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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전숙희, 장영철

건축가라는 직업 

전숙희 중간점검 자리를 준비하면서 ‘건축가’라는 말을 곱씹어봤다. 건축학과에 왔다면 모름지기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제일 좋아했던 건축가가 루이스 칸이다. 루이스 칸과 정서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던 계기가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학과지를 만들면서 편집장이었던 친구의 집에 3일 동안 감금되다시피해서 루이스 칸 평전을 독파한 내용을 글로 실었다. 그러면서 그의 건축과 철학에 매료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는 내게 영감을 준다. 일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때면 그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침묵과 빛』이나 『루이스 칸 – 학생과의 대화』에서 그가 하는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시적으로 압축적인 표현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What do you want to be, brick?”이라는 유명한 말도 그 책에 나온다.

사이건축 이진오 소장님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추천하면서, 여기 나오는 ‘소설가’를 ‘건축가’로 바꿔서 읽어보라고 했다. 직업 소설가는 아침에 일어나서 A4 20장 정도의 글을 매일 써나간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노동으로서의 소설이다. 소설가는 떠오르는 영감으로 휘리릭 책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 쓰는 노동에 대해 매우 적나라하게 적었다. 그 ‘소설가’를 ‘건축가’로 바꾸니 격하게 공감되었다. 매일 글쓰기 노동이 20일 진행되면 A4 400장짜리 초고가 되고, 그것을 다시 3개월에 걸쳐 고쳐 쓴다고 한다. 천재적 재능이나 반짝이는 영감으로 소설이 탄생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고, 내가 건축 일을 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가 김훈도 『연필로 쓰기』에서 자신의 직업 세계와 소설가로서의 자세를 썼다.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라는 표현에도, 자신의 근육을 글을 쓰게끔 훈련한다는 표현에도 크게 공감한다. 똑같은 말을 리처드 세라도 한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내 의식이 아니라 내 오른팔의 근육’이라고 말한다. 작가라는 직업 세계에는 의식적 세계와 무의식적 세계가 공존하는 것 같다.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이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각자의 답을 찾아야 할 텐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답을 얼마 전에 찾았다.

건축 과정의 수난  

전숙희 건축가는 허울이 좋다. 그 직업의 세계는 화려해 보인다. 그런데 그 물밑 세계는 치열하고, 노골적이다. 어둠속의대화 때 종로구청에서 받은 문화재 심의 결과에는 “한옥 형태로 계획하시오”라는 단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우리는 6개월 동안 일했는데, 그 한 줄을 받았다. 우리 설계안은 처절하게 거절당했다. 당연히 그대로 멈출 수 없어서 문화재 심의위원을 찾아가서 읍소하며 그가 원하는 바를 스케치로 받아왔다. 그에게는 전통성이 살아 있는 건축물이었을지 모르나, 우리 눈에는 그저 중국집 만리장성이었다. 고심 끝에 그가 주문한 대로 그린 안을 가지고 다시 찾아갔다. 도저히 이 방식으로는 우리가 구현하려는 건물이 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전통 건축도 훼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도 겨우 수긍을 해주었고,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수난의 역사는 이어진다. 노무현시민센터를 만들 때 하필 또 문화재청의 의견서를 받았다. 우리 설계안이 “역사 문화 환경을 저해할 우려가 있기에 불허한다”며 반려되었다. 이번에는 그 결과로 아예 원안대로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시민센터는 지명현상공모를 거쳐 당선되었지만, 그 이후로 여러 차례 설계 변경을 거치게 되었다. 정말 많은 시간을 썼다. 2017년에 당선되어서 2022년에 완공했으니 햇수로 6년이 걸렸다. 문화재 조사, 심의, 정밀발굴조사, 재심의, ‘도시공간예술위원회 자문’으로 가장한 심의, ‘건축 협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허가, 굴토 심의, 건축 허가, 착공 신고 등등 절차마다 우여곡절 없이 지나간 것이 없었다. 

지명현상의 당선안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시민들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원서동이라는 주변 역사 환경을 고려해서 마을 형태의 시민 공간을 제안했었다. 큰 한 덩어리의 위압적인 건물이 아니라 시민들의 작은 힘이 모여 큰 힘이 되듯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마을 같은 건물을 구현하고 싶었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위계 없이 모여 있는 집합적 건물로 구성하고 싶었다. 지금은 원안과 많이 달라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완성했다.

야심가의 일

장영철 건축은 야심가의 일이다. 야심이라는 것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건축가는 큰 꿈을 꾸는 사람,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 뭔가 이루고 싶은 갈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기 때문에 야심이 없으면 도중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는 회의가 들게 된다. 2016년에 내가 그랬다. 그때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다) 설계 의뢰를 해오면 겁이 났다. 어쩌다가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의뢰해오는 일은 부담이 덜했기 때문에 일을 맡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애초에 알 수 있는, 그런 확신이 있는 일만 맡아서 했고, 그렇지 않은 의뢰는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험난한 과정을 앞장서서 헤쳐 나가며 팀을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게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보통 계약서 한 장으로 시작되는 일은 계약 당사자 양쪽 다 자신들의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지?’라는 감만으로 일하는 것이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서로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속 의심한다. 많은 경우에 그 의심을 통해서 건축가가 생각을 되풀이하고 결과가 더 좋아지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바탕으로 신뢰가 형성되면 좋을 텐데 어려움이 많다. 제일 어려운 것이 시공비 문제다. 많은 경우 이 부분에서 관계가 다시 깨진다. 그런 일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가라지가게의 일은 갈등이나 분쟁의 요소가 없다. 뭔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명확함이 없다. 이런 점이 나한테 맞는 것 같다. 집을 짓는 일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만들어서 내놓고 원하는 가격을 매겨서 파는 게 내가 건축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경기가 전체적으로 하강하고 있는 시절에 이 흐름을 거스르면서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조금씩 성장해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잘 생각해보려고 한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장영철 나는 지금 건축에서 어느 정도 이탈한 사람이라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건축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실제 직업 세계 속에서는 힘든 역할들을 해야 하고, 도처가 지뢰밭이다. 렘 콜하스도 ‘건축을 하는 것은 곡예비행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구마 겐코도 자신을 경주마에 비유하며 건축가는 항상 경쟁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어떤 평론가는 건축가를 비저너리(visionary)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건축가는 욕망을 대변해서 뭔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이다. 좋은 건축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건축가로서 일하며 ‘받게 될 수도 있는’ 보상 같은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렇게 미화되어 보일 뿐이다.

30년, 40년을 건축가로 일해온 분들을 보면 어떻게 저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고, 그 시간을 이겨내고 온갖 고난을 잘 헤쳐왔다는 사실만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꼭 멋진 건축적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 지금 만들고 있는 가구를 통해서든 요즘 구상하고 있는 빼빼집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든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계속 그런 직업인으로 살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나의 좌표를 어딘가에 찍게 될 테고, 운이 더 좋으면 엘크로키 같은 데서 취재를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내달리는 것은 내게 맞지도 좋지도 않다. 억지로 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기조로 일하고 있다.

전숙희 사람들이 계속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다는 것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물을 이유가 없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묻는다. 나는 건축가를 나무를 기르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싶다. ‘나무’를 ‘공간’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건축가의 역할이고, 나무가 하는 사회적 역할이 뭔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건축의 사회적 기능이지 않을까. 나무는 숲이 될 수도 있고, 산책로나 정원이 될 수도 있고,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가 될 수도 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숲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나무를 키우는 일일 수도 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사례는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공공주택 프로젝트다. 최소한의 리소스로 해낸 소셜 하우징 프로젝트다. ‘반반 주택’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큰 사회적 임팩트를 준 아이디어였고, 빈민층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틀이 되었다. 건축가는 분명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로서의 종착점

전숙희 어둠속의대화를 만들 때, 노무현시민센터를 만들 때, 그리고 지금 더 간절해진 바람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이 내가 종국적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그것이 건축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종착지다. 

가끔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면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지역에서 가볼 장소를 정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우리만의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려고 한다.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에 있는, 풀밭을 한참 지나서 거기 있는 건물 하나 보고 오기도 한다. 건축가인 엄마 아빠를 둔 우리 아이는 그런 게 여행인 줄 안다. 사람들도 요즘은 관광 명소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가고 싶어 하고, 그곳을 ‘저장’해 온다. 그런 장소를 만드는 것이 건축가에게는 큰 영광인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모두의 방’이라고 이야기한다.

주택 작업을 어느 순간부터 안 했다. ㄱㄴ집 주인처럼 담장을 놓지 않는 데에 흔쾌히 동의해주고, ABC사옥 건축주처럼 방문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가 건축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야’라며 건물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귀한 존재다. 집을 지어준 건축가조차도 문턱을 넘어가기 어렵게 대하는 사람도 있고, 공적인 건물인데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본다. 노무현시민센터를 완성하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모습, 너른 마당을 풀어놓고, 문도 그냥 다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려도 별로 개의치 않고,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자기 집처럼 그곳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정말로 실현되었다. 지금 정말 그렇게 쓰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앞으로도 모두에게 편안하게 열린 문턱 낮은 장소를 더 만들고 싶다.

인터뷰이 전숙희, 장영철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건축가

분량5,640자 / 11분 / 도판 6장

발행일2024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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