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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를 쓸 용기

심미선

수년 전부터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인스타그램 염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스타그램이 젊은 건축가를 손쉽게, 많이 만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팔로우 클릭 한 번으로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누구와도 닿아있지 않다.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생각마저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피드는 아주 두껍게 미장 뿜칠한 벽이다. 나는 그 벽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짐작하고 추측하다 멋대로 오해하고 만다. 

다시 말하면 이런 상황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이자 불행이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널려 있지만, 누구와도 충분히 소통하기 어렵다. 갈급한 이는 눈길을 잡아채는 방법, 알고리즘 타는 묘수를 배워 팔로워를 늘리고, 느린 이는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 주길 기다리며 망연히 시절을 흘려보내고 있다. 어쩌면 이번 등장하는 건축가들은 이런 세상에서 자기 방식대로 건축을 말해보려고 시도하는 이들이다. 이들 모두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이 공통으로 질문하는 바는 결국 ‘건축이란 무엇인가’이다. ‘또 그 소린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젊고 한가하고 배고플 때, 내가 왜 여기에 천착하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이 일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위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건축’도 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러므로 젊은 건축가라면 건축을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다. 

그래서 건축이란 무엇인가. 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지어지지 않은 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건축이 아니’라는 거짓말로, 건축가의 의도를 말하는 것이 곧 건축이라 한다. (이희준) 건축의 업역을 건물을 짓는 일/건물을 디자인하는 일/건축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그중 제일 쓸모없는 것이 ‘건축’이지만, 그것만이 갖는 가능성과 즐거움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정해욱, 오연주) 모순적인 관계를 다루는 방법으로써 건축이라는 춤을 추기도 하며(이윤석), 건축-자연-도시-인공환경의 개념과 관계를 전복하여 건축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도 한다. (허성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새로운 매체의 문법을 일찌감치 깨쳤기 때문이다. 클린 룸 안에 건축을 두고 그것을 이루는 본질적 조형 언어를 갈고 닦는가 하면(사울 킴), 종이 신문 만평 코너처럼 한 장의 밈으로 건축계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김명준) 건축이 해야 할 말만 골라 ‘한 줄 요약’하다가 아예 건축의 정수(?)만 모은 기념품 장사, 이벤트 기획에 열심인 이도 있다. (전재우) 이들은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경험과 지식이 불균형한 이 시기에 이것저것 따지며 망설이기보다 부딪히고 있다. 이제 이들을 향한 질문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에서 ‘재밌어 보이는데 뭐 하는 거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들은 5년 여의 시간을 쌓아왔다. 그리고 지난 포럼과 이번 건축신문은 지금 이 순간 그들의 건축을 담고 있다.

여덟 명을 ‘등장하는 건축가들’로 소개하기까지 스스로를 치열하게 설득해야 했고,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 이들의 시도가 어떻게 평가될지, 몇 년 후 이들 스스로가 이 시기를 어떻게 돌아볼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흑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기록하지 않는다면, 건축이라는 분야에 일고 있는 (아직은 미미한) 변화나, 이 젊은 건축가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이제 앞으로 이들이 어느 사회에 어떤 건축가로 자리 잡는지 지켜보고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연중 ‘한국 사회’라는 특정한 배경과 조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판단을 유보하게 됐다. 언어와 국경의 장벽이 없다시피 한 이들에게 로컬 또는 버내큘러의 문제가 아직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아니면 거기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포럼에서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럼 이들의 건축은 어디로 갈까? 분명한 것은 계속 변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 오늘을 돌이키며 “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요?” 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는 얼굴 볼 날만 기다린다.

이번 포럼은 특히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든 자리였기에 더 의미 있었다. 매끄러운 액정 뒤에 있던 이들을 재단 라운지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도시 시도>라는 계기와 용감한 기획자 푸시투엔터의 도움 덕분이다. 그리고 이 모험을 함께해 준 박세미 도미노프레스 대표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졌고 또 질 것이다. 이들과 함께 이번 등장하는 건축가들을 꾸리면서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발견하고 싶었다. 다음 등장하는 건축가들이 누구로 채워질지 아직 미지수다. 당분간은 여전히 인스타그램을 계속 살피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심미선 건축신문 편집자

흑역사를 쓸 용기

분량2,395자 / 5분

발행일202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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