<Chernobyl 20>, offset print, 68x95cm, 2006 / 자료 제공: 김영나

조형석 『GRAPHIC』에는 김영나 디자이너의 편집자로서, 기획자로서, 디자이너로서의 다층적인 면모가 들어있어요. 그만큼 애착도 컸을 것 같은데 24호를 끝으로 작업을 마치는 이유가 있나요?

김영나 작업과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고 그 작업들을 받아보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GRAPHIC』은 9호부터 함께 했는데, 제가 참여했던 기간이 그 이전보다 더 길어지는 순간부터 심리적으로 주인의식 같은 걸 갖게 된 것 같아요. 이 잡지를 3년 이상 진행하면서 관심 있었던 주제를 다양하게 다뤘으니 아쉬움이 크게 남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또 새로운 방향의 작업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저에게도 작업실을 옮기 듯 새로운 공간을 심리적으로 주고 싶었어요.

조형석 만약 잡지를 만든다고 하면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김영나 예전에 친구들이랑 ‘음식’에 관련된 잡지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디테일한 작은 키워드나 이슈들이 음식이라는 큰 그림, 카테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개념의 음식 잡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식 잡지 자체도 재밌을 수 있겠지만 어떤 추상적인 주제를 풀어나가는 게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일, 먹는 일 모두 직접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생활을 지배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니까 관심이 생기는 거 같아요.

조형석 한국에서 꼭 해야겠다고 계획하는 프로젝트든 워크숍이든, 구체적인 활동 같은 게 있나요?

김영나 항상 공간에서 오는 힘을 믿는 편이에요. 공간은 어떤 생각과 행위를 모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죠. 그래서 어떤 생각들과 물리적인 공간들이 공유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정 네트워크나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것보다는, 간혹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람이 아닌 공간 자체를 협업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좀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작업실, 스튜디오, 개더링 플레이스gathering place, 아틀리에 그리고 (관념적인 의미의) 디자인 스튜디오, 개인 작업실, 협업 공동체, 워크숍 등의 여러 가지 혼재된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관념의 구조와 물리적인 공간이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뭔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Group Portrait>, collaboration with Anu Vahtra, printing on adhesive plastic sheet, 500x335cm 과거 작업들을 의인화시켜 컴포지션하고 한 공간에 모아 찍은 기념사진. 밀라노의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Triennale Design Museum에서 열린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들Graphic Design Worlds» 전시, 서울 갤러리팩토리 «Found Abstracts»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 사진: 김영나

조형석 즉흥적이기보다는 하나하나 단계를 들여다보고 반추하는 스타일이신 것 같아요.

김영나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경험과 일상인 것 같아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생각의 재료, 작업의 재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수집이나, 기억에 대해 집착하는 거일 수도 있죠.

조형석 그럼,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모으는 데 있어서 일기를 쓴다든가 컴퓨터 파일에다가 정리한다든가, 개인적인 의식이 있나요?

김영나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뭘 하고 있기는 한데, 이걸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구조를 갖춘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웃기잖아요. 누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데 서체나 레이아웃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것. 근데 한창 학창 시절에는 그랬던 거 같아요. ‘하루하루가 굉장히 중요하다. 모든 걸 기록해야겠다.’ 그래서 굉장히 강박적으로 아카이브를 하고, 날마다 일상과 관련된 이미지 하나씩을 만들어내려는 야심찬 목표도 있었죠. 요즘엔 오히려 강박적인 아카이브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범-일상’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와 닿죠.

조형석 요즘 예술과 디자인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보니까 김영나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항상 디자이너로 소개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신의 직업군을 그렇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김영나 제가 생각하는 ‘작가’는 굉장한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작가상에 제가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답하곤 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작업이든 ‘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스로를 디자이너로 보려는 관점에는 아마 이런 이유일 것 같아요. 전 아무런 제약이 없으면 어려움을 느껴요. 그래서 뭔가 과제가 주어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끔 주어진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판단하고 그 문제를 전복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뭔가 그 이전의 외부적인 개입이 있는 것이 즐거운 것 같아요. 작가의 경우에는 계속 생각의 끈을 스스로 발생시키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사람들이죠. 어쩌면 그것은 숭고한 차원이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문제해결사’ 같은 맥락이 더 편한 것 같아요.

<Announce of Recollection 01>, silk screen, 84.1×118.9cm, 2009. 5 / 자료 제공: 김영나

조형석 아카이빙이 곧 죽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영나 물론 아카이브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내세와 현세를 이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아카이빙은, 다른 작업을 할 때 다시 기억하기 위해 들춰보는 저장소이기도 하죠.

조형석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매년 <기억의 선언 Announce of Recollection>이라는 주제로 역사 속에 있는 사건들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5.18 민주항쟁, 의문의 죽음을 맞은 어느 조각가처럼 모두 ‘죽음’이라는 큰 이슈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어요.

김영나 어,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재미있네요. 사실 <Chernobyl 20>은 그 시리즈 작업에 포함되는 작업이 아니었지만 같이 연결을 지을 수 있겠네요. 러시아에서 체르노빌과 관련된 공모전이 있었어요. 여행을 가서 만난 두 마리의 개 사진이 있었는데 과거와 현재에 관한 느낌이 들어서 그 이미지를 이용해서 만들었죠. 그 공모전의 주제가 과거의 불행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계속 해나갈 미래의 일들이었어요. 어쨌든 제가 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제 고향이 광주인데 5.18 민주항쟁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쪽 지역에서 자라오다 보면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되죠.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최루탄으로 뒤덮인 5월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때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냥 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오다가도 ‘아, 어제가 5월 18일 이었구나!’ 이렇게 느끼죠.

그래서 한번은 이렇게 과거가 밟히는 날에 개인적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포스터는 보통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선언을 하는 건데,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니까 맥락을 다르게 보는 거죠. 날짜 같은 특정 정보를 그래픽 요소로 처리해서 언뜻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인 거처럼 보이는 거죠. 디자인을 하면서 생기는 포스터에 대한 애착이나 포스터의 순수한 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지만, 오히려 포스터에 담길 콘텐츠에 주목해서 우리가 의례 생각하는 앞으로의 일어날 일을 선언하는 목적을 뒤틀어 다른 형식으로 표현 해보자는 생각들을 했죠. 그래서 과거를 기념하고 선언하고자 하는 날을 찾아 2009년부터 매년 작업하고 있어요.

그 다음 해의 작업의 경우, 제가 그 즈음에 『이플럭스 저널e-flux journal』 한국판의 뒤표지를 만들게 되서 관련된 리서치를 하다, 때마침 재밌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되어 그때 상황을 선언하는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세 번째 작업의 경우는 제가 어느 날 듣게 된 강의를 통해 만프레드 그내딩거Manfred Gnädinger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후로 한 동안 그 사람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보았는데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거예요. 독일 출신으로 문명을 등지고 스페인 가르시아 지방에서 혼자 지냈던 사람인데, 그내딩거의 작업은 조각과 자연이 어우러져 삶의 터전 자체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지방 해안가에 유조선이 침몰하는 사건이 생기고 작업과 삶이 완전히 다 엉망이 돼요. 유조선 침몰 사고 두 달이 지나고 나서 죽은 채로 발견되고요. 사람들에 의하면 ‘슬픔이 그 사람을 죽였다’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어요. 당시에 그 사람이 죽은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조형석 앞으로도 계속 진행을 하시겠네요?

김영나 네, 물론이죠. 매년 365일이 반복되는데 어떤 특정한 날이 왜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가 혹은 그날에 관련된 어떤 인물이 어떤 계기로 나한테 특별한 사건이 될 수 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식과 같은 일이죠.

기억과 기록이 동행하는 디자인

분량6,405자 / 13분 / 도판 3장

발행일2012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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