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가게
장영철
분량4,426자 / 9분 / 도판 1장
발행일2024년 6월 17일
유형인터뷰
시행착오
장영철 가라지가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일이다. 와이즈건축 사무실을 확장할 때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었었는데, 그걸 제품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이 정도면 한 7만 원에 팔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계산해보니 초기 제품 가격이 20만 원 넘게 나왔다. 와이즈건축 살림을 내가 운영했던 것이 아니어서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가라지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구를 만들면 와이즈건축의 프로젝트들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착각이었다. 가라지가게가 브랜드화되어서 자생적으로 커 나가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도 쉽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2년만 하면 어느 정도 사업이 될 줄 알았는데, 적어도 10년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농사짓는 것과 비슷했다. 뉴스에 몇 번 나온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제품을 인정받아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엄청난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가구를 사서 써보고 소문이 퍼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한 명 늘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업이 확장되어도 돈은 벌리진 않았다. 생각보다 기복이 크고, 인건비나 창고비 같은 고정비가 계속 든다. 내가 그런 부분에 전혀 감이 없었다. 가격은 한 번 정하고 나면 올리기가 힘든데, 처음에 너무 낮게 잡는 바람에 지금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현상 유지 수준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입장에서 본업 외에 어떤 상품을 만들거나 건축을 벗어나서 어떤 사업을 하려는 건축가들에게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다.
가라지가게의 포지셔닝
장영철 처음에는 이사가 잦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더 싼 제품을 원했다. 결국 가라지가게는 다른 가치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가 만든 가구’라는 이미지와 그것이 주문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라지가게의 장점이다. 그래서 초창기 주 고객이 디자이너들이었다. 영향력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느린 것이 문제였지만 긍정적인 신호였다. 자연스럽게 사업 타깃이 사무실과 상업 공간 쪽으로 특화되어갔다. 벼룩시장이나 팝업스토어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상업 공간에 임시로 놓을 수 있고 가볍고 이동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와이즈건축이 가라지가게 가구를 안/못 쓰는 이유는 와이즈의 건축주들은 이보다 더 고급 가구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건축주 쪽에서 가라지가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와이즈에서 먼저 권하기가 어렵다. 또, 설계사무소에서 우리 가구를 주문하는 경우는 많지만, 본인들이 설계한 건물에 굳이 우리 가구를 넣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아무튼, 건축가 쪽 시장은 기본적으로 고급 가구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가라지가게의 포지셔닝은 아직 불명확하다.
가라지가게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가구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은 요즘 꽤 성공했다. 물론 가라지와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긴 했지만, 사업에 대한 감각이 좋고 마케팅 성향이 뒷받침된 덕분인 것 같다. 나는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고 포장하고 파는 데는 소질이 없다. 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고충들이 내가 사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못 버는 게 불만일 뿐, 일이 나를 힘들게 하진 않는다.

다시 스몰니스
장영철 최근에는 내가 하는 일을 다 연결해보려고 하고 있다. 각각의 경험이 지금은 따로따로인 것 같지만, 꿰어서 목걸이가 될 수 있기를, 하나의 가치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는 데에서 오는 걱정은 계속하지만, 어쨌든 내게 맞는 방식, 내 나름의 방법으로 다시 건축 일로 돌아가려는 중이다.
초창기 ‘smallness’라는 주제는 와이즈건축이 성장해감에 따라 ‘일상성’, ‘엑스트라 오디너리’, ‘밸류 파인딩’ 같은 말로 분기되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메니페스토였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마케팅적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엑스트라 오디너리’의 대표 사례는 어둠속의대화였는데, 비용이 들더라도 좋은 가치를 담는 건물을 짓는 일이었다. ‘밸류 파인딩’은 한동안 이어졌던 사옥 프로젝트들에서 건축으로 어떻게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ABC사옥을 지음으로써 생긴 부가가치가 좋은 사례였다. 이런 키워드들이 와이즈의 성장 과정에서 나온 내부 담론이었다. 좋은 과정이었는데,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지만 ‘smallness’라는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고, 그것이 내게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최근에 다시 하고 있다. 작은 프로젝트의 강점, 즉 직접 실행해볼 수 있다는 점, 직접 프로그램을 넣을 수 있다는 점, 직접 재료를 실험할 수 있다는 점들이 ‘smallness’의 변함없는 가능성이다. 이 세 가지 강점이 하나로 맞춰질 수 있는 형태가 요즘 구상 중인 ‘빼빼집’ 프로젝트다. 내게 부족한 비즈니스 마인드만 채워진다면,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빼빼집
장영철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빼빼집’이라는 중저가 브랜드의 집을 만드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지을 수 있는 쉬운 구법의 집으로 의뢰인은 정해진 방식대로 집을 짓는다. 부재와 시공법은 정해져 있지만, 여러 형태로 변형 가능하다. 설계는 몇 가지 샘플을 바탕으로 한두 번에 끝낸다. 그렇게 설계비와 공사비를 낮춘다. 공사는 직접 하지 않고 시스템과 디테일만 제공한다. 그렇게 해서 강릉 빼빼집, 광주 빼빼집 등으로 집을 늘려가면서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려고 구상 중이다. 집 짓는 일은 엄두가 잘 안 나는 일인데, 어느 정도 보장된 품질과 예상 가능한 비용이 제시되면 건축주 입장에서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 일에서 생기는 모든 갈등의 근원은 집을 짓기 전에 돈을 받는 데 있다. 사람들은 건축가는 그림만 보여주고 큰돈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집을 짓는 일까지 염두에 두는 건축가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고, 실제로 큰돈도 아니다. 그런데 가라지가게에서 물건을 팔아보니 만들어놓은 물건을 보여주고 가격을 말해주면 그만이다. 사고 말고의 문제가 단순명쾌하다. 이런 구도 안에서는 건축을 둘러쌌던 큰 시스템적 문제가 사라진다. 그래서 빼빼집 같은 방식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건축 작업도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고, 내 삶도 편안해지고, 상대방도 만족할 것 같다.
와이즈건축이 분화되긴 했지만, 빼빼집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되면 와이즈건축의 이름으로 하게 될 것이다. 빼빼집이 와이즈건축이 만드는 집 브랜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시장에서는 어떻게 통할지 궁금하다. 작은 건물일 테고, 여행 중의 숙소가 될 수도 있고, 동네의 문화공간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사람 사는 집일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집합적인 모델로 건축의 더 큰 가치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너무 애쓰지 않기
장영철 2016년 이후로 나는 전 소장님에 비하면 정말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전 소장님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와이즈건축이 없었다면 가라지가게가 지금의 인지도를 얻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여전히 어떤 큰 성취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리하지 않는 것, 일을 만들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다. 애를 쓴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과도한 것으로 만든다. 프로젝트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더 잘 될 수도 있다. 다들 ‘너무’ 애쓰다가 오히려 일이 잘못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돈이 없거나 뭔가가 모자라면 크기나 목표를 줄이면 되는데, 끝까지 지키려고 고집하다가 어그러지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예산이 이미 초과한 상황에서 막연한 미래의 필요를 확보하느라 지하층 층고를 무작정 높게 확보해두려고 고집하는 건축주가 있었다. 그러면서 건물의 아이덴티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반대로 나는 층고를 낮춰 토목공사비를 줄여서 본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자 고집을 부렸다. 둘 다 너무 애를 쓴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건축가는 건축주 요구에 맞춰서 특별한 디자인을 버리고 평범하지만 괜찮은 정도의 디자인으로 지하를 높여주면 될 일이다. 눈길을 끄는 독특한 건물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쁘지 않은 건물은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건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될 일은 결국 안 되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될 일은 된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젊은 시절에는 애쓰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그러느라 좌절감을 맛볼 필요는 없다. 각자의 그릇이 있고, 그 크기에 맞게 사는 거다. 어떤 이는 자기 에너지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일하는 데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전 소장님도 그런 사람이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서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본인은 정작 그렇게 일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이 장영철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가라지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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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4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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