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KHJ
김현종
분량6,785자 / 14분 / 도판 6장
발행일2024년 2월 23일
유형인터뷰
ATELIER KHJ는 이제 막 5년을 넘겼다. 아직 호기심이 많고 여러모로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우당탕거리는 과정 속에 크고 작은 일들을 진행했다.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건축을 바라본다. ‘단단하고 굳건하게 서있는 건축이 때로는 친구처럼 느껴지게 할 방법이 없을까?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건축과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대중의 사이에서 우리가 매개체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유연한 모습의 건축을 고민한다. 이것이 우리가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건축적 코드를 허물어서라도 여러 분야 간에 건축을 통해 맺을 수 있는 관계들을 보여주고 싶고, 그 관계들 속에서 구조적이며 구축적인 활동들을 통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고자 한다.
우리를 보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과 물성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할 수 있다,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합쳐져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무모함이 항상 특별함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시도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와 재미가 더 크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을 것이기에, 후에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무모한 도전을 해나가고자 한다.
글 김현종

프랑스에서의 실무 경험
김현종 11년 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며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녔고 몇 군데의 사무실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그중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무실은 스튜디오 무토(Studio Muoto)와 아키텍처 스튜디오(Architecturestudio)다. 내가 일할 당시 스튜디오 무토는 7명 정도, 아키텍처 스튜디오는 150명 정도의 직원이 다니고 있었고, 두 사무실의 규모와 설계 스타일은 달랐지만, 기본적인 어휘나 접근 방식,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슷했다. 벽체를 쌓아 올리는 것만을 건축으로 한정하지 않았고 다양한 영역의 작업을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덕분에 인테리어와 가구를 비롯해 전시, 출판, 사진 등의 작업을 경계 없는 시선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나 작업 방식은 내가 경험한 프랑스 건축 대학의 커리큘럼과도 비슷했다.
실무를 배울 때는 사수나 소장이 나를 옆에 앉혀두고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좋은 회사에는 좋은 프로젝트가 있고,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사무소 안에서 보고 들으며 얻는 경험이 좋았다. 일을 부여받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가장 많이 발전했던 것 같다.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업이 나를 거친 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 훈련은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기회를 찾아 서울로
김현종 파리에서 일할 때는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풍족해 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를 내다보지 않을 수 없었고 5년,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당시 나의 모습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지속과 변화 사이에서 방향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나의 언어로 구축되는 작업이 무엇을 발화하게 될지 궁금해 독립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파리와 서울 중 어디에서 거주할지도 고민하게 됐다.
프랑스는 새로운 건물들을 짓기보다는 보존, 모델링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국민들 스스로 집을 고쳐 쓸 수 있을 만큼 환경과 지식이 갖춰져 있었다. 반면 한국은 1970~1980년대에 마구잡이 식으로 지어진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수명을 다해 가고 있으니 신축 수요가 충분할 것 같아 프랑스보다 기회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일을 수급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살벌한 현실에 호되게 혼나며 배우고 있다.
프레즌트 퍼펙트, 점점점점점점
김현종 첫 건축 작업이었던 프레즌트 퍼펙트(PP, 2021)는 춘천에 위치한 카페다. 기존 건물 1층 앞에 별동의 2층이 연결되도록 수평 증축한 프로젝트로 구봉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전면과 배면 간 레벨 차이가 컸다. 이 지형적 특징을 이용해 다양한 뷰를 보여주고자 전면은 입구만 남긴 채 벽으로 모두 막고, 배면(서쪽)에는 큰 창을 내어 붉은 노을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건물 깊숙이 스며들도록 했다. 이 작업의 포인트 중 하나는 파사드가 된 구조다. 구조가 단순히 건물을 지탱하는 역할로만 간주되지 않고 마치 건물이 입은 한 겹의 옷처럼 드러나길 바랐다.
점점점점점점(2021)은 재료의 가공부터 재사용까지 고려한 상암동 비건 레스토랑 프로젝트다. 최근 생태계 이슈로 인해 친환경을 내세운 공간들이 많이 생겼는데 막상 방문해 보면 우드톤에 식물을 곁들인 인테리어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목가구와 식물이 친환경적인 걸까? 결국엔 모두 폐기물이 될 텐데?’라는 의문이 있었다. 점점점점점점은 재료의 가공을 최소화하고 자원이 순환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쓰인 재료 대부분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금속을 많이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주재료로 사용된 폐알루미늄 압축 큐브는 재사용을 원한다면 그대로 용광로에 넣으면 되는 형태로 제작했다. 그 외에 사용한 재료로는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드는 친환경 소재 코르크가 있다. 점점점점점점은 비거니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건축주를 만났기에 가능했던 작업이고, 2021년 사무실의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친환경 작업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김현종 나는 건축, 사진, 조경, 패션, 예술, 시각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작업하고 싶은, 욕심 많은 학생이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건축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은 유난히 건축의 이미지가 강하고 무겁다. 건축사무소이기 때문에 건축 프로젝트 위주로만 작업하는 곳도 많은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건축을 사회 문화와 예술로 바라본다. 건축이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양하고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렇기에 우리 사무실에서만큼은 분야에 경계를 두지 않고 새로운 방식과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 작은 스케일의 가구부터 건축까지 범위를 확장해 접근하고,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거나 익숙한 재료를 다른 표현 방식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어려움은 늘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 물론 한 분야만 잘하는 것도 벅찰 때가 많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이용자가 공간 안팎을 오고 갈 때 호기심과 궁금증을 일으킬 만한 지점이 무엇일지 항상 고민한다. 그 지점은 구조가 될 수도 있고, 벽에 걸린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집에 돌아가서도 건축을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조직으로 일하는 법
김현종 이런 노력과 시도들이 쌓여 결국 우리 사무실만의 특기이자 무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어느 하나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회사, 클라이언트가 믿고 맡기는 회사,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회사,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회사, 안정된 회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은 규모가 크지 않은 사무소이다 보니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많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더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또 고쳐나가고 있다. 이에 더해 우리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중이다.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리뷰 시간을 갖는다. 이때 담당자가 전반적인 업무 내용을 브리핑하고,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 좋았던 점 등을 공유한다. 이 시간을 통해 구성원들은 간접 경험을 하며 듣고 배운다. 일을 하며 얻은 전반적인 지식이나 방법, 모험담 등은 서버에 공유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재료부터 어느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사이즈까지 여러 가지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나만의 것을 찾는 우리 세대
김현종 내가 유학을 갈 당시만 해도 여전히 인터넷만으로는 건축에 대한 정보를 얻기 부족해 퐁피두 센터나 건축 도서관에 직접 가서 자료들을 찾아봤다. 지금은 다양한 건축 플랫폼들이 많아져 손쉽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이런 정보량의 차이가 세대 차이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리 세대 건축가들은 건축이라는 단어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앞세대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강의를 나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해외 건축가와 한국 건축가를 구분 짓지 않더라. 내가 학생일 때는 당연하게 해외 건축가를 선망하고 그들의 작업을 보러 다녔는데, 요즘은 해외 건축가와 한국 건축가를 동등한 입장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이 많아진 듯하다. 전반적인 건축 문화 수준이 높아져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흡수하는 정보량이 많기에 선망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같은 세대 건축가들은 선망의 대상을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건축가들의 작업 사이에서 나의 언어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도상학적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도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경계를 넘나드는 건축(가)
김현종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건축의 경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분야에서 건축을 구축하려 노력한다. 건축 설계를 한 경험이 인테리어, 가구, 조형물 작업에 영향을 주며 각각의 작업이 상호보완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학업과 실무를 통해 갖기도 했지만 실제로 사무소를 운영하며 진행한 작업과 개인 작업인 오브제 연작을 통해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결국 건축가는 건물을 짓는 일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깨는 것으로부터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이 시작되는 것 같다.
사회 구성원이라는 감각
김현종 건축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가 또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만, 건축가에게 더 많은 사회적 역할과 태도를 요구하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아닌 것 같다. 공공 프로젝트로 사회가 기대하는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도 있겠지만, 공공 프로젝트는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되어야만 작업할 수 있기에 그 기회가 한정적이다. 나와 내가 이끄는 ATELIER KHJ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시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우리의 시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 경험의 형태는 건축이나 공간, 가구, 전시 등이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공급이 아닌 활용의 시장
김현종 해방 이후 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건설과 건축이 끊임없이 행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도시 소멸, 강남 한복판 공실 문제, 서울시 광진구 화양초등학교 폐교, 주택 미분양 등 불안정한 경제 상황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건축업에서는 대규모 건축 공급이 줄어들고 프랑스처럼 소규모 단위의 공급과 리모델링, 인테리어 산업이 활발해지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그리고 건축가는 이러한 현상 또는 시장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공급자의 시선으로 신축을 짓는 방식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기존의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터뷰, 원고화 및 편집 박세미
ATELIER KHJ
ATELIER KHJ는 도시 문화와 건축, 인테리어, 가구 그리고 예술 등 경계를 나누지 않고 여러 분야의 문화적 가치를 고민하며, 본질적이고 독창적인 프로세스로 접근하여 퀄리티있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한다. 또한, 재료와 물질에 대한 궁금증을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재해석하고, 연구로 얻은 결과물을 공간 또는 어떠한 형상에 적용하여 더 나은 방향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현종은 프랑스 파리 École Spéciale d’Architecture(ESA)에서 건축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에서 다년간 실무 경력을 쌓은 뒤 2018년 서울에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ATELIER KHJ)를 개소했다. 대표 작업으로 프레즌트 퍼펙트(Present Perfect), 점점점점점점 등이 있다. <젊은 모색 2023 : 미술관을 위한 주석>(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3), <서울마루 공공개입>(서울도시건축전시관, 2022), <바닥, 디디어 오르다>(아름지기 사옥, 2020), <돈의문이 열려있다>(돈의문박물관마을, 2018)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연작 전시 <빌딩(BUILDING)>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에 출강 중이다.
- 개소 연도: 2018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6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공공 프로젝트 20%, 민간 프로젝트 50%, 전시 프로젝트 20%, 가구 프로젝트 10%
(희망) 공공 프로젝트 20%, 증개축 40%, 민간 프로젝트 20%, 전시 프로젝트 10%, 가구 프로젝트 10% - 웹사이트: atelierkhj.com
- 인스타그램: @atelier_khj
ATELIER KHJ
분량6,785자 / 14분 / 도판 6장
발행일2024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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