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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당선과 실현

권혁찬, 임종률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은 서울 도봉구 창동에 공사중인 국내 최초의 로봇인공지능과학관이다. 창동‧상계 신경제중심지에 위치할 4차산업 기술 교육‧체험 거점시설로서, 2019년 2월 국제설계경기공모에서 터키의 멜리케 알티니시크 아키텍처(Melike Altinisik Architecture, MAA)의 안이 당선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정형 건축설계사인 위드웍스가 국내 파트너로 합류해 설계를 완성하였다. 

  • 설계자 발표: 권혁찬(위드웍스건축 대표)
  • CM 단장 발표: 임종률(근정건축 상무)

당선안

권혁찬  당선안의 투시도를 보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매우 직관적인 형상의 건축물이다. 흐르는 듯한 곡선 형상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비방향성의 구 형상의 본건물을 감싸고 가로변의 시선을 장악한다. 공간 프로그램과 내부 동선은 간단하다. 1층의 오픈 라운지 공간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에는 세미나 및 교육 시설이 있으며, 3, 4층은 연속된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서 시작된 에스컬레이터는 튜브 형태로 3층까지 연결된다. 연속된 전시 동선은 AR 및 VR 룸과 연결되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이동하면 천장고가 높은 기획 전시 공간이 나타난다. 이 공간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닥 슬라브를 지지하는 구조가 없이 디자인되었다.

멜리케 알티니식의 당선안

그런데 자세히 계획안을 살펴보면 외국 건축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계획상 문제가 되는 곳이 너무 많다. 배치도상 계획 요소가 대지 경계를 벗어나 있다. 주차장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2천여 평의 과학관 건물에 기계 전기실이 없다. 조경 계획이 고려되지 않아 외부 공간을 전면적으로 조정해서 조경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1층 평면은 진입 공간 등 필요한 공간들을 억지로 확보하려다 보니 여기저기 들쑥날쑥한 평면이 되었고, 자연스레 1층 외벽을 구성하는 사선의 유리 커튼월은 모두 찌그러진 비정형 곡면이 됐다. 뒤쪽(북측)으로 배치된 코어는 엘리베이터의 높이를 확보하려면 구형의 지붕을 뚫고 나가게 되어 있다. 여기에 피난 계단과 합리적인 복도 폭 확보 등을 하려면 주요 디자인 콘셉트만 남긴 채 기능, 구조, 법규, 시공성 등을 고려해 전면적으로 공간을 재계획해야 한다.

멜리케 알티니식과의 첫 만남

권혁찬  2019년 7월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로 한 장의 투시도를 받았는데, 꼭 찐빵 같은 형태였다. 파사드 구현이 가능하겠냐는 물음에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보인다고 답했다. 그 그림은 그해 2월 서울 로봇과학관 국제 공모전의 당선안으로 터키 건축가 멜리케 알티니시크의 디자인이었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이미 수많은 기사가 인터넷상에 쏟아져 있었다. 건축 과정 전반에 로봇 기술 서비스가 도입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설계자 멜리케 알티니식에 대한 수식어도 많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하 하디드의 수석 디자이너였다는 것이다. 2011년 유럽 40세 이하 젊은 건축가 4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파사드 엔지니어링이 아닌 전체 설계를 해야 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국내 건축사와의 협업이 필요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의 복잡성과 부족한 설계비로 인해 파트너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호 역할 배분과 설계비 비율에 대한 협의를 지인을 통해 진행했으나 썩 내키는 대화가 오가지는 못했다. 우리로서는 서울시 프로젝트라는 것이 다소 부담은 됐지만, 파사드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공공건축물의 설계 전체를 수행하는 것이 좋은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한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국으로 날아온 멜리케 일행과의 첫 만남은 2019년 8월 26일이었다. 첫 날은 인사만 나누고, 다음날 다시 사무실에 모여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논의했다.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은데 한국에서 함께 할 팀을 찾기가 어려웠다면서, 위드웍스에서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법규 등의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확답을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조건(설계비 지분 등)도 좋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헤어지면서, 일단 28일에 서울시 관계자와 만날 때 동행하기로 했다.

합류와 계약

권혁찬  가장 큰 고민은 불확실성이었다. 적정한 공사비 예산을 받아낼 수 있을지, 과연 이 디자인대로 설계를 진행할 수 있을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 변수 등은 없을 지 등등. 게다가 이 프로젝트의 설계비는 약 8억에서 9억 정도이고, 수익을 잘 분배해봐야 5:5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40% 전후의 외주비를 고려하면 실제 설계비 지분은 더 적어진다. 따라서 수익적인 판단에서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의 한국 건축계 현황을 지켜보면서 공공건축에서 좋은 품질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우리에게도 이런 중소규모의 프로젝트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고, 또한 이런 소규모 비정형 건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낸다면 국내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시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추진했다.

서울시 경제정책과 및 도시기반시설본부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는 처음 보자마자 ‘위드웍스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건축사사무소이고, 건축 설계(인허가 업무)를 자주 하진 않지만 충분히 할 수 있고, 공공건축에 대한 경험은 별로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간 해온 작업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처음에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담당자도 PT를 다 듣고 나서는 위드웍스에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그저 인허가 업무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것인데, 듣고 보니 로봇과학관 프로젝트는 인허가가 문제가 아니고 이 디자인을 정말 구현해 낼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직 생각해볼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확정은 다음으로 미루고 자리를 나섰다.

이후 멜리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젝트를 하고자 하는 의지는 강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특히, 설계비가 아닌 공사비가 문제였다. 공사비는 218억 정도로 책정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볼 때에는 적어도 400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걸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프로젝트 진행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경제정책과 과장과의 만남에서도 언급했다. 과장은 노력해보겠지만 장담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오늘 계약하지 않으면 계약 대상자가 공모전 2순위자로 넘어간다고 하니, 일단 계약부터 하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끝까지 고민이 되었지만, 멜리케의 설득에 넘어가서 일단 약식으로 공동협약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착수 보고와 예산 검토

권혁찬  2019년 9월 30일에 설계 용역을 착수했다. 처음에는 멜리케 쪽에서 제공한 도면만을 바탕으로 법규 검토와 문제점을 체크했는데, 여러 문제가 발견했다. 주차장 자리로 하수관이 지나가는 등 중대한 문제를 발견했다. 공모 지침서에도 이러한 상황을 계획에 고려하라는 지침이 있었으나, 공모전 단계에서 실제 고려가 안 되었다. 대상지 땅속이 쓰레기로 가득했는데, 이것을 처리하는 데만도 예상되는 비용이 21억이었다. 기계 전기실이 없었는데, 이것은 현상 설계를 기획한 운영팀의 문제였다. 지하 1층에 기계실을 놓아야 하는데 요구되는 주차 대수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면적이었다. 좁은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려다 보니 생태 면적도 확보할 수 없었고, 건물은 구 형태로 지붕이 없으니 태양광 설치도 불가능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완고하게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공사비였다. 공사 단가를 계산해보면 대략 평당 1천만 원이다. 이전 비정형 프로젝트들의 공사비 사례를 살펴보면 철골조냐 RC조냐에 따라 가격 차이는 있지만, 대략 평당 2천만 원이 들었다. 그것도 10년 전 이야기고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은 이 문제를 착수보고 시에  절대 언급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하여 발표했다. 현재 예정 금액(218억)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금액인지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착수 보고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열심히 잘 하겠다’고 발표한다지만,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보고 마지막에 현안 문제들을 강조했다. 이날은 도기본 본부장은 불참했으나 의뢰 부서인 경제정책실 실장과 기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문제를 정확히 알린 것은 효과가 있었다. 도시기반시설본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발표를 다 듣고는 바로 500억이 들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400-450억보다도 높은 액수였다. 그는 특히 외국 건축사와의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갈등이 심화될 수 있으니 반드시 충분한 금액을 마련하여 완공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비정형 요소에 대한 분석 및 대책

실제로 SD 단계에 들어가보니 우리가 예측한 금액이 거의 그대로 나왔다. 예산 초과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은 초과라기보다는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금액이다. 골조 공사에서 거의 200%, 마감 공사에서는 230%, 지하 외벽과 지붕 공사에서는 약 300%의 비용 증가가 있었다. 이는 건축 공사에서 180%가 증가되었고, MEP(기계, 전기, 배관) 부문에서는 통신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치는 비정형 공사의 특징을 드러낸다. 일반적인 건축 공사에서는 공사비가 전체 예산의 약 55-60%를 차지하며, MEP는 약 40-45%를 차지한다. 그에 비해 비정형 건축에서는 공사비의 포션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을 설득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 절감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었기 때문에 어디서 줄여야 할지를 고민했다. 디자인의 경우, 파사드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외부 콘크리트 시설은 3D 프린팅을 활용해 현장에서 시공하려 했으나, 조경 면적 확보, 해외 업체의 터무니 없는 견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장 프린팅 규모 등으로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로 했다. 나머지 부분은 소소하게 조정하여, 전체 예산을 80억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로봇 컨스트럭션?

권혁찬  기사에는 ‘로봇 컨스트럭션’이란 용어가 도배되어 있지만 착수보고서에서는 OSC(Off-Site Construction)‘공법을 적용한 ‘스마트컨스트럭션’으로 수정하여 표기했다.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내놓은 아틀라스 로봇을 보면 현장 로봇시공이 일부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에 바로 로봇을 도입(on site)하지 않고, 공장에서 로봇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한 반제품을 현장에 가지고 와서 조립 및 설치하는 ‘오프-사이트 컨스트럭션’ 개념을 제안했다. 물론 지금(2023년)은 2019년보다 기술이 더 발전해서 인공지능을 접목한 안전 관리 시스템이 현장에서 쓰이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은 보여주기 위한 단계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물음표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도입에 부정적일 수도 있고,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은 건축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리서치 과정에서 현대로보틱스나 삼성물산 등 스마트 건설 기술을 연구하는 대기업의 담당자들도 만나보았다. 안전 장비나 드론을 이용한 측량 기술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실제로 이용도 되고 있다. 다만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로봇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 해도 그것이 품질이나 공기 면에서 이로우면 건설사는 현장 로봇 컨스트럭션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장의 필요에 의해 서서히 적용될 것이고, 아직은 기술적으로나 시장 상황으로나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래서 여러 사항을 고려해 건축가의 선언인 ‘온-사이트 로봇 컨스트럭션’에서 현실적으로 검증된 기술 기반의 ‘오프-사이트 컨스트럭션’으로의 전환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했다.

하지만 로봇 컨스트럭션의 인상이 워낙 강했던 탓인지 아직도 만나는 사람마다 현장에서 로봇이 돌아다니며 공사를 하고 있냐는 질문을 한다. 착수보고회에서 이런 내용을 다 설명한 이후에도 로봇공학 관련 전문가들이 계속 로봇 과학관 관련 기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로봇이 짓는 건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나중에 왜 그렇게 안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좀 억울할 것 같다.

당선안 유지를 위한 노력과 설계 변경

권혁찬  총 두 번의 경관심의가 있었는데, 1차에서는 현상 설계안을 유지하라는 강한 의견과 함께 반려당했다. 유지할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명확하지 않았다. 원안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예산을 고려해 맞춘 것이 1차 수정안이었다. 기능적으로 필요한 엘리베이터의 오버 헤드와 기계실 등을 배치하고 나니 건물이 자꾸 둔탁해져서 디자인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형 디자인에서는 하나의 요소를 움직일 때마다 여러 가지 디자인 요소가 연동되어 있으므로 고려해야할사항이 많아 무척 복잡하다. 도저히 이걸 다시 수정할 수가 없어서 심의의원들을 한 명씩 다시 만나 설득했고, 겨우 통과를 받았다.

또한 심의나 자문 과정에서 막연하게 DDP를 참고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우리 프로젝트와 DDP는 형상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  로봇과학관은 생각보다 작은 건축물이므로 외벽 시스템의 두께를 약 60cm 안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DDP는 그 형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스페이스 프레임이라는 하지 구조 시스템을 사용해 외벽 두께가 최대 3m에 이르는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DDP는 이중 곡면 패널을 프레스로 압축해서 만드는 방식이라, 패널 하나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200만원 사이다. 우리는 패널 형상을 따라 레이져 CNC로 가공된 백 프레임 스티프너로, 콜드 밴딩 개념을 적용해 열 성형 없이 비용을 제곱미터당 30만원 정도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비정형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모든 외장 패널의 형상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패널이 네모 반듯하면 제작이나 설치가 쉽겠지만, 로봇과학관의 경우 패널이 4천여 장이 넘으며, 같은 모양은 한 장도 없다. 게다가 곡면 패널이기까지 하다. 한 장 한 장의 위치가 다 정해져 있는데 그걸 현장에서 제어하기란 불가능하다. 디자인을 보면 곡면 형상이 원점 중심으로 수렴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좌표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패널을 잡아주는 철물 구조를 제어하는 기술력이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직접 개발한 형상 및 좌표 제어 하지 시스템과 고정 브라켓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내부에도 어려운 비정형 요소들이 많다. 에스컬레이터 튜브는 건식 공법으로 간단하게 만들려 했으나, 내화 구조 요건 때문에 설계 납품을 두 달 앞두고 RC 타설로 변경했다. 내부가 유난히 어려웠던 이유는 빠듯한 치수의 디자인이 문제인데, 작은 공간 안에 시공성을 고려하지 않고 곡선이 많은 디자인 요소를 많이 넣어놨기 때뿐이다. 비정형 튜브 형상을 만들려면 기본 구조체와 이를 감싸는 형상 제어 구조를 커버하기 위해 최소 60cm 이상의 두께가 필요했다. 부득이하게 일부 구간은 당선안에서 보이는 날렵한 디자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평면을 다시 조정해 형상 제어를 위한 철구조물들이 들어갈 수 있는 마감 치수를 고려해 디자인과 디테일을 변경했다. 두께를 최소화 하기 위해 UHPC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길이 7~8m의 구조물을 실내 공간 안에서 설치하는 방법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2층 구간은 비정형 스틸 갱폼을 짜서 타설면을 곱게 만든 후 하이글로시로 도장하기로 하고 터널 내부 및 나머지 1층과 3층에 돌출되는 부분은 건식 공법으로 만드는 것으로 설계를 정리했다.

협업과 역할분담

권혁찬 초기에는 BIM360 플래폼 안에서 레빗 툴로  멜리케 측과 공동 작업을 하기로 했다. 디자인은 멜리케가 리드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서포트하는 방식이었는데, 하다보니 쉽지 않았고, 진척도 너무 느렸다.  넙스(NURBS:Non-Uniform Rational B-Splines) 기반 디자인 툴에서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라이노 툴과 레빗 툴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합리했다. 협약서 작성하기 전 카페에서 만나 처음 대화를 나눌 때는 외국 건축가 특유의 프라이드가 보였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디자인 자체를 다 바꾸어야 했고, 그 디자인 자체도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실시간 협의를 거쳐 위드웍스의 디자인 대안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멜리케 측이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결국 우리가 BIM 과정을 주도하게 되었고, 멜리케 측은 우리가 요청하는 의견에 답변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DD 단계 초반에 완전히 손을 놓는 것으로 정리했다.

전시 공사 준비 상황

권혁찬  전시 기획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시 기획이 바탕이 되어 전시장에 대한 요구 조건이 만들어지고, 이를 충족하도록 공간 설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도 일종의 또 다른 건축가가 되어 프로젝트 설계 단계에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구조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전시 MP는 전시 기획만 담당하고 실질적인 전시 설계 업무는 분리되다보니 실제 공간에 대한 감이 전혀 있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협의 과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뭐 해요?’, ‘난 이거 싫어요’ 하는 식의 얘기만 오가고,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 없다. 결국 ‘공간만 만들어 놓으세요. 나중에 알아서 할게요’라는 상황이 되었고, 필요한 것들이 제때 결정되지 못했다.

현재 골조가 다 끝나고 지붕 방수만 마치면 내부 공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시점에 와서 설계를 바꾸라는 요구가 나온다. 현장에서 그런 변경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기에는 경미한 변경 사항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실 구획이나 벽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건축 공사가 이미 끝나서 바꾸기 어렵다. 갑자기 스케치를 건네주며 이렇게 저렇게 바꿔 달라고 하니 현장 사람들과 실랑이만 반복될 뿐이다. 설계 의도와 다르게 협의 없이 임의로 바뀌는 부분이 너무 많다. 문제는 이런 과정 속에서 건축가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아서 고도로 계획되고 계산된 설계 의도들이 망가진다는 점이다. 그저 그려달라면 그려주는 ‘을’로만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임종률  마감 공사 단계에서 전시가 변경되면 하위 업체들이 모두 피해를 입는다. 주간 공정회의를 할 때 늘 큰 타격을 받는 업체가 전기, 통신, 소방 업체다. 이들은 뭔가 바뀔 때마다 바닥에 있는 전선을 모두 걷어내고 다시 깔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건물 속이 계속 망가진다. 전시 기획이 사전에 협의되어 마감 공사 위치가 정확히 정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확정이 안 된다. 건물이 곡선 형태라서 더 어렵다. 뒤로 갈수록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 더 큰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권혁찬  로봇 및 AI기술은 현재이자 미래의 기술이므로 단순히 전시에 그치면 죽은 박물관이 되고 만다. 이곳이 정말 살아 있는 과학관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의 연구소들과 함께 최신 기술을 공유하고, 교육하는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로봇 하나 전시하고, 기술 하나 소개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로봇과학관이 일종의 미디어 랩, 디지털 랩이 되어 로봇 과학계의 유명 인사들이 강연을 하고, 실제 시연을 하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동부권 지역에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많고, 창업지원센터가 있어 초등학생들만의 교육장이 아니라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청년 창업자들까지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전시물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로봇 및 AI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는, 살아있는 전시장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고화 최정원 / 편집 김상호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당선과 실현

분량9,759자 / 20분 / 도판 12장

발행일2025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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