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등장하는 건축가들의 서가들
박세미
분량4,205자 / 8분
발행일202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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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건축가들 6’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박세미입니다. 근 9개월 만에 회신을 드려요.
그때 제가 드렸던 메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포럼이 시작되기 전,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중요했던) 책 두세 권을 꼽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서가가 그의 세계관을 투영하고 있다고 믿는 저로서는, 또 스무 번 이상 읽은 장 폴 사르트르의 『벽』이 저의 글쓰기 면면에 깊숙이 침투하는 경험을 한 저로서는 여러분을 이해하는 데 그 짧은 목록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둘씩 도착하는 그 목록을 받아들면서, 이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그를 통해 여러분의 세계를 읽고 써보리라는 원대한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완전히 실패했지만요. 저는 실패했지만, 누군가 대신 그것을 성취해줄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목록을 공유합니다. 함께 보내주신 선정 이유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남겼습니다. (약간 교정교열 보았음.) 그리고 각자에게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을 한 권씩 덧붙였습니다. 여러분의 서가에 몰래 한 권씩 꽂아두는 상상을 하면서요. 그 책이 그 서가를 강화하거나, 상쇄하거나, 확장하거나, 아니면 일말의 영향도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저의 성글고 얕은 책장에서 선발한 것이고, 이 또한 어떤 경향이 드러날테니, 그 한계를 이해해주세요.
그럼 모쪼록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문득 책 한 권 들고 찾아뵐 날을 고대하고 있을게요.
뜨거웠던 작년 여름 더 뜨겁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세미 드림
ps. 이윤석 소장님, 이제라도 메일 주시면 답장하겠습니다.
이희준
1.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2005, 원전: Mere Christianity, 1952)
- 성경을 제외하고 단 한 권의 책을 꼽는다면.
2.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공간사, 2005, 원전: Rural Studio: Samuel Mockbee and an Architecture of Decency, 2002)
-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방학 시작이 며칠 남지 않았었던 한 겨울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때에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빼든 이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고 건축가가 되기로 했다.
3. Felicity D. Scott, 『Disorientation』(Sternberg Press, 2016)
- 대학원 시절에 멕시코 건축가 친구 안드레스 소투(Andrés Souto)가 추천해 준 책. ‘건축에 관한 비판적인(critical) 글쓰기’의 사례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인 스턴버그 프레스의 크리티컬 스페이셜 프랙티스(Critical Spatial Practice)를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추천📚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두 손을』(자음과모음, 2012)
정해욱
1.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 지성사, 2020)
- 저의 인생 소설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마른 늪에서 고기낚기’를 하는데 저는 이게 건축 같아요.
2. 정기용, 『사람 도시 건축』(현실문화, 2008)
- 우리나라 근현대를 통과한 어느 건축 지식인의 깊은 사유와 그 사유의 시대적 한계가 모두 곱씹어볼 만합니다.
3. 거리문화시민연대, 『대구신택리지』(북랜드, 2007)
- 제도권/기득권의 바깥에서 한 도시의 근대 미시사를 발품팔아 모조리 긁어모은 희한하고 뜨거운 책입니다. 때로는 길들여지지 않은 로컬리티의 불씨가 그립습니다.
추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레프』(민음사, 2012)
오연주
1. Robin Evans, 『The Projective Cast: Architecture and its Three Geometries』(The MIT Press, 2000)
- 사실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다 되지 않아 평생의 숙제로 생각하는 책입니다. 가장 섬세하고 세심하게 건축과 표상에 대한 인사이트와 분석을 엄청난 문장력과 함께 담고 있습니다.
2. 배형민 지음, 박정현 옮김,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동녘, 2013)
- 저자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책의 앞부분인 포트폴리오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워 자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책입니다.
3. Michael Young, 『Reality Modelled After Images: Architecture and Aesthetics after the Digital Image』(Routledge, 2021)
- 위 책을 추천해주신 건축가가 2년 전에 쓰신 책으로, 현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건축에서의 표상, 그리고 이미지 컬쳐를 다룹니다.
추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영원의 건축』(안그라픽스, 2013)
허성범
1. 니시자와 류에, 『니시자와 류에가 말하는 열린 건축』(한울, 2018)
- 공간이 연속된다는 감각, 그리고 건축이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라는 것 등을 알게 해주었고, ‘새로운 자연이란 무엇인가’와 ‘현대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2. 정인하, 『현대건축과 비표상』(아카넷, 2005)
- 형식주의, 구조주의 등 20세기의 주된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현대 건축의 특성인 비표상성을 알게 해주었고, ‘순수한 자연’이라는 표상이 건축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3. 백진, 『건축과 기후윤리』(이유출판, 2023)
- 기후가 가진 선재하는 공공성을 깨우쳐주었고, 도시-건축-자연 간의 관계를 재고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추천📚 베아트리츠 콜로미나, 마크 위글리, 『우리는 인간인가?』(미진사, 2021)
사울 킴
1. Eric Owen Moss, 『Gnostic Architecture』(Monacelli Press, 1999)
- 제가 아직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주제 ‘Anti-Conformity’의 시작점입니다. 평범한 디자인 방법론(design thinking)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제 학부 교수님 에릭 오웬 모스(Eric Owen Moss)께서 쓰셨던 책입니다.
2. Henry N. Cobb, 『Words & Works 1948-2018: Scenes from a Life in Architecture』(Monacelli Press, 2018)
- 왜 좋은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지, 그리고 건축의 기본(Architectural dialog, integrity, authenticity and purpose)을 설명해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추천📚 가스통 바슐라르,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문학동네, 2013)
김명준
1. 최장순, 『기획자의 습관』(홍익출판사, 2018)
-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내용이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여기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따라했었고 지금도 가끔 책의 내용이 생각나곤 합니다.
2. 안드레아 시미치, 발 워크, 『건축가의 언어 26』(도서출판 집, 2017)
- 학교에서 건축을 애매하게 알려주면서 ‘그냥 설계하라’고 했을 때, 근본적인 지식을 공부할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전에는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수업』이 약간 건축의 기초용어를 배우는 느낌이라면 『건축가의 언어 26』은 좀 더 심화 버전의 글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Francis D.K. Ching, 『건축의 형태공간 규범』(국제, 2005)
- 뭔가 설계가 안 풀리거나 형태의 근본을 잡기 어려울 때 펴서 살펴보던 책입니다. 저자 관련해서 노동착취(?) 등 말이 많았지만,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걸 보면 답이 떠오르지 않을까?’ 할 때 참고하는 서적입니다. 거의 도구죠.
추천📚 공간사 편집, 『아키그램과 함께 춤을』(공간사, 2005)
전재우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요.
1. 아브라함 헤셸, 『안식』(복있는사람, 2023)
- 쉬는 것에 대해 새롭게 배운 책.
2. Rem Koolhaas, 『Delirious New York』(The Monacelli Press, 1997)
- 뭐 좀 당연하다.
3. 버질 아블로의 “Insert Complicated Title Here”
- 제가 힘들 때 저사람도 저랬구나 해서 항상 듣습니다. (편집자 주: 책은 아니지만 중요한 목록이라고 생각해서 남겨둠.)
추천📚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 2013)
박세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SPACE(공간)』 선임기자였으며, 현재 건축전문출판사인 도미노프레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내가 나일 확률』와 『오늘 사회 발코니』가 있고,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신인상과 제42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모색》(국립현대미술관),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국립현대미술관) 등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전개해가고 있습니다. @semi0615 @domino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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