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읽는 북한의 건축
이윤하
분량4,596자 / 9분 / 도판 5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칼럼
평양 그리고 현대건축
평양은 도시로만 본다면 지난 20년 간 그리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최근 대내외적 정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양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도시 경관에는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평양도 점점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이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의 과거와 현재의 건축적 특성을 통해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그려본다.
지금 평양은 거의 20여 년간 중단되었던 건설사업이 대내외적 정치상황과 맞물려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북한의 건축적 특성을 분석하고, 해방 이후부터 평양에서 이루어진 건축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건축
초기 북한 건축의 특성은 사회주의 도시계획과 건축미학 이념에 근거하는 바가 크다.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적 도시계획 이념으로 도시구성의 기초를 완성했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그 기반 위에 사회주의 건축미학으로 건축의 형상구축에 매진하였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러시아 신고전주의 양식은 북한의 초기 건축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특히 전후戰後 복구사업을 진행할 때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건축물에 주로 도입되어 사회주의의 건축적 특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징은 배치 및 평면에서는 건물 중심부인 현관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대칭의 강한 축을 형성하며, 형태적으로는 웅장하고 육중한 구조미와 대칭성을 강조한다. 층고를 높이고 전면에 열주형의 기둥을 노출시킴으로써 수직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육중한 기둥과 수직성은 사회주의의 체제위신을 상징화하면서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나타내려는 집약적 표현이다. 수직성과 더불어 전면 파사드를 대칭형으로 길고 안정감 있게 형상화함으로써 체제의 안정과 수평적 사회주의 이념을 형상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양상은 북한의 초기건축에서 체제이 념과 접목되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해방 직후에서 1950년까지 소련의 지원으로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등을 비롯하여 각종 극장과 호텔 등이 건축되었다. 1950년대 전후복구사업에서 1960년대 초반 사이에 건설된 <평양역사>, <정무원청사>, <대등문영화관>, <평양학생소년궁전> 등에서는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서양 역사주의에 기반한 신고전주의 양식이 나타난다.

주체사실주의에 기반한 건축의 이론적 확립
북한 건축은 주체예술론을 배경으로 ‘주체건축론’에 근거하여 전개된다. 즉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주의적 형식’에 의거한 건축설계 및 형상화가 기본적 목표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구도상의 역할과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은 동시에 진행되었다. 사실상의 문예정책을 이끌었던 김정일 위원장은 문예이론의 통제를 통한 수령형상화 작업을 지휘하여 김일성 주석체제의 완성을 도모하면서 안정적 후계구도를 형성해 나갔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도자 수업의 일환으로 건축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건축적 지도경험으로 『건축예술론』(1992)을 펴냈다. 이 이론으로 소련의 사대주의자들과 구라파 중심의 건축을 주장하던 교조주의자들 그리고 건축계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 등의 반대파들을 제거할 수 있었고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부자의 유일한 지도를 받는 ‘주체건축’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60년 후반부터는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본래적 의미는 상실되었고 ‘주체사실주의’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민족주의와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강조되었다. 주체사실주의는 1970년대 비동맹국가들과의 관계가 중시되고, 소련과의 정치적 관계에서 자주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주체사상과 더불어 차용된 개념어로 보인다. 특히 1974년부터 1980년에 이르는 후계체제 형성기는 북한 사회주의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주체사상을 구체화하는 시기이다. 또한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의 상대적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식 사회주의’를 모색하고 ‘민족성 구현’을 논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수정을 가하는 시기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건축창조에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 형식에서 민족적이고 내용이 사회주의적인 것에 주체건축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주체건축’의 개념을 정의한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건축양식’에 ‘민족적 특성’을 가미한 것이 주체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라 볼 수 있지만, <인민대학습당〉등을 통해 ‘민족주의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북한이 해방 이후 소련의 건축적 양식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이래, 사회주의 건축이념은 1950~60년대의 회의기 및 모색기를 거치고 1970년대에 새로운 형식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큰 틀 속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민족적 형식’은 특히 상징성이 강한 기념비적 건축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서구 모더니즘 건축 절충적 경향의 대두
주체건축과 더불어 한편에서는 현대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 건축을 주도적으로 지도하던 김정일 위원장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건축은 민족적 특성과 현대성을 구현한 건축이다.”라고 하여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서 현대성 구현의 문제를 정리해나간다. <5월 1일 경기장>과 <동평양대극장〉의 건축형식은 독창적인 현대성 구현의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또한 현대성을 적절히 구현하기 위해 과거의 건축과 새로 설계할 건축과의 시간적 조화와 주변의 맥락들을 분석해 계획하였다. 이는 도시의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설계기법으로 1970년 이후 북한의 현대성에 대한 고민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신고전주의 건축으로 형성된 바탕 위에서 주체건축 개념의 부분적 수혈만으로는 다양성과 현대성을 극복하는 것이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이에 북한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의 개념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기존의 건축개념에서 더욱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1970년 이후 북한 건축에서는 특히 건축의 ‘사상예술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혁명적 수령관과 민족주의적 건축형식을 직유적 수사법과 은유적 수사법을 동원하여 사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민들이 건축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형상화 기법을 동원하였다. 이로 인해 형태미학에 관한 사상성의 형상화와 은유적 조형성을 강조한다. <평양산원>은 모성애를 형상적 주제로 하여 ‘걸음마를 뗀 쌍둥이를 품에 안은 너그럽고 인자한 모습’이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양팔을 벌려 어린이를 감싸 안는’ 형상으로 설계되어 형상에 대한 의미를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현대성이라는 전제 아래서 절충적인 형태가 나타나고, 대규모의 공공건물이 많이 건설되고 그것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한 건축적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북한 건축은 공공건축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건축창작도 반드시 반복적이지 않아야 한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절대로 다른 건물 형식을 본떠서는 안 된다. 설계에서 유사성과 반복은 금물이다.”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는 다양한 설계형태 및 기법을 개발하는 발판이 되었다.
<김일성종합대학2호교사>, <평양체육관〉, <인민문화궁전>, <만수대예술극장>, <2.8문화회관>, <금수산의사당>, <평양산원>, <창광원>, <빙상관>, <청류관>, <김일성경기장〉, <인민대학습당>, <만수대의사당>, <고려호텔>, <봉화예술극장>, <보통강여관〉, <창광산여관> 등을 통해 다양성을 견지하면서 건축된 사례들을 볼수 있다.
주체건축 미학에 요구되는 현대건축의 다양성
북한은 올해 4월 15일에 있었던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역에 유례 없는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하였다. 전후에 복구사업 시기부터 60년대에 이르러 건설되었던 노후된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재건축 사업을 일으킨 것이다. 이른바 ‘태양절’을 맞이하여 내외부적으로 체제위신을 위한 정치적 건설사업을 벌인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후계체제를 확립하고, 파워엘리트들의 기반을 안정화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었다. 또한 과거 90년대 초,중반 경제난에 겪은 ‘고난의 행군’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105층 <유경호텔>의 외장공사도 마무리되었다. 보통강구역 봉화거리에 짓다가 중단된 이 건축물은 2008년 이집트 오라스콤사의 투자를 받아, 외부 유리커튼월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라 전해진다. 이로써 평양 중심부의 스카이라인이 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크게 바뀌는 중이다.

그로피우스는 『국제건축』(1928)에서, “건축은 항상 민족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러나 3개의 동심원인 개인•민족•인류 중에서 최후이며 최대의 원은 동시에 두 원을 포괄한다.”고 했다. 이는 토착성과 인류보편성 사이에 고민하는 현대건축의 고민이자, 사회주의 인류와 민족적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북한 건축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민족주의 형식의 지나친 강조는 건축적 다양성을 저해하고, 현대적 미학체계로부터의 고립을 가져와서 보편성에 미달될 수도 있다. 이것이 북한의 주체적 건축미학과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현대건축의 다양한 미학체계에 대한 비판적 접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윤하
건축가. 생태건축연구소
새롭게 읽는 북한의 건축
분량4,596자 / 9분 / 도판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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