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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앤파우나

이다미

돌돌돌

얼마 전 트위터에서 떠내려오는 이미지들 사이로 성당 앞에 걸린 “모든 돌은 천국에 갑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모든 돌이 천국에 간다니 천국이 있기는 한 지 내가 천국에서 기다릴 수 있을지 돌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죽음도 있는지 모든 돌이 착한지 신은 이름 없는 돌을 무엇이라 부를지 천국에도 중력이 여전해서 돌이 언제나처럼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을 것인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여기는 건축신문이니 세부적인 논의는 잠시 미뤄 놓겠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돌,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 나름의 생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들이 주고받는 생기 사이로 공명하고 싶다는 소망, 이 모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 그리고 세상에서 비인간적인 건 인간밖에 없다는 인간화 된 자연에의 각성 말이다.

두 번째 돌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돌이다. 딸 조이를 구하기 위해, 달리 설명하자면 레즈비언 딸 조이를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세탁소 주인에서 시작해 스포트라이트 속 유명 배우, 말랑한 소시지 손가락 레즈비언 등 평행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경유하던 주인공 에블린(미셸여 aka. 양자경)은 막막한 고원 위 돌이 되는 데에 이른다. 돌이 되어서도 같이 돌이 된 딸을 향해 나름의 몸짓과 발화를 이어가는 에블린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무엇이든 되어볼 수 있다고 어떤 몸의 양태도 생동한다고(작동한다고) 이야기한다.

건축은 언제나 ‘무언가 되기’와 함께 나타난다. 세탁소 주인이 돌에 이르는 길은 멀어 보이지만 건축가에게 돌은 세탁소 주인만큼이나 꽤 가까운 무엇이기도 하다. 건축의 시간 속에서 나는 할 일이 산더미인 세탁소 주인을 연기하고 도구를 집어들 수 없는 말랑 손가락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이 될 수도 있고 이들 사이로 발산하거나 응시하는 강가에서 주워 온 돌이 되기도 그런 돌 중에 가끔 막중한 책임을 가진 돌기둥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주체, 객체와 비체를 오가는 디자인의 과정은 연기나 소설 작법처럼 나를 낯선 시점에 놓아준다. 나는 이러한 건축의 훈련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눈과 손과 귀의 사용법에 대해, 구분들 사이의 흐릿한 눈금 가루를 밟고 가로지르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그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그린다.

사실 건축을 배우며 가장 처음 인식한 나의 특징은 그리는 것,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가구와 기둥과 벽과 계단과 지붕의 모양을 미묘하고 불순하게 그리는데 열중하는 것이, 결국엔 그런 것들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그려지는 지에 대해 관여하고 간섭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니까 내가 소개하는 나라는 건축가는 세상을 서로에게 소개하기를 열망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때의 이미지는 다시 돌의 그것이다. 우리는 돌의 요철과 그림자 사이로 원하는 대로 보고 바라는 대로 더듬으며 무언가를 읽어내지만 의미와 연결고리는 닳고 낡고 변하고 자의적이며 돌은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은유이자 우리의 마음과 상관없이도 돌인 것이다.

건축은 제도와 산업의 이름으로 사회의 규범화에 견고하게 복무하는 듯하지만, 건축이 그저 돌이라 생각한다면 돌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건축의 지점은 돌이 되어보는 것, 모든 돌이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것에 있다.

이다미

플로라앤파우나 사무실 풍경

다른 나라, 규모, 작업 스타일

이다미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부터 계속 독립하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로 인해 사무소에 취직하거나 아티스트 계열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 취직을 택했다. 첫 직장이라고 할만 한 사무소는 BIG(비야케 잉겔스 그룹)였다. 마침 BIG가 뉴욕 지사의 규모를 키우려던 시점이었고, 내가 들어간 2013년 가을에는 구성원이 70명이었는데 1년 만에 120명이 됐다. 2014년에는 결국 비자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최춘웅 교수님의 사무소에서 1년 반 정도, 원오원 아키텍스(이하 원오원)에서 1년 정도 일했다. 나라나 규모, 작업 스타일이 다양한 사무소에 몸담은 셈이다.

BIG는 당시 조직의 규모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함께 일을 잘할 수 있는 업무 시스템을 꾸리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디자인이라는 일을 넘어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최춘웅 교수님은 건물을 짓는 개념보다는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건축을 다루어서 나와 잘 맞았고, 원오원에서는 디테일을 집요하게 디자인하는 법, 금속제작자 등 제작자와 협업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모든 사무소에서 오랜 기간 일하지는 않아서 각 사무소의 특징을 정확하게 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나니 당시 기준으로는 원오원보다 더 다니고 싶거나 작업 환경이 더 좋은 사무소가 없어서 2018년에 독립하게 됐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독립한 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라 첫해에는 인테리어 작업도 조금씩 하고 외부 연구 용역 일도 하면서 느슨하게 보냈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덕분에 여성 건축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빌딩롤모델즈와 같은 활동도 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는 화살

이다미 과녁을 뚫고 날아가는 화살은 내가 작업할 때 상상하는 이미지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화살인지, 화살을 쏜 사람인지 혹은 과녁인지 묻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화살은 나 자신도, 작업도 될 수 있다. 과녁은 기능, 제도, 장르 혹은 생각이다. 미술이나 공연을 하는 작가들은 이처럼 고착된 생각을 뚫고 다른 세계로 향해 가는 작업을 자주 하는 것 같은데, 나 또한 이런 작업을 지향한다. 작업 과정을 뜻하는 화살이 나아가는 궤적은 춤으로 비유하고 싶다. 춤은 작업 과정이 놀이 혹은 유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디자인하는 걸 놀이처럼 재미있어하는 타입이다.

최근에는 유물론, 페미니즘, 퀴어 이론으로부터 타자가 되는 감각에 대해 배웠고, 그 감각은 내 작업이 가진 관점을 스스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녀는 존재들의 상호연관성을 경험한다. 건물들은 신체들이고, 둘 다 생물체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은 물질의 통합이고, 이 통합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힘들 중에서도 인간의 노력에 의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자연과 건물이 다른 존재라기보다, 자연이 곧 건물인, 자연과 건물이 등가적인 관계에 있다는 관점을 읽었고, 내 작업 대부분은 타자, 관계, 자연 등을 향한 시선을 품고 있다.

<식물 동물 건물: 건축의 몸 상상실험실>, ‘드랙 뮤지엄’

이다미 <식물 동물 건물: 건축의 몸 상상실험실>(2020)은 어린이들에게 건축에서 ‘무엇이’ ‘어떻게’의 공감각을 보여주고자 한 전시로, 총 9개의 작업을 다른 작가들과 협업해 완성했다. 나는 보통 여러 가지 작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요소들 사이가 주인공 또는 조연으로 구분되지 않도록 배치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 또한 이 구성 방식을 따랐다. ‘숲수푸풋’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과 건물이 등가적인 관계에 있다는 관점을 기반으로 한 작업으로, 양초 작업을 하는 작가 김수연(에어슬랜드)과 협업해 숲이면서도 빌딩처럼 보이는 초를 완성했다. 유리공예가 박혜인(글로리홀)과 함께한 ‘보이지 않는 집’은 유리의 투명함에 주목했다. 건축을 눈으로 보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도 설명해 보고 싶었기에 ‘보이지 않는’ 투명함을 주제로 택하거나 바람에 실려 오는 숲의 향기와 춤의 동작으로 이야기하는 식이다. 이외에는 인형작가 팥빵인형과 함께 침대 같은 폭신한 집을 인형의 형태로 만든 ‘폭신한 정전기의 집’ 등이 있다.

‘드랙 뮤지엄’(2023)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에 참여한 작업으로 총 네 작품을 포함한다. 여장 남자라고 알려진 드랙은 자기 이물감과 젠더의 재현 불가능성을 불완전함과 과장/전복된 전형성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지속적인 자기표현과 커뮤니티의 놀이로 나아간 사례이다. 재현의 시도와 실패의 순환이 건축가가 이미지를 다룰 때 그 힘의 메커니즘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주변화된 주체/비체와 주제, 장소 등 소수자성이 반영된 뮤지엄 디자인을 하면서 이러한 불가능성의 가능성, 과장과 교란의 힘을 다뤄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를 느꼈던 것 같다. 실패하면서 시작하는 디자인이랄까. 이 탐구는 내가 과거 작업한 네 개의 설계공모 계획안들과도 연결되는데, 서울공예박물관은 순수예술이 아닌 공예를, 416생명안전공원은 유물을 담는 공간이 아닌 추모라는 정신을 담는 공간을, 국립여성사박물관은 역사가 아닌 여성사를, 창원시립미술관은 서울이 아닌 창원을 다루는 작업이었다.

<식물 동물 건물: 건축의 몸 상상실험실>(2020) 전경 /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숲수푸풋 /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드랙 뮤지엄’(2023) 시리즈 전경 / 사진: 스튜디오 밀리언로지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건축과 공간 디자인

이다미 건축 설계 의뢰가 없진 않았지만, 상황이 맞지 않았기에 무리해서 진행하지는 않았다. 인테리어 위주로 작업을 했는데, 대부분 알던 지인들이 의뢰했다.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작용했을 것이다.) 건물을 짓는 실무를 오래 하다가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면 건축과 공간 디자인의 차이에 민감했을 것 같은데, 나는 둘 사이의 작업 방식이나 다루는 태도에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구조, 법규 등의 구체적인 구축보다는 추상적인 단계의 건축을 배웠기 때문에 교육의 관점에서도 건축과 공간 디자인의 차이를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싱크대를 콘크리트로 만드는 등 건축가의 가구가 양감과 무게를 가지리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지금까지의 작업은 건축이 가구와 공간디자인의 가벼움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작업할 때 분명한 구분을 하고 접근하지는 않는다.

구탁실 – 구로중학교 탁구실 레노베이션 / 사진: 임효진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이다미 건물을 짓지 않으며 건축하는 일 중에 지금 군산시민문화회관 아카이브 작업이 있다. (건물만 빼고 다 하는 중인가. 아무튼) 김중업 선생님 관련 구술 인터뷰 자료에서 선생님이 2백여 개의 작업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도 계약한 작업이 2백 건인 것 같다. 그런데 르코르뷔지에는 생전 4천여 개의 작업을 했다고 하더라. 르코르뷔지에는 4천 개, 김중업은 2백 개의 작업을 했으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0년 만에 작업의 수가 몇천 개가 넘게 줄어드는데, 내가 언젠가 건물을 짓게 되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세대가 넘어갈수록 신축을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 노이즈센터 계획안 / 자료 제공: 플로라앤파우나

즐겁게 일하는 조직

이다미 내가 큰 규모의 건축물을 작업할 것 같지는 않기에, 10명 내외의 구성원으로 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다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마음을 기반으로 개개인이 자신의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다. CG를 잘하는 직원은 CG만 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가지겠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돈, 성공보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조직 구성원이 최대한 불행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서로가 도와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일이 즐겁다고 느껴진다. 원오원과 BIG에서 경험했던 내부 렉처 프로그램도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조직 내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을 얻고, 배우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


윤리의식

이다미 세대 감각과 관련해서는 나이가 달라도 디자인툴이나 디자인 방식, 작업을 다루는 관점이 비슷하면 동시대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출생연도 기준으로 윗세대와 느끼는 차이점은 윤리의식이다. 자신이 설계공모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윗세대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도 슬프지만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니 끔찍하고 의아하다. 여전히 인맥과 같은 영향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특혜와 로비가 자랑은 아닌 시대 아닌가. 또 우리 세대는 어떤 건축가의 제자도 아니고 어떤 건축가의 정신도 이어받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건축적 맥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보다는, 했을 때 내가 행복할 만한 작업을 하려는 느낌이다.

인터뷰, 원고화 및 편집 박세미


플로라앤파우나

플로라앤파우나(Flora and Fauna)는 식물 동물 정물 건물을 통해 공간과 관계를 작동시키는 물질의 존재 방식을 탐구하며 다양한 크기와 재료, 시점을 통해 건축의 최소와 잉여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건축이 지적으로 교환 가능한 담화이자 일상화될 수 있는 유희이길 바라며 전시와 기획, 교육의 장소 사이를 서성이기도 한다.

이다미는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서울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학부 시절엔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 사무실에서 짧은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대학원 진학과 졸업 후에는 도쿄, 브루클린, 뉴욕, 서울의 이곳저곳을 흘러 다녔다. 2016년 플로라앤파우나 이름을 사용한 이래 2018년 사무소 개설을, 2024년 건축사사무소로 전환을 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를 운영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다.


  • 개소 연도: 2018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3
  • 프로젝트 수주 비율: (공공/민간 구분없음)
    (현황) 학술연구 20%, 전시기획 및 참여 30%, 민간 증개축 및 인테리어 50%
    (희망) 프로젝트의 절대 수가 늘기를 희망할 뿐 비율은 지금도 좋음. 신축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크게 있으나 비율의 문제는 아님.
  • 웹사이트: floraandfaunaseoul.com
  • 인스타그램: @floraandfauna.seoul

플로라앤파우나

분량6,867자 / 14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4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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