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말하는 《건축한계선》의 특수성
김일현
분량6,202자 / 12분 / 도판 8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비평
지난 봄, 문화역서울 284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시간의 축 위에 공간을 펼친 《건축한계선》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수많은 경계와 한계를 규정하는 건축의 많은 부분들을 뒤돌아보며 재성찰하고자 기획되었다. 14명의 건축가와 3명의 작가가 남긴 일상의 경계와 한계를 넘나드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전시 기획 과정을 돌아보았다.
현실의 다중성
1947년에 레몽 크노Raymond Queneau는 하나의 이야기를 99개의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는 단편집을 출판했다. 만약 저자가 자신 이름 대신에 여러 사람으로 적었다면 너무나도 다른 필체와 어투로 인해 모두가 합작인 줄 알고 속았을 것이다. 그 내용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복장을 한 어느 젊은 청년이 무슨 일 때문인지 전동차 안에서 신경질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밀치다가 빈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동일한 인물을 필자가 다른 장소에서 만난다는 내용이다. 이 글 모음은 매우 흥미로운 점을 시사하는데, 일단 반복과 변이의 산물인 글들이 독자가 맘먹기에 따라 다채롭게 다가온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자 스스로가 저자의 심리에 자신을 투사하여 묘사의 유희에 동참할 수도 있다. 혹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수백 가지의 다양한 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사실’이라는 단어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팩트fact’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고정관념에 일격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문체연습Exercises in Style』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는 저자의 운치를 드러내는 『양식의 연습』이나 『격조 있는 연습』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이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대략 십 분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각자가 공존했던 짧은 시공간에서의 경험을 개별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보자. 모두가 최면에 걸리지 않은 이상적인 시선과 입장의 산물임도 동시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전시회 《건축한계선》은 이와 동일하다. 본 지면에서는 굳이 개별작품을 설명하기보다는 최종 전시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태동하게 되었고 어떠한 논의와 의지가 이루어지고 관철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전시회 속의 전시회
본래 《건축한계선》은 구 서울역사의(현 문화역서을 284) 두 번째 전시인 《오래된 미래》를 기획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총 기획을 담당한 예술감독 김성원 교수에 의하면, “《오래된 미래》는 서울의 공간과 문화를 통해 낡고 오래된 것에서 우리의 창조적 미래를 위한 동력을 발견하고 그 정신의 지속가능성을 전파하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근현대화의 중심이었던 구 서울역을 통해 한국 근현대 일상의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의 저서를 인용한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와 서울을 평행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구 서울역사의 건물에 내재된 의미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리하여 이 대표적인 역사도시의 유산이 일종의 발전소와 같이 미래를 향한 창의적인 동력으로 발현되는 것을 현재의 잠재성에서 가시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형식에 따라, 기획자는 안상수, 강준혁, 승효상 3인을 초청하여 각각 자율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공연 그리고 건축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전시회를 기획하도록 하였다. 여기에 건축가 김영준이 베를린에 전시하였던 김수근 모형전이 추가되어 《오래된 미래》는 최종 네 개의 전시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구 서울역 건물만큼 전시에서 공통분모를 이루는 것은 건축가 김수근이다. 이전에 ‘공간사랑’을 운영했던 강준혁은 《문화그릴》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예술인들의 공연을, 그리고 안상수는 《미래로 보내는 기억들》로 17인 초청전을 기획했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승효상은 《문화풍경》이라는 개인전을 기획하였는데, 아무래도 김수근의 후계자이거나 홀로 건축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부담이 되었는지 건축가 이종호와 대안을 모색해 김수근의 다음과 그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신세대건축전》을 제시하였다. 바로 이 시점에서 차후에 김광수, 김일현, 하태석에게 의뢰되어 새로운 전시회가 기획되고, 곧 《건축한계선》이 태동하는 기점이 된다. 이토록 전시회의 형성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선형적이지 않은 흥미로운 절차를 통해 두 달이라는 단기간에 전시가 기획되었음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총예술감독과 승효상의 대인배적인 지원으로 전시의 실현이 가능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한계선》이 초기의 기획과 앞선 절차와는 상관없는 독립적인 전시회임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이다. 새로운 전시회의 자율적인 위상에 대해 마지막까지 이견이 있었고, 그 흔적이 공식홈페이지와 포스터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사실을 주지할 때, 삼등대합실에 위치한 《건축한계선》이 왜 독립적인 그래픽을 사용한 포스터와 리플렛을 제작하게 되었는지도 관객들은 더욱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념미술이 작품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과정과 수용마저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듯이, 본 전시회도 다양한 갈등의 충돌을 그 형성과정에 내포하고 있다.
집단지성의 실험장
전시 제목도 여러 변화를 거쳤다. 기존의 《신세대건축전》은 진부하다고 판단되었다. 젊은 세대 자체가 전시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령을 김수근 선생이 타계한 1986년 이후에 건축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건축가로 연령을 한정했다는 면에서 제목은 사라졌어도 본질은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제목으로 등장한 제목은 《동시대_에피소드》였고, 이 제목으로 전체 작가들과의 첫 회의도 시작되었다. 이 경우도 제목은 사라지지만 새롭게 논의되었던 관점과 취지는 흡수된다.
김광수 교수는 “산초!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이빨 하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라는 돈키호테의 인용문을 통해 ‘건축’과 ‘건축가’의 정의 자체에 대해 재성찰할 것을 제안하였다. 중요한 쟁점은, 경제의 고도성장과 모더니즘의 과대망상과는 차별되는 현시점에서, 더 이상 거대담론이 아닌 사소한 에피소드의 누적이 건축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계몽의 대상이 없는 이 시기에 건축가는 스스로가 계몽되고 있다. 그것은 ‘나는 어쩌면 건축가가 아니다’라는 식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접면에 존재하는 활동들의 에피소드이자 ‘큰 건축’에 대한 반론이다.” 또 하나 커다란 변화는 이후에 정재은 영화감독과 성재혁 교수의 재능기부인데, 이로써 영상작업과 그래픽작업으로 전시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태석이 기획한 《조직적 랜드스케이프》는 바로 이러한 취지를 요약하는데, 한 작품에 해당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다섯 칸이라는 할애된 면에서 높이와 조합의 형식을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에 맞춰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두 차례 제목이 변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섭취된 양분을 보존하면서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건축한계선》이라는 제목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용어를 통해, 개개인들이 작업하면서 이 시대의 건축가로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분야 간에 설정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지, 그리고 일상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는지 등, 일련의 상식적인 문제를 선별된 계획하에 전시하기로 했다. 설치 방식은 하나 내지 두 개의 작품만으로 의미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경관을 한정된 다섯 칸이라는 경계 내에서 자유롭게 만들도록 했다. 다양한 사고의 단면과 단편을 보면서 세상이 수많은 현실로 구성되어 있음을 전하고, 무엇보다 관객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전시를 기대했다.

건축전시의 특수성
도시는 하나의 선을 바닥에 긋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구분된 두 영역에 사람들은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벽을 세우고 단을 쌓으면서 사람들은 차츰 선을 더 긋게 되었다. 도시는 점차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들로 가득 채워져 갔다. 거미줄 같은 선들은 장소의 의미를 희석하고 심지어 사람들의 몸과 머릿속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생각도 감각도 둔감하게 되었다. 합법적인 소유와 합리적인 기능이라는 명분으로 선은 더욱더 정교해졌다. 눈에 띄기 위해 더욱 크고 보다 기발한 건물들이 세워졌지만, 잠시의 자극이 지나가면 곧 식상해졌다. 기억의 장소들이 사라져갔고, 심지어 한 세대보다 단명하는 건물과 단지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도시는 어딜 가도 거기 같은 중성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건축한계선’은 건축에서 흔히 쓰이는 친숙한 용어이다. 실제로 도시는 일조와 경관 그리고 소음 등과 관련된 수많은 경계와 한계를 규정하고 있고, 건축의 많은 부분이 이 보이지 않는 선들에 의해 규정된다. 분명 한계선은 공익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렇게 한계선은 비워진 땅에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채워져 있고, 보이는 건물들도 결정짓는다. 이 한계들은 그 안에서 후퇴하게 하고 안위하게 한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도시는 사는 사람들의 분신이라고도 한다. 동시대에 있다는 우연으로 《건축한계선》에는 14명의 건축가와 3명의 작가가 함께 전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나기 이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에 가려진 의미를 발굴하고 기록해왔다. 공간이 사람에 의해 완성되듯이 17개의 시선과 작업은 현재의 일상 그리고 흔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한계를 넘어서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항상 존재했지만 눈길을 주지 않았던 우리 도시의 현실 그리고 존재하면서도 침묵해야 했던 현상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한계 속에 편히 갇혀 있기보다는 이를 극한으로 팽창시키고, 나아가서 선 위를 넘나드는 곡예사들이다.
《오래된 미래》에서부터 《건축한계선》까지
《오래된 미래》전시는 구 서울역사라는 근대문화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장소를 기리는 ‘추억’으로 머물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현재’와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미래를 위한 문화생산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구 서울역사)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공간(문화역서울 284)의 공존을 모색하며 전통과 현대, 공간과 문화의 역동적인 상생관계를 가늠하고, 한국의 건축•시각문화 공연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여정이다.전시를 구성하는 유닛과도 같은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는 개발과 근대의 이야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첫 세대들을 통해 구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일상적이면서 개별적으로 기능하도록 계획되었다. 창의적 제안들로서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문화’를 매개로 창조적 미래를 발견한다. 그런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전시는 창의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것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건축가 승효상이 기획한 전시의 한 섹션으로서 《건축한계선》 전시는 시작되었지만, 건축과 건축가의 한계에 질문하면서 전시는 자율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다. 전시는 이종호의 발의 후 김일현, 김광수, 하태석의 기획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세 기획자에 의해 초대된 20명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건축가들의 (고기웅, 김지호, 김찬중, 문훈, 신승수, 임상진, 최재원, 신혜원, 안기현, 이민수, 양수인, 오영욱, 이진오, 박창현, 임태병, 장영철, 전숙희, 정현아, 김광수, 하태석)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 박은선, 안세권, 임민욱의 발언들도 전시장을 함께 구성한다. 전시가 열린 기간 동안 건축가 민현식은 《모더니티의 숲을 걷다: 김수근》, 《승효상의 문화풍경》, 《건축한계선》 전시를 관통하는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전시 참여작가를 포함하여 기획자, 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토론이 10회 정도 운영되었다.






김일현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기획자가 말하는 《건축한계선》의 특수성
분량6,202자 / 12분 / 도판 8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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