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만들기의 구체성과 허상
김은희, 이영범, 정석, 정소익
분량10,162자 / 2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좌담
‘마을’ 혹은 ‘공동체’가 도시 재생의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막무가내식 재개발이나 묻지마 뉴타운 정책을 대신하는 합당한 대안일까? 서울시가 어디까지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 주민들의 자생적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할까? 전문가의 전문성은 어떤 방향으로 함께 해야 서로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단순한 마을만들기를 넘은 ‘지역 활성화’로 연결되려면 어떤 순서로 정치, 경제, 사회적 당면 과제들을 풀어야 할까? 그리고 인구 천만의 서울에서 ‘마을만들기’라는 공동체 사업이 효과를 발휘할까? 현장에서 직접 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전문가 네 분과 이러한 문제들을 점검했다.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처장
이영범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정석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소장
사회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박성태 오늘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마을과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더불어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대안은 물론 좋은 문제거리들도 많이 제기되기를 바랍니다.
정석 도시설계를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는 새로 짓는 것, 또 하나는 있는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개발을 위한 도시설계라면, 후자는 마을이건 집이건 오래된 것들을 고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자 쪽 일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겠죠. 한편, 있는 것을 잘 관리하는 도시설계에 대해 오해들이 많습니다. 건축, 토목, 넓게 보면 건설계의 시장구조에서 일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작은 건축사무소와 작은 엔지니어링 또는 지역에 기반을 둔 업체와 인재가 일들을 맡아 살아가는 기업식이나 협동조합식의 시장구조까지 가는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렇게 바꾸기 위해 건축계 또는 엔지니어링 관계자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건축만이 아니라 세상에도 대단히 희망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범 정석 교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까지는 부수면서 살아왔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잘 살려서 고치며 사는 시대죠. 그 중심에 주민과 마을이 있고요. 그러나 도시가 시간을 두고 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주류 패러다임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이 가운데 새로운 가치로서 등장한 마을이나 공동체가 마치 단기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볼 때 ‘부수며 살아왔던 주류 패러다임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라는 문제를 마을과 공동체가 다 젊어지다 보니 힘이 많이 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은희 가장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동시에 권력과 결정권한의 분산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 자본이나 권력에 집중된 ‘내리꽂기’식이라는 기존의 방식이 있다면, 요즘에는 참여를 통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운동의 성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마을생활체계에 첨예한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한 점은 우려할만한 부분입니다. 여타의 문제들을 보면서 최근에 더욱 마을단위가 치열하고 강력한 자본과 상업의 논리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4월 서울시 마을공동체 간담회에서 이영범 교수가 “천만이 사는 이곳에 25개의 자치구가 있고 시정과 구청은 수평관계일 텐데, 이 속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개념이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 오히려 서울시는 끊임없이 마을공동체를 다 취합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부분을 어떻게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마을만들기가 하나의 좋은 답일 수는 있겠지만 해답이나 정답은 아닙니다.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볼 때 마을만들기에 전문가의 역할이 있고, 또 행정의 역할이 있죠. 좀 더 세부적으로 서울시의 마을공동체가 어떤 민주적 절차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정소익 저는 마을만들기라는 것을 정책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기보다 좀 더 미시정치적인 입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공공예술, 예술 행동, 문화콘텐츠는 살아있는 마을과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효과적인 기반입니다. 현 정책이나 조례가 채우지 못하는 간극을 메워 가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특히나 현재 마을만들기의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패배주의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아파트로 재산을 불려 중산층으로 들어가는 루트가 있었는데 이젠 그것이 무너졌고, 다음 대안으로 뉴타운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안되자, ‘그럼 우리는 마을만들기 같은 것을 해야 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서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지 궁극적인 도시재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소통이 중요합니다. 도시는 사실 정책만 있는 것도,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닌, 모든 것이 결합된 곳입니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에 대해 각각 따로 놀던 예술, 인문, 도시설계 등이 이제는 통합되어 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죠.
김은희 그런데 시민운동 영역에서 패배주의는 없어요. 오히려 마을만들기가 지역 단위나 단체들 내에서 인문학, 사회학적인 다양한 교류를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마을만들기를 고민하거나 도시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소통을 열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들 내에서도 얼마나 활발했는가의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요.
정소익 앞서 패배주의를 언급한 이유는, 통인동, 효자동, 체부동, 사직동이 같은 블록에 있음에도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개발이 미뤄진 동네는 기가 죽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덧붙여, 요즘 구 또는 시 차원에서 마을만들기나 마을공동체 이야기가 하도 나오니까 주민자치위원들이나 동장들이 회의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회의에 가면 “당신들이 마을만들기에 관련된 계획을 가져오면 우리는 얼마든지 지원을 하겠다. 계획을 가져와라.”라고 하세요. 솔직히 그분들은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해가 공유되지 않은 상황인 거죠. 마을만들기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조력자facilitator에 대한 역할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인력양성도 힘들고, 해놓아도 그 인력을 넣어둘 곳도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고 보고요.
박성태 그동안엔 편의성•고층•고비용•부동산투기가 서울을 만들어왔다고 한다면, 향후에는 저층•저탄소•저비용•생활밀착 공동체로 가는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그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영범 교수가 제기한 인구 천만의 서울이 과연 마을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가도 짚어봤으면 합니다.
정석 저는 마을만들기를 새로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을살이는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할 수 있는 건데, 문제는 그것을 잊게 만들고 잃게 만든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소외와 단절 그리고 이로부터 생겨난 의심과 염려는 마을공동체를 아주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소위 시장경제와 맞닿아있다고 봐요.
이영범 저는 천만 인구의 도시에서 마을공동체가 실현되려면 일정 부분에서 제도, 정책,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가 기존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이분법적인 구분 사이에 ‘공동체 영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시민단체, 전문가, 사회적 기업 등을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민간을 의미하는 ‘공공적 민간’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정석 이런 일들이 상시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관련 법, 제도, 프로그램,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처방은 조금만 진단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 삶에 대한 내적 욕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매력적인 가치들이 외적 요인으로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지배력 중 하나가 시장의 힘이라고 보는데, 바로 재개발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뉴타운은 또 양상이 다릅니다. 과거의 재개발은 아주 어려운 동네에서 벌어졌지만 현재의 뉴타운은 아주 멀쩡한 동네를 건드립니다. 도시정책에서 모든 제도와 프로그램, 공공계획도 그런 변화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고쳐서 사는 것이 대단히 불리하고 바보스러운 삶처럼 느껴지도록 용적률이라든지 종세분화1 같은 모든 공공 규제가 맞물려 있습니다. 리모델링이 건강한 것이라면 여러 가지 이점을 줘서 권장해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은희 서울의 경우 마을만들기라는 개념은 1999년 도시운동이 본격화되고 2002년에는 시민사회 운동으로 선언한 데에서 흐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2006년 뉴타운이 시작되면서 해체되자 저항을 해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이 취임 뒤에 정책 마련을 위해 했던 것처럼 ‘사회적 기업을 해라’, ‘‘마을기업 100개를 만들어라’와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업비 지원에 앞서 치밀한 제도나 꼼꼼한 관리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정책화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시장을 어떻게 공공의 보호막으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지, 시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시장을 착한 시장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데, 공공 스스로가 또 하나의 시장으로서 정책과 집행시스템을 만들면 권력과 이윤의 중심에 있던 시장들이 이 시장으로 오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개발업자들이 마을만들기에 참여하고 주민들과 논의를 이어나가요. 공공이 얼마나 좋은 정책을 함께 만드느냐의 문제라고 보는데,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의 주민참여식 마을공동체 개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영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 서울시나 광역지방자치단체 단위 행정이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도시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위의 가치, 즉 상식적으로 내가 살 수 있는 권리를 도시가 보장해 주는 것이죠. 도시권이라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도시와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서울시가 미시적인 일상에 들어가 사업으로 풀어나가는 것보다 상위의 개념에서 고민을 하면 좋겠어요. 이러한 측면에서 제도나 정책들이 정비된다면,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도시권을 획득하는 것이 결국은 풀뿌리 공동체 형태로 나아가도록 하겠죠.
정석 성미산마을 유창복 대표가 마을공동체 지원을 ‘뷔페식 방식’에 비유한 적이 있어요. 시나 구, 정부에서 뷔페를 차려놓으면, 마을살이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우리가 언제든지 느긋하게 찾아서 받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지금의 서울시가 만든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라든지, 공동체 관련 행정에 관련 내용이 있어요. 그동안 특수하게 여겨진 시범사업들이 이제는 어느 마을에나 지속할 수 있도록 전환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겠죠.
김은희 그런데 문제도 있을 거라고 봐요. 행정의 역할이 있고 포괄보조 개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 단위가 아닌 구 단위로 내려가야 한다고 봐요. 마을만들기는 집중과 분산이 아니라 분권과 자치입니다. 시는 구가 알아서 쓰도록 두고 관리하면 되는데, 현 서울시 지원센터 형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석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은희 마을에서 움직이는 작은 것들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고 의미 있다고 보지만 마을 단위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마을만들기 운동과 왜곡된 정책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미산은 살아남아요. 그런데 성미산이 아닌 마을이 서울에서는 99%라는 거죠. 우리가 성미산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마을들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을 때 서울시가 어떤 것을 시범화하고 지원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해요. 계속 이야기한 것 중 하나가, 주민참여가 활발한 곳을 지원하다 보면 주민의식이 낮고 환경도 열악한 지역은 방치되는 현실이 현재 공모사업의 병폐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사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행정은 열악한 환경의 동네가 보편적인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는지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박성태 김은희 처장께서 서울시에 다양한 지역이 있고 주민 참여만을 위주로 지원하게 되면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지원과 환경이 주어져야, 지역에서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시죠.
정소익 아까도 얼핏 말씀드렸는데 일단은 그런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요. 3, 5년 길게 바라봤을 때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100% 무료봉사할 것이 아니라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요. 말씀 중 생각난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공공미술품 기금 출연에서도 결국은 각 지자체에서 말도 안 되는 조각품 만드는 것 말고 총괄적인 마스터플랜에 따라서 사회참여를 하고 싶어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고 지방에서는 그런 것 하고자 사람을 모집해도 모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포괄적 지원보다 정책적으로 자문을 할 수 있고 지역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다면 자문단 전문가 풀pool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지역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100% 지역전문가만 있는 경우도 잘 안 돌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숨어있는 지역전문가를 발굴하고 거기서 마스터플랜도 할 수 있어야 하겠죠. 며칠 전 지금의 마을만들기에 대한 보도자료를 봤는데 시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전반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공무원들이 이것을 쥐고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인데,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시장이 매일 강조하는 중간 지원조직을 잘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은희 서울시가 주민참여 마을공동체의 필요성과 의미를 제대로 인지해야 하는데, 너무 저비용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주민이 잘 참여하면 관리도 잘할 것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품, 비용, 시스템도 줄어든다는 거죠. 그런데 참여를 잘한다고 해서 관리가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주민으로 참여하면 곧 주민이 주체로 가니까 지원해주라는 식으로 가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편협한 주민 참여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이전에도 많은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벌어진 현상이었는데 서울은 더 왜곡되는 게 보여요.
박성태 전통적인 마을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었는데 현대 도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 간극을 전문가들이 메워야 한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마다 목공소를 만들어주면 남자들이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있고, 작가들이 개입해서 사소하지만 동네에 버려진 물건을 모아 문화 활동을 하는 식으로 동네 미술관 같은 것들을 만들면 좋겠다는 거죠. 실제적으로 꽃 가꾸기, 집수리처럼 여러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을 마을 사람들과 전문가가 어떻게 결합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김은희 주민을 중심에 두면서 협력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다양한 지원 시스템들이 형성되면 이를 통해 지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영범 지금의 문제는 이것이 다 사업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울시에서 사업을 공고하면 결국은 주체가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업 중심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정석 교수께서 말씀하신 뷔페식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네건축가들이 동네에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약간의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오로지 구청을 통해서 사업 공모에 끼어들어야 하고, 막상 뛰어들어도 지침이 경직되어 유연하고 재미있게 하기 어려워지죠. 그것들이 김은희 처장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네트워크 방식으로 결합되면 마을만들기 사업 계획서에서 구체적인 영역을 잡아야 하고 그 영역에서만 생기는 문제들도 있을 텐데요. 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인 것들이 열리게 되면, 그것이 아까 말씀하신 전문가나 단체들이 지역에서 주민과 활성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펼쳐지는 것이죠. ‘사업의 중심을 어떻게 유연한 형태로 만들 것인가’의 답이 기금방식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시스템이 전환되면 지역에서 전문가들의 활성화가 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소익 어떤 동네에 제대로 된 마을만들기 또는 조금씩 바꾸고자 할 때 마을만들기의 틀이나 사업 공모를 통해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야 하고 도시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큰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총괄적인 계획, 문화생태지도라고 부르든 뭐가 되었든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마을만들기를 하면 뭘 해도 단발적이고 산발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박성태 금호동에 30년 이상 된 주택지역 바로 앞에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가 있고 그 건너 길은 재건축한다고 버려져 있었습니다. 10% 정도만 주민들이 살고 90%는 이미 떠났는데 그렇게 된 지가 3년 이상 되었나봐요. 문제는 그곳 주민들이 방법을 못 찾고 있는 거죠. 그런 지역처럼 도시계획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어떻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이영범 서울시가 조만간 부딪히게 될 도시문제 중 하나가 지금 뉴타운이나 재개발에서 방치된 빈 집 문제입니다. 지금 도시문제에서 풀어야 할 다양한 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마을만들기라는 커뮤니케이션의 툴tool이 있다고 본다면, 지금은 도시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마을만들기라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도 있고, 그 안에 세분화된 주민 계층과 다양한 복지테마에 마을만들기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도 있는 것 같아요.
김은희 그 논의들이 2007, 2008년도에 시민운동 내에서 있었는데, 당시 냉정히 분석했던 것이 우리들의 마을만들기 운동이 ‘중산층 중심’이었다는 거죠. 전통주거지는 재개발로 깨져나가 버리기도 했으니까요. 이제는 서울시가 기존과 다른 정책을 수립해서 자생적 움직임을 도모하는, 정략적이고 정책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활동력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소익 마을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들에게 이것들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만들기를 시범사업으로 한다면 잘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조례화 했을 때 예산이나 총괄 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영범 서울시에서 조례, 담당관 전담조치, 종합지원센터 등을 구체화하고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김은희 그것이 마을공동체 조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다양한 형태로 잘 들어가는 정책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주로 경제적 재생, 사회적 재생, 물리적 재생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세 가지가 다 집중될 필요는 없어요. 어느 지역은 물리적 재생이 중요할 수 있는데, 이미 잘 살고 지역에 뭐 하러 경제적 재생을 시킵니까.
정석 현장에서 주민들을 접해보면 처음에 그들이 변하게 된 계기가 ‘우리 동네의 문제를 우리 힘으로 풀 수 있겠구나’라고 확신을 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우리 도시, 우리 마을의 주인이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마을뿐 아니라 도시와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마을 문제, 마을의 꿈과 같은 것들이 그 일의 출발이죠.
정소익 마을만들기를 하다가 또 다르게 나오는 효과는 지금 말씀하신 것에 더해서 ‘우리가 같이 사는 사람이구나’라는, 같이 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습득된다는 거예요. 지역교육을 하건 스토리텔링을 하건 인지지도를 만들고 본인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건축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이해도를 높이고, 옆 사람도 보이게 하고, 사람만들기의 과정도 더해가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 것은 제도보다 마을만 들기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교육을 통해서 접근을 해야겠죠.
김은희 어떻든 주민들이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해답을 주기 보다는 풀어가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해온 것들과 더불어서, 풀어나갈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학습들을 만들어 공유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인 것 같고요.
이영범 주민자치, 지역자치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결국은 어떻게 마을만들기를 통해서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행정의 시스템을 바꾸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봐요. 저는 이것이 정치적 영향으로부터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거대행정을 어떻게 하면 주민에게 넘겨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행정권 이양의 문제, 결국 분권과 자체의 문제를 마을만들기를 통해서 하나하나 시도해 나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틀에서 많은 시민단체, 지역전문가, 활동가, 사회적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이 훨씬 커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마을만들기가 중요하고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지만,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가치가 무엇이냐, 그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성태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을만들기의 구체성과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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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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