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을 위한 제언
이필훈
분량2,830자 / 6분
발행일2012년 4월 9일
유형서문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과 연관된다. 건축물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제도와 건축물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이 사는 시대를 긴장시키는 건축가를 기대하기 위해서 이를 위한 노력과 실현가능한 제안들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계는 이런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새로 창간하는 <<건축신문>>에 이를 기대해 본다.
한국의 폭발적인 성장을 담아낼 형식을 만들기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건물들을 급조해서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물적 팽창에 비해 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반성적 사고 한번 할 겨를 없이 달려온 건축분야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한 것 역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이 왜곡된 건축계의 현실을 한국적인 특수상황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거나, 경쟁체제 속에 살아남은 경쟁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낙관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건축계 전체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건축계 사람들이 기대했던 건축 단체 통합조차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단결해본 적이 없는 건축계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자유시장체제를 믿는 건축가들은 개인적 능력에 의해 좋은 건축물이 생산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도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유능한 건축가들은 살아남을 것이란 기대는 가능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건축설계를 잘하는 유능함을 증명할 것이란 말은 틀린 말이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란 가정이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린 이유도 위와 같은 이유다.
건축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이야기는 건축이 그 시대의 문화를 대변한다는 면에서 유효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있다는 면에서 유효하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바꿔낼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이 포괄되어있는 지형도를 잘 들여다보면 다른 연결 분야에 비해 낙후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분야에 앞서가려는 노력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축의 현주소를 잠깐 들여다보자.
관 官
국토해양부와 서울시의 조직체계를 보면 주택국 밑에 건축 관련 과가 있다. 도시는 토목이며, 주택은 행정이고, 건축은 건설의 하위개념으로 인허가와 민원을 담당하는 말단의 기술이다. 국가에서 이해하는 건축에 대한 수준이 이와 같기에 공공의 발주제도는 ‘건축’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가 전무하다. 턴키, 기술제안, 입찰, PQ 등 건축에 적용되는 대부분의 발주방식은 토목, 건설의 발주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산 産
IMF 이후 15년 동안 오르지 않은 설계비에 대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 서울지역 개업 건축사의 70%가 일년 내내 수임건수가 한 건도 없어 실업자로 전락한 상황과 상위 10% 의 건축사사무소가 70%의 일을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건축계를 대표한다는 세 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공정한 경쟁의 방식에서 나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강한 제도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 과도한 경쟁 때문에 현상설계에 들이는 비용이 이윤을 넘어서서 당선이 돼도 외주를 주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한편으로 요즘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가로서의 사회에 대한 봉사’ 혹은 ‘전문가로서의 정책참여’ 등은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겐 매우 생소한 영역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소위 ‘뻘짓’ 하는 무능력자로 대한다. 건축계에 사회 정의 혹은 윤리란 말은 매우 낯설다.
학 學
대한민국에서의 ‘학’은 늘 ‘관’과 ‘산’ 위에 존재한다. 건축계에서 ‘산학 협력’은 늘 학이 산을 지도편달 하는 것이다. 지도편달하려면 산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학은 산의 상황에 별 관심이 없다. 건축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소모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현재의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애쓰는 교수를 만나기 쉽지 않다. 공공프로젝트는 턴키든 기술제안이든 현상설계든 대부분 경쟁방식으로 발주가 되는 경쟁의 심판관은 학계다. 좋은 설계를 볼 수 있는 실력이 없든, 혹은 일부러 외면하든 어떤 이유에서든 심사에 참여한 ‘학계’가 불공정한 심사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한국판 건축설계자료집성도, 그래픽 스탠다드Graphic Standard도, 건축자재총람도, 제대로 된 건축 아카이빙Archiving도 없어 제대로 된 한국적 건축담론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건축계에 대한 심각한 반성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건축신문》에 바라는 것은 우선 건축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건축계의 언론은 몇몇 건축가의 작업에 집중되어 있거나 건축단체의 집단이기주의를 기초로 한 협소한 시각의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엉뚱한 제안 또는 사회적 관심과 유리된 아카데미즘에 천착한 논문집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건축계의 이슈를 깊게 다루는 계간지가 있지만 너무 전문적이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건축신문》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지역의 건축가, 건축관련분야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건축계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전반적 문제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형식’이 되길 바란다. 건축계의 문제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생길 때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현 가능한 제안들이 생길 것이다. 《건축신문》이 신문 자체의 정체성과 방향을 정하려는 노력보다는 건축계의 발전을 위한 비어있는 통로로서 생산적인 제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
이필훈
건축가
한국 건축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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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12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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