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저널리즘의 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
구본준, 김광철, 정귀원, 이은주, 박성태
분량9,570자 / 2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좌담
『공간』지가 공간건축의 지원 중단으로 폐간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건축과 디자인 전문지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경제ㆍ사회 여건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는 앞으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란 의문을 갖게 된다. 전문지와 신문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김광철 『그래픽』 발행인 겸 편집장, 이은주 「중앙일보」 기자, 정귀원 『와이드AR』 편집장,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본준 저는 지금 현재 건축 잡지에 불만이 있는데요. 뭐냐면 우리나라 건축 얘기를 많이 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특별히 한국 건축가만 소개하는 잡지가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데 함부로 얘기는 못하겠어요. 저도 주간지 「한겨레 21」에 잠깐 있었지만, 한국에서 잡지를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광고 시장이 좋으면 활성화됐다가 어려워지면 접는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와중에 전문 잡지들이 그렇게까지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한 거거든요. 이번에 『공간』 이야기로 놀랐던 이유가, 지원을 해주는 데도 생존이 어렵다는 거잖아요. 만약에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공간』 도 없었을 거란 얘기잖아요. 충격적이에요. 『와이드AR』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하는 걸 보면서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그래픽』도 5년 넘게 생존하는 것이 참 대단하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열정을 가지고 승부하는 잡지들만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은 가슴이 아프죠. 잡지가 풍부해야 디자인계건 건축계건 그 안에서 담론이 생기는 건데 담론이 생기기 어려운 콘텐츠로만 채울 수밖에 없는 점이 안타까워요. 인터넷에 없는 깊숙한 내용은 잡지에서밖에 볼 수 없는 건데 말이에요. 어느 분야에 입문하건 관련 개론서나 전공서보다도 저는 그 분야 관련 잡지를 1년 동안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으면 디자인 잡지만 1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독자로서 즐거운 건데, 자생하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그래서 그 생태계가 오래 가지 못하고 죽는 게 제일 큰 문제죠.
김광철 『그래픽』을 포함해서 ‘전문지들이 어려우니까 봐주는’ 건 멀리 봤을 땐 전문지나 관련 계에 도움이 안 돼요.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평가를 해야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어려운 환경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잡지에서 에너지가 많이 죽어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예리하고 민감한 것들에 과감하게 촉을 세워서 존재감의 빛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다른 잡지를 볼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귀원 창간호를 만들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무리 어려워지더라도 한 페이지라도 계속 쓰겠다”. 지금도 여러 가지를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순간이 와도 결의를 다지면서 잡지를 만들고 있기는 한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젊은 마인드로 계속 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 관계자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와이드AR』은 고령자가 만든, 모두 마흔이 넘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만든 잡지라고… 그러면 우리 이후에 누군가가 계속 이것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고민이 들어요. 그래서 저희는 치열하게 뭔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잡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후배들이 와야 하는데, 그런 점들이 힘든 것 같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몇 년 후에 후배들을 데려와서 더 좋은 것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처음과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거든요.
박성태 구본준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전문 잡지가 건축계라는 특정 분야의 정보를 소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잖아요. 『그래픽』이나 『와이드 AR』을 포함한 독립 매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역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광철 저는 충분히 강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 커뮤니티는 밀도가 있으니까요. 한국만 생각하자면 좁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잡지에 의미 있는 아티클이 하나만 실려도 해당 분야의 주요 멤버들의 생각이 그 아티클 하나에 의해서 버틸 수 있어요. 그래서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그래픽』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그래픽』은 취재나 피처feature 지면이 없어요. 그래도 한국의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바꿔놨어요. 천천히. 『그래픽』이 여태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상업적 그래픽 디자인과는 다른 ‘대안적이고 자율적이고 미학적인 그래픽 디자인 세계가 있다’ 고 생각한 걸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거든요.
구본준 저는 건축 잡지에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을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너무 추상적이고 우아한 것들만 있어요. 현실적인 건 없는 것 같고. 그걸 유일하게 해소시켜주는 잡지가 『와이드AR』이에요. 아까 김광철 편집장이 말씀하신 대로 어차피 지금은 기존에 해왔던 방법만으로는 잡지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엔 어려운 실정인 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상식을 비상식 안에 몰아넣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많거든요. 그 분야에 대해서 생생한 얘기를 듣지 않을 바에야 그 잡지를 왜 보겠는가 생각해요. 적합한 모델이 될지 모르겠는데, 『기획회의』라는 잡지가 있어요. 단도인쇄 수준인 출판인들을 위한 잡지인데 ‘나는 이 책을 이렇게 기획했다’라며 편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요. 아무런 형식도 없이. 근데 그런 것들이야말로 정말 귀중한 자료잖아요. 그런 걸 통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듯이 건축이나 디자인도 우아하게 포장되어있는 결과물이나 가끔 선보이는 근사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거죠. 소수의 스타플레이어 몇몇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디자인계나 건축계에 있는 사람들이 ‘맞어, 우린 이래’ 내지는 ‘이런 게 있네’ 라고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날 것’의 정보를 접할 수만 있어도 더 많이 이야기되고 해당 분야의 논의들도 더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박성태 이은주 기자는 건축이나 디자인 전문지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이은주 계속해서 잡지가 죽고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새로운 마켓이 있을 수 있겠다는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해요.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래픽』을 보면서 조금씩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전문지는 물론이고 중간지대의 좀 더 많은 잡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타깃 층을 얘기하는 거예요. 사실 신문은 불특정 다수의, 굉장히 넓은 타깃을 가진 매체이고 또 제가 신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 더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답답함인 동시에, 이런 전문 영역에서 중간지대 역할을 하는 매체는 오히려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은 분야에 관심을 조금씩 가지고 있고, 그런 경향이 계속 느는데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매체들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정귀원 우리가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못했거든요. 저는 가장 전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것은 전통적이고 전문적인 요소를 넣고 발전시켜 나중에 대중들과의 접점을 잘 찾을 수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이은주 전문적인 이야기를 비전문적으로 풀어내라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이야기를 비전문인도 읽기 쉽게,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라는 거죠. 물론 읽기 쉽게 쓰는 게 어렵죠. 쉬운 건 아니지만 가끔 유명 출판사에서 인정받는 편집자가 만들어낸 책인데도 타깃을 어떻게 잡은 건지, 누가 읽으라고 만든 건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요. 특히 건축 책은 더 그래요.
박성태 잡지와 관련해 일하는 사람들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일을 꼭 해야겠다’ 라는 사명감을 갖고 뛰어드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작은 것도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국내 건축 잡지가 한창 활발했을 때도 면면히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사실은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거죠.
김광철 전체적으로 한국 잡지의 콘텐츠의 질이 문제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과거 1970~80년대를 ‘잡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잖아요. 지식인들이 소통하자는 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사명감이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도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서점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보면, 특별한 게 많지가 않아요. 전문지도 그렇고요. 그게 슬프죠.
아까 이은주 기자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문지임에도 문화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나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문적인 영역이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끌어내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무슨 문제가 있냐면, 잡지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누가 우리 잡지를 읽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거든요. 주요 독자층은 전문인인데, 한편으로는 기본 지식이 전혀 없이 단순하게 혹은 일시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텍스트를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언어로 풀어나가는 능력은, 잡지뿐만 아니라 많은 비평가들에게 힘든 부분이에요. 그런데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잡지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씨네21』은 그런 역할을 했죠. 영화를 심도 깊게 다루면서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보도 실려 있고. 교양, 역사, 철학이 다 있는 저널이었죠.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아쉬움이 있어요.
정귀원 『씨네21』을 보면서 건축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한편으로는 영화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달라서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저희가 내부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있고, 영화와는 다르게 일반인이 건축은 더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2000년대 초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에 땅콩집을 보면 일반인들의 건축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 접점에서 만나는 때가 있을 거고 그 부분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구본준 최근에 『GQ』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며 건축 잡지들을 향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 일이 있어요. 근대건축물에 대한 가상 프로젝트였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땐 사실 굉장히 단순한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기획인데, 건축이 아닌 다른 분야의 잡지에서 한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런 잡지를 보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중이 아니라 눈 높은 독자들이거든요. 그들의 욕구를 건축이나 디자인 잡지들도 충족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콘텐츠보다 편집의 인상을 보고 그 잡지를 선호한다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화려한 건 누구나 다 화려하니까 그 문제는 차치하고. 그런 것보다 다양한 꼭지들이 공존하는 것이 잡지에서 중요하거든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전문가보다는 일반인을 상대로 구색을 맞추고, 전체적인 톤과 매력은 그 속에 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은주 기본 타깃이 전문가인 건 좋아요. 하지만 동시에 일반 사람들도 좀 볼 수 있도록 다른 접근 방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 얘기를 풀어내되 접근 자체를 다르게 하면서도 충분히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신문에서 건축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건축가들을 인터뷰하고 와서 나중에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전문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하거든요. 건축 분야를 반복해 다루면서 나중에는 편해지긴 했지만, 일단 기본 언어 자체가 나한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힘들었죠. 그래서 저는 기사를 쓸 때 최대한 단순화 시켜요. 신문이니까요. 완전히 다 버리고 단순한 이야기로 ‘통역을 한다’는 느낌으로 해요. 건축가들의 언어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김광철 건축 잡지건 디자인 잡지건 전문지는 진지해야 해요. 그런데 『GQ』는 진지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거든요. 영화 잡지의 경우, 비평란을 보면 훨씬 더 유연해서 관련 분야의 사람이 아니어도 패션이든 미술이든 건축이든 누구든 재밌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와이드AR』 나 『그래픽』은 한없이 너무 무거워요. 진지하다는 건 단순히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지를 담은 진지함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유머러스하거나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전문적인 독자들은 그렇게 하면 굉장히 놀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의 고리타분한 접근, 매일 하는 얘기 또 하는 그런 벽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은주 『뉴욕타임즈』나 『가디언』의 건축 기사는 오히려 쉽게 읽혀요. 뭔가 언어에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한국말로 된 잡지기사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근원적 엄숙주의가 있는 거 아닌가요?
김광철 신문이나 주간지는 누가 읽어도 무조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추상적인 말을 쓰면 안 되고요. 전 국민이 읽는 글이니까요. 쉽게 쓴다고 해서 왜 전문적인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재미있고 신선하게, 얼마든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죠. 저널리즘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과 의지가 전문지에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은주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인데, 사람들이 잡지를 보는 이유는 지금 이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 때문이에요. 생각을 읽다보면 그 생각이 영감도 주고, 정보도 주고 그런 거죠. 지금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구본준 저는 『와이드AR』이 지금 현재 건축 전문 잡지 중에서 가장 쉽게 읽혀지거든요. 이 정도 톤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은주 기자님이 (중앙일보에서) 렌조 피아노Renzo Piano에 대한 인터뷰를 하신 걸 읽었어요. 중요한 인물, 중요한 사안이면 전문지에서도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렌조 피아노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일간지에 나가야 해’ 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힘들겠지만 전문지들이 무조건 달라붙어서라도 인터뷰를 해야 해요. 제가 봤을 때 잡지는 ‘도발’이거든요. 뭔가 튀는 게 하나라도 있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겁이 나서 못한 것들을 좀 질러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죠. 매체 파워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하더라도 도발을 많이 해주면 독자 입장에서는 즐거울 것 같아요. 내용이 없으면 어때요? 기본적으로 진지한 건 당연히 깔고 가는 거니 좋고, 진지함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도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진지한 도발이라면 최상입니다.
이은주 독자와 나, 독자와 전문적인 내용의 교차지점이 어디 있는지 독자들의 반응을 추적해보거든요. 전문가의 이야기에서 요즘 독자들이 뭘 원하는가 보니까 렌조 피아노와 같이 “유명한 사람이 생각하는 법”을 보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그가 나와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그걸 전하는 지점이 있거든요. 제가 독자들에게 원하는 부분도 있어요. 가령 렌조 피아노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만든 런던의 ‘샤드The Shard Tower’에 대한 내용을 넣은 것도, 이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당시 영국에서는 ‘샤드’ 에 대해 각종 일간지에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거든요. 이 트렌드를 알고 있고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원하는 독자들이 있어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건축가들끼리도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건축 저널들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구본준 일간지가 건축이나 디자인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많이 쓰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일간지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전문지를 자발적으로 찾아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디서 그런 글을 봤는데, 프랑스에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죽었을 때 일간지에서 1보로 다뤘다고 하더라고요. 프랑스가 패션의 나라이고 이브 생 로랑이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봤으니 그런 거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가 죽었을 때 과연 1보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간지는 매뉴얼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전문지가 해주셔야죠. 저희한테는 전문지가 취재원이기 때문에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덧붙여, 건축 잡지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것도 좋지만 사소한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령, 캐드CAD에 대해서 얘기해본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뤘으면 좋겠어요. 도구적인 측면이죠. 건축이나 디자인 좋아하는 사람들이 물건도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 소개가 실제로 그들이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축가들은 스케치를 하나도 안 해도 되는가, 건축가들은 어떤 카메라를 쓰는가, 같은 내용이요. 이런 것들이 재미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잡지라는 게 ‘잡스러운’ 거잖아요. 잡스러운 게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잡’의 힘을 보여주는 진짜 잡스러운 잡지를 기대합니다.
박성태 잡지가 어렵다고 하는 게,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잡지가 못해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의 현장성을 담는 데도 한계가 있고요. 2010년대에 들어서 독자는 과연 잡지의 도발을 원하나요?
김광철 도발이라는 것이 ‘잡지의 화두’잖아요. 화두가 없으면 잡지가 아니죠. 사실 저는 한국 잡지가 어려워진 것이 화두가 없어서라고 봅니다. 기본적인 소식과 정보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죠. 건축 분야도 인터넷에서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에디토리얼 측면에서 분명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이 없으면 점점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쟁점은 무엇인지, 이 카테고리 안에서 뭐가 고민이고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점점 힘들어질 거예요.
정귀원 『와이드AR』도 계속 고민하는 게 대중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폐쇄적인 건축가 사이의 소통도 이끌고 싶어요. 건축가 간의 소통을 유도하면서 도발적인 글을 한두 편 정도 게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반응이 없다는 게 문제에요. 그냥 조용히 하는 거죠. 정말 무반응일 때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요.
물론 항상 무반응인 건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이라고 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면을 좀 더 깊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관련 글을 게재했는데, 직접 관여하는 분들이 읽는 건 아니겠지만, 이 문제가 밖에서 볼 때는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건축계 내부에서 볼 때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얘기해 주니까 반응이 있어서 좋았죠.
박성태 한 매체에서 중요한 이슈를 제기해도 그 업계 내에서 그냥 깔아뭉개면 이슈 자체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건축계 이슈가 건축계 안에서 뿐 아니라 디자인계나 예술계처럼 다른 쪽으로 전파되어서 이슈화가 커지면 더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광철 도발의 방식도 중요하네요. 도발하려고 마음먹으려면 도발의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아요.
건축 저널리즘의 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
분량9,570자 / 2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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