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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누구에게, 왜, 어떻게

류인근, 박정인, 신민재, 양인성, 유혜인, 이지연

건축학교의 수업은 ‘건축가를 키우는 교육’이 아니다. 건축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과, 그들과 함께 배우는 어른들이 공간을 매개로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타인의 감각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주강사들은 저마다 다른 배경과 문제의식을 품고, ‘누구에게 건축을 가르쳐야 할까?’, ‘건축은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건축을 매개로 한 만남이 어떻게 감각을 확장하고, 세계를 다르게 보게 하는지를 탐색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건축학교 수업의 기획과 실천, 그 안에 담긴 태도를 들여다본다.


류인근 건축가, 요앞 건축사사무소 소장
박정인 건축 일러스트레이터, 프롬비그라피
신민재 건축가, AnLstudio 소장
양인성 공간 디자이너, atelier LOW CREATORs 대표
유혜인 시각 디자이너, Olab 대표
이지연 문화예술기획자, 스트링피겨 대표


누구에게 건축을 가르쳐야 할까?

박정인 “누구에게 건축을 가르쳐야 우리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봤을 때, 저는 “사회”라는 단어에 꽂혔어요. 민감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권력이 있는 누군가에게 건축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가장 처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해보니 결론은 시민으로 가닿게 되었어요. 그들에게 내 근처에 있는 건축을 가르쳐서 건축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가정과 학교가 모여서 사회가 되듯이 가장 가까이 있는 건축 하나부터 아낀다면, 이게 모이고 모여서 사회 속에서 건축의 입지라든지, 건축에 대한 관점과 같은 가치들이 점점 올라가지 않을까요?

한편, 10년 미만 경력의 실무자들이 오히려 교육의 사각지대라고 느꼈어요. 오히려 학생 때 인문, 철학, 건축을 더 많이 습득하고 작품에 녹이려고 애를 쓰는데, 그와는 동떨어진 현실적인 일들을 수년간 하다 보니 그 감각을 잃는 것 같아요. 학창 시절 꿈꿨던 내 건축의 본질이나, ‘내가 이것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지’라는 가치관을 내려놓는 거죠. 그러다 개소할 때쯤 되면 다시 좀 그런 감성과 감각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기는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막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청년 세대가 사각지대 같습니다.

그리고 보행 약자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건축을 배우면 새로운 건축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갈수록 크게 느끼고 있거든요. 새싹꿈 과정의 <떠먹여주는 건축>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시퀀스는 일반인 관점에서 보는 건물의 시퀀스들일 텐데, 과연 보행 약자들에게도 똑같이 건축의 아름다움이 적용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사자 관점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들이 직접 공간을 해석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접근이 가능해질 것 같아요.

신민재 저는 연령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고, 구현하려고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 건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살 수 있는 돈이 있어도 사지 않고 스스로 만들고 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요. 만들고 싶은 게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요. 사회 조직 체계든, 비물리적인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개념은 ‘건축’ 말고 architecture에서 뜻하는 바입니다. 건축학교의 수업은 architecture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파트 만드는 건설회사에서는 설계하는 팀을 디자인 팀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상품기획팀”이라고 하죠. 소비자들한테 맞춰서 나오고, 충분히 쓸모 있고 괜찮아도 그다음에 만드는 것은 새 버전 상품인 거예요.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기성 제품을 쓰고 싶지 않고 ‘나한테 맞는 건 이게 아닌데’ 하면서 새로운 것을 구축하거나 만들고 싶어 하잖아요. 공무원 중에서도 이번에 무슨 사업을 하는데 우리 부서에서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보고, 작년에 이렇게 했으니까, 올해도 동일하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하면 좀 다르게 해볼까 하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요. 그렇게 좀 다른 생각과 욕망이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한 것 같아요.

류인근 예술가요. 저는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거든요. 특히 영화 찍는 사람들이 건축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중매체에서 부잣집이라고 나오는 집들의 구조를 보면, 전공자 관점에서 놀라운 경우가 많아요. (웃음) ‘벤틀리 타는 사람이 저런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하면서요.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죠. 영화 <기생충>이 화제가 되었던 것 중의 하나가 그 주인공의 집이었어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건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죠. 할리우드나 일본 영화계에는 확실히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있는 것 같고, 특히 일본에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을 위한 드라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세분돼 있습니다. 건축가가 그렇게 멋진 직업으로 나오지도 않아요. 그런데 한국 대중매체는 희한하게 건축가란 직업을 낭만적으로 그려요. 근데 세트장 만드는 거 보면… 너무 아쉬워요.

유혜인 국제건축사연맹의 건축 교육 관련 헌정 문구에 포함된 ‘지금의 도시는 우리의 선조가 만들었고, 뭔가 우리의 유산이지만 미래 도시는 지금의 아이들이 만들 거다’라고 하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을 받자마자 아이들이 생각나긴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건축학교에 오려면, 혹은 이 수업만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건축이라는 것을 질문하고 또 계속 접하려면 어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건축 교육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그 교육과의 접점을 만들어줄,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져줄 그 옆의 부모, 보호자, 어른에게도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지연 ‘세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건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에게 건축을 가르쳤을 때 잠재력과 가능성이 막 폭발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요. 어떤 통합적인 사고라든지 유기적인 사고를 깨닫기 위해서 건축을 배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고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강점이 모두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진짜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체의 흐름을 주로 살피기도 하고요. 인간, 자연, 사회, 사물 또는 어떤 공간과 장소에 대한 것들을, 조금 더, 전체를 계속 좀 사고하는 사람이 건축을 배우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양인성 건축은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욕심이죠. (웃음) 사실 ‘건축’이라는 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잖아요. 동시에 사회이고 더 큰 범위로 보면 지구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요. 이 지구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환경 보호를 배우고, 사회나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듯이, 건축에 대해서도 친근하고 쉽게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인 대상을 짚어보자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요.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살 집을 설계해보면 서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거든요. 그 이견을 조율하면서 우리의 집을 만들어가는데 이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른과 아이 모두 건축을 배우면서 ‘어떻게 살면 좋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구나’를 경험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건축 교육의 의미는 뭘까?

양인성 건축학교의 ‘건축 교육’이 건축을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이야기’를 하는 거죠. 학교란, 제가 좋아하는 루이스 칸의 말을 인용하자면, “먼 옛날에 자기가 선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과 자기가 학생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그것을 들어주는 자세도 필요하고요. 건축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건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경험함으로써 너의 삶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를 지켜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정인 저는 일단 건축학교에서 제일 좋은 점이 “건축가를 양성하는 수업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이거든요. 예전부터 ‘건축학과만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든 잘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게 무슨 자신감 넘치는 말일까 싶다가도 그 과정을 다 거치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꽤 맞는 말이라고 느껴요. 어떤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답을 찾아내는 훈련이 잘되어 있다면 그 태도는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를테면 카페를 하나 차린다거나 코딩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건축학교 수업이 4주 과정이라 몸에 익을 정도로 유의미한 훈련이 되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 과정을 어느 정도 배우기 때문에 분명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어요. 저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비전문가가 건축을 배운다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소한 이 수업을 듣고 ‘내가 이런 공간에 있을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면, 각자의 일상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건축 악보 만들기> 수업 끝날 때도 제가 ‘앞으로는 건물을 보면서 리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했는데, 수강생이 길을 걷다가 창문을 보고 뭔가 규칙과 흐름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런 게 건축학교가 다양한 대상에게 건축을 가르쳐서 얻을 수 있는 의미가 아닐까요?

신민재 건축 교육은 사실 고급 취미라고 생각해요. 취미와 취향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니까 더 고급인 거죠. 결과물이 고급은 아닐 수도 있고요. 예를 들면 맛집에 가서 맛있는 빵을 사 먹는 것은 소비이지만, 내가 빵을 ‘만들어서’ 내가 먹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은 기분이 좀 그러니까 빵을 바싹 구워서 먹을래’라고 했을 때, 그것은 유명 파티시에가 만들었어도 원치 않았던 케이크를 먹는 것보다 더 만족도가 크겠죠.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대중화되기가 힘들어요. (웃음) 건물은 안 짓더라도, 적어도 고치고 만들고 하는 걸 취미로 삼으려면 벌써 접근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러므로 기존의 극소수가 향유하던 영역을 좀 더 확대하는 방향의 건축 교육인 것이지 대중문화와 겨룰 건 아니라고 봐요.

물론 빵을 좋아한다고 해서 빵을 다 만들어 먹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만드는 방법 또는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좋은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빵을 선택할 때도 달라지겠죠.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지식과 감각이 생기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예술적 감각과 창의성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질만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인데, 경험을 다 하고 나면 무수히 많은 것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니까요. 저는 그게 비전문가도 건축을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봐요. ‘비싼 게 좋은 건가 보다’가 아니라 ‘가격을 떠나서 이게 본질에 가깝네’ 또는 ‘이게 내 취향에 맞네’를 스스로 물어보고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내가 나의 기준에 맞는 것을 자신 있게 찾는 것이 건축 교육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이지연 건축 교육뿐 아니라 그냥 제가 함께하는 다른 교육 활동 모두의 공통된 의미는 하나인 것 같아요. 삶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거요. 인생에서 예술적인, 특히 감각적인 경험이 너무나 중요해요.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왔다 갔다 하면서 커지고, 부딪히다가 이야기들이 생성되고요. 저의 유년기는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이런 활동들로 채우지 못해서 아쉽거든요. 그래서 내 삶을 이루는 중심과 조금 다른 것들을 찾아나가는 것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만들 때 무엇이 중요했을까?

류인근 <검은 문> 수업에서는 문을 통과할 때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낯설게 할까가 초점이었어요. 그게 강의 PT에 드러나 있지는 않았어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문과 같은 거라고 설명은 했지만, 사실 이 수업에서는 이 공간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어야 했고, 그래서 낯설어야 했죠. 자기에게 익숙한 문을 그렸다고 해도 뭔가 낯설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현해내기가 어려웠어요. 저에게 건축학교 수업은,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것에 좀 중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신민재 저는 교육이 끝나고, 학생들이 집에 들고 가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업을 만들지 않는다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건축’보다는 ‘공간’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건축학교가 진짜 학교는 아니지만, ‘학교’라는 이름이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수업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커리큘럼 자체가 연속되는 것이죠.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연계되는 과정을 고민하죠. 다른 하나는 만들기 키트나 설명서를 가지고 하는 활동이 아니라 재료나 접근 방법을 공유하고 뭔가를 계속 찾고 만들고 질문한다는 겁니다. 그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키트와 설명서가 있으면 결과물이 똑같아요. 그런데 학생 개인마다 능력, 장점, 관심이 다 다른데 결과물을 딱 하나로 만드는 건 이상해요. 오히려 건축학교처럼 ‘오늘 이걸 만들 거야’라는 지향점은 있긴 하지만, 수업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유혜인 전체적인 맥락이나 그 연결의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다음에는, 수업안에 다양한 활동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스케치로 표현하는 실습, 만드는 실습 등등을 적절하게 섞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각자 잘하는 분야나 좋아하는 행위가 다 다르니까 수업안에 그 표현 방식이 다양하게 구성돼 있으면 경험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아이마다 수행 능력에 편차가 있는데, 그걸 어느 정도 포괄할 수 있으면서도 열린 결과물의 형식을 찾기 위해 늘 고민했어요. 또한 대단한 재료가 아니더라도 종이로 볼륨을 만든다거나 그리드가 그려진 종이처럼 작은 형식을 통해서 수업의 주제를 표현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제에 따라 디테일은 달라지지만, 전반적으로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지연 저는 자기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친구들을 보면 제일 알고 싶어 하는 게 자기인 것 같거든요. 독립된 객체로서의 자기라기보다는 관계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시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협력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근원적인 자신을 아는 상태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어렵죠. 저만해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요. 그래서 어린 친구들을 보면 지금 잘 이끌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처음 건축학교에 대해서 알았을 때, 여기가 건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배우는 걸 목표한다고 들었거든요. 무언가를 잘 만들어내는 교육이라기보다 세계의 일원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와 엮는 방식으로서의 상상력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정인 ‘건축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가깝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축 악보 만들기> 수업도 그런 측면으로 기획했던 것 같아요. 건축이라고 하면 좀 멀게 느껴지는데 건축에서 음악이 느껴진다고 하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수업을 준비할 때, 저 자신을 적(敵)으로 계속 느끼면서 수업에 내 생각을 너무 과하게 끌고 들어가지 말자는 생각을 해요. 내가 이 수업의 주제를 만들고 기획하긴 하지만 학생들과의 소통이 핵심이고, 그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저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비교사 과정을 수강했을 때, 어린이와 관련된 교육을 한 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깊어지게 되었어요. 이 수업은 그냥 건축이 아니라 ‘어린이, 학생들과 함께하는’ 건축이니까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겠다 하고요.

양인성 저는 주로 미취학의 어린아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아이들이 그냥 막 좋다고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다 이야기와 서사가 있거든요.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어요.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깨닫게 되는 거죠. 얼마 전에 어떤 학생은 글로 서술하는 것을 굉장히 잘하는데 모형 만들기는 어려워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새삼 건축이라는 게 3차원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건축 교육자로 참여하면서 ‘건축을 해서 뭔가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라는 개인적인 욕망이 있었는데, 요즘 많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뭔가 만들어 봐’가 아니라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묻는 것 같아요. ‘너의 생각을 들려줘’인 거죠.

인터뷰 김보현, 최정원 / 원고화 김보현 / 편집 심미선

건축을 누구에게, 왜, 어떻게

분량7,926자 / 16분

발행일202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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