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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들

이윤석

눈물 셀카 남기기

남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매일이 궁금하다. 그래서인지 대학 시절에는 블로그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한 15년쯤 전에는 지금 쉰으로 향하는, 그러니까 그때 딱 지금 내 나이 또래의 건축가들이 블로그를 열심히 했다. 특히 자주 들락날락했던 곳은 건축가 N의 블로그였다. 아직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이미 건축가인 사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언젠가 내 사무소를 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그 블로그 속에서 내가 가진 질문들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애썼다. 그런데 N의 ‘등장’과 함께 그의 블로그는 사라졌다. 등장하기 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등장을 위한 체크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던 걸까. 그의 일상 역시 내 일상만큼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에 내심 기뻐하곤 했는데 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공통의 기억을 빼앗긴 것 같았다. 그랬던 15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서 이번 포럼과 건축 신문의 내용을 만들었다. “저는 △△같은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며 새로 산 아이폰을 개봉하는 순간처럼 흩어지고 반복되는 이야기가 아닌, ‘등장’을 둘러싼 나의 우아할 것 없는 경험을 공유해야지. 영원히 아주 조금씩 열화되는 인터넷 세상 속 가수 채연의 눈물 셀카처럼, 쓸 때는 진심이었지만 나중엔 지우고 싶을 수도 있는 지금을 박제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등장한’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책임을 느끼며 산다.

서울은 이상한 도시와 즐거운 남의 집

독립을 하게 된 계기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독립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기의 문제였다. 언젠가는 내 사무실을 만들어 일하겠다는 생각은 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독립 여부와 관계없이 건축가로서 나와 내 주변 세계에 응답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고, 이것이 독립 시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울은 이상한 도시(이하 서이도)는 나와 서인석이 2017년에 시작한 비디오 프로젝트이다. 『W』나 『GQ』처럼 알파벳 한두 글자로 구성된 매거진과의 인터뷰였다면 나의 활동은 ‘건축된 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해, 도시와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활동’이라며 신비롭고 뭉툭하게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도시는 존나게 추악할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서울이 추악하다. 평평하고 깨끗한 광장은 차 벽으로 구획되기에 간편하다. 휠체어 탄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기도 힘든데 지하철을 탈 수조차 없다. 특수학교는 무릎을 꿇고 빌어야 가까스로 지을 수 있다. 지저분한 것들은 아파트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거리는 방과 건물들이 토해낸 유기된 책임들로 가득하다. 공공 공간은 열림 교회 닫힘 상태이며, 멀쩡한 거리에는 빨간 페인트를 들이붓는다. 그 가운데 선 반짝이는 신축 건물들이 괘씸했다. 어떤 외피를 걸쳐도 게걸스러운 광택이 난다. 자기의 존재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로 의기양양하다. 감상 당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넌덜머리 나는 도시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건축적 탐구는 도시 속에서 빛나고 있는 이상한 관계들을 떠올려보고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리 위를 두리번거리며 발견한 것들로 영상을 만들었다. 건축물들은 목적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에 비해 우리가 매일같이 감각하는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인 탓이다. 화단, 작은 공원, 철거 대상지, 작자 미상의 건물, 푸르게 빛나는 골프연습장, 호소하는 낙서들, 아파트 단지 속 비석이나 거리의 조각들… 무언가 충돌하거나 고여 드는 곳일 수도,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곳일 수도, 책임의 삼각지대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그 틈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시리즈 ‘월세 아니면 전세’와 책 『즐거운 남의 집』을 만들었다. 내 친구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과정의 공간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전유했고, 나는 건축가로서 그 비범한 시도들을 기록해 동시대의 문제에 응답하고 싶었다. 결과로써의 건축물만 바라보는 건축가들, 과정으로서의 공간을 정의하는 정치인들,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방패 삼아 투기에 가담하는 개인과 사회… 이 모두를 초대해 연결하고 봉합해 보려 했다. (그리고 당연히 실패했다.) 

친구와 모순들

퇴사와 개소의 순간은 감각적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회사에서 담당하던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였으며 + 회사 다니면서 조용히 진행했던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몇 개 완성되었고(여담이지만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내 프로젝트의 야간공사 현장에 감리하러 다녔던 시기가 있었다) + 그간 만들고 싶었던 영상이 많았고 + 책 출간을 위해 집중적으로 손봐야 하는 원고가 있었다. 그래서 퇴사한 후 6개월 정도 쉬엄쉬엄 책 관련 일을 끝내면 → 책이 출간되고 → 책이 출간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테고 → 북토크에서 만난 독자들이 클라이언트가 되어 → 사무실이 흥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했다. 눈앞에 할 일이 있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계획은 없었다. 회사에서의 근무 마지막 날 소장님은 이런 말을 했다. 하다가 망하면 돌아와도 되고요,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요.

개소한 지 일 년 반 정도 됐다. 그런데 일단 놀아보자는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간 완료한 일들을 세어본다. 인테리어 4건, 3개의 전시 참여와 연계 프로그램 진행, 전시 공간 디자인 1개, 3편의 영상 촬영 및 제작, 건축설계 스튜디오 출강, 특강 및 발표 6회, 책 출간, 4번의 인터뷰 및 매체 출연, 3편의 글쓰기를 했다. 스쳐 간 프로젝트들도 있다. 단독주택 설계 2건과 인테리어 4개는 제안했으나 무산되었고, 다큐멘터리(?) 출연 요청과 도서 출간 제안 2건은 능력이 부족해 거절했다. 꽤 멋진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간 내 머릿속을 채웠던 생각은 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도 소장님과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들었던 ‘좋은 친구를 만들’라는 말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를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친구가 있어야 하고, 망하면 기댈 곳 역시 친구임을 실감했다. 개소한 후 하게 된 많은 일들은 실제로 서이도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로부터 연결되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집을 수리해 줄 것을, 어떤 이는 자신이 기획한 전시에 참여해 주기를 부탁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일과 연결해 주기도 했다. 그들 덕분에 지난 일 년을 바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동시에 무척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일들이 관계에서 비롯되는 업계의 단면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가? 누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가?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누구와 친구가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와 생태계

사실 모순은 모든 순간에 있었다. 더 크게 반항하기 위해서는 권위를 이용하거나 지지를 품앗이해야 할 때,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장애인 이동 동선을 불합리하게 만들어야 할 때, 회사에서 맡은 일이 나와 같은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터전을 위협할 때, 참여하는 전시의 여성 작가 비율이 터무니없이 적을 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설계 도면의 퀄리티 향상을 위한 노력을 요구할 때, 인턴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기 위해서는 내 노동시간이 길어질 때, 내란수괴 탄핵을 외쳐야 하지만 내 작품이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을 때가 그랬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모순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모순들을 더 주체적으로 다루기 위해 독립했다. 모순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나에게 지속가능성이란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내가 꿈꾸는 세계와 부합하는지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는 일은 지속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독립하는 일이 더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모순을 직면하는 세계, 다양성이 추구미와 도달가능미가 되는 세계, 건축가가 노동자의 정체성을 갖는 세계, 건축의 지속가능성을 재정의함으로 새로운 시공을 여는 그런 어쩌면 당연한 세계를 꿈꾼다. 건축물은 당연히 잘 설계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마땅히 바라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아직 밑그림 정도를 그려보고 있을 뿐이다.)

계속 추는 춤

우아함을 경계한다. 우아함은 독립적이기를 바라며, 설명할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지운다. 우아한 건축과 도시는 전시된 유리장 안과 밖으로 분열된다. 하지만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유지한다. 건축이란 모순적 관계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건물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간의 자투리, 틈새, 과정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난데없거나 쓸데없는 것, 짬뽕인 것을 좇는다. 명확한 상이나 정합한 논리 대신 풍경이나 세계를 희망하며 걷다가 갑자기 다른 길로 새는 과정을 상상한다. 정의하기보다는 감춰진 것들의 관계를 살피고, 지나쳤던 것들을 관찰하며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건물이라는 완결된 물질 바깥의 것들을 주목할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틈에 집중할 수 있고, 그것이 다양한 건축적 환경과 세계를 조성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축에서의 새로운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래서 사무실 이름을 ‘Various Artists and Architects…’로 지었다. ‘and’와 ‘…’으로 더불어 축적되는 포괄적 생태계를 꾸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건축의 경계를 두텁게 넓혀 중재하고, 장벽을 낮춰 건축적으로 모두와 연대하고자 한다. 2025년에는 건축의 노동에 관한 야심 찬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등장하는 건축가들’의 오프라인 포럼이 있던 당일, 직영으로 공사하던 현장 아래층에 누수가 생겼다. 예상치 못한 문제의 총책임자가 나밖에 없음을 실감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오수를 닦다가 포럼 현장으로 향했다. 요즘 가장 꽂혀 있는 노래가 음악가 단편선 순간들의 ‘독립’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노랫말 속에서 묘사하는 독립은 ‘스스로 이유를 찾는, 홀로 멀리로 가는… 스스로 춤을 추는, 홀로 우스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내 생활 그 자체이다. 다만 다행인 점이 있다면 건축은 혼자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며, 나에게도 좋은 동료가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계속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소 감상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이것이 지금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채연 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윤석

1990년 대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루 종일 세일러문만 그리던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에서는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건축가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서울은 이상한 도시>에서 건축과 도시를 주제로 영상을 제작해왔습니다. 최근 건축사무소 Various Artists and Architects…를 개소해 몇 개의 공간을 만들었고 확대, 과장, 연결, 망상하기의 가능성을 탐구 중입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반대로 생각하며 시작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책 『즐거운 남의 집』을 썼습니다. @weird_seoul @vaa_ooo

시도들

분량5,494자 / 11분

발행일2025년 2월 28일

유형에세이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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