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전연재
분량7,786자 / 17분 / 도판 4장
발행일2024년 2월 23일
유형인터뷰
독립부터 현재 _ 작가 아틀리에, 중규모 외국계 사무실, 대형 종합건축사무소를 두루 거치고 독립했다. 내 작업을 하겠다는 욕망보다는 자신의 호흡으로 삶을 꾸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개소 후 첫 프로젝트가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에서 발주한 공공프로젝트였고, 이를 계기로 공공의 영역에서 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건축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었다. 미감과 디테일을 중시하던 하이엔드 프로젝트나 대기업 프로젝트와 달리 공공 건축은 부족한 예산, 여러 의사 주체와 복잡한 행정 절차, 저가 입찰을 통해 선정된 시공사라는 조건 속에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자연스레 아름다움과 개념의 추구에서 시설의 역할과 쓰임이라는 가치로 중심이 옮겨갔다. 건축가의 욕망이 기능과 필요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경계한다.
태도와 지향 _ 사무실 이름인 마니(MANI)는 이탈리아어로 ‘손’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손’이라는 뜻을 가진 mano의 복수형이다. ‘만든다’라는 태도를 근본으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상주 여행에 이어 석사 유학을 했던 이탈리아는 제품, 가구, 인테리어, 건축, 도시, 조경의 경계가 없고, 이런 토탈 디자인의 관점을 자연스레 체화했다. 이에 더해 공예 감각과 장인 정신을 품고 가고 싶었고, 사무실을 시작할 때부터 이 두 가지를 기치로 두었다.
우리 사무소는 회사보다는 스튜디오의 형태를 지향한다. 개별의 고유성을 유지하려 하고, 조금은 가볍고 자유롭게 영역을 넘나드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극, 사진, 출판, 전시 영역을 탐험하고, 브랜딩과 기획, 연출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소수의 일을 정성껏 하고 싶다.
직업인으로서의 건축가 _ 갈수록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넘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작업을 할 때, 심사나 강의할 때도 그런 태도로 임한다. 건축도 다른 모든 일과 같이 타인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나는 건축가를 직업인으로 본다. 거기에 제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
글 전연재

시작
전연재 학부 졸업을 앞두고 일찍 실무를 시작했다. 3년 뒤 1년 간의 상주 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제로 3년을 채우고 이탈리아 중부 소도시 페루자로 떠났다. 현지의 극단에 들어가 전 세계에서 온 동료들과 창작극을 올렸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전을 열며 창작의 세계를 탐험했다. 이후 이탈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밀라노에서 건축 석사과정을 마쳤고, 유럽의 집들을 여행하고 돌아와 프랑스 건축가 사무실과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일했다. 나의 경우 내 작업을 하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독립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회사에서 해외 프로젝트를 많이 커버했고, 현상설계와 턴키를 일 년에 6~7개씩 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마지막 프로젝트를 할 때쯤 ‘이 정도면 됐다’는 신호가 왔다. 너무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사무소로 갈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프로젝트 기회가 생겨 독립하게 되었다.

작동하는 공간
전연재 실무 경력이 쌓이며 더 이상 거창한 개념을 논하지 않게 되었다. 시설의 역할과 필요를 살펴 합당하게 계획하고, 실제로 잘 작동하는 공간을 구현하려 애쓴다. 건축적 의도는 결과물의 아래에서 조용히 동력으로 작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쓰고 돌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작업은 일상어로 설명한다. 프로젝트를 글로 정리하는 편인데, 완성 후 부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계획을 구체화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글쓰기를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이 명확해지고, 계획과 실제의 간극이 줄어든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집을 찾아올 수 있게 도와주는 지도이다.
첫 프로젝트, 책놀이공간 따띠
전연재 독립 후 첫 작업은 ‘책놀이공간 따띠’라는 이름의 지역아동센터 프로젝트였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문화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강원도 양양의 한 창고를 리모델링해 13~18세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분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특별한 점은 처음부터 공간 기획자와 콘텐츠 기획자가 팀을 이루어 일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공간을,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님이 콘텐츠를 맡았는데, 정말 재밌게 일했다. 이 대표님이 멋진 어른이어서 ‘공간에 맞출 테니 마음껏 하라’며 맡겨주었고, 콘텐츠 관련해서는 내게 아이디어를 많이 물었다. 캐치프레이즈가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에 문득 떠오른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을 던지니 바로 기린 캐릭터를 만들어주셨고, 오픈하우스 행사 프로그램을 제안해 달라고 해 싱어송라이터 시와를 섭외하고 진행을 맡았다. 부족한 예산 내에서 최대치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고 한겨울에 매주 두 번씩 강원도를 오가며 고생했지만, 즐겁게 공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확장해 가는 기쁨을 알게 한 일이었다.
솔안공원 도서관
전연재 구현된 프로젝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솔안공원 도서관이다. 공동주택으로 둘러싸인 근린공원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으로, 어떻게 자연을 들일 것인가와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풍요롭게 누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오픈 플랜을 기본으로 하되,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공간과 성인을 위한 공간, 입식 공간과 좌식 공간, 1인, 2인, 4인, 12인, 50인을 위한 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공존하며 하나의 집을 이룬다.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책, 자연, 청소년이어서 특히나 애정이 깊었다.
공공프로젝트의 특성 중 하나는 준공 후에도 어떻게 쓰이는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관 후에도 시설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꾸준히 살펴보는데, 운영자나 이용자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점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피드백하며 데이터를 쌓아간다. 건축가의 일은 설계도서의 납품이나 건물의 준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까지이기 때문이다.

공공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
전연재 그 모든 지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민간 프로젝트는 자본을 가진 한 개인만을 위한 프로젝트이고, 특히 집의 경우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건축주가 내 돈을 들여 내가 24시간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당신이 옳다’라는 태도로 접근한다. 전문가로서 더 나은 것을 제안하지만, (주택도 도시를 이루는 공공재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건축주의 뜻이 타인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공공시설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수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때문에 그 파급력이 크다. 더 큰 단위에서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만들면 그 혜택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여기에 공공건축의 가치와 이 일이 주는 작은 기쁨이 있다.
가구로 만드는 공간
전연재 소규모 프로젝트는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가구로 공간을 구획하는 경우가 많다. 실 대신 영역을 만드는 것이고, 가구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버블이 만들어져 쓰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디자인은 여러 감각 중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데, 연극을 하며 몸으로 지각하는 공간에 대한 깨우침이 있었다. 특히 어린이 공간은 아이들의 신체 활동과 정서적 반응을 고려한다. 어린이 시설에서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공간 선호도를 반영한 것인데, 작은 단위 공간의 조합이 놀이를 촉발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앉고, 모이고, 뒹굴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계획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을 유영하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이 공간 안에서 ‘편안하다’ , ‘자유롭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기획
전연재 2021년부터 공공 영역에서 건축기획 업무를 꾸준히 하고 있다. 건축기획은 사업의 방향과 틀을 잡는 작업이다. 가능성을 탐색하고, 사업의 성격과 방향, 규모와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좋은 계획안과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도록 과정과 안내서를 구축한다. 구현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고, 시행의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게 된다. 프로토타입이 정해져 있는 시설보다는 프로그램과 형식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시설이 훨씬 흥미롭고, 우리가 기획한 사업이 탄탄한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면 그것 역시 의미 있다. 그런 일 중에 착공을 한 프로젝트가 있고, 준공을 기대하고 있다.
가벼운 체급으로 유연하게
전연재 마니는 나와 스태프 한 명이 일하고 있다. 손이 더 필요할 때는 다른 사무소와 협업하거나 프리랜서와 일한다. 앞으로 일의 규모가 커지면 조직도 커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큰 조직을 꿈꾸지는 않는다. 소장 한 명, 실장 또는 팀장 한 명, 사원 한 명, 이렇게 셋만 있으면 웬만한 규모의 프로젝트는 다 소화가 된다. 각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길이 구석구석 미치려면 3~5명이 적당하다고 본다.
작은 단위이길 바라는 건 가볍고 유연하게 움직이고 싶기 때문이다. 쉬고 싶으면 좀 쉴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흩어졌다 모일 수도 있기를 바란다. 작년에 일이 조금 몰렸는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일은 사양했다. 인원을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는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작정 체급을 키우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숨만큼 일하고, 스스로의 속도에 맞게 성장하는 것이 좋다.
건축을 넓히는 협업
전연재 지금 사무실로 이전하기 전에는 문도호제 임태병 소장님이 만든 커뮤니티 오피스에 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있었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도 하고 세미나도 했다. 건축계 안에서 협업할 때는 같은 영역에서 덩치를 키울 수 있다는 이점이, 다른 분야 사람들과 협업할 때는 일의 범주와 시야가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건축가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디렉터 역할을 하는데, 타 분야와 부대낄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그런 측면에서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이어가려 하고, 앞으로는 전시와 연구 분야의 사람들과도 일해보고 싶다. 학술 연구보다는 실행을 위한 연구에 관심이 있고, 55세 이후에는 실행 프로젝트를 줄이고 연구와 디렉팅 영역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설계 공모 과열, 소규모 사무소의 업무 효율화
전연재 경기침체로 민간 프로젝트가 줄다 보니 설계 공모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 최근 노원구 자전거센터 공모에 등록한 팀이 400팀이 넘었는데, 실제로 출품한 팀도 60여 팀에 달했다. 설계 공모 시장이 과열되면, 이것이 공정하게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60팀이 한 공모에 도전한다고 할 때, 각 팀은 최소 1천만 원 이상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당선 팀 이외 나머지 59개의 사무소가 수천만 원의 손실을 보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크고, 이는 결국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건축 시장이 어려우면 중규모 사무소가 줄고, 작은 사무소는 더 작은 몸집으로 대응하게 된다. 한동안 작은 사무실들은 필요에 따라 가볍게 헤쳐 모여의 방식으로 움직여 나갈 것이다. 1인 사무실이 가능해진 데에는 툴의 변화와 발전이 있다. 우리 세대부터는 캐드와 3D 툴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계획부터 실시설계, 감리까지 혼자서도 해결이 된다. 건축은 팀이나 조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한 사람 안에서 일의 전체 프로세스가 완결될 수 있으면 보다 자유로워진다.
더 젊은 세대의 등장
전연재 나와 같은 세대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기는 어렵고, 나보다 젊은 세대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다. 기준은 5년제의 도입이다. 5년제가 되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독립 시점이다. 4년제를 졸업한 세대는 예비사 시험에 합격하고 5년의 경력이 있어야 건축사 시험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독립 시점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5년제 도입 후 3년만 실무를 쌓으면 시험을 볼 수 있게 되면서 20대 후반의 건축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개인’을 중시하는 특성과 맞물려 다수가 30대 초, 중반에 독립하면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나는 조성룡 선생님 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했고, 도제식으로 일을 익혔다. 이 때문에 앞세대가 갖고 있었던 건축에 대한 진지함과 책임감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는데, 나보다 젊은 세대는 개인의 차원에서 보다 가볍게 접근하는 듯하다.
앞세대와는 거대한 건축적 담론에 매달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앞세대는 국가 자체가 새롭게 건설되는 시기다 보니 거대 담론이 필요했던 시대였고, 지금은 도시가 자리잡힌 상태에서 그를 정비하고 보완해 가는 시대다. 10~20년 전 일본의 젊은 건축가층이 급격히 두터워졌던 계기가 작은 주택 시장의 확대였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10~15년 전 정도부터 소규모 건축과 주택 수요가 커졌고, 젊은 건축사의 증가와 맞물려 시장이 돌아가는 것 같다. 건축 설계 시장의 한계를 느낀 이들이 브랜딩, 공간기획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운영자로 공간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등 영리한 행보도 눈에 띈다.
토탈 디자인으로서의 건축
전연재 나는 건축이 건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폰트부터 시작해 그래픽, 가구, 인테리어, 건축, 도시, 조경까지 쭉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브랜딩, 공간·전시·문화기획, 연출 또한 건축가가 아우를 수 있는 영역이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데, 건축가 또한 전문 분야를 넘어 전방위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고, 공간과 디자인이라는 구축의 기술을 갖췄고, 사람들과 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교육,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
전연재 현 5년제는 인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학생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발전시킬 기회가 되려 제한된다는 점에서 아쉽다. 저학년 때부터 BF를 먼저 생각해 설계하고, 구조도를 그리기 위해 정형화된 형태로 계획한다. 국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그 의의가 크지 않다. 유럽이 기존 5년제 디플로마 학위를 3+2제로 전환해 앞의 3년을 학사로, 뒤의 2년을 석사로 만든 반면 우리나라의 5년제는 학사 졸업으로,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2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과정의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인증을 위한 건축 교육은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 중이다. 최근 몇몇 학교에서는 인증 과정을 고학년에 집중시키고, 중 저학년은 보다 다양한 커리큘럼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학생 시절은 사고를 확장하는 시기여야 한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을 폭넓게 탐구하고, 캠퍼스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되어 태도로 완성되니 말이다.
인터뷰,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마니
마니(MANI)는 ‘손’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건축사사무소 마니는 토탈 디자인(Total Design)과 장인정신(Craftsmanship)을 지향한다. 시설의 역할과 작동에 집중하며 이야기로 구축되는 과정, 몸으로 지각되는 공간, 쓰임으로 완성되는 집을 만들고자 한다.
전연재는 홍익대학교와 Politecnico di Milano,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조성룡 도시건축, DPJ & Partners, dmp에서 일했다.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건축사사무소 마니의 대표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집과 이야기를 짓고, 삶을 탐구한다. 주요 작업으로 솔안공원 도서관 ‘모두의 서재’, 책놀이공간 따띠, 송정그림책마을 공공시설 등이 있고, 책 『집을. 여행하다』를 썼다.
- 개소 연도: 2018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2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 신축 15%, 공공 신축 15%, 공공 증개축 45%, 건축기획 15%, 공간연출 및 전시기획 10%
(희망) 민간 신축 30%, 민간 증개축 10%, 공공 신축 30%, 공공 증개축 10%, 건축·공간·전시기획 및 연구 20% - 웹사이트: studiomani.co.kr
마니
분량7,786자 / 17분 / 도판 4장
발행일2024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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