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평양, 그리고 건축가
임동우
분량6,141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칼럼
평양 그리고 현대건축
평양은 도시로만 본다면 지난 20년 간 그리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최근 대내외적 정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양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도시 경관에는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평양도 점점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이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의 과거와 현재의 건축적 특성을 통해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그려본다.
군사적 위협보다는 사회적 변화로서의 평양
최근 접하게 되는 북한 관련 소식은 여전히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얼마 전 북한의 지도체제가 변한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강경 발언은 여전하며 군사적 위협도 사그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치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한의 변화를 1:1로 놓고 생각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에만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북한 사회의 개방과 변화는 남북관계 개선과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이 경제 재건축을 위해 자본주의의 도입을 고려해보라고 당간부들에게 독려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 SBS뉴스 참조) 그럼에도 이러한 뉴스는 우리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뉴스의 잔상만이 오래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건축가 집단이 더 중요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사회적 변화가 아닐까.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동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방 이후 변화하는 그 중심에서 건축가 집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가를 보았다. 때로는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가 건축가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험하게 해주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고, 건축가들이 그 변화의 방향을 능동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 북한, 아직 완전히 개방화의 단계로 접어들지는 않은 평양에 대한 건축가의 역할은 후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자본이 도시로 유입될 때, 평양은 어떠한 발전모델을 취할 수 있는가, 새로운 개발들은 어디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고 확산될까, 또 어떠한 개발들이 주를 이루고 평양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등 건축가들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주제들은 무궁무진하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사항은 어떻게 하면 누가 내 그림을 사줄까가 아니라 밑그림부터 어떻게 착실히 그려나갈까 하는 것이다.
이념을 극복하는 소구역 계획
평양은 기본적으로 폐허에서 새롭게 탄생한 사회주의 도시이다. 세계의 많은 도시가 대화재나 대지진 등의 재앙을 겪으면서 새로운 모습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평양 또한 한국전쟁 때의 폭격으로 새로운 모습의 도시로 재건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백지상태의 도시를 재건한다고 하는 것은 건축가로서는 하나의 도시를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로 계획할 수 있는 기회이고, 정치 지도자로서는 (혹은 독재자로서는) 자신의 이념을 도시에 투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김일성과 건축가 김정희는 이러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이전까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제한적으로만 실현 가능했던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마스터플랜 도면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긴 하지만 한국전쟁 초기에 김정희가 처음 계획하였던 <평양재건계획도>를 보면 사실 사회주의 이념이 많이 투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수정된 1953년도 계획안을 보면 사회주의 도시계획이론에서 주로 거론되던 도시 규모에서의 녹지의 기능이라든지 생산과 주거가 공존하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이하 소구역 계획)microdistrict1 개념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계획에서 평양은 대동강에서부터 보통강까지 확장된 인구 100만 도시로 계획되었고 도시 밀도는 20〜25%로 유지되도록 하였다. 여기서 도시를 저밀도로 유지하고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녹지띠이다. 서울에서도 그린벨트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평양 마스터플랜에서의 녹지띠는 도시의 경계부를 한정한다기보다는 도시 내에 스며들어 평양을 다핵화하고 각각의 핵이 팽창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이론이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 개념에서 차용해온 내용으로, 도시가 무제한으로 팽창하면 그만큼 농촌과의 격차가 극심해질 것이고, 이는 사회주의 이상과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도시계획이론에서는 도시의 성장을 계획단계에서부터 규제했다. 이후에 주민의 전입을 제한한다든지 주택의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그 성장을 억제하였다. 이러한 이념적 배경을 바탕으로 도시를 하나의 중심부가 있는 도시가 아닌 여러 개의 핵이 단위생산 구역으로 계획하고 사이사이 녹지대를 배치시킴으로써, 주민에게는 충분한 휴식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도시의 팽창을 억제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이념에서의 도농간의 개념적 차이를 극복하고자 도입했던 개념이 소구역 계획이었다. 사회주의 이념에서는 소비만 하는 도시민은 농민을 착취하는 계층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도시와 도시민 또한 생산자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개념이 중요한 이념적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도시 내에 생산시설을 두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고 이는 공장단위의 대규모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작은 작업장 규모의 생산시설을 배치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페리Clarence A. Perry의 근린주구 이론Neighborhood Unit2과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는 소구역 계획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단위생활권을 의미하는데 그 특징은 생활권 안에 생산시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위생활권은 단위생산구역이 되기도 하며 한 구역에서 생산된 특정 물품들은 그 단위 내에서 배급, 소비되기도 한다.

도시를 구축하는 환경을 이해하기
대부분의 마스터플랜이 그러하듯이 전쟁 이후 평양에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를 재건하겠다는 목표로 작성된 1953년 평양 마스터플랜 또한 온연히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전쟁 직후에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도시가 재건되기 시작하여 현재 평양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광장 주변과 대동강 맞은 편 지역은 비교적 마스터플랜을 잘 따르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후 평양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이주의 자유가 제한되는 와중에도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단기성장 목표를 세우고 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평양의 모습은 1953년에 작성된 마스터플랜과는 상이한 면이 없지 않다. 다핵화를 지향하던 도시는 의도치 않게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게 되었고 블록 단위로 주거와 생산시설, 부대시설 등이 계획되었던 주거지역은 대규모 고층 아파트들로 대체가 되었다. 주요 광장들 역시 마스터플랜 상에서는 다핵화 도시에서 각 핵의 중심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지만, 현실은 많은 수의 광장들이 도시 공간상의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에도 평양은 여전히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도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주의 도시이다. 비록 그 공간들이 종종 파편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거시적인 규모에서의 사회주의 도시를 형성하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평양은 한때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라 불리기도 했던 도시이다. 평양에서 녹지공간을 찾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일성 광장 이외에도 도시의 곳곳에 우리가 ‘광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들은 얼마든지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주거단지에는 생산시설이 배치되어 있으며 도심에서 공장지역 또한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약간은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도시 공간들은 평양이 ‘가난하고 덜 발달한’ 도시여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사실부터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가 여타 도시를 이해할 때 도시의 정치·경제상황보다는 구축환경을 통해 먼저 이해하듯 평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구축환경에 더 집중해서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건축가로서 평양의 변화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 전제조건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동유럽을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화가 시작된지 20여 년이 흐른 관계로 외국에서는 기존 사회주의 도시들이 어떠한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변화의 중심공간은 어디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꽤 진척이 되어있다. 그러한 사례들을 보다 보면 앞으로 평양이 어떠한 형태로 발전할지 개발은 어디를 중심으로 시작될지 조심스레 짐작해볼 수 있다. 이는 하나의 예견이라기보다는 제안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다른 기존 사회주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평양에서도 사회주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도시공간들이 앞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고 또 도시 전체의 변화에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쉽게 생각하면 이념이 충돌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자본주의가 정부의 시장개입을 받아들여 수정자본주의가 되고 자유경쟁사회가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복지사회로 성장하듯, 사회주의 도시공간들도 시장경제의 논리가 도입되면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주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공간들이 ‘시장의 논리’로 보았을 때 가장 ‘비힙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거단지 내의 혹은 인접한 생산시설들은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앉아 부가가치를 재생산하지 못하는 시설들일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들은 평양이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새로운 시설로의 개발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양을 평양답게 하는 건축
여기서 과연 평양을 평양답게 하고 평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사회주의 도시공간들이 ‘자본주의 공간화’ 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고 싶다. 일부에서는 통일 후 평양을 그대로 ‘박제’하여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간직한 관광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하고, 또 일부는 위와 같은 사회주의 도시공간의 변화가 평양을 특색 없는 자본주의 도시로 만들 수도 있다고 염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경쟁사회에 복지이념을 도입한다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통제의 요소가 들어갔다고 자본주의가 공산주의가 되지 않듯, 사회주의 도시공간에 시장의 논리가 도입된다고 자본주의 도시와 똑같은 도시가 되지는 않는다. 또한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공간들의 변화는 여타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경험하였듯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누구의 바람도 아니고 특정 건축 집단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도 아니다. 도시는 이루어지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개방된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살아있는 도시이지 그 변화를 거스르고 지금의 모습을 박제하겠다는 것은 건축가의 폭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서두에서 밝혔듯이 평양은 남북통일의 가능성과는 별개로 변화할 것이고 개방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통일 후 한반도에서 평양을 어떠한 도시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북한의 수도로서 평양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그때 한국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가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건축계에서도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도시들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산발적이나마 여러차례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대부분의 논의가 ‘통일’을 전제로 한 논의가 되다 보니, 남북의 오락가락하는 정치적 관계 때문에 덩달아 논의의 지속성이 결여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통일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건축가 집단이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평양이라는 도시에 무엇이 결여되었고 앞으로 어떠한 시설내지는 개발이 필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규모과 다양한 시각에서의 제안을 한다고 하면, 앞으로 평양이 개방되고 외국자본에 의한 개발이 더 활발해지면 자연스레 한국 건축가 집단의 역할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 만약 그것이 아니라 통일된 한국의 평양에 대한 청사진만을 내세운다면, 한국의 건축가 집단은 그만큼 정치상황에만 의존하는 수동적 집단이 될뿐더러, 중국이나 프랑스 등 이미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국가들의 건축가 집단에 새로운 기회마저 내주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임동우 건축가. PRAUD
변화하는 평양, 그리고 건축가
분량6,141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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