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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큰 공동주택: 아파트

강신욱, 김태영, 나카 토시하루, 박창현

공동주택연구 포럼 개요

  • 제목: 아파트 지형 공동주택
  • 일시 및 장소: 2023년 9월 21일 오후 6:00 연세대학교
  • 발표자:
    • 강신욱(건축사사무소 이산 대표)
    • 김태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유토포건축사사무소 이사)
    • 나카 토시하루(나카건축 설계스튜디오 공동대표)
  • 모더레이터: 박창현(에이라운드건축 대표)

아파트에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

박창현 대규모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을까? 이 자리를 준비하며 1990년대 LH공사의 광고를 찾아봤다. ‘이웃도 집의 일부입니다’라는 슬로건이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대규모 아파트에서의 이웃관계에 관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이웃에 대한 의미나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전의 아파트에서는 이웃을 어떻게 고려하고 설계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지 각자의 생각을 듣고 싶다. 

강신욱 아파트는 소규모 주택과는 접근 방식이 아주 다르다. 아파트를 지을 때는 설계 기간이 정해져 있다. 길어도 3개월 안에 몇천 세대를 위한 아파트를 설계한다. 개별 세대의 관점에서 설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도시에서 각 블록의 땅이 가진 기능 그리고 주변 산이나 상가와의 관계를 고려해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그 기능과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방안을 생각한다.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자연과의 관계와 이웃 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블록과 블록이 만나는 경계, 즉 가로가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카 토시하루 일본의 경우 대규모 단지를 설계하면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한 번에 입주한다. 나도 그런 단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신혼부부나 육아하는 부모 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서로 돕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입주민의 연령대, 심지어 국적도 다르기 때문에 주택을 설계할 때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족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서로 돕는 시스템을 고민한다면 주택의 설계가 달라질 거라고 본다.

김태영 공동주택을 많이 설계했지만, 내가 설계한 집을 포함해서 공동주택에서 과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다. 근본적인 어떤 것이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를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이 아니라 더 선한 사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품격 있는 공동주택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어진 공동주택에서는 상대방도 그만큼 덜 중요하게 느껴진다. 주거 복지에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잔여적 모델과 중산층을 포함해 주거비를 지원해주는 일반적 모델이 있다. 주거 복지의 일환으로 보통 잔여적 모델을 채택하는데, 잔여적 모델의 공동주택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해 지어진다. 낮은 비용으로 짓는 공공주택에서는 건축가가 아무리 노력해서 설계하더라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좀 더 비용을 들여 거쳐가는 집이 아니라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동주택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고 본다.

공용공간과 개인공간의 균형 찾기

청중 A 아파트에서 이미 개별 세대를 잘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서로 잘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집중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동주택에서 사적 영역을 충분히 보호해줘야 이웃과의 공유도 더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특히 공유주택이 아닌 아파트 단지에서는 더욱 사적 영역을 잘 보장해줘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한국형 거대 아파트 단지에서 가능한 설계 방식에는 어떤 게 있을까?

나카 토시하루 큰 아파트 단지는 보통 고층이기 때문에 높이에 따른 변화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층 부분만 외부로 열어 사람들이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생애주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공동 육아를 지원할 수도 있다. 젊을 때는 혼자서 거뜬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상황이 많다. 물리적 공간과 함께 그런 서비스적인 부분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강신욱 아파트는 개별 세대라는 사적 공간과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공적 공간으로 나뉜다. 다양한 사람이 만나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커뮤니티 시설이 있을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아파트를 지은 후 3년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커뮤니티 시설이 점점 늘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조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 환경을 좋게 만든다.) 커뮤니티 시설을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실제로 사적 공간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버튼 하나로 음식이 배달되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시스템도 갖춰지고 있다. 또 코로나-19 이후 생긴 클린룸과 택배와 우편물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있다. 조만간 집 하나에 도시의 모든 기능을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다.

집은 더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주거만 편리해지고 개인의 일상은 더 각박해지고, 가족이나 이웃 관계는 약화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태영 아파트 평면의 가장 큰 문제는 넓어 보이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집이 한눈에 보이게 만든다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주방과 화장실 문이 바로 옆에 있고, 자려고 누우면 물소리가 들리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물 쓰는 곳을 평면 한가운데에 둔 ㅁ자 평면을 만들었다. 그러면 주방을 거쳐 거실로 갈 수도 있고, 파우더룸을 통해 화장실로 갈 수도 있는 순환 동선이 만들어진다. 집 안에서 밖으로 가는 경험을 매일매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전용 공간은 정말 중요하다. 아파트가 아무리 넓어도 형식화된 전용 공간이 사람이 집을 사용하는 방식, 가족의 위계를 고착화한다. 아빠가 쓰는 방의 창대와 아이가 쓰는 방의 창대의 서로 다른 형식이 외부를 내다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와 다른 예를 하나 들면, 내가 설계한 은혜 공동체에서는 한 부부가 사용하는 방이 16m2정도였다. 작은 호텔 객실보다도 작은 면적에 샤워실, 옷장, 침대가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방에 바닥까지 내려오는 전창을 냈다. 방은 작은데 창만 큰 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방이 작은 만큼 외부 환경을 안으로 들이는 것만큼은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적 공간의 가치를 희생해서 공용공간을 좋게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자는 게 아니다. 그리고 넓어 보이는 전용 공간이 최고라는 선입견을 벗어야만 정말로 좋은 전용공간을 실현할 수 있다.

고령층을 위한 소셜믹스

청중 B 요즘 특히 50~60대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를 공동주택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나카 토시하루 일본도 고령 1인 가구가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 재밌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단지 안에 빈집이 생기면 (다른 세대의) 현관을 굉장히 넓게 바꾸는 등 집을 고령자에게 맞춰 적절하게 고치는 거다. 공간만 바꾸는 게 아니라 돌봄 사업자를 연결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밖에서 안을 살필 수 있는 거실을 만들고, 돌봄 매니저가 단지를 돌며 거실들을 살피는 방식이다. 고령자, 부모, 청년 등 다양한 세대가 섞이면 노인들이 쌓아놓은 물건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등 공동체의 또 다른 연결도 생긴다.

김태영 어려운 질문이다. 2017년 은혜 공동체 설계를 할 때 공동체 구성원이 대부분 30~40대였는데, 건물이 늙어가는 것처럼 공동체도 늙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을 방문해 어떻게 함께 늙어가야 하는가를 연구하기도 하면서 지금도 단단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은혜 공동체 프로젝트에서 중요했던 것은 세대 내부 설계보다 단지(전체) 안에서의 사회적 이동이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30대가 40대를, 50대가 60대를 돌보는 체계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주택 내에 계속해서 새로운 젊은이들이 들어와 살아야 한다. 50~60대 1인 가구만을 위한 공동주택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공동체 주택에 충분히 다양한 사람이 살게 만들어야 한다. 그 대신 생애 주기에 맞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젊을 때는 어린이 놀이터 가까이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듣는 게 좋지만, 나이가 들면 시끄러운 게 싫어서 조용한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이런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게 쉽진 않다. 한 공동주택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고, 밀도 있게 모여 살다가도 흩어질 수도 있는 이동이 자유로운 클러스팅이 필요하다.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있어서 운영을 돕는 체계가 생기면 좋겠다.

박창현 LH공사나 SH공사에서 대규모 아파트를 설계할 때 소셜믹스를 자주 언급한다. 하지만 그저 소셜믹스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소셜믹스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설계해야 한다. 경제적 차이, 연령의 차이를 과연 물리적인 연결로만 해결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같이 들어와야 한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더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는 아파트를 바꿀 수 있을까?

청중 C ‘건축’이라는 말과 다르게 ‘아파트’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삶의 터전인 주택으로서 넓고 쾌적한 공간에 살고 싶다는 마음과 하나의 화폐로서의 부동산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갈등이 중첩되며 ‘아파트’라는 말에 무거움이 생기는 것 같다. 아파트 혹은 공동주택을 설계하게 될 젊은 건축가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김태영 현실적인 희망은 주지 못하면서 세상과 사회에 도전하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이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떡하나 생각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에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친다. 지금의 현실 너머를 상상하는 능력은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런던에서 12년을 살며 전혀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경험했다. 또 런던에서 열두 번의 이사를 겪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유일한 방법을 상정하고, 줄을 세워 평가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법에는 답이 없다. 아파트를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다. 왜 꼭 탑상형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지, 왜 판상형과 계단형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지를 질문해야만 새로운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다 보면 공모에 당선되기 힘들다. 🥲 무엇을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를 놓치지 않는다면 좀 더 나은 건축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신욱 아파트를 설계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매번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의 아파트 설계가 백 년이 지나면 감옥에 갈만한 일이지 않겠냐는 거다. 😓 최대한 거주자와 도시를 생각해서 설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지금 우리 도시의 모습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반영한 모습이다. 더 나은 도시를 바란다면 우선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들 좋은 학교, 직장, 동네를 원하는데, 더 중요한 건 좋은 친구, 동료, 이웃, 가정이다. 우리가 진정 중요한 것을 바라게 될 때 아파트의 방향도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나카 토시하루 나도 마음만은 아직 젊은이다. 🙂 다만, 한가지 말하자면 건축의 경계 밖으로 나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당이 함께 있는 상가주택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디자인했다. 그때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건축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는데, 분한 마음에 운영까지 했다. 젊고 에너지가 있을 때 건축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한다면 사회도 변하지 않을까 싶다.

공동주택의 소프트웨어

청중 D 우리나라도 소셜하우징 분야에 소프트웨어적인 설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이 일어나는 추세다.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설계에는 어떤 게 있는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다.

나카 토시하루 발표에서 언급한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다. 대신 왜 소프트웨어 설계를 강조했는지를 설명하겠다. 일본의 집합주택 프로젝트가 재밌는 이유는 개인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디벨로퍼들은 용적률을 꽉 채워서 지으라는 요청을 하는 데 반해, 개인 클라이언트는 주변 지역과 연결되고 싶다거나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개인 클라이언트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기가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그때는 은행을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설득하기 위한 사업 계획의 일환으로 소프트웨어를 설계했다. 정말 곤란한 상황이어서 예외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원고화 및 편집 김보경

(토론) 큰 공동주택: 아파트

분량6,223자 / 12분

발행일2024년 10월 22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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